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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각이나 명동에 나가다 보면 저 멀리서 ‘불신지옥예수천국’이라는 푯말과 계속해서 지지직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카세트 테이프 속의 목소리가 들리곤 한다. 자신들에게 그토록 큰 영광과 환희를 알려준 종교에 대해서 타인과 함께 나누려는 그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자극적인 카피문구와 간절함보다는 그저 소음처럼 치부되어 버리는 그들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얼굴을 돌리곤 한다. 과연 자신들의 종교와 함께하지 않으면 구원조차 받지 못하는 처절한 내세가 온다는 이러한 자극적인 이야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에 동화되어 마음을 열게 될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러한 방법은 오히려 종교에 대한 반감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어찌되었건 기독교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은 없지만 이러한 흑색선전이 난무한 것들을 보면 되려 그 거리감이 배가 되는 것이 사실인데 이 책은 그러한 거리감을 다시금 좁혀주었다는 것에서 나에게는 의미가 남다른 책이 되었다.
예수에 대해서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이었던 그는 십자가에 못박혀 다시 부활되셨으며 그리하여 현재의 기독교의 뿌리가 되는 장본인이라는 사실이며 성경에서 그의 말씀을 들으면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던 나에게 저자는 신적인 존재로만 널리 퍼져있는 예수라는 존재,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대 저자는 그 동안 마주해 왔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유대인들의 독립과 수 많은 민중을 위해 앞장섰던 혁명가로서의 예수인 ‘나사렛 예수’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 책 안에서는 오롯이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인간 예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에 의하면 예수는 정츼적 의식이 투철한 유대 혁명가였다. 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하느님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웠음을 외치며 민중 운동을 일으키다가 로마 당국에 의해 처형된 ‘열성파’ 인물이다. 이 책은 1세기 팔레스타인, 로마 제국의 통치 하에 수난 당하며 여러 차례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결국 예루살렘이 함락되며 멸망에 이른 역사적 배경을 소상하게 밝히는 것은 물론, 복음서 저자들의 저술 동기, 그리고 예수 동생 야교보와 바울의 관계를 조명하면서 유대 전통에 뿌리박은 예수의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가르침이 어떻게 점차 희석되면서 결국 오늘날의 우리가 아는 대로 예수상으로 변화했는가를 흥미롭게 개진하고 있다. –본문
어린 시절에는 기독교에 심취했다가 가족들이 믿고 있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저자는 종교학을 공부하면 성서에 기재되어 있는 신격화 된 예수에 대한 모습이 아닌 인간적인 예수의 모습을 좇아가는 여정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역사 속의 예수를 마주하는 것에 심취되었고 인간으로서, 그러니까 기독교가 탄생하기 이전에 실제 실존했던 예수를 찾기 위한 고군분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복음서는 예수의 생애를 역사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기록이 아니며, 그렇게 여겨진 적 역시 한 번도 없다. 복음서는 예수의 언행에 대한 목격담고 아니며, 살아 생전 예수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기록한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신앙에 대한 증언이다. 신앙 공동체가 기록한 것으로 그들이 묘사하는 사건들이 일어난 시기보다 수십 년 후에 쓰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복음서는 인간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 말한다. –본문
그렇다면 복음서의 기자들은 예수의 메시지와 운동들에 있어서 혁명적 상징을 누그러뜨리고 신격화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었던 것일까? 오랜 시간 동안 역사적인 고민을 통해 예수를 바라본 그는 복음서들의 이야기는 모두 기원후 66년에 일어났던 유대인들의 반 로마 폭동 이후에 저술되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바라보아야만 이 문제에 대한 핵심을 파고 들 수 있는데, 나사렛 예수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 것은 예수가 1세기 전반에 팔레스타인에서 유대 민중 운동을 일으킨 유대인이었으며 이러한 사실 때문에 로마 제국은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하는 것은 선동죄에 국한하여 처형하던 로마의 방식으로서 예수의 머리 위쪽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인 패는 당시의 죄를 기록해 놓은 ‘죄패’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동안 들어왔듯이 예수를 비꼬는 풍자의 의미가 아닌 죄목을 밝히는 죄 패가 달린 것이라고 한다.
여하튼 이렇게 역사적으로 유대인들로 하여금 혁명을 불러 일으켰던 그가 어찌하여 이 복음서 안에서는 인간 예수의 모습이 아닌 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왜곡에 대해서 저자는 이 복음서들이 예수와 사도 바울 시대가 지난 후 그러니까 예루살렘이 멸망된 이후에 작성된 것들이며 예수에게 적용된 죄목이 반란죄이지 신의 이름을 훼손했다는 죄목이 붙지 않았다는 것은 예수가 말했던 세상의 기적에 대해 일컬었던 것들은 후대에 와서야 작성된 것들이라는 것을 반증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기독교 자체에 대한 비난을 담을 이야기로 바라본다면 이 책은 상당히 껄끄러운 것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예수를 그저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신앙만을 강조하는 기독교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예수가 걸어왔던 길을 진실로 바라보며 조금 더 한걸음 가까이 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막연하게 반감을 가지고 있던 이들에게 우리가 몰랐던 실존하는 예수에 대해서, 그리고 기독교 자체에서도 그들이 안고 있는 나름의 한계를 벗어 던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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