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냉장고
나보다 먼저 내 발이 너에게로 가려고 하는 것. 필사적으로 참고 있다. 나보다 먼저 내 입술이 너에게로 가려고 하는 것. 나는 필사적으로 참고 있다. 벌써 이렇게 참은 지 수십 년. 생각해보니 참 묘하다. 내가 이렇게 참고 있었던 건 내가 내 소유의 냉장고를 갖게 된 후부터 인 것도 같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생각해왔다. 내 머릿속은 얼음으로 꽉 차 있고, 내 차디찬 발을 만진 사람은 모두 기절한다. 내 가슴속에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나 입술이 얼어붙는다. 그러니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말자. 아무에게도 손 뻗지 말자. 나는 또 이것도 잊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나마 내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참고 있으니 내 방 안에서 나뭇잎 하나 떨어지지 않고, 땅을 박차고 새 한 마리 날지 못하는 게 아닌가. 그러니 바람이 불어와도 필사적으로 220볼트의 콘센트 속에 손가락을 끼운 채 버티자. 얼어붙은 풍경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풍경 속의 얼음나라 얼음공주 얼마나 순결한가. 그러니 허벅지 밑으로 피가 조금 흘러내려도 금방 얼어붙을 테니 걱정 말자. 밖은 뜨겁고, 안은 시리다. 시리다 못해 팽팽히 끓는다. 문을 열면 화들짝 놀라 불을 켜는, 얼어붙은 창자들을 매단 겨울 풍경화 한 장. 태풍이 와서 정전이 며칠째 계속되고 몸속이 전부 썩어 문드러지기 전까지 몇십 년째 혼자 새침을 떨던.
詩 김혜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