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사회학’, ‘촛불의 정치학’이라 불릴만한 이야기들이 책 몇 권은 될 법한 분량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집회현장에서 벌어지는 토론은 지면을 넘어 온오프의 경계를 허물고 광장을 뒤흔든다. 관련된 영상들로 독립영화제를 열어도 넉넉할 것이고, 촛불이 못마땅한 이들의 헛다리짚기를 소재로 개그콘서트를 열어도 몇 회 분량은 거뜬할 것이다.





그 중 단연 주목받는 주인공을 꼽으라면 역시 10대 청소년들이다.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난 5월 2일 이후 각종 언론은 10대들의 목소리를 받아 적기에 여념이 없었다. 누구는 이들을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웹2.0에 비유해 ‘2.0세대’라 호명했고, 어떤 이는 인터넷으로 의식화하고 휴대전화 문자로 무장한 ‘새로운 세대’의 출현이라며 감격했다. 앞으로도 한동안 각종 분석과 진단이 난무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누구인지 아리송한 것은 이른바 보수든 진보든 매한가지 아닐까? 한 청소년은 지금의 현상을 보고 “기성세대가 안쓰럽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마이크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애써 무시하고 외면해온 기성세대에게 돌려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지난 6월 5일 72시간 연속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시작된 첫날 거리에서 그들을 만났다.



깜박한 인간에서 촛불소녀로


소설가 박민규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세계가 ‘깜박’한 인간”이었다. 청계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기 전까지는 분명 그랬다. 이명박 정부의 학교자율화조치에 대해서도 말 깨나 한다는 사람들은 한마디씩 거들었지만 정작 그들의 의사는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본고사가 학력고사로 바뀔 때도, 학력고사가 수능시험으로 바뀔 때도 마찬가지였다. 교복이 없어질 때도, 다시 부활했다며 입으라고 할 때도 당사자의 의견 따위는 없었다. 묵살된 것이 아니라 의견자체가 있을 수 없는 집단이 학생이고 또 10대 청소년이었다.


그러나 촛불집회 무대에 올라 자유발언을 하는 10대들은 당돌하고 거침이 없는데다가 재기발랄하기까지 하다. “미친 소 너나 먹어!”를 외치는 그들의 얼굴은 분노가 아니라 웃음이 넘쳐난다. 그 활력이 “이명박은 땅 파지 말고 귀를 파라!”라거나 경찰 살수차가 뿜어내는 물대포에 대항해 “이왕이면 온수를!”이란 발칙한 구호들을 만들어낸다. 이날 느닷없이 등장한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협회’가 시청광장에서 ‘북파공작 특수임무 전사자 추모제’ 전야행사를 여는 바람에 촛불집회는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렸다. 광장에 스스로 갇힌 사람들과 광장에서 나와 거리를 광장으로 만든 사람들. 저녁 8시쯤 시작된 본행사가 마무리되자 사람들은 여느 날처럼 행진에 나섰고 10시가 가까워지자 명동에서 종로를 지난 대열이 다시 광화문 사거리로 모여들었다. 다음날이 공휴일이어서인지 예상보다 많은 청소년이 집회에 참여했고 늦은 시간까지 남아 있었다.





지난 5월 2일 첫 집회부터 참여했다는 조한영(가명, 고1)양은 스스로가, 그리고 같이 했던 친구들이 자랑스럽다. “그렇게 많이 모일 줄 몰랐어요. 완전 감동이었죠. 나중에 첫 번째 거리 행진 때도 있었는데 조금 놀랐지만 재미있었어요.” 서울 영등포에서 학교를 다니는 차경민(가명, 고1)군은 기성세대가 너무 무관심하다고 성토한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다 무관심하세요.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죠. 인생도 오래 남았고 제일 먼저 학교급식에 나올 거고.” 경민 군의 친구는 옆에서 이 정부를 도저히 신뢰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 “영어몰입 어쩌고 하더니 번역도 잘못하고. 잘못한 건지 일부러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협상 끝나니까 예전에 반대하던 농수산부(농림수산식품부)인가랑 조중동이랑 다 잘했다고 그러는데 정말…. 저 군복 아저씨들(특수임무수행자협회)도 불쌍하죠. 근데 이명박이 진짜 시켜서 저런 거예요?”


어느 문화평론가의 말처럼 인터넷으로 학습하고 토론하며 의식화된 이들에게 나이와 세대 구분은 무의미할 것 같다. 정보와 인식의 힘은 놀랍다. 정부와 보수언론, 그리고 보수세력의 대응 역시 실수라기보다는 인식의 한계이지 싶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광화문 사거리에서 서대문 방향으로 진출을 하고 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삼삼오오 달려가는 사람들 중에는 청소년들도 꽤나 눈에 띈다.


“누가 배후조종 한다고 그게 되겠어요? 우리를 정말 너무 모른다는 거죠.” 오늘 소풍을 갔다가 바로 이곳으로 달려왔다는 김성연(가명, 고3)양은 특히 5월 31일 경찰의 물대포와 특공대 투입은 “열 받을 대로 받은 사람들에게 기름을 부은 꼴”이라며 분개했다.


아는 게 없어서 인터뷰를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더니 정작 인터뷰가 시작되자 말문이 터진 성연 양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듣고 싶은 이야기를 물어봤다. “공부는 고3의 숙명이죠.” 우문현답에 옆 자리에 있던 친구들이 까르르 웃는다. 아침 7시에 집을 나가 12시가 되어야 집으로 돌아온다는 성연 양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끔 너무 힘들 때가 많다고 한다. “우리가 기계도 아니고 인간인데 아프거나 피곤하면 쉬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야자(야간자율학습)를 빠질 수 있는 쿠폰을 학기 초에 나눠주는데 그게 딱 한 장인 거예요. 너무 하지 않아요?” 정부도 정부지만 학교도 문제가 많지 않느냐는 유도질문에는 “교장실 앞에 건의함이 있는데 어디 형광등이 나갔다 그런 거 적으면 바로 바꿔주죠. 그 정도에 만족하며 다녀야죠.”라며 이번에는 웃음으로 얼버무린다.


부천에서 왔다는 조성훈(가명, 고3)군의 하루도 다르지 않다. 고3이 되자 야간자율학습이 너무 심하다며 특히 잠을 많이 못 자는 게 가장 힘들다.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는 구호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또한 학생이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아서 답답하다. “학교를 그만둔다면 모를까, 안 그러면 답이 없는 거 같아요. 찍어내듯 창의력은 완전 무시하고 공부만 시키는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거든요. 그래도 살려면 학교 다녀야 하고 선생 말 들어야 하고 그렇죠.”


성훈 군의 친구는 고등학교 올라와서 학교폭력을 경험했다. “힘들어서 학교를 그만두거나 전학 갈까 생각도 했지만 도망치는 거 같아서 참았어요. 지금은 그런 애들 보면 그냥 불쌍해요. 나중에 깡패 밖에 더 되겠어요?” 그는 학교폭력을 당하는 동안 선생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지금도 그 선택이 옳았다고 믿고 있다.



“공부는 숙명!”





자정이 가까워오자 광화문 사거리에서 서울시청 광장까지는 거대한 놀이판으로 바뀌었다. 한홍구 교수 말마따나 ‘국민M.T.’답게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기차놀이를 하는 사람들. 드문드문 텐트까지 쳐있는 것이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풍물놀이 판이 차려지고 통기타와 바이올린, 트럼펫이 모여 시민악단 공연이 즉석에서 펼쳐지기도 한다. 또 수십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소규모 자유발언대가 마련되어 열변을 토하는 시민들을 만날 수 있다. 2002년 월드컵 응원의 통일성인지 획일성인지가 왠지 두렵고 못마땅했던 사람으로서 이 난장판이 반갑기 그지없다.
“평화로운 거 같아요. 자유롭구요.” 상대적으로 호젓한 청계광장에서 커플로 보이는 한 쌍의 청소년에게 다가갔다. 오늘 처음 나왔다는 김아람(고2)군은 인터넷이나 TV에서는 못 보던 모습이라 더욱 신기하고 인상적이라며 “재협상이든 뭐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니까 뭔가 될 것”이라고 희망한다. 아람 군의 여자친구인 이소연(고2)양은 오늘이 세 번째로 자기가 아람 군에게 ‘짱’이라며 가보자고 꼬셨단다. “여기서는 우리 부모님 같은 분들도 서로서로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우리들도 존중을 해주는 거 같아요. 여기 왔다가 집에 가거나 학교에 가서 선생님들 만나면 좀 이상하죠.”


“이렇게 모이면 반드시 정부가 재협상을 하게 만들 수 있다”고 낙관하며 “또 열 받는 일이 생기면 꼭 다시 거리로 나오겠다.”고 다짐하는 청소년들에게 학교는 더 이상 아무런 기대도 미련도 없는, 그저 대학과 사회로 가기 전에 지나야 하는 마지막 터널일 뿐이다.



“아무도 꿈을 키우라 말하지 않죠”


다시 광화문 사거리. 밤이 깊어 제법 쌀쌀해졌는데도 대학생들이 둘러앉아 “쥐를 잡자, 쥐를 잡자, 찍찍찍”하며 쥐잡기 놀이에 열중이다. 그 한 편에서 광화문 쪽을 등지고 휴대전화기로 기념 촬영을 하는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눈에 들어온다. 수원에서 중학교를 다닌다는 그들(중3)도 매일은 아니지만 일주일에 3일은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그런 날 집에 돌아오면 밤 11시가 다 된다. “고등학교 3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버텨야죠, 뭐.”라고 답하는 그들에게는 꿈이 뭐냐고 물었다. “대기업에 들어가는 게 꿈이에요. 돈도 잘 벌 거 같고 일하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아요.” 하지만 어떤 대기업인지, 들어가서 어떤 일을 할지는 아직 빈 칸으로 남아있다. “경찰이 되어서 범죄를 줄이고 싶어요. 흉악범이 너무 많아요. 특히 청소년 성범죄.” 경찰이 됐다가 촛불시위 막으러 나오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시위 막는 경찰은 안 하겠다.”고 이야기한다. 경찰이나 군인은 시키면 해야 하는 직업이라고 하자 혼자 생각에 잠기는 눈치다.


자리를 옮겨 서대문 방향 편의점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컵라면을 먹는 이들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하니 슬그머니 캔 맥주를 감추며 겸연쩍은 웃음을 보인다. 부천에서 정보산업고를 다니는 김윤성(가명, 고2)군은 “인터넷에서 보니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나오는 거 보고 부끄러워서” 나오게 되었다. 실업계이니만큼 공부에 대한 부담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인문계 간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정보산업고 다닌다고 그러면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죠.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한식 요리사가 꿈인 윤성 군은 언젠가는 대학을 갈 생각이다. “집안 형편도 그렇고 해서 학교 졸업하고 바로 대학 갈 생각은 없어요. 요리사 되고 더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그때 내 돈으로 가려구요.” 시선이 대학을 넘어 사회에 가 있기 때문일까. 고민은 현실적이고 깊이가 있다.


지난해부터 하이테크 특성화 학교가 된 이후 갑자기 두발단속이 시작되었다는 윤성 군의 친구는 “학교가 좋아지는 거는 좋지만 학생들 의견을 무시하는 거는 열 받는다.”라며 요즘 학교 다니기가 점점 싫어진다고 한다. “선생님이, 항의를 하려거든 학부모들에게 해라.”라는 말에 할 말이 없다. “결국 참고 다니든가 때려치우든가 둘 중 하나인데 알아서 해라라는 거죠.” 그의 꿈은 어떤 직업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는 것. “돈은 뭐든 하면서 벌고 그걸로 여행 다니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고 싶어요. 모르죠. 나중에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길지.” 하지만 미래가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부모님을 보면 점점 한국이 살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다.





“시시때때로 학교를 그만두고 싶지만 벗어날 용기도 없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있어서 그냥 무기력하게 견디는 거죠.” 조민주(가명, 고2)양은 촛불집회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자비를 털어 음료수 봉사를 하고 그런 것에 감동을 받는다며 학교에서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나 관심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냥 친하게 수다는 떨지만 그걸로 끝이죠. 다들 대학가면 지금보다 자유로워지니까 그거 하나 보고 다니는 거예요.” 민주 양의 꿈은 한비야와 같은 세계적인 자원봉사단체에서 일하는 것이다. “저는 제 꿈을 꼭 이루고 싶은데 주위에서는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아요. 비현실적이래요. 누구도 네 꿈이 뭐냐? 꿈을 키우고 이루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옆에 있던 김민경(고3)양은 보컬트레이너가 되기 위해서 실용음악과에 갈 생각이다. 공무원이나 교사, 대기업 직원 같은 안정된 직업이 인기 있지 않느냐고 물어보니 너무 평범하고 재미없을 거 같다며 손사래를 친다. 하지만 “대학 가면 현실적이 되어서 바뀔지도 모르죠.”라며 여운을 남긴다.



“학교는 죽었다”


세상 기준으로 보면 좀 특별한 10대들도 촛불집회에 열성적인 참여자다. 지난 5월 17일 등교를 거부하자는 문자가 퍼지면서 학교 안팎의 ‘어르신네들’을 잔뜩 긴장시킨 ‘5.17 청소년공동행동의 날’ 집회. 그날 사회를 본 한지혜(17세)양은 지난 4월 학교를 그만둔 탈학교 청소년이다. “해금 연주자가 되고 싶어서 해금을 배우고 있었는데 담임이 공부를 열심히 안 하면 저질 예술가가 된대요. 나는 길거리에서 연주하고 싶은데.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니까 설득한다고 하면서 하는 말이 자기도 학교 그만두려고 한 적 있는데 그때 그만뒀으면 배추장사나 하고 있을 거라는 거예요.”





지혜 양은 중학교 때부터 한 청소년 교육공동체의 인문학 교실에 나가기도 하고 인권캠프에도 참여하면서 학교 밖 세상을 엿보게 된 드문 경우다. “학교 밖에서는 인권 이야기를 하면서 학교 안에 들어와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게 답답하기도 했고…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일단 머리부터, 두발부터 다 하나하나 통제를 받는 거잖아요. 학교에 있으면서 매순간순간 하나하나 내가 인권침해 당하는 일이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느껴왔는데 뭘 할 수 있을까… 학교 밖에 나가면 다른 거,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다니는 게 정말 싫었어요.” 지혜 양은 학교를 그만두기 전에 청소년 인권단체 회원들과 일요일에 학교에 가서 두발자유 스티커를 붙이기도 했다. “이런 데 더 많은 친구들이 나오고, 학교를 안 견디고 나와 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친구들에게 ‘그냥 참으면 안 돼!’ 그렇게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너무 쉽지 않다는 거 알기 때문에.” 그러나 그 쉽지 않은 결정에 부모님의 지지까지 있으니 지혜 양은 매우 “복 받은” 경우가 아닐 수 없다.


한편 5월 17일 집회에서 지혜 양과 함께 사회를 받던 또또(별칭, 18세)군은 좀 더 단호하다. “학교가 없어져야 한다”고 거침없이 주장한다. “교사가 체벌하는 거는 정말 끔직한 짓인데도 교사나 학생들이 같이 웃으며 즐기는 분위기죠. 그건 미친 거죠. 공부를 잘 해서 학교 다니기가 즐겁다는 애들도 없겠지만 실제로 그런 애들이 있다면 그것도 미친 거라고 생각해요. 오로지 대학 가려는 목표 아래서 다 같이 미친 채로 살아가는 데가 학교 아닌가요?”


중학교 도서반 활동을 하다가 알게 된 한겨레21, 거기서 만나게 된 평택 대추리. 또또 군은 직접 대추리를 방문해 지킴이 활동을 한 ‘행동파’다. 그런 그는 페미니즘을 접하게 되면서 또래 친구들 사이의 성적 농담이나 성희롱에 대해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희 국어 선생님이 젊은 여선생님이었는데 되게 많이 성희롱을 당하셨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되게 노골적이었고 선생님은 그냥 참는 거죠. 남자애들이 주로 놀려먹기 좋아하는 여자선생님 스타일이 결혼 안 하고, 엄하기 보다는 잘해주시고,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서 학생들에게 그나마 잘 해주고 존중해주는 선생님들이죠.” 그런 학생들, 두발자유나 인권에 관련된 이슈에는 관심도 없던 친구들이 이렇게 촛불을 들게 된 까닭은 그에게도 풀어야 할 숙제다. “솔직히 정확한 이유를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학교자율화 문제도 컸을 거고 미디어의 힘도 있을 거고. 어쨌든 마음대로 청소년을 해석하는 거 보면 기성세대들이 솔직히 안쓰러워요. 집회하면 퇴학도 가능하도록 교칙에 되어있고, 밤10시 넘으면 귀가하라고 떠들고. 그런 기성세대들의 보호주의나 미성년자니까 빨리 석방하라고 하는 범국민대책위나 비슷하죠. 애들이 뭘 안다고 잡아 가냐, 하는 거랑 니들이 뭐 안다고 촛불을 드냐, 하는 거랑 같은 태도잖아요.” 한 번은 국가보안법 폐지 기자회견을 참여했는데 사회자가 청소년들도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나쁜 법인지 배우기 위해 이 자리에 와 있다는 말에 정말 황당했다고 하며 청소년 뒤에 ‘군’과 ‘양’을 붙이는 관행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한다.



체념과 무기력의 벽 앞에서


10대 청소년을 학생과 탈학교 청소년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비행과 선행 청소년으로 나누는 것만큼이나 턱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10대에게 학교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엇임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학교는 미쳤다는 탈학교 청소년의 말에 학교에 있는 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안 나오면 양심에 걸릴 거 같아서” 자주 나온다는 최미솔(고2)양은 “미쳤다기보다는 죽은 거 같은 데요”라며 더 많은 친구들이 집회에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학교에서의 분위기는 정말 다르다고 한다. “솔직히 여기 나오는 애들은 아주 소수예요. 한 반에 대여섯 명 정도. 다른 친구들은 별 관심도 없고 관심이 있더라도 왜 그런데 가냐? 그런다고 뭐가 바뀔 거 같냐? 그런 애들이 더 많죠.” 한 인터넷 카페 회원들과 같이 나온 보이저(닉네임, 고2)양도 “우리 세대가 뭔가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별로 안 해요. 이명박이 0교시 부활시키고, 우열반 만들고 그러면 열 받고 촛불 들고 나오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그걸 막을 수 있을 지는 자신이 없다고 한다.


5월 2일 첫 번째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후 지금은 청소년인권단체 아수나로에 가입해서 활동을 막 시작한 엠건(고3)양도 비관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폭력을 가르치고 억압을 가르치고. 학교가 그러니까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폭력적이 되는 게 아닐까요? 괴롭히는 애들은 소수예요. 소수인데 나머지가 방관하니까 그게 더 문제죠. 밖에 나오면 막 이러고 있다가도 학교만 가면 에너지가 뚝뚝 떨어져서 축…. 그런 거 같아요. 담임선생님은 체력이 달릴 때라고 그러는데 제 생각에는 체력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지금의 학교라면 없어지는 게 낫겠죠, 차라리. 다 뜯어고쳐야 되는데 엄두가 안 나고.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닐 테지만 청소년은 위치가 약자거든요. 하지만 이번 일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걸 통해서 우리들의 권리의식을 높이고 그러면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또또 군도 “한계는 있지만 그냥 복종만 하지는 않는다는 거를 보여주는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희망을 갖고 있음을 내비친다. “장학사가 나와서 감시를 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나오는 청소년이 있잖아요. 시스템이 청소년을 다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아닐까요? 소수이지만 그래도 촛불집회에 왔다 간 청소년들이 수만 명은 될 거예요. 적은 수는 아니죠.”


맞는 얘기다. 하지만 자꾸 청소년들 스스로의 입에서 자주 등장했던 ‘무기력’이란 낱말이 귓가에 맴돈다. 그것이 결국은 강한 사람들, 구조를 지배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일 게다. 10대들의 학교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꾸 학교가 아니라 우리사회가 떠오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학교는 땡땡이를 쳐도 잡으러 오지는 않는다. 다음날이면 제 발로 돌아와야 하니까. 그런 점에서 학교는 더 거대한 감옥이고 이 사회는 또 하나의 학교가 아닐까.





한 중년의 남자는 거리에서 “촛불을 처음 들었던 우리 학생들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끝까지 비폭력으로 승리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편 불과 며칠 전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주최한 ‘청소년 노동인권 실태보고’ 토론회는 그들이 ‘노동’과 ‘인권’이란 말을 꺼내기조차 무색한 상황에서 그저 ‘일하는 기계’로 취급당하고 있음을 증언했다. 또 한편 ‘공부하는 기계’, 우리나라 중고생 중 20%가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으며, 실제 하루에 한 명 꼴로 청소년들이 자살을 하고 있다.


거리에서의 10대와 일터에서의 10대 그리고 학교에서의 10대 청소년들은 다른 이들이 아니지만 그들이 처한 환경과 조건,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너무나 판이하다. 새로운 주체라며 마냥 희망할 수도,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 있는 약자라며 절망할 수도 없는 갈림길에 10대들이 서있다. 2008년 촛불집회가 가능성과 한계를 가지고 있듯 그들도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짊어진 채 광장이 되어버린 거리에서 새로운 아침을 맞고 있다. 어쩌면 그들의 촛불은 아직 켜지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 2008년 7-8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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