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냉장고

 

나보다 먼저 내 발이 너에게로 가려고 하는 것. 필사적으로 참고 있다. 나보다 먼저 내 입술이 너에게로 가려고 하는 것. 나는 필사적으로 참고 있다. 벌써 이렇게 참은 지 수십 년. 생각해보니 참 묘하다. 내가 이렇게 참고 있었던 건 내가 내 소유의 냉장고를 갖게 된 후부터 인 것도 같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생각해왔다. 내 머릿속은 얼음으로 꽉 차 있고, 내 차디찬 발을 만진 사람은 모두 기절한다. 내 가슴속에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나 입술이 얼어붙는다. 그러니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말자. 아무에게도 손 뻗지 말자. 나는 또 이것도 잊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나마 내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참고 있으니 내 방 안에서 나뭇잎 하나 떨어지지 않고, 땅을 박차고 새 한 마리 날지 못하는 게 아닌가. 그러니 바람이 불어와도 필사적으로 220볼트의 콘센트 속에 손가락을 끼운 채 버티자. 얼어붙은 풍경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풍경 속의 얼음나라 얼음공주 얼마나 순결한가. 그러니 허벅지 밑으로 피가 조금 흘러내려도 금방 얼어붙을 테니 걱정 말자. 밖은 뜨겁고, 안은 시리다. 시리다 못해 팽팽히 끓는다. 문을 열면 화들짝 놀라 불을 켜는, 얼어붙은 창자들을 매단 겨울 풍경화 한 장. 태풍이 와서 정전이 며칠째 계속되고 몸속이 전부 썩어 문드러지기 전까지 몇십 년째 혼자 새침을 떨던.

 

詩 김혜순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플레져 2006-07-24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장고 이려니...하심 안될까요? 사진 좀 더 찾아볼게요.
요새 워낙 구하려 다니지 않아서 사진첩이 썰렁해요 ^^

안 무서운걸로 바꿨어요 ^^

nada 2006-07-2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무서운 사진 보고싶어욧!!

날개 2006-07-24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서운 사진이 좋아욧~ㅎㅎ

플레져 2006-07-24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별님, 꽃양배추님, 날개님... 무서운 사진으로 교체했습니다 ^^
무섭나요? 밤에만 피해주세요.

비로그인 2006-07-24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밤에 혼자 앉아서 보면 무서울 수도 있겠군요. 얼굴을 상상하게 되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날개 2006-07-24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피스 꽃무늬가 무쟈게 이쁘다는 생각밖에,,,,,^^

2006-07-24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Laika 2006-07-25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운 사진 드릴까요? = 제 사진....ㅎㅎ

2006-07-25 0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7-25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7-25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7-26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7-26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7-28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7-28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예진 2006-07-29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섭다기보단 쓸쓸해요~~(참고로 지금은 냉장고의 제법 소름끼치는 윙윙대는 소리가 집을 진동하는 밤!!) ㅠ.ㅠ

박예진 2006-07-29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을 보니 갑자기 무서워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