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이 산에서 내려와
기둥만한 장화를 벗었다
그 속에
어린 토끼들이 웅크리고 잠들어 있다

그들을 깨우기 위해
수천 개 조그만 초록 종들이
일제히 울리기 시작한다

먼지 앉은 덧문이 열리고
모두 귀를 기울인다
항아리에 담긴 찬물도
담장 아래 흰 흙도

살아 있는 것들은 분주히 줄을 선다
그 사이로
천천히
자전거를 밟고 가는 소년

구석에서 거인은 몸을 숨기고
무서운 눈을 감아준다
잠시뿐이다
축제는 곧 끝날 테니

詩 이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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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 온도 영하 10도 라느니, 꽃샘 추위라느니 화요일은 수요일을 무섭게 예고했다.
갑자기 드라이크리닝 한 겨울 옷들을 꺼낼 수도 없어서
따스한 조끼를 껴입고 스카프로 목을 감싸고 연분홍색 바바리를 걸쳤다.  

마음이 이미 그 말에 무장되 있던 탓일까.
별로 춥지 않아서 실망했다.
가을 날, 봄날처럼 따스한 하루를 인디언 섬머라고 하는데
봄에 겨울 같은 날은 겨우 꽃샘 추위라는 낡은 유행어로만 일관하고 있으니
뭔가 새로운 유행어가 필요하다.

사색의 시간을 갖는 것처럼 세시간 동안 나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무릎에 펼쳐있는 책을 들여다보다 결국 사람이 주는 생기가 좋아 책을 덮고 말았다.
어떤 책 보다 사람이 주는 다양한 언어들, 느낌들이 좋은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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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6-03-29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기예보에서 겨울옷을 다시 꺼내라기에 무지 쫄았었는데..
오늘 생각보다 따뜻했지요? ^^
저 그림 보니까 진짜 봄 같아요.....!

mong 2006-03-29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도 그렇고 플레져님 글도 그렇고
완연한 봄이에요 그렇죠?

Mephistopheles 2006-03-29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대로 가다간 봄하고 가을이 없어질 듯 합니다..^^
저도 오늘 두꺼운 옷 다시 꺼냈습니다..투덜투덜...체키럽!!

플레져 2006-03-29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너무 따뜻해요! 너무 따뜻해서... 일기 예보에 대한 불신만 커졌어요 ㅎㅎ

몽님, 네. 끄덕끄덕. 완연한 봄에 개나리색 우드스톡군이 빛납니다.

메피스토님, 봄과 가을이 길어야 사는 맛이 나는데...
여름엔 맥을 못 추는 터라... 아, 그래서 내가 요새 살맛이 좀 났었나? ㅎㅎㅎ

세실 2006-03-29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어쩜 이리도 봄에 대해 잘 표현해 놓았는지.....참 멋진 시입니다.
인디언 섬버도 예쁩니다. 꽃샘추위 말고 플라워윈터라고 하면 좋을까요?
생각보다 한 낮에는 포근했습니다.

Laika 2006-03-29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이 풀렸어요...어젯밤엔 무지하게 추웠는데요.

플레져 2006-03-29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플라워 윈터라고 하니깐 크리스마스 같아요~ ^^
포근한 한낮이 계속되었으면 좋겠어요.

라이카님, 그러게요. 어제 추웠어요. 오늘의 추위는 뭐 간지럽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