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출발로 예정되어 있던, 강원도 양양 낙산비치호텔로 떠나는 버스는 궂은비로 시동을 늦추고 있었다. 전날의 쾌적한 가을 날씨에 한층 고무 받았던 심사위원들은 뒤늦게 차에 오르며 하늘의 변덕에 불평을 쏟아내었다. 그러나 일찍이 최인훈이 투덜댔듯이 ‘신가(神哥)’의 심사는 인간으로서는 종잡을 길이 없게 마련이다. 오늘의 격론을 예감케 하는 징후이기도 했고.
수상작 선정 회의로 돌입하자,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사전 토의 없이 각자 2편씩 적어내는 1차 투표로 들어갔다. 정미경의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와 권지예의 ‘꽃게 무덤’이 4표, 김경욱의 ‘장국영이 죽었다고?’와 조경란의 ‘국자이야기’가 3표였다. 집계를 맡았던 심사위원이 먼저 ‘한탄사’를 내질렀다. “놀라운 결과군요!?”
다른 심사위원이 곧바로 투표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항거성(?) 발언을 하였다. 동인문학상의 가장 중요한 선정 기준이 문학적 성취도라면, 적은 표를 얻은 두 소설이 많은 표를 얻은 두 소설보다 그게 적다고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사부재리’는 민주사회의 근본 원칙 중 하나임을 누군가가 상기시켰다. 그는 또 애초에 사전 토의 없이 투표에 들어간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사실상 두 편으로 압축된 상태였지만 미련은 컸다. 후보작 네 편 모두에 대한 옹호와 반박의 공방이 오래 이어졌다. 우선 ‘장국영이 죽었다고?’가 보여주고 있는 깔끔하고도 정밀한 구성과 지적 통찰에 대한 상찬이 있었다. 그러자 그 작가가 장래의 문호로 성장할 것은 틀림없어 보이지만 대부분의 아이디어를 다른 문화적 사건 혹은 소설들에서 빌려오고 있어서 절실성을 느끼게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절실성이라면 ‘국자이야기’만한 게 있을까? 이 작품집은 봉천동에서 살아온 작가가 서울/고향의 대립이 무너진 상태에서의 고향을 거울로 삼아 자신의 전 생애를 깊이 되새김질한 소설이었다. 하지만 그 반추가 지나쳐 그의 소설이 어느 순간 난수표 없는 암호로 돌변한다는 지적이 일었다.

▲ 강원도 낙산비치호텔에서 최종심을 갖고 있는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주영 김화영 정과리 이문열 이청준 박완서 유종호씨. | |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는 음모는 가득 차 있으나 암호는 없는 소설이었다. 명쾌한 구성과 긴박한 리듬 그리고 오늘날의 한국사회의 역선(力線)에 몰려 있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적 해부가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작품 속의 인물들이 지나치게 유형화되어 있고 변화의 계기가 설득력을 결여하고 있다는 반박이 이어졌다. 그에 비하면 ‘꽃게 무덤’은 인물들의 형상이 매우 강한 흡인력을 띠고 있는 소설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형상을 감싸는 작가의 묘사는 고금의 좋은 작품들을 많이 읽어 본 사람의 우아한 품격을 갖추고 있다는 칭찬이 나왔다. 하지만 그 우아함이 태깔부리기로 비칠 수도 있으며, 쓰다 만 것 같은 태작들이 섞여있는 것이 결점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어쨌든 현실의 번뇌를 달래주는 것이 말의 성찬임은 틀림없었다. 심사위원홰는 오랜 토론 끝에 눈앞에 펼쳐진 냉정한 결과에 직면하였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 끼이면 냉정 쪽으로 선회하는 것이 나은 태도이다. 상(賞)이 문학의 흥을 북돋을 것은 분명한 일이지만, 동시에 문학은 상과 관계없이 제 길을 묵묵히 갈 것이기 때문이다.
최종 투표에서 ‘꽃게무덤’이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를 1표 앞질러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동인문학상 개편 이래 4대 3의 박빙은 지난해를 포함 올해까지 모두 네 차례 있었는데 1,2차 투표 모두 이처럼 승부가 아슬아슬했던 적은 없었다. 심사위원회는 수상자의 심경을 몸소 느끼기 위해 그리고 아쉽게도 유보된 다른 작가들을 마음속으로 달래기 위해 서둘러 이동하였다. 그리고 긴 술자리의 어느 때였던가, 심사위원들은 분명 꽃게탕을 맛보았던 게 틀림없다. 그러나 그 이튿날 깨어 보니 게가 기어간 흔적은 보이지 않고 어떤 새가 날아간 듯 기억이 아슴아슴하였다.
(심사위원회·박완서 유종호 이청준 김주영 김화영 이문열 정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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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 무덤, 다시 읽어봐야 하나.
소설집은 사지도 않았고 꽃게 무덤이랑 소설집에 실린 몇 편을
무슨 수상집 후보작에서만 읽었는데...
암튼, 투표로 결정된다는 게
심사위원의 취향에 들어야 한다는 게 씁쓸하다.
다시 읽어보겠다는 내 마음을 보라지...ㅎㅎ
문학의 공정성이란 무엇일까. 공정성 이란 말 자체가 문학에는 필요없는 듯.
잘 쓴다는 건 어떤 기준일까.
여전히 누구 마음에 들어야 날개를 펼 수 있는 무명의 설움이 난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