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견디는 기쁨 -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
헤르만 헤세 지음, 유혜자 옮김 / 문예춘추사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르's Review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이자 대표 작품이라 일컫는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은 이후 한스는 그 소설 속에서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되지만 헤세는 그의 생애 동안 오롯이 그의 삶을 살아왔다는 것에서 나는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곤 했다. 한스를 보노라면 그의 젊은 시절이 또 다른 누군가의 바람이 되는 삶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헤르만 헤세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서 <수레바퀴 아래서> 이후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거쳐 이번 <삶을 견디는 기쁨> 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으니 내 나름대로는 헤르만 헤세를 쫓아 가기 위해서 꽤나 부지런을 떤 셈이다.

 

 삶은 견디다라는 제목을 보면서 무언가 쉽지 않았던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비록 그가 만들어낸 인물로서는 한스가 유일한 존재였지만 무언가 평안하지 못했던 그의 삶이었기에 견디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마주하게 된 사실은 그가 삶을 견디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그가 살아왔던 나날들 속에서 어떠한 자세로 자신의 삶을 보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견딘다는 표현보다는 위안이 되는 이야기들이기에 읽는 동안 나는 헤르만 헤세의 지긋한 목소리의 문체에 점점 빠져들어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읽어내려 간 듯 하다.

 

 힘든 시절 벗에게 보내는 편지, 라는 부제에 걸맞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당신은 스스로가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하지만 그것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 아닌, 그 상황을 그가 어떻게 지내왔는지에 대한 언급들이기에 그의 나지막한 이야기들을 들으면 구태여 다른 것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마음의 평온이 밀려들었다.

 

 혹자는 그럴지 모른다. 대문호 헤르만 헤세가 그의 삶을 지나왔던 방식은 너무도 평범한 것들이기에 오히려 그 점에서 그의 이야기들이 진부하게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도 잠에 취해 비몽사몽으로, 어떠한 사람들을 지나치고 어떠한 길을 걸어 왔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 오는 길 동안의 하늘이 어떤 색이었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그 누구도 쉬이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나 익숙하지만 그 익숙함에 물들어 우리는 그 짧은 순간들은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것 인냥 흘려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지난 했다면 지난했을 오랜 시간을 지나온 그는 나지막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과연 무엇이 자신의 삶을 사는 방식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딱 한 번만이라도 시도해 보라! 한 그루의 나무와 한 뼘의 하늘은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다. 굳이 파란 하늘일 필요도 없다. 햇살은 어느 하늘 아래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침마다 하늘을 쳐다보는 습관을 가지면 어느 날 문득 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공기를 느끼고 잠에서 깨어나 일터로 향하는 도중에도 신선한 아침의 숨결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매일매일이 새롭게 느껴지고 심지어 집집마다 지붕 모양이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눈에 들어올 것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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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도 책을 보지 않으면 어느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나로서는 과연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책을 보고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촉박하게 시간에 얽매여 분 단위로 몇 페이지나 읽었나를 확인하며 읽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과연 지금 내가 하는 것이 독서일까, 라는 물음에 스스로의 회한이 들고 있는 나에게 헤세는 타인들의 눈이나 그들이 바라고 있는 나에 대한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그 굴레 속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주지시키고 있다. 그 짜증스러운 순간도 한 두 번이면 지나갈 것이기에 철저히 나를 위한 사소한 기쁨을 누리는 시간들을 가져볼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병상에 있는 동안에는 모든 시간의 흐름들을 오롯이 자신에게만 흐르게 할 수 없음을 아쉬워하는 예술가의 고뇌에 대해서도 마주할 수 있는데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만의 세계에 대한 그의 고백들은 생경하기도 하지만 내가 알 수 없는 것들이기에 그의 세상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 빠져 읽은 부분들이었다.

 

 예술가는 고해를 과대평가하고, 그것에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애정을 쏟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고백이 솔직하고 신중하여 또 완벽하고 가차 없는 것일수록 다시 온전한 예술, 온전한 작품, 온전한 자기 목적이 되는 것은 더 어려워진다. 예술가는 자신의 고백에 몰두하고 자신의 과제와 자신이 이룬 성과 전체를 자신의 고해를 옮겨 놓음으로써 늘 자신의 개인적인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주위를 방황하는 경향이 있다. 어차피 예술가는 자신의 인생에서 이룬 성과와 자기변명을 모두 자신의 작품에 옮겨 놓고, 그 때문에 자신의 작품이 지니는 의미를 과장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본문 

 이미 그가 지나왔던 길들에 대한 고뇌이기에 그리하여 이 안에 담겨 있는 그의 이야기들이 깊이 있기는 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삶은 작가로서 평탄한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나 역시도 그의 삶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것들이 없었기에 작가로서의 고뇌만이 이 안에 담겨 있는 것을 아닐까, 했지만 그 나름대로의 삶은 헤르만 헤세라는 명성이전에 그는 한 인간으로서 온 몸으로 삶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었고 그가 전해주는 이 모든 것들은 그럼에도 그가 견디어 왔던 자신의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있는 것들이기에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는 그가 전해주는 이 모든 이야기들 앞에서 숙연해지며 초연이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하나는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통에 몸부림치며 너무나 바쁘게 움직이는 꿈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런 고통을 완벽하게 이해하려는 갈망과 성스러운 믿음으로 감싸며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가득 찬 꿈이었다. 길은 내가 생각하느라 피곤헤 지칠 때까지 고통과 자각 사이, 불평과 내면의 노력 사이로 뻗어 나갔다. 머릿속에서 이뤄지는 소망과 상상은 가파른 벽에 부딪히면서 서서히 육체의 감정으로 변신한다. –본문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헤르만 헤세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게 된 듯 하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통해서만 바라보았던 그는 이 책을 통해서 바라본 그는 조금 더 깊이 그러면서도 더 넓게 그가 안고 있던 세상을 마주하게 된 기분이었고 특히나 <싯다르타>를 집필하는데 그가 고심했던 이야기들을 보면서 이 작품 또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옥의 비명으로 신이 나를 부르든, 천국의 태양으로 나를 인도하든 내게 그의 손길이 같은 것이 되었다는 그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삶 속에 녹아있는 고통과 쾌락에 대해서 그가 행했던 자세가 나의 삶에도 녹아나길 기원해본다.

 

 

아르's 추천목록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Freude am Garten》 / 헤르만 헤세저

 

  

 

독서 기간 : 2014.03.26~03.2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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