소크라테스의 변명 - 크리톤 파이돈 향연, 문예교양선서 30
플라톤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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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닭 

- 크립톤, 우리는 에스클레오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 빚진 게 있었지. 자네들이 내 대신 빚을 갚아주게. 잊지 말고* 

1. 
놀라워라. 장날 아버지 사오신 닭 한 마리. 알뜰한 닭 한 마리가 달걀을 낳고 어서 자라 병아리가 되고 병아리 떼 종종종 거위가 되고 푸짐한 도야지가 되고 소 한 마리 너끈히 되었다가 형의 대학 등록금이 되고 누이를 시집보내고 마침내 닭 한 마리의 가족을 너끈히 꾸린다 하네. 날지 못해 슬픈 현실을 살림하는 닭 한 마리. 거룩한 절망이여.  

2.
잊 을 수 없 다. 

소 크 라 테 스 에 게 빌 린 
닭 한 마 리 를 
갚 아 야 한 다 

-------- 
*소크라테스의 유언 중 마지막 당부의 말 

벌써 10여 년 전에 쓴 시다. 에스클레오피오스는 의신(醫神)이다. 소크라테스가 이 의신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다고 한 말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는 모양이다. 그 중에 유력(?)한 것이 소크라테서가 마신 독배가 인류를 위한 것이며, 인류의 마음 속에 깃든 병을 고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이 시는 그런 해석에 기대어 썼는데, 지금 읽어보니 자뭇 심각한 채 무게를 잡으려 했던 것 같다.

시까지 썼지만 소크라테서의 변명, 이 책에 담긴 <크리톤>, <파이돈>, <향연>을 찬찬히 읽지는 못했다. 어쩌면 읽었다고 한들 그 당시 온전히 이해했을 것 같지도 않다. 지금 또한 이 책의 내용을,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삶과 죽음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윤리학 교과서에서 배웠던 10대와 고전이기에 의무감에서 펼쳤던 20대와는 다른 울림을 전해준다.  

드라마 작가 노희경이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향연>을 언급하는 걸 들었다.
"왜 우리는 사랑을 할까요? 여러 사람들이 그 해답을 내놓았는데 소크라테스의 대답은 '행복해지기 위해서'였어요."

사랑을 하면 행복해질까? 사랑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한다지만 사랑한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사랑도 행복에 대한 욕구도, 철학이 지혜에 대한 사랑, 탐구인 이상 철학하는 것 또한도 어떤 결핍과 맞닿아 있다. 결핍, 결여는 인간 존재의 본질 중 하나인 듯하다. 얼마 전 강의를 들었던 과학철학을 하는 최종덕 선생님의 말씀처럼 (매우 비과학적으로 들리지만) 인간은 외롭기 때문에 철학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종교는 외로움을 떨칠 수 있게 해주고 결핍을 충만으로 바꿔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철학의 역할은 결국 그 결핍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며 그 근원은 어디에 있는지를 들여다보게 하는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소크라테스는 무엇보다 겸손했고 진지했으며 자신과 세상에 정직한 삶을 살았다.  위대한 인간, 위대한 철학자의 죽음에 대한 기록. 그에게 빌린 닭 한 마리를 갚을 수는 없으나 잊지는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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