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이라는 사람. 
 
2002년인가 민주화 운동 당시 의문사한 유가족들의 국회 앞 농성에서 그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이의 메일 뒤에는 항상 '라스콜리니코프를 위하여'라는 꼬리말이 붙었는데 궁금하기는 했지만 정작 그에게 물어본 적은 없었다. 그러다 이 글을 보게 되었다.

내부에서 문제제기를 한 국세청 직원의 파면 소식.
삼성 X파일을 알린 내부고발자 김용철 변호사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부인의 빵가게에서 카운터를 보고 있다고 한다.

김학철 씨를 본 지도 꽤 오래 되었다. 그는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런지...
이 글은 2006년인가 격월간 <삶이보이는 창>에 실렸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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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콜리니코프를 위하여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진상규명 작업이 그만큼 어렵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법적 권한 부족과 한시적 활동 기간이라는 제약성이 위원회 활동을 어렵게 하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 시대에 라스콜리니코프와 같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입니다. 그것도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살해하고 목격자인 노파의 여동생까지도 같은 방법으로 살해한 흉악범입니다. 그러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파렴치한입니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게 된 동기는 ‘수전노와 같은 전당포 노파는 살 가치가 없는 버러지 같은 인간이므로, 죽여 버리고 돈을 빼앗아 헐벗고 굶주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자’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사람은 그런 일을 할 자격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른바 ‘초인주의’입니다.

이런 라스콜리니코프의 범행동기와 겹쳐지는 게 있습니다. 하나는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침공 동기인 ‘제국주의’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의문사 사건 발생 동기인 ‘국가 테러리즘’입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의 독재정권은 권력에 대항하는 모든 세력들을 ‘빨갱이’(악의 축)로 규정하고, 이들을 제거해야 국민들이 자기들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고 나라가 평안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권력의 하수인들은 이러한 정책에 따라 운동가들을 강제로 연행하였으며 다반사로 고문을 자행했습니다. 그러다가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애국’하는 길이고 ‘살 가치가 없는 자들’을 죽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처벌을 받기는커녕 승진을 거듭했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심약하다거나 충성심이 부족하다는 눈총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런 동기에서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를 만나게 됩니다. 소냐는 집안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몸을 팔아야 하는 창녀였습니다. 그런데 수사과정에서도 철저히 범행을 부인하던 라스콜리니코프가 소냐에게 설복되어 네거리로 가서는 ‘나는 살인자다’라고 크게 외치면서 땅에 입을 맞춥니다. 땅은 모든 것을 생산하는 어머니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고 떠납니다. 소냐도 라스콜리니코프의 옥바라지를 하기 위해 자진해서 따라갑니다. 유형지에서 소냐의 숭고한 헌신에 감동한 다른 재소자들은 소냐를 ‘어머니’와 같이 대접합니다. 그럼에도 라스콜리니코프는 여전히 자신의 범행 동기가 옳았다고 생각하며 옥바라지를 하는 소냐를 시큰둥하게 대했습니다. 그러자 재소자들은 어머니와 같이 숭고한 소냐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 라스콜리니코프를 ‘살 가치가 없는 자’라고 여겨 집단적으로 살해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에게 다시 설복됩니다.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일전에 의문사위 사무국장으로 활동하셨던 황인성 님이 ‘피카르를 기다리며’라는 글을 쓰신 적이 있었습니다. 피카르는 드레퓌스 사건 당시 프랑스군 참모본부에 중령으로 근무하면서 드레퓌스가 무고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군 당국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제3자로서 양심선언을 하였던 내부비리 고발자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피카르’는 기다려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라스콜리니코프’는 더더욱 기다려집니다. 어쩌면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소냐’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학철 
격월간 『삶이 보이는 창』 편집자문위원. 의문사진상규명을 위한 유가족 대책위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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