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거인이 산에서 내려와
기둥만한 장화를 벗었다
그 속에
어린 토끼들이 웅크리고 잠들어 있다
그들을 깨우기 위해
수천 개 조그만 초록 종들이
일제히 울리기 시작한다
먼지 앉은 덧문이 열리고
모두 귀를 기울인다
항아리에 담긴 찬물도
담장 아래 흰 흙도
살아 있는 것들은 분주히 줄을 선다
그 사이로
천천히
자전거를 밟고 가는 소년
구석에서 거인은 몸을 숨기고
무서운 눈을 감아준다
잠시뿐이다
축제는 곧 끝날 테니
詩 이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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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 온도 영하 10도 라느니, 꽃샘 추위라느니 화요일은 수요일을 무섭게 예고했다.
갑자기 드라이크리닝 한 겨울 옷들을 꺼낼 수도 없어서
따스한 조끼를 껴입고 스카프로 목을 감싸고 연분홍색 바바리를 걸쳤다.
마음이 이미 그 말에 무장되 있던 탓일까.
별로 춥지 않아서 실망했다.
가을 날, 봄날처럼 따스한 하루를 인디언 섬머라고 하는데
봄에 겨울 같은 날은 겨우 꽃샘 추위라는 낡은 유행어로만 일관하고 있으니
뭔가 새로운 유행어가 필요하다.
사색의 시간을 갖는 것처럼 세시간 동안 나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무릎에 펼쳐있는 책을 들여다보다 결국 사람이 주는 생기가 좋아 책을 덮고 말았다.
어떤 책 보다 사람이 주는 다양한 언어들, 느낌들이 좋은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