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고 있는 듯한 소녀가 담긴 표지를 보면서 나는 무엇을 떠올렸던가. 그저 책을 읽고 있구나, 정도의 생각과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무언가 고풍스러운 느낌이 나는 그녀는 어떠한 책에 깊이 빠져있는 듯 하다. 어떠한 책에 그토록 빠져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벽에 등을 대고서 이토록 집중해서 읽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녀에게는 몸에 전해지는 불편함도 잊게 만들 정도로 마력이 있는 책이라는 것은 분명한 듯 하다. 이토록 한 장의 그림이나 사진, 명화들을 보면서 그 안에 있는 주인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만큼의 생각을 할까. 그저 몇 초의 시간만을 할애하여 정체되어 버린 추억으로 남아버린 그 순간들에 대해서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버릴 장면들을 이 저자는 멈춰버린 시간 속으로 되돌아가 그 안에 담겨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었다. 총 7개의 장막으로 이루어진 단막극의 이야기는 옴니버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에는 책을 읽고 있는 여자와 그녀들을 그린 화가,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시모네 마르티니'의 대표작으로 일컫는 '수태고지' 속의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첫 장에 마주하면서 연대별로 준비된 이야기들은 마지막 장에 와서 그 의미들에 대해서 총체적인 연관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있다. 순결한 처녀였던 마리아에게 전해진 임식 소식을 전해들은 그녀는 읽고 있던 책을 몸 뒤로 뺀 후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 엄청난 사실을 전해들을 그녀의 성스러운 순간을 그려냈던 시모네 마르티니는 과연 어떠한 여인을 모델로 하여 마리아를 담을 수 있었을까, 라는 작가의 호기심이 이 작품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의 시작되는 것이다. 고아가 되어 버린 라우라 아녤리는 지금 그녀가 왜 시모네 마르티니를 돕기 위해 이 곳에 와 있는지도 모른 채 그가 하고자 하는 작업인 벽화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길 바라며 그의 신경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미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가 언제 다시 자신을 향해 무어라 할지 모르니 말이다. 그렇게 웅크리고 있던 시간이 지나 라우라 아녤리는 마르티니가 어떠한 작업을 하고 있는지와 자신이 왜 이 곳에 자리하고 있는지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다. 물론 그녀 자신이 그의 작업에 참여한다는 것은 물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함구해야 하는 것을 물론이었으며 그러한 비밀은 라우라 아녤리와 마르티니에게 서로에게만 들려줄 수 있는 비밀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이자 공간이 되어 간다. 특별히 누군가를 염두에 두지 않고 말없이 이루어진 수 많은 애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중략) 마리아는 유독 몸집이 작은 아기를 바라보는가? 그 아이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있는 마리아는 특히 그 아기를 보호해줄 것인가? 결함 많은 인간에게 가닿은 마리아의 속상임은 그의 인생을 구원할 수 있는가? 기록되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다. -본문 올리브를 먹으며 이야기를 하는 마르티니와 라우라 아녤리의 모습을 보노라면 과연 수태고지의 마리아의 모델이 된 그녀가 누구였을까, 라는 궁금증은 어느 새 사라지고서 그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가 그 당시의 어디선가 실제 일어났던 일을 저자가 바라보고서는 그때의 일들을 이 곳에 고스란히 기록해 놓은 듯한 느낌이다. 피테르 안센스 엘링가의 '책 읽는 여인' 역시 하녀 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을 줄 알았던 에스더를 롤 모델로 하여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으며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아르노의 여인들>은 그림에 푹 빠져 있는 화가 로렌스를 사랑하던 그웬이 이미 세상을 떠난 크리건 교수의 이야기를 정리하느라 그야말로 책에만 빠져있고 세상 그 무엇에도 관심 없었던 아르노라는 공간안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힘들지만 꼭 필요한 연구다. 어젯밤까지 이 목록에는 단 네 줄만 적혀 있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그웬은 나중에 이 공책을 우연히 본 사람이 자신을 나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자신이 실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다섯 번째 항목을 기입했다. 어쨋거나 싱클레어도 다섯 번째 항목 때문에 손해를 볼 것은 없으니까. 싱클레어는 잡지에 빠져들었고 그웬은 어떻게 필요한 정보를 캐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한다. 아무도 말이 없다. 그웬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본문 나체의 모습으로 책을 읽고 있는 그림을 보면서 과연 저자는 이 안에서 어떠한 이야기들을 떠올렸을까, 를 함께 쫓다 보면 너무도 매혹적인 그림 속의 여인이 누구일까, 에 대한 물음을 안고서 설레는 마음으로 읽어내려 가게 된다. 누구나 그웬과 같이 누군가를 향한 일방적인 짝사랑에 대한 가슴앓이는 해 보았기에 그녀의 행태들은 귀여우면서도 짠한 느낌이 들곤 하는데 좀처럼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로렌스에게 싱클레어라는 또 다른 여성이 아르노에 등장하게 되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삼각구도로 전개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뻔한 이야기로 전개되는 것으로 저자는 나의 상상력의 한계와 동일시 한다는 것을 유쾌하게 벗어던지며 그 이후의 이야기들을 전개함으로써 작가라는 이들이 받는 영감은 이러한 것이구나, 역시 배우게 된다. 책을 읽는 소녀들에 대한 무언가 이것과는 다른 기대를 안고서 이 책을 마주한 것이 사실이었으나 이 안에 담겨 있는 그녀의 이야기는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의 전개이기에 읽는 내내 집중해서 읽어내려갔다. '놀라운 데뷔작'이라는 찬사가 쏟아지는 그녀만의 문체는 무언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차분하게 하면서도 그 안에 그만의 흡입력을 안고 있기에 계속해서 다음 이야기들을 마주하게 되고 이것이 실제 어딘가에 존재했었던 이야기들 같아서 집중 또한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하나의 작품을 보면서 한 인간이 어디까지의 상상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녀의 작품 속 뮤즈들이 되었던 그녀들을 보면서 과연 그녀들에게는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한 소소한 고민들에 빠져서 읽게 되는 이 책을 보면서, 멈춰 버린 시간들을 활자로 되살아 나게 하는 그녀의 이야기에 푹 빠져버린 만큼 그 다음 그녀의 작품도 빠른 시간내에 마주할 수 있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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