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 마, 형사절차! - 민변 변호사들이 쓴 수사·재판 완전정복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지음 / 사람생각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
망년회에서 변호사 친구를 만난 의사가 애로사항을 털어놓는다. 명절이면 친인척들이 자꾸 건강상담을 하는데 무료로 계속 상담을 해줘야 하나? 변호사는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고 우편으로 청구서를 보내면 편해질 거라고 코치를 해줬다. 그리고 며칠 뒤 의사는 변호사 친구가 보낸 청구서를 받게 되었다.

#2.
예전에 어디선가 읽은 유머다. 이야기의 무대는 미국인데 거기서는 변호사가 한국에서의 국회의원 같은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변호사의 수를 늘리자고 했더니 어떤 이들은 미국 사례를 들며 망국론을 펴기도 했단다. 물론 모든 변호사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다수가 아니라 소수라는 점이다.

#3.
그런 소수를 이른바 '인권변호사'라고 부른다. 사실 법대로 하자면 모든 변호사는 인권변호사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있는지도 모르고 변호사들은 알고 있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는 '변호사법'의 제1조는 변호사의 사명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게 바로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충복인 정치인을 만나기 힘들고, 머슴노릇하는 공무원을 만날 수 없듯이 이 사명에 충실한 변호사도 그렇다. 그래서 인권변호사라는 말이 생겼다. 지지난 정부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생겼고, 지난 정부에서는'인권경찰'이라는 말이 생길 뻔 했지만 인권변호사의 역사는 꽤나 유서깊다. 인권변호사들의 모임이 이 책을 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변이다.

#4.
작년 촛불집회에서였다. 시청광장 주변에서 후진을 하던 전경버스가 한 시민을 치었고 흥분한 시민들은 전경버스를 애워싸고 마구 흔들었다. 주변에는 버스를 구출하러 출동 대기 중인 전경들이 모여들었다. 그 가운데, 그 안에 타고 있던 경찰간부와 시민들 사이에 민변 변호사들이 있었다. 저 뒤쪽에서 또 다른 웅성거림이 들렸다. 한 정보과 형사가 시민들에게 붙잡혀 무전기를 빼았겼다. 시민들은 형사의 신분증을 요구했지만 형사는 막무가내였다. 전경버스 주변에 있던 한 변호사가 비집고 들어 소속과 이름을 받아적고 나서야 사태가 진정되기 시작했다.

#5. 
촛불집회에서 그들이 했던 일은 사실 변호사의 업무와는 좀 거리가 있는 일이었다. 사실 집회시위 현장에서 변호사가 할 일이 딱히 있어보이지도 않는다. 대한민국 거리에서는 경찰이 곧 법이니까. 그런 답답함과 아쉬움도 이 책을 내게 하는데 한몫했을 성 싶다. 길을 가다 검문을 받았을 때, 경찰로부터 동행을 요구받았을 때, 갑작스럽게 연행이 되어 경찰서에서 '조서'라는 것을 '꾸미게' 되었을 때... 등등의 그야 말로 실전에서의 쓸모있는 요령들이 적혀있다. 목차만 봐도 꽤나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좀더 알기 쉬운 용어와 말랑한 문체가 아쉽지만 전자제품 사용설명서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고 읽으면 그런데로 쓸만하다.

#6. 
어떤 이로부터 한 철거민 아주머니를 인터뷰하다가 그 분이 도시개발법을 줄줄 외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전세금을 한번 뜯겨보면 주택임차보호법의 전문가가 되기도 한다. 법은 약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아니라 강자에게 주어진 면죄부 같은 것인지 모른다. 그 망할놈의 법 때문에 억울함을 달래기 보다는 더 억울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아는 게 별 도움이 되지도 힘이 되지도 못하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 나면 저 그럴듯한 '사명'을 외면하고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는 대다수 변호사들보다, 허구헌날 불법집회 운운하는 경찰간부보다, 경찰청 보도자료 배끼는 사이비 기자들보다 거리에서 시민들과 함께 하는 진짜 법, 현장에서 무시되고 천대받지만 진짜 집행되어야 할 법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7.
대부분의 자기개발서가 궁극적으로 조직의 발전에 기여하는 부속품을 재생산해내는 것이라면 이 책은 민주사회를 위한, 민주시민의 자기개발서라 할만 하다. 형사절차, 경찰과 국가를 상대로 자기개발을, 그것도 내 돈 만원을 주고 해야 하는 게 서글프기는 하지만 여타의 자기개발서에 비하면 아깝지 않은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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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블로거가 바라본 앰네스티와 인권 (12월4째주)
    from Amnesty HumanLog (Beta) 2009-12-21 14:40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주 한 주도 씩씩하게 시작하셨나요?    개인적으로 전 요즘 얼마남지 않은 12월 달력을 볼 때마다  매 시간을 고이 접어두고 싶답니다.    얼마 남지 않은 12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이번 주 한주도 파이팅이고요.   그리고 이번년도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해도 좋다고 하니     가족들, 연인들, 친구들과 함께 예쁜 추억들 많이 만드세요 !!    12월 셋째주 한 주동안 블로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