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무레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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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이름을 고스란히 딴 작은 식당을 하고 있던 엄마와 그녀와 함께 살고 있는 딸 아키코의 작은 일상들이 가요라는 가게를 통해 펼쳐지게 된다. 매일 단골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요리를 내놓던 엄마의 모습에 대해서 언젠가부터 반감이 들었던 아키코는 엄마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간다 

  

 이토록 평행선과 같은 두 모녀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관계에 대해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투닥거리듯 서로에 대해 무심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모녀였던 그녀들이 각자의 요리를 내어 내는 솜씨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들의 사이를 반증할 수 있는 매개체가 아닐까 싶다.

 

 아키코는 평범한 가정과는 거리가 멀어도 엄마와 단둘이 사는 생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사람들이 뭐라고 손가락질을 하든 가엾게 여기든, 태어났을 때부터 이런 상황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지금껏 지내왔다. 엄마가 얘기를 해준 덕분에 자신의 뿌리를 알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큰 소리로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니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았을 지도 모르겠다는 기분도 들었다. -본문 

 

 아버지가 누구였더라, 라는 사실을 알고나서 그에 대한 어떠한 추론이나 지나왔던 자신의 삶에 대해 돌이켜 볼 시간도 없이 그녀는 자신의 엄마와 이 생애서의 이별을 하게 되고 그리고 나서 그녀가 남겼던 가게는 다시 아키코만의 공간으로 탈바꿈하여 시마와 함께 그녀들만의 가게를 꾸리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인 고양이 타로도 함께 말이.

 

 사는 동안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나의 행동이나 선택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다. 또한 나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어떠한 사건에 엮이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 책 속의 아키코는 전자와 후자의 상황 모두를 겪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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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곶의 찻집’ / 모리사와 아키오저

 

 

독서 기간 : 2014.03.27~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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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밥이다 - 매일 힘이 되는 진짜 공부
김경집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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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대한 갈망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이전부터 <인문학은 밥이다>라는 리뷰가 올라오는 것들 것 보면서 이 책을 언젠가는 읽어보리라, 라는 결심을 안고서는 언젠가는 이 책을 읽고 내가 리뷰를 올리리라! 라는 바람을 안고 있었는데 이번에야 말로 이 책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었으며 읽는 내내 이 책의 무게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얼마나 즐겁게 읽어 내려갔는지 모르겠다. 오랜 갈증이 이렇게 해갈되는구나, 싶었던 책이 바로 <인문학은 밥이다>라는 책이었다.

 철학, 종교, 심리학은 물론 역사와 과학, 문학이나 경제, 환경, 젠더 등 인문학이라고 일컫는 다양한 분야의 내용들을 640페이지라는 책 안에 담아놓고 있는데 처음 보았을 때는 책에 대한 위압감 때문에 과연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금새 느낄 것이다. 이 책 안에 담겨 있는 인문학의 내용들은 저자가 말한 대로 밥처럼, 별 다른 꾸밈 없이도 쉬이 받아 들일 수 있는, 그래서 계속해서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볼 수 있어 읽는 내내 기꺼이 이 책을 들고 다니는 수고마저도 개의치 않았다.

 종교의 자유가 주어진다는 우리나라에서, 생각해보면 또 그 종교만큼은 폐쇄적인 시스템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종교라는 것 자체가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인지 학창시절 중에도 학교의 재단이 어느 종교의 것일 경우 그 종교에 대한 배움을 가져야만 했지만 희한하게도 그 이외의 종교들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마주할 기회들이 없었다. 개인 그 자신에게 주어진다는 종교에 대해서 다양성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 아니 배제하고 있는 것은 과연 종교의 자유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가져보는데 이 책 안에서나마 종교에 대한, 그러니까 세세한 종교들의 내용들이라기 보다는 종교 자체에 대한 의미와 그 안의 문제점 등을 다루게 되면서 이전에 안고 있었던 나름의 문제에 대한 답을 얻게 되었다.

 인간은 왜 종교라는 것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저자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으로서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으로 향하는 길을 거닐 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막연함이 불러오는 공포를 제거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를 벗어나길 바랐으며 그리하여 현세 이후의 내세에 대한 필요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즉 종교는 인간에게 죽음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가 된 셈인데 문제는 이러한 종교가 인간의 근본적인 공포인 죽음에 대한 문제 해결로 개인에게는 안위를, 그러한 개인들이 모여있는 사회에는 그 나름의 걱정을 덜어주는 요소였으나 요새 들어서는 되려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는 형국으로 변모되는 것에 대해 저자는 적잖은 한탄을 풀어놓고 있었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다. 악을 행하라고 부추기는 종교는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산다면 이 사회는 유토피아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을 그렇지 않다. 종교가 개입된 다툼과 갈등의 특징은 집요하고 비이성적이라는 데 있다. 맹목적 열정을 부추겨서 살인까지 불사하도록 만든다. 그러고는 성전이니 순교니 하는 허상으로 미화시킨다. 대화나 타협도 끼어들 틈이 없다. 그저 종교인들만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준을 뛰어넘어 사회적 과장을 일으키기도 한다. –본문

 특히나 유일신을 믿고 있는 종교들에 대해서 과연 그들이 우월한 종교인지에 대한 문제는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일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아닐 수가 없는데 생각보다 유일신 종교가 많지 않다는 것도 색다른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알고 있는 종교의 대부분이 유일신 종교로 한정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종교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한지에 대한 반증이 아닐 수 없었는데 이러한 유일신 종교의 태동의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정치적 혹은 민족적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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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의 고전 / 김경집저

 

 

독서 기간 : 2014.03.2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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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덕 2014-04-03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미라클 2014-04-04 11:2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봄덕님 : )
 
젤롯 -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였다” 20년간의 연구로 복원한 인간 예수를 만나다
레자 아슬란 지음, 민경식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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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각이나 명동에 나가다 보면 저 멀리서 불신지옥예수천국이라는 푯말과 계속해서 지지직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카세트 테이프 속의 목소리가 들리곤 한다. 자신들에게 그토록 큰 영광과 환희를 알려준 종교에 대해서 타인과 함께 나누려는 그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자극적인 카피문구와 간절함보다는 그저 소음처럼 치부되어 버리는 그들의 모습을 마주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얼굴을 돌리곤 한다. 과연 자신들의 종교와 함께하지 않으면 구원조차 받지 못하는 처절한 내세가 온다는 이러한 자극적인 이야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에 동화되어 마음을 열게 될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러한 방법은 오히려 종교에 대한 반감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어찌되었건 기독교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은 없지만 이러한 흑색선전이 난무한 것들을 보면 되려 그 거리감이 배가 되는 것이 사실인데 이 책은 그러한 거리감을 다시금 좁혀주었다는 것에서 나에게는 의미가 남다른 책이 되었다.

 예수에 대해서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이었던 그는 십자가에 못박혀 다시 부활되셨으며 그리하여 현재의 기독교의 뿌리가 되는 장본인이라는 사실이며 성경에서 그의 말씀을 들으면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던 나에게 저자는 신적인 존재로만 널리 퍼져있는 예수라는 존재,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대 저자는 그 동안 마주해 왔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유대인들의 독립과 수 많은 민중을 위해 앞장섰던 혁명가로서의 예수인 나사렛 예수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 책 안에서는 오롯이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인간 예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에 의하면 예수는 정츼적 의식이 투철한 유대 혁명가였다. 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하느님의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웠음을 외치며 민중 운동을 일으키다가 로마 당국에 의해 처형된 열성파인물이다. 이 책은 1세기 팔레스타인, 로마 제국의 통치 하에 수난 당하며 여러 차례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결국 예루살렘이 함락되며 멸망에 이른 역사적 배경을 소상하게 밝히는 것은 물론, 복음서 저자들의 저술 동기, 그리고 예수 동생 야교보와 바울의 관계를 조명하면서 유대 전통에 뿌리박은 예수의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가르침이 어떻게 점차 희석되면서 결국 오늘날의 우리가 아는 대로 예수상으로 변화했는가를 흥미롭게 개진하고 있다. –본문

 어린 시절에는 기독교에 심취했다가 가족들이 믿고 있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저자는 종교학을 공부하면 성서에 기재되어 있는 신격화 된 예수에 대한 모습이 아닌 인간적인 예수의 모습을 좇아가는 여정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역사 속의 예수를 마주하는 것에 심취되었고 인간으로서, 그러니까 기독교가 탄생하기 이전에 실제 실존했던 예수를 찾기 위한 고군분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복음서는 예수의 생애를 역사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기록이 아니며, 그렇게 여겨진 적 역시 한 번도 없다. 복음서는 예수의 언행에 대한 목격담고 아니며, 살아 생전 예수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기록한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신앙에 대한 증언이다. 신앙 공동체가 기록한 것으로 그들이 묘사하는 사건들이 일어난 시기보다 수십 년 후에 쓰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복음서는 인간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 말한다. –본문

 그렇다면 복음서의 기자들은 예수의 메시지와 운동들에 있어서 혁명적 상징을 누그러뜨리고 신격화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었던 것일까? 오랜 시간 동안 역사적인 고민을 통해 예수를 바라본 그는 복음서들의 이야기는 모두 기원후 66년에 일어났던 유대인들의 반 로마 폭동 이후에 저술되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바라보아야만 이 문제에 대한 핵심을 파고 들 수 있는데, 나사렛 예수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는 것은 예수가 1세기 전반에 팔레스타인에서 유대 민중 운동을 일으킨 유대인이었으며 이러한 사실 때문에 로마 제국은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하는 것은 선동죄에 국한하여 처형하던 로마의 방식으로서 예수의 머리 위쪽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인 패는 당시의 죄를 기록해 놓은 죄패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동안 들어왔듯이 예수를 비꼬는 풍자의 의미가 아닌 죄목을 밝히는 죄 패가 달린 것이라고 한다.

 여하튼 이렇게 역사적으로 유대인들로 하여금 혁명을 불러 일으켰던 그가 어찌하여 이 복음서 안에서는 인간 예수의 모습이 아닌 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왜곡에 대해서 저자는 이 복음서들이 예수와 사도 바울 시대가 지난 후 그러니까 예루살렘이 멸망된 이후에 작성된 것들이며 예수에게 적용된 죄목이 반란죄이지 신의 이름을 훼손했다는 죄목이 붙지 않았다는 것은 예수가 말했던 세상의 기적에 대해 일컬었던 것들은 후대에 와서야 작성된 것들이라는 것을 반증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기독교 자체에 대한 비난을 담을 이야기로 바라본다면 이 책은 상당히 껄끄러운 것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예수를 그저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신앙만을 강조하는 기독교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예수가 걸어왔던 길을 진실로 바라보며 조금 더 한걸음 가까이 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막연하게 반감을 가지고 있던 이들에게 우리가 몰랐던 실존하는 예수에 대해서, 그리고 기독교 자체에서도 그들이 안고 있는 나름의 한계를 벗어 던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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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가 바라본 하나님 나라 / 도널드 크레이빌저

 

 

 

독서 기간 : 2014.03.31~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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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주례사 - 사랑에 서툰, 결혼이 낯선 딸에게
김재용 지음 / 시루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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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엄마이자 딸로서 살아왔던 그녀는 자신이 지내왔던 시간 속에서 때로는 힘들기도 하고 버거웠던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왔는지에 대해 담담히 들려주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이것이 결혼생활이구나, 라는 것을 조금씩 배우게 된다. 특히나 결혼에 대해서 이를 테면 결혼이라는 것이 핑크빛의 아름다움만이 가득할 것 같은 동화 속 공주와 왕자를 꿈꾸며 예쁜 드레스를 입고서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녀는 그것은 그저 환상일 뿐이며 결혼이 우리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아니니 결혼을 앞두고 있는 딸들에게 결혼은 오롯이 혼자 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들려주고 있었다.

  남편과 함께 하리라는 생각으로 결혼을 했지만 사회 초년생이었던 남편 역시도 사회와 가정을 모두 똑같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기에 매일 12시가 다 되어서야 퇴근을 했으며 그 동안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어야 했던 그녀의 일과는 녹록치 않았다. 특히나 남편이 출근을 하고 나서 시어머니와 단 둘이 작은 공간 안에 있어야 했던 그녀는 그 시간들이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지만 남편에 대한 조언들을 구하면서 까칠하기만 했던 고부 사이를 점점 유연하게 만들어 갔노라 고백하고 있다.

 돌아가신 박완서 선생님이 시어머니와 며느리, 두 여자를 같은 부엌에 몰아넣는 것은 문화적 폭력이다.” 라고 썼을 만큼 설거지 하는 방법까지 다른 네 할머니와 다른 집에 살면서 느끼는 갈들은 얼마나 컸겠니. 그래도 일기를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풀려서 마지막 문장에는 그래도 잘해야겠다, 라고 끝맺곤 했지 본문

 시부모를 모시고 산다는 것은 결단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나의 부모님과 사는 동안에도 종종 의견 충돌이 발생하곤 하니 몇 십 년 동안 완전히 다른 생활 방식을 지내왔던 그네들이 함께 산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것에서 별 다른 고민 없이 오케이를 외쳤던 그녀 앞에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수 많은 일들을 감내해야만 했다는 것을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내 스스로 견딜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좋은 게 좋은 거겠지.” 하면서 그 모든 것을 내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것은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해주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남편 혹은 시부모와의 문제였다면, 그리고 지금 나에게 닥친 문제들이라면 아마도 속으로는 울고 있어도 하고 대답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누군가의 아내이자 며느리가 될 자신의 딸에게 못하겠다고 생각되는 것은 못하겠다, 라고 대답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것임을 조언해주고 있었다.

 결혼생활 중 부딪치는 작고 사소한 문제들은 그냥 눈감아주더라도 정말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해. 그래야 처음부터 갈등의 시앗을 키우지 않을 테니까. 내 결혼생활의 처음이자 마지막 까칠함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일 같아. 결혼은 무엇보다도 환상을 깨고 현실을 바로 보는 것이라는 걸 꼭 기억해 본문

 아직 그 길을 가보지 않은 나와 같은 그저 평범한 딸들은 결혼 생활에 대한 달달하고 폭신한 솜사탕과 같은 것으로만 바라보고 있을 테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결혼의 진실을 한번 훑어본 느낌이다. 물론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세상이 그녀의 앞에 펼쳐졌으며 아마 그 중 대부분의 것이 나에게도 도래할 미래일 것일 게다. 현실을 조금이나마 즉시 한 지금 이전과는 다르게 결혼에 대한 환상은 사라졌을지언정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오히려 결혼에 대한 더 많은 갈망을 키워나가게 된 듯 하다. 유리궁전 속에만 살고 있던 나에게 현실을 알려준 엄마의 따스한 이야기들은, 아마도 내가 살아갈 많은 날들 속에서 잔잔한 위로이자 힘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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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였던 그 발랄한 아가씨는 어디 갔을까』 / 류민해저

 

  

 

독서 기간 : 201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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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견디는 기쁨 -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
헤르만 헤세 지음, 유혜자 옮김 / 문예춘추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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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자 대표 작품이라 일컫는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은 이후 한스는 그 소설 속에서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되지만 헤세는 그의 생애 동안 오롯이 그의 삶을 살아왔다는 것에서 나는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곤 했다. 한스를 보노라면 그의 젊은 시절이 또 다른 누군가의 바람이 되는 삶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헤르만 헤세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서 <수레바퀴 아래서> 이후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거쳐 이번 <삶을 견디는 기쁨> 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으니 내 나름대로는 헤르만 헤세를 쫓아 가기 위해서 꽤나 부지런을 떤 셈이다.

 

 삶은 견디다라는 제목을 보면서 무언가 쉽지 않았던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비록 그가 만들어낸 인물로서는 한스가 유일한 존재였지만 무언가 평안하지 못했던 그의 삶이었기에 견디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마주하게 된 사실은 그가 삶을 견디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그가 살아왔던 나날들 속에서 어떠한 자세로 자신의 삶을 보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견딘다는 표현보다는 위안이 되는 이야기들이기에 읽는 동안 나는 헤르만 헤세의 지긋한 목소리의 문체에 점점 빠져들어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읽어내려 간 듯 하다.

 

 힘든 시절 벗에게 보내는 편지, 라는 부제에 걸맞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당신은 스스로가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하지만 그것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 아닌, 그 상황을 그가 어떻게 지내왔는지에 대한 언급들이기에 그의 나지막한 이야기들을 들으면 구태여 다른 것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마음의 평온이 밀려들었다.

 

 혹자는 그럴지 모른다. 대문호 헤르만 헤세가 그의 삶을 지나왔던 방식은 너무도 평범한 것들이기에 오히려 그 점에서 그의 이야기들이 진부하게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도 잠에 취해 비몽사몽으로, 어떠한 사람들을 지나치고 어떠한 길을 걸어 왔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 오는 길 동안의 하늘이 어떤 색이었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그 누구도 쉬이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나 익숙하지만 그 익숙함에 물들어 우리는 그 짧은 순간들은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것 인냥 흘려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지난 했다면 지난했을 오랜 시간을 지나온 그는 나지막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과연 무엇이 자신의 삶을 사는 방식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딱 한 번만이라도 시도해 보라! 한 그루의 나무와 한 뼘의 하늘은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다. 굳이 파란 하늘일 필요도 없다. 햇살은 어느 하늘 아래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침마다 하늘을 쳐다보는 습관을 가지면 어느 날 문득 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공기를 느끼고 잠에서 깨어나 일터로 향하는 도중에도 신선한 아침의 숨결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매일매일이 새롭게 느껴지고 심지어 집집마다 지붕 모양이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눈에 들어올 것이다. -본문

.

 

 하루도 책을 보지 않으면 어느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나로서는 과연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책을 보고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촉박하게 시간에 얽매여 분 단위로 몇 페이지나 읽었나를 확인하며 읽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과연 지금 내가 하는 것이 독서일까, 라는 물음에 스스로의 회한이 들고 있는 나에게 헤세는 타인들의 눈이나 그들이 바라고 있는 나에 대한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 굴레 속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주지시키고 있다. 그 짜증스러운 순간도 한 두 번이면 지나갈 것이기에 철저히 나를 위한 사소한 기쁨을 누리는 시간들을 가져볼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병상에 있는 동안에는 모든 시간의 흐름들을 오롯이 자신에게만 흐르게 할 수 없음을 아쉬워하는 예술가의 고뇌에 대해서도 마주할 수 있는데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만의 세계에 대한 그의 고백들은 생경하기도 하지만 내가 알 수 없는 것들이기에 그의 세상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 빠져 읽은 부분들이었다.

 

 예술가는 고해를 과대평가하고, 그것에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애정을 쏟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고백이 솔직하고 신중하여 또 완벽하고 가차 없는 것일수록 다시 온전한 예술, 온전한 작품, 온전한 자기 목적이 되는 것은 더 어려워진다. 예술가는 자신의 고백에 몰두하고 자신의 과제와 자신이 이룬 성과 전체를 자신의 고해를 옮겨 놓음으로써 늘 자신의 개인적인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주위를 방황하는 경향이 있다. 어차피 예술가는 자신의 인생에서 이룬 성과와 자기변명을 모두 자신의 작품에 옮겨 놓고, 그 때문에 자신의 작품이 지니는 의미를 과장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본문 

 이미 그가 지나왔던 길들에 대한 고뇌이기에 그리하여 이 안에 담겨 있는 그의 이야기들이 깊이 있기는 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삶은 작가로서 평탄한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나 역시도 그의 삶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것들이 없었기에 작가로서의 고뇌만이 이 안에 담겨 있는 것을 아닐까, 했지만 그 나름대로의 삶은 헤르만 헤세라는 명성이전에 그는 한 인간으로서 온 몸으로 삶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었고 그가 전해주는 이 모든 것들은 그럼에도 그가 견디어 왔던 자신의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는 것들이기에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는 그가 전해주는 이 모든 이야기들 앞에서 숙연해지며 초연이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하나는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통에 몸부림치며 너무나 바쁘게 움직이는 꿈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런 고통을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갈망과 성스러운 믿음으로 감싸며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가득 찬 꿈이었다. 길은 내가 생각하느라 피곤헤 지칠 때까지 고통과 자각 사이, 불평과 내면의 노력 사이로 뻗어 나갔다. 머릿속에서 이뤄지는 소망과 상상은 가파른 벽에 부딪히면서 서서히 육체의 감정으로 변신한다. –본문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헤르만 헤세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게 된 듯 하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통해서만 바라보았던 그는 이 책을 통해서 바라본 그는 조금 더 깊이 그러면서도 더 넓게 그가 안고 있던 세상을 마주하게 된 기분이었고 특히나 <싯다르타>를 집필하는데 그가 고심했던 이야기들을 보면서 이 작품 또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옥의 비명으로 신이 나를 부르든, 천국의 태양으로 나를 인도하든 내게 그의 손길이 같은 것이 되었다는 그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삶 속에 녹아있는 고통과 쾌락에 대해서 그가 행했던 자세가 나의 삶에도 녹아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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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Freude am Garten》 / 헤르만 헤세저

 

  

 

독서 기간 : 2014.03.26~03.2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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