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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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경, 그들을 위한 변명
- 어느 전경 이야기
한 젊은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이는 전투경찰, 전경이다. 지난해 6월 촛불집회에서 쓰러진 여대생의 머리를 군홧발로 무참히 짓밟고 징계를 받은 김 모 상경도, 다시 1년이 뒤 6.10 범국민대회에서 방패 모서리로 달아나는 시민의 뒷머리를 내려찍고 이제 곧 징계를 받게 될 서울경찰청 1기동대 전경도 아니다. 그렇다고 작년 촛불집회 진압을 거부하고 병역거부 선언을 한 뒤 10개월 넘게 수감 중인 이길준 의경 이야기도 아니다.
그는 11대 독자라 군복무 면제 대상이지만 자진 입대하여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전경으로 차출되었고, 상경의 계급장을 달고 촛불집회 진압에 동원되었다. 6월 28일 밤과 29일 새벽. 폭우가 쏟아지는 와중에 그는 시위대에게 폭행을 당해 어금니 2개가 부러지고 뇌진탕으로 쓰러져 빗속에 2시간가량 방치되어 있다가 전의경 부모모임 회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겼다. 2주 정도 치료를 받은 뒤 퇴원했으나 말이 어눌해지고 악몽과 두통, 단기 기억상실증에 시달리며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부대로 복귀하여 다시 시위현장에 투입되었으나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었던 그는 휴가를 나왔다 부대에 복귀하지 않았고, 한 달 가량 거리를 헤매거나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전전하다 결국 검거되어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는 인정되지만 판단 못할 정신장애는 아니니 처벌받아야 한다는 지엄한 판결이었다.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한국 헌법은 지구상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계엄령이 선포되지 않는 한 군병력을 공공질서 유지와 같은 치안업무에 동원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오로지 한국에서만 수많은 젊은이들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위해 입대를 하였다가 전경으로 차출되어 치안유지에 동원된다.
전투경찰이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토벌대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위헌성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전투경찰의 존립근거라 할 수 있는 전투경찰대설치법 1조에 명시하고 있는 전투경찰의 임무, "대간첩작전을 수행하고 치안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이 지금 전의경의 역할이라 우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경찰 스스로도 전의경을 없어질 경우 그 3배에 해당하는 직업경찰이 필요하다며 전투경찰제도 유지를 역설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전의경은 직업경찰의 3배의 업무를 거의 무임금으로 하고 있다는 말인데 이러한 노동을 가리켜 '강제노동'이라고 한다. 한국도 가입한 국제노동기구(ILO)에는 회원국이 비준해야 하는 주요협약 중 ‘강제노동금지에 관한 협약’이 있고 한국은 이를 비준하지 않고 있다. 다름이 아니라 이 협약이 병역의무 이외 다른 노동을 강제노동으로 금지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전투경찰설치법은 9조에서 "공격해야 할 적에 대하여 정당한 사유 없이 공격하지 아니하면 무기 또는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전의경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행사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대해야 한다고 교육받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경찰청장이 몇 차례나 옷을 더 벗어도 경찰폭력, 과잉진압은 근절되기 힘들 것이다.
전의경제도는 국가범죄이자 직무유기
작년 6월, 여대생을 군홧발로 짓밟은 전경을 당시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밤샘근무로 피로가 누적되어 일어난 우발적 사건이니 용서해주자"고 했다. 대한문 시민분향소 철거 때도 이번 과잉진압 사건에도 '우발적'이라는 말은 빠지지 않는다. 한편 6월 15일 취임 100일을 맞은 강희락 경찰청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의경에 소중한 아들을 보내신 분들 눈에서 눈물 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며 12억원을 투입해 신형 방석모를 지급하고 물대포, 최루액 등 장비를 적극 사용하겠단다.
대체 누가 누구를 용서하고 누가 누구를 위로하는가. 진정 심판 받고 징계 받아야 할 이들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