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때문에 여름 기분 확 난다. 7월, 칠월, 줄라이, july! 줄라이 모닝, 은 줄라이 모닝으로 써야 맛이 난다. july morning 이라고 쓰면 어쩐지 반감되는 느낌. 사랑스러운 모국어는 참말 위대하다. 여름을 준비한다. 책과 음악과 영화들. 어지간히 보고 또 보고 쓸고 닦고 들었던 것들이지만 똘똘한 여름 보내고 싶어서. 허전하고 싶지 않아서.  

  질 나쁜 연애  

 이 여름 낡은 책들과 연애하느니
 불량한 남자와 바다로 놀러 가겠어
 잠자리 선글라스를 끼고
 낡은 오토바이의
 바퀴를 갈아 끼우고
 제니스 조플린의 머리카락 같은
 구름의 일요일을 베고
 그의 검고 단단한 등에
 얼굴을 묻을거야  

 (중략)  

 문혜진의 시집 한권으로 여름을 시작한다.   


연애는 여름에 하면 딱 좋다. 적당히 노출된 몸매 때문이 아니라 더운 날씨 때문에 마음이 조금은 너그러워지고 해이해지기 때문이다. 남편을 가을에 만났다. 초여름 무렵, 칠부 티셔츠를 입고 데이트를 했다. 내 팔에는 보송보송하다 못해 거뭇한 털...이 수북했다. 면도기로 박박 밀다가 어느새 포기해버렸는데 아주 제법, 원시인스러웠다. 그걸 본 그가 건넨 한 마디. "왜 진즉에 말 안했어?" 그의 안경엔 빙글빙글 골뱅이 두 마리가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왜? 진즉 말했으면 데이트 안 했을거야? 결국 지금은 부숭한 털들을 다 면도했다. 여름이면 알러지가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온 몸이 간지럽다. 매일 면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나쁘지 않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화가 덜 됐다는 농담을 들었던 초등학교 때 밀어버리는건데. 지금은 그런 농담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은 나이잖아.

 

 독일의 휴양지 바덴바덴에 7월의 저녁이 내리고 있었다. 먼 곳, 슈바르츠 발트나 튜링거발트쯤의 하늘에 보랏빛 먹구름이 걸려있고, 그 너머 더 먼 곳 어딘가에는 번갯불까지 번쩍이고 있었다. 좀 더 도시 쪽으로 가까이 오면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언덕이 있으며, 그 언덕에는 빽빽이 초목이 자라고 있었다. 또 붉은 벽돌로 된 알테스 성과 노이에스 성이 보이고, 삐죽이 솟아 있는 탑들과 오래된 기사들의 성도 볼 수 있었다.  

<치프킨, 바덴바덴에서의 여름>  

도스토예프스키와 두번째 아내 안나의 여정을 담았다. 역자 이장욱의 말처럼 '이 소설은 픽션과 다큐의 경계에 있다' 끈질기게 도박에 미쳐있는 도스토예프스키와 그를 위해 숄까지 팔아 밑천을 대준 안나의 이야기는 여름을 진득하게 이겨내는 사랑의 묘안처럼 들린다. 아끼고 사랑해마지 않는 책.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 휴가-  

 섹시해 보이는 소녀가 있고,
 그소녀를 경계하는 어른 여자가 있고, 
 소녀와 왠지 잘 어울리지만 여자가 보기엔 자신과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섹시 가이가 있다. 사랑의 신 큐피드는 누구일까. 결론은 큐피드의 말로다. 큐피드여, 사랑을 전도하고 연결해줄 거라면 힌트라도 먼저 주시길.  

소녀와 여자가 함께 요트를 타고 짧은 항해를 한다. 
그것만으로도 여름이 성큼 느껴진다. 
바다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착각이 느껴지지만
외려 바다와 요트를 보고 있으면 얼른 구명조끼라도 입어줘야 할 것 같은 간절함에 몸살이 날 것 같다. 거실에서 허리에 튜브를 끼고 앉아 있어볼까. 아주 재미있을 것 같지만, 혼자 있을때만 그래야겠다.  

 


 Myrra, Sweet Bossa-  

 두 장의 씨디가 들어있다. 
 로맨틱하고 부드러운 바람같은 음색이 매력이다.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의 햇빛이 휘황찬란할 때
 미라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드라이브 떠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첫번째 트랙 Taxi Driver, 는 사랑 고백을 하러 가야 하는데
 택시 운전사가 아주 느긋하게 운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How insensitive 에선 사랑이 떠나간다. 택시를 타고 사랑 고백하러 갔던 여자가 결국 사랑이 떠나 어떻게 냉담해질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 상황인걸까. 고백했으니 아름다웠다고, 그것으로도 되지 않았냐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연애, 사랑인 거 같다. 여름엔 실연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하긴 어떤 계절에도 실연은 위태로운 계절이다.  

 

 차가운 벽, 트루먼 카포티- 

 차가운, 때문에 고른건 아니다. 어떤 여름날엔 짧은 이야기를 빨리 흡수하고 싶을 때가 있다. 단편 소설도 길 때가 있다. 엽편 소설은 흔하지 않다. 단편과 엽편 사이의 이야기들, 그러나 스펀지 흡수의 속도만큼 어떤 이야기가 살갗에 심장에 스며들어 줬으면 할 때, 이 책이다. 그의 명성 <인 콜드 블러드>에 비해 아주 흡족한 소설은 아니지만 아주 실망스러운 소설도 아니다. 나를 툭, 치고 가버리는 이야기들이 필요하다, 여름엔.  

 

 

 

 

 

 

 

 

 

 

 

이윤기가 건너는 강, 이윤기-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아웃사이더 예찬, 마이클 커닝햄-  

이윤기의 에세이가 왜 좋으냐하면 옆에서 나한테 말을 건네고 있는 것 같아서다. 야야, 좀 들어봐, 이런 일 있었는데 난 이렇게 해버렸다, 그거면 됐어. 하고 경상도 사투리로 슬금슬금 말을 걸어오는 느낌. 소나기 같은 이야기들, 소나기처럼 빠르지만 여운이 남는 이야기들.  

존 버거는 언제나 그렇듯 섬세한 사람이다. 사진을 보고 있는 것처럼 글자로 사진을 찍고 있다. 거기에 영혼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활동사진으로서의 글을 썼다. 수변공원 산책로에서 자주 만나는 전형적인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연상하게 한다. 유모차의 여인, 자전거를 탄 여인이 그렇다. 풀밭위의 그림, 도 자주 보는 풍경이다. 거기에 나만 포착하고 존 버거는 포착하지 못한 풍경은 -다리 밑에서 고기를 굽는 사람들- 이다.  

마이클 커닝햄! <세월, The Hours> 를 사랑한다. 영화도, 소설도 아주아주 좋다. 그가 말하는 프로빈스 타운에 갈 일이란 까마득한 먼 약속이겠지만 왠지 그와 함께 장도 보고 시청 화장실에들러 본 느낌도 든다. 완벽하게 그 지역색이 도드라져 한참 읽다가 내가 이걸 왜 읽지...하는 느낌은 잠깐 들지만 그래도 좋다.  

 

여름이 왔다. 잘 견뎌내고 싶은 마음이나 잘 지나가리라는 기대는 없다. 봄을 살아왔던 것보다는 조금 더 바지런하게 살아서 옹골찬 가을을 맞이하고 싶다. 그래서 잘 투과하고 싶은 계절이다. 견딘다고, 지나갈거라고 일상의 아픔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저 묵묵히, 그러나 괜찮다는 말은 남발하지 않으면서 잘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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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7-0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점심먹기 전에 장바구니에 들었던 책들을 결재했는데, 만약 결재전에 이 페이퍼를 봤다면 저 위의 시집 [질 나쁜 연애]를 장바구니에 함께 넣었을거에요.


이 여름 낡은 책들과 연애하느니
불량한 남자와 바다로 놀러 가겠어


아! 제대로 여름인거죠.


플레져 2010-07-01 19:08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과 잘 어울리는 시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짜루-.
불량한 남자랑 가더라도
오토바이만큼은 좋은 걸 타야할 거 같아요 ^^

stella.K 2010-07-01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저 시 좋은데요!
글쵸. 역시 줄라이 모닝은 줄라이 모닝이어야 해요.
7월도 행복하게 보내시길! 나의 플레져님.^^

플레져 2010-07-01 19:08   좋아요 0 | URL
그죠? 좋죠?
저 시의 전문을 얼른 옮겨놔야겠어요.
마이 스텔라님...ㅎㅎ

2010-07-01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1 1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0-07-01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박지성이 열심히 선전하는 질레트 면도기 코리아 에디션 리미티드 버젼이 플레져님 서재에서 생각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플레져 2010-07-01 19:11   좋아요 0 | URL
흑.
(이 한마디로 제 심정(?)을 다 읽으셨으리라...ㅋ)

잉크냄새 2010-07-01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라이 모닝, 역시 모닝이 어울리는 달이네요.
노래 제목의 영향도 크겠지만, 님 말처럼 줄라이보다는 줄라이 모닝...

플레져 2010-07-01 19:16   좋아요 0 | URL
노벰버에는 레인이 붙어야 하듯
줄라이에는 모닝이 제격이죠 ^

다리 밑에서 고기굽는 사람들,을 쓸때
잉크님의 오래전 페이퍼를 떠올렸어요.
기억하세요? 다리밑에서 고기 구워먹는 사람들 얘기 하신적 있는데.
다리밑에서 고기 구워먹는 사람들이 아주 인상적이었거든요.
그러나 지금, 거의 하루에 한번은
다리 밑에서 고기 굽는 사람들을 목격하고 있답니다.
고기는 여름이 아니어도, 날만 괜찮으면 구워도 될 거 같아요..ㅎㅎ

잉크냄새 2010-07-05 13:14   좋아요 0 | URL
기억력도 좋으셔라.
그 페이퍼를 기억하고 계시다니...
참 오래전의 추억을 들춰내주시네요.ㅎㅎ

플레져 2010-07-06 15:22   좋아요 0 | URL
스토커, 로 오해받을까봐 조금 고민했었어요 ㅎㅎ
다리 밑에서 고기를 굽다니.
생소한 목격담이어서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

2010-07-02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2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9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04 0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0-07-05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필적 고의에 의한 여름휴가, 재미있어요.
요트를 타는 대리만족보다 (요트 실제로 타보고 싶어라~)
'타인의삶'에 나왔던 그 여배우의 대담함과 반전에 깜짝 놀랐지요.
근데 그게 후련하더라구요.ㅎㅎ
줄라이 모닝, 굿모닝, 플레져님^^

플레져 2010-07-06 15:21   좋아요 0 | URL
아아- 타인의 삶에 그 여인이어서 저도 깜짝- 쿵- 놀랐어요.
몹시 관능적이고 매력적이죠? ㅎㅎ
실제로 요트를 타는 것같은 착각은
현란한 카메라 워크 때문이었던듯 ^^
오늘도 줄라이 모닝하세요, 프레이야님!

2010-07-07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사춘 2010-07-20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플레져님 서재에는 아래로 쭉쭉 보물이 그득그득합니다.
감사의 뜻으로 여름덕담을...
"여름 건강하게 보내세요~!" (싸다, 춘!)

플레져 2010-07-21 21:26   좋아요 0 | URL
다정한 춘님 ^^
너무 덥죠? 벌써부터 찜통이니...큰일이에요.
덕담 감사합니다. 춘님도 더위 조심하세욧!

2010-07-27 1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