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계량되지 않는다"
- 고통을 수치로 환산하고 계량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상화, 타자화를 경계할 것인가

또한 '증언의 도구화'를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 것인가 

-------------------------------- 

고통을 말하고 듣는다는 것
(정유진 / 오키나와대학 특별연구원 , yujinblue@yahoo.co.kr> ) 

 
<시민이 그리는 원자폭탄 그림>을 둘러싼 어떤 정치

기지촌 여성운동단체인 두레방,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할 때,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그들의 편>에 서서 일한다고 간주되는 내가 오히려 <그들의> 고통을 팔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자괴감같은 것이었다. 그런 시달림은, 정도는 달라졌지만, 2007년 현재 일본 교토에서 생활하는 과정에서도 문득문득 나를 덮치곤 한다. 이 글은 NHK히로시마 방송국이 지난 1974년과 75년에 거쳐, 원자폭탄의 참화를 그림으로서 남겨 두고자하는 취지로 기획한 <시민이 그리는 원자폭탄 그림(市民が描いた原爆の繪)>에 관한 이야기를, 고통 담론을 둘러싼 문제의식(혹은 나의 자괴감)에 비추어 본 소고이다.

어떤 전제 -고통은, 당사자 밖에 이해할 수 없다?

"원자폭탄 피해자들은 상상의 너머에서 서성거리며 이야기 하고 있는데 우리는 마치 다 아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우리는 피폭자들이 그린 <지옥화>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원자폭탄 체험과 관련하여 자주 등장하는 위와 같은 말들. 나는 타인의 고통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어떤 암묵적인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감정이나 체험이라는 것이, 개개인의 신체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이기 때문에 도저히 알 수 없다는 말이 성립하는 것이라면, 타인의 신체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이해할 수 없다는 단정은 어떻게 가능한가? 단정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러한 의문은 “피해자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미리 말해두고자 한다. 다른 식으로 표현한다면, 나의 문제제기는 타인의 고통이 내 몸 안에 있을 가능성, 나의 고통이 타인의 몸 안에 있을 가능성, 혹은 서로의 몸과 몸사이에 고통이 존재할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어떤 면에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는 단언은, 고통을 계량의 문제로서 다루려고 하는 시선의 결과이기도 하다. 고통을 계량의 대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알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과 관련한 고통이기때문이야말로, 오히려 “혹시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는 희망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설령 그것이 어떤 도박과 같은 것일지라도,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그 가능성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고통이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라는 식으로 설정되어 버릴 때, 결국 피해자의 경험은, 고통은, 대상화, 타자화, 본질되는 경향성을 갖게되기 때문이다. 아프다는 감정은 (그것이 마음이든 몸이든)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처한 여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을 어떤 특정한 시간과 공간안에 가두어 고정시키려는 본질화된 시선은 피해자의 역사성을 억압한다.
군 위안부 여성이 어린 나이에 강제연행되어 겪었던 성폭력의 고통, 간신히 살아돌아왔지만 ‘몸이 망가져 정상적인 결혼’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느꼈던 고통, 증언대에 서서 본인의 체험을 이야기할 때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시선에 의한 고통은 모두 제각각 다른 성격의 고통일 것이다. ‘어린 나이에 강제연행되어 겪었던 성폭력의 고통’ 만이 반복될 때 그들의 체험은 ‘식민지치하에서’라는 식으로 현재와는 단절된 과거의 일로서만 의미를 갖게 되며, 그러한 의미화 과정이 피해자를 억압하는 것과 맞물리게 된다.

"그들의 고통이 얼마나 큰 줄 아느냐"라는 고발의 정치. 혹은 고통의 비참함을 강조하면서, ‘우리민족의, 여중생의, 할머니의, 대추리주민의’라는 식으로 ‘피해자의’라는 소유격을 절대화하면 할 수록 피해를 받았다고 간주되는 그들의 고통은 영구적으로 변화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시선은, 결국(그것이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관계라는 것에 의해 재구성될 수 있는 고통의 사회성과 역사성을 간과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러나, 피해자를 규정지으려는 논의보다 중요한 것은 고통을 받고 있다고 간주되는 그들과 나와의 거리(차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 어떠한 맥락에서 그것이 의미화되고 있는지 되묻는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정치공간은 생성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피해자, 당사자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어떤 사건을 둘러싼 이해관계에 의해 변화할 수 있는 유동적 개념이다. 정치적 이해관계(利害關係)를 논의할 수 있는 장(자리)가 만들어지고, 그 공간에서의 논의를 통해 이해(利害)라는 것은 상황에 의해, 맥락에 의해 변화될 수 있음을, 관계(關係) 역시 다르게 구성될 수 있다는 인식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물철학자인 하러웨이(Donna J. Haraway)가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이 아니라 부분적이며 상황적 지식에 천착했던 것은 이해관계의 변화가능성에 대한 통찰에 근거한 것일 것이다.

증언을 듣는다는 것

“우리들이 원자폭탄의 참화를 경험하는 사태가 발생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원자폭탄 피해자들은 스스로의 체험을 증언하는 것이다”
“원자폭탄의 피해자들은 피해의 실상뿐만아니라, 핵근절을 호소하고 있다”
“원자폭탄 피해자들은 스스로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자기만 살아남았다고 하는 찝찝함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목적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다”
“(시민이 그리는 원자폭탄 그림은) 원자폭탄 피해라는 직접 체험의 기억을 적나라하게 다음 세대에 계승할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NHK히로시마 방송국이 지난 1974-1975년에 기획한 <시민이 그리는 원자폭탄 그림>에 대한 “평가(의미부여)”들이다. <시민이 그리는 원자폭탄 그림>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이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또 요구하고 있는가. 증언이라는 일은 왜 중요시되고 있는가. <전쟁체험을 계승하기 위해(핵근절을 위해서>라는 식의 해석에 대하여 나는 저항감을 느낀다. 이 감정은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첫 번째는 정치를 둘러싼 위계관계, 즉 큰 정치와 작은 정치라고 간주되는 위계적 구분에 관한 것이다. 원자폭탄에 의한 피해의 체험을 말한다는 것이, 마치 <핵근절의 호소>와<전쟁체험의 계승>을 위한 기록으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다루어지는 문제이다. 이것은 개개의 고통이 역사라는 것을 보충하기 위한 재료, 하나의 도구로서 취급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역사라는 것은 큰 정치이고, 개인의 것으로 간주되는 고통은 작은 정치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 때의 역사라는 것은 무엇을 위한 누구의 역사인가? 누가 그것을 결정하는가? 역사기술자라는 개인과 고통받은 개인은 어떠한 관계에 있는 개인들인가? 질문은 계속될 것이다.

두 번째는 <대의를 위한 올바른 증언>이라는 식의, 증언자에게 부여된 ‘주체화’의 문제일 것이다. 주체성이 부여된 것에 의해 위축되는 정치의 영역이란 무엇인가. 혹은 증언자에게 주체성을 담보시킴으로서 획득되는 정치의 영역이란 어떤 것인가. 원자폭탄의 피해자는 스스로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자기만 살아남았다고 하는 찝찝함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목적으로 그림을 그려서는 안되는 것일까. 고통과 피해의 실상만을 그려서는 안되는 것일까. 고통은 아프다는 감정 그 자체로만은 무언가 부족한 것, 불충분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왜...

이러한 논의에는 감정의 문제를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이항적인 정치의 구분과 고통을 타자화하려는 시선이 뒤얽혀 있다. 이 시선은 고통받는 몸을 억압하고, 몸과 몸사이의 엉겨있는 말들을 억압하고, 고통받는 몸들의 연대를 억압한다. <참의 고통>을 요구하고 <올바른 증언>을 전유하려는 시선은 수단로서의 고통을 요구하는 욕망의 시선이기도 하다.

피해자의 체험이 <핵근절을 위한 호소>로서, <계승해야하는 전쟁체험>으로서 의미화되는 것은 증언자와 청자 사이에서 일어난 우연한 결과일 뿐, 증언이라는 것이 핵근절을 위해서, 전쟁체험 계승을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목적으로 상정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원폭체험이란, 계승해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피해자들이 처해있던 시간과 청자가 존재하는 현재라는 공간을 들락날락하면서 개입적으로 사고해야만 하는 어떤 영역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이 그리는 원자폭탄 그림>에 얽혀있는 내러티브는 미완의 것이고 미정(未定)인 것이며, 그들의 목소리는 미지의 관계로서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시민이 그리는원자폭탄 그림>을 표본적 기억으로서, ‘성스런’ 기록으로서 피해자의 소유격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자기와 타인의 고통을 규정하거나 고발하기 보다는, 아프다고하는 신체감각을 관계적인 감정으로, 관계성으로 사고하려는 노력과 시도들은, 지금과는 다른 사회성(삶의 가능성)으로서의 “여성주의 평화”의 전망을 일구는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군 위안부 여성”, “기지촌 매춘여성”, 성매매산업에 합법적으로 종사할 권리를 요구하는 여성, 성폭력 ‘피해자’, 양심적 병역거부자 혹은 병역기피자, 군의문사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혹은 그들의 침묵은 한국사회에 어떤 메아리로 남아있는가. 또한 어떤 울림을 가지고 작동하고 있는가. <시민이 그리는 원자폭탄 그림>을 통해 다시금 생각해 본다.

<그림출처>
http://www.pcf.city.hiroshima.jp/virtual/VirtualMuseum_j/visit/art/art00.html#

다음은 그림을 그린 분들의 설명입니다.
1.<쫓아오는 불을 피해 강에 뛰어들지만 많은 사람들이 떠내려갔다>,菅 葉子, 원폭 투하 당시 14세, 그림 그린 때 43세
2.<수십 명의 승객과 함께 타버린 시내전차와 바깥에 쓰러진 희생자>,橫山 正 ,원폭 투하 당시 36세, 그림 그린 때 66세
3.<거대한 불기둥>, 松室 一雄, 원폭 투하 당시 32세 그림 그린 때 61세
4.<건물에 깔려서 화염에 싸인 사람을 구하지못하고 그저 바라볼 뿐>, 宮地 臣子, 원폭 투하 당시 34세, 그림 그린 때 64세


*글을 퍼 가실 때에는 출처를 꼭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월간 언니네(www.unninet.co.kr) 2007년 8월 특집 '전쟁에 관한 그녀들의 기억' 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