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억 선생님, 어서 이쪽으로 앉으세요.”

한 뒤풀이에서 어떤 분이 우스갯소리로 제게 건넨 말입니다. 사연인 즉은 이렇습니다. 평화박물관이라는 곳에서 ‘국가폭력과 트라우마’라는 이름의 강좌를 열었습니다. 그 마지막 순서는 지난 8월, 27년 만에 간첩누명을 벗은 이른바 ‘송씨일가 간첩단 사건’ 피해자들의 증언을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거기서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재심에서 판사가 무죄라고 선고하면서 저보고 이제 국가를 좀 생각해달라고 그래요.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제가 국가를 생각해줘야 하는 게 아니라 국가가 저를 생각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간첩누명을 쓴 것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하지 말라는 걸까요? 저를 간첩으로 만든 건 전두환인데, 손해배상금은 전두환이 아니라 여러분이 낸 세금이잖아요. 제가 그 돈을 받는 게 맞을까요?”

그분은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할머니였습니다. 저는 그분이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게 너무 속상해서 한 500억 쯤 받아내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어떤 유명한 시민운동가는 1조 원을 청구하라고 했다내요. 그 말에 낯이 뜨거워졌습니다. 왜 50억도, 5000억도 아니고 500억이라고 했는지. 가끔 로또 당첨을 꿈꾸는 저한테 500억 원이 어쩌면 상상 가능한 최대액수였던 모양입니다. 안기부에 끌려가 100여 일이 넘게 여성으로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고문을 받고, 그 고통으로 인해 남편과의 관계, 자식과의 사이마저도 엉클어져버린 그분과 그분의 친척들에게 사실 무엇으로 보상이 가능할 것이며 과연 어느 누가 합당한 배상액을 계산해낼 수 있겠습니까.

어떤 나라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게 있다고 합니다. 악의를 가지고 한 불법행위에 대해 형벌적인 의미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인데 미국의 어떤 식품업체가 고의로 유통기한을 넘긴 상품을 팔았다가 회사 문을 닫게 되었다는 뉴스를 아마 접한 적이 있을 겁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비인간적인 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의 기미조차 없는 국가기관, 그 중 한두 부처만이라도 없앨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언간생심 조작이니 은폐니 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게 말이죠.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이 만들어지고 용산참사의 진실이 은폐된 채 어이없는 재판이 이뤄지고 있으니 그저 로또 당첨과 같은 한낱 망상에 불과합니다.

저는 요즘 지하철을 탈 때마다 국가란 참 대단한 것이군, 생각합니다. 바로 우측통행 때문이지요. 처음에는 별 걸 다 간섭하네, 우습기도 했는데 막상 사람들 보행방향이 눈에 띄게 바뀌는 걸 보면서 국민들 걷는 방향까지 좌지우지하는 국가가 새삼 두려워졌습니다.

지하철역마다 “편리하고 안전한 우측통행, 세계와 우리의 문화”라는 글귀를 볼 수 있습니다. 원래 우리전통은 우측통행인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좌측으로 바꿨고 해방 후 미군정은 차량은 우측통행으로 바꾸었지만 좌측보행은 바꾸지 못해 차는 오른쪽, 사람은 왼쪽으로 80년이 넘게 흘러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이미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다 우측통행이고 그것이 대다수 오른 손잡이에게도 편하고 안전하다는 설명이니 ‘국민학교’ 입학과 동시에 좌측통행을 세뇌당한 저는 뭔가 단단히 속은 느낌입니다. 그래서인지 편리하고 안전하고 선진국도 다 그렇게 한다는 글귀를 보면, 자고 일어나면 간첩이 생겨나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그 당시 판검사들도 좀 억울한 사람은 있겠지만 이게 편리하고 안전하니까, 쭉 그래왔으니까, 자신들보다 더 똑똑한 이들도 다 그러고 있으니까, 했을 테지요. 혹시 재심 판사는 그런 선배 판사들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국가의 생리이니 너그럽게 이해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어떤 판사들은 과거 사법부를 대신해 사과를 하기도 했다는데 그는 자신이 맡았던 사건도 아니고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니 책임질 것도 없다며 제3자인 양 하는 것일까요?

1985년에 나온 조세희의 사진-산문집 『침묵의 뿌리』를 보면 1980년 ‘광주’와 ‘사북’을 겪은 한국사회에서 알리바이라면 권력자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갖고 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알리바이라는 말은 범죄현장에 자신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여 무죄를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알리바이가 있다고 해서 국가범죄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29만 원밖에 없다는 전두환에게 그 29만 원이라도 받아내야 할 것이고 국가폭력 피해자에게 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책임을 나눈다는 의미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배상금을 주는 것도 필요한 일이겠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용산참사 재판에서 보듯 정부는 자신들의 범죄가 정당한 것이고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강변하고 사법부는 이에 대해 자기들만의 법 논리를 내세워 면죄부를 줍니다. 청산해야 할 과거사의 목록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기에 우리 스스로 우리의 알리바이를 부정하고, 무수한 국가폭력에 저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것, 그래서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연대의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인종주의 문제와 쌍용자동차 파업을 다뤘습니다. 『사람』은 한국사회의 인종주의가 위험수위에 도달한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며 경종을 울리고 싶습니다. 인간이 물건 취급을 당하고, 배제되고 추방되고 존재가 부정되는 사회는 누구에게 편리하고 안전한 사회일지 몰라도 다른 누구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사회입니다.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가 살고, 정리해고만이 회사와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합리적인 선택이라 강요하는 사회에서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들은 이주민과 마찬가지로 희생양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종차별과 정리해고, 노동탄압에 대한 알리바이도 도처에 널렸습니다. 이 두 가지는 결국 하나의 문제입니다. 희생양을 갈구하는 사회, 그것으로써 존재이유를 찾아야 하는 공동체는 참으로 허약하면서도 그래서 더욱 잔인해질 수밖에 없는 사회니까요.



- 사람 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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