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학
리사 F. 버크먼 외 엮음, 신영전 외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사회 역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 붙은 학문의 입문서 내지는 개론서에 해당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보건학이나 간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대학에서 전공서적으로 사용할 듯한 책이며, 대중서적이라고는 절대 할 수 없다.

책의 본문 처음에 나와 있듯이 "역학(epidemiology)은 안구집단의 건강수준의 분포와 결정요인을 다루는 학문"이다. 특히 "여러 가지 점에서 이제 사회적 조건들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이러한 사회적 조건들과 건강과의 관련성을 탐구하는 학문이 바로 사회 역학(social epidemiology)인 것이다. 즉 보건학과 사회학의 만남을 통해서, 어찌보면 일개인의 문제일수도 있는 건강이라는 주제를 사회적으로 설명하는 학문적 시도인 것이다.

제 1 장에는 사회 역학의 개념과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여러 장(chapter)들은 여러 사회적 요인들과 건강과의 관련성이 자세히 탐구되고 있으며, 그 탐구의 방법과 비판 또한 알기쉽게 소개되어 있다. "제 2 장 사회경제적 지위"에서는 사회경제적 지위와 사람의 평균 수명과의 상관 관계를 설명하고 있으며, 뒤이어 소득불평등과 건강의 관련성, 작업조건과 건강, 여러 사회자본과 건강이라는 여러 흥미로운 주제를 여러 사례를 들어가며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어떻게 정의하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층부의 수명이 하층부의 수명보다 길다는 일관된 조사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가 어떠한 메커니즘을 통해 나타나는지에 대한 가설과 연구들도 소개되고 있다. 또한 차별이나 사회 네트워크가 건강에 끼치는 영향과 그 메커니즘을 보여주고 있으며, 우울증과 신체질환과의 관계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건강 또는 불건강의 요인들을 단순히 한 개인의 수준에서 생물학적으로만 접근하면 대단히 단편적이고 불완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개인의 건강과 질병조차도 사회적맥락과 요인들을 전체적으로 고려하지 않고는 완전히 탐구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공중 보건을 한 단계 상승시키려면 사회적 자본들을 구축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며, 한 사회의 통합이 건강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도 알수 있었다.

책과 활자의 크기, 책의 구성과 편집, 다양한 사례와 분석, 많은 도표와 그래프 등 이 책은 학술적인 가치로 따지면 거의 만점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용도 어렵지 않아서 사회학이나 보건학적 지식이 없는 나로서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말그대로 강의에 쓰이도록 만든 입문서라 다소 딱딱할 수 있지만, 내용이 재미있어서 읽고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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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감도

                             이상


13인의아해가도로를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가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해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해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해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해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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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화

                           서정주


누님,
눈물겨웁습니다.

이, 우물물같이 고이는 푸름 속에
다수굿이 젖어 있는 붉고 흰 목화꽃은,
누님.
누님이 피우셨지요?

퉁기면 울릴 듯한 가을의 푸르름엔
바윗돌도 모두 바스러져 내리는데......

저, 마약과 같은 봄을 지내어서
저, 무지한 여름을 지내어서
질갱이풀 지슴길을 오르내리며
허리 굽흐리고 피우셨지요?

<감상>

눈물 겨울 것이다. 잘 안되던 일이, 간절히 바라던 일이 풀릴 때는 갑자기 눈물이 날 때가 있지 않은가?

참 무던히도 참고 기다렸을 것이다. 봄이 어떤 계절이던가? 생동하는 기운, 꽃피는 강하, 어여쁜 여자들...

여름은 또 어떤가? 견디기 힘든 더위, 한 없는 짜증과 나태, 다들 강이다 바다다 놀러 가는데... 이 것들

다 참고 했느니라. 그일 할라치면 질갱이풀 지슴길 오르고 내릴 일이다. 허리 구부리고 잘 심고 가꿀일

이다. 물도 주고 어디 다친데 없는지 신경쓰고... 남이 안 알아주니 더 가혹한 일이 되고야 만다. 이리하여

거기에 붉고 흰 목화꽃 피었다. 눈물나지 않겠는가? 거기에 가을의 푸르름이 더했으니 그 꽃 보고 얼마나

서럽게 울었겠는가? 기쁨때문에? 아니면 그 아름다움에 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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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망한 왕조의 늙고 병든 마지막 왕이었다. 酒色은 나의 덧없는 나날이었고 폭정은 내 위대함이요 악명은 역사가 되었다. 나의 연호 4년 己未年 크고 붉은 말 한마리가 광화문을 네 바퀴 돌고 난 다음 음울한 울음을 울고는 사라졌다. 거북이가 웬 장수의 동상 밑에서 빠져나와 교보빌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여우 여러 마리가 모 신문사로 들어왔는데 그 중 한 마리가 편집국장 데스크에 올라앉았다가 없어졌다. 덕수궁에서는 금계와 참새가 교미하고, 전갈좌가 밤하늘을 기어가 황소를 물어뜯어 죽였다. 피 묻은 별이 아현동 민가에 떨어졌는데 땅에서 불기둥이 솟아오르더니 거기에 커다란 웅덩이가 생겼다. 서울의 수돗물은 온통 벌건 녹물이었고 어떤 중이 曹溪寺 대문을 열고 보니 큰 배가 절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한다. 한강 고수부지에 물고기들이 올라와 죽었는데 고기들이 모두 외눈박이였다. 수만 마리의 바퀴벌레들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녔다. 모기떼가 해를 가렸고 밤에는 고궁의 오래된 회양나무가 사람 소리를 내며 울었다. 다리가 뚝 끊어져 달리던 통학 버스가 물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아들이 애비를 죽여놓고 집을 불지르는 일도 있었다. 또 큰 개가 서쪽에서 인왕산 언덕에 와서 대권을 바라보고 짖더니 이윽고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으며, 성 안에 개들이 길 우에 모여 혹은 짖기도 하고 혹은 울기도 하다가 얼마 후 흩어졌다.
  노왕이 이제 임종을 맞는 차에, 시녀들이 와서 나의 데스 마스크를 뜨겠다고 법석이었다. 아, 나는 그거 필요없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들은 내 나이 수만큼 나의 죽은 가면을 떠가지고는 이제 나더러 그것들을 무대 중앙에서 깨뜨리라고 명령하는 것이었다. 늙은 왕은 울상이 되어 나의 석고상을 들고 관객을 향해 비틀비틀 걸어갔다. 내 얼굴로 집중되는 핀 조명: 빛의 막 속에서 왕은 딱 이 한마디만 하고 내 얼굴을 깨뜨렸다.

  "이건 삶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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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

                                    서정주


가신 이들의 헐떡이던 숨결로
곱게 곱게 씻기운 꽃이 피었다.

흐트러진 머리털 그냥 그대로,
그 몸짓 그 음성 그냥 그대로,
예사람의 노래는 여기 있어라.

오- 그 기름 묻은 머리박 낱낱이 더워
땀 흘리고 간 옛 사람들의
노래 소리는 하늘 위에 있어라.

쉬어 가자 벗이여 쉬어 가자
여기 새로 핀 크낙한 꽃그늘에
벗이여 우리도 쉬어서 가자

만나는 샘물마다 목을 축이며
이끼 낀 바윗돌에 턱을 고이고
자칫하면 다시 못 볼 하늘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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