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

                           서정주


누님,
눈물겨웁습니다.

이, 우물물같이 고이는 푸름 속에
다수굿이 젖어 있는 붉고 흰 목화꽃은,
누님.
누님이 피우셨지요?

퉁기면 울릴 듯한 가을의 푸르름엔
바윗돌도 모두 바스러져 내리는데......

저, 마약과 같은 봄을 지내어서
저, 무지한 여름을 지내어서
질갱이풀 지슴길을 오르내리며
허리 굽흐리고 피우셨지요?

<감상>

눈물 겨울 것이다. 잘 안되던 일이, 간절히 바라던 일이 풀릴 때는 갑자기 눈물이 날 때가 있지 않은가?

참 무던히도 참고 기다렸을 것이다. 봄이 어떤 계절이던가? 생동하는 기운, 꽃피는 강하, 어여쁜 여자들...

여름은 또 어떤가? 견디기 힘든 더위, 한 없는 짜증과 나태, 다들 강이다 바다다 놀러 가는데... 이 것들

다 참고 했느니라. 그일 할라치면 질갱이풀 지슴길 오르고 내릴 일이다. 허리 구부리고 잘 심고 가꿀일

이다. 물도 주고 어디 다친데 없는지 신경쓰고... 남이 안 알아주니 더 가혹한 일이 되고야 만다. 이리하여

거기에 붉고 흰 목화꽃 피었다. 눈물나지 않겠는가? 거기에 가을의 푸르름이 더했으니 그 꽃 보고 얼마나

서럽게 울었겠는가? 기쁨때문에? 아니면 그 아름다움에 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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