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이도. 흔히 세종대왕으로 일컬어지는 인물로 만원권 지폐에도 들어있다.
(그는 자신의 초상이 배추잎이 되어 사람들 주머니로, 때로는 사과박스에 담겨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아버지 태종 이방원의 철권통치 아래서 스물 두 살에 즉위하여 명색이 왕이었으면서도 자신의 처가 식구들의 숙청을 그저 감내해야 했던 슬픈 군주. 한편으로는 피의 댓가로 얻은 평화의 시대에 농업과 역법, 의학과 과학, 음악, 문학 지리, 천문 등 다방면에서 그야말로 눈부신 업적을 이룬 조선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할 수 있는 천재.
(그래서 후궁만 다섯에 스물 두 명의 자식을 두어야 했을까?)
그의 동상이 이제 지폐에서 나와 광화문에 세워졌다고 한다. '하이 서울 페스티발'이 열리는 서울 한복판에, '영어 몰입교육'이 찬양되는 이 시대에, 다름아닌 한글날을 즈음해서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동상은 시대착오적이다. 마치 신흥종교 집단에 교주님 같은 모습이랄까,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비단 세종만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광화문에 세워져 온갖 오욕의 현대사를 지켜봐야 했던 이순신은 어떤가.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 볼 수 있는 인간적인 고뇌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무슨 무당집의 관운장 같기도 하고, 진시황 무덤에 섰는 토우 같기도 한 그의 동상을 볼 때마다 이 나라 군사정권의 안목이 늘 안타까왔다.
'칼레의 시민'이라는 로댕의 동상이 있다. 별로 맘에 들지 않는 말 가운데 하나인, 노블레스 오블리제(가진 자들의 도덕적 의무)의 상징으로 꼽힌다. 프랑스 칼레시가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시민들이 학살될 위기에 놓이자 '가진 자' 여섯 명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여 나머지 시민들의 학살을 막았다는 이야기인데, 로댕은 칼레시의 요청에 의해 그 여섯 시민의 조각을 만들면서 절대 사람들 눈 높이 위에 세워두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이 조각이 성스럽고 위대해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칼레시로부터 거절당하기도 했다고 하나 지금에와서는 진정한 인간의 품격이 무엇인지, 도덕과 의무가 과연 어떠한 고뇌 가운데 나오는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걸작으로 남아있다. 물론 보는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가운데서 말이다.
4.19 이후 이승만의 동상이 그랬고, 레닌과 사담 후세인의 동상이 마찬가지로 욕을 봤건만 북쪽에는 수령님의 동상이 굳건하고, 남쪽에는 장군의 동상에 이어 대왕의 동상이 세워지는 이 땅 덩어리.(이 나라에서 예술하는 조각가들도 그래서 한편 불쌍한 존재들이다.)
아마도 후대의 예술적 안목과 철학의 빈곤함을 예상했더라면 세종은 아마 "나의 동상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지 않았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