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글을 찾다가  우연히 오래전부터 보고 싶던 글을 찾았다.    
이 책을 읽고 아래 논문을 읽는 것이 나을지, 논문을 일고 책을 읽는 게 나을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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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주체가 말할 수 있는가? : 다원주의의 문제들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 / 태혜숙(효성 카톨릭대 영문과 교수) 옮김


이 논문의 원래 제목은 <권력, 욕망, 이해관계>였다. 이 주제들에 관한 명상은 실로 어떤 식으로든 힘을 행사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파악하는 내 욕망의 기초적인 전제들을 끝까지 밀고 가 보지 않으려는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생겼을지도 모른다. 가장 단호하게 투신된 담론이나 가장 아이러닉한 담론 모두에 적응되는 이 통속적인 삼박자 규정은 알튀세르가 가장 적절하게 부른 <부정의 철학> (philosophy of denegation)을 따르고 있다. 이렇게 어쭙잖은 방식으로 내 입장을 환기하는 까닭은 탐색자의 자리를 문제삼은 태도가 주권적인 주체를 비판하는 최근의 많은 글들에서 무의미한 경건함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내 입장의 불안정함을 전면화하려고 할지라도 그런 제스처가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익히 알고 있다.  
이 논문은 순환적인 글을 따를 수밖에 없어 주체를 문제화하는 최근 서구의 노력들을 비판하는 데서부터 제3세계 주체가 서구 담론 안에서 재현되는 방식을 문제삼는 데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실은 마르크스와 데리다 양자가 주체의 좀 더 근본적인 탈중심화를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할 기회를 가질 것이다. 그리고 아마 놀랍겠지만, 서구의 지성적 산물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서구의 국제적인 경제적 이해관계와 공모하고 있다는 논의에 의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서구의 담론들과 여성 하위주체에 대해(를 위해) 말할 수 있는 가능성 사이의 관계들에 관한 대안적인 분석을 제공할 것이다. 나는 인도의 사례로부터 내 구체적 예들을 끌어와서, 영국이 폐지한 과부 희생 관습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갖는 아주 역설적인 지위를 상세하게 논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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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스피박, <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작성자 mukungd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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