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3~4번은 울컥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서 간힘을 쓰다가 다시 책을 잡아 읽어 내려가곤 했다.
라디오 사연들을 모아서 담았다는 이 책의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과연 이런 일들이 실제로 있었던 걸까, 라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도 있었고 그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가슴 아련한 이야기들도 담겨 있기에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 속의 이야기들에 빠져보고 있었다.
몇 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사랑의 이야기도 있었고 이제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 버린 잃어버린 사람을 마주하는 순간들도 있었고, 이미 세상을 떠나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담겨 있다. 바람난 남편을 찾아가는 와중에 마주하게 되는 원치 않는 인연들도 있고. 과연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 함께 일어났던 일이었던가, 라는 질문들도 던져보게 되지만 어찌되었건 그 질문들이 무색하리만큼 어느새 그 이야기들에 푹 빠져서 읽게 되는 듯 하다.
사랑이라는 것이 국어 사전에 나와있는 것처럼 명료하게 정리되면 좋으련만 겪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체득하기까지는 오롯이 그 시간을 통과해봐야만 아는가 보다. 어찌하여 이토록 아프고 아련한 이야기들이 많은 것인지, 우리가 보고 있는 드라마 속의, 그야말로 누군가의 머리 속에서 가상으로 만들어졌을 법한 이야기들이 모두 실제 살아서 내 눈 앞에 비쳐지고 있었고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 없이도 이제 잘 지내고 있겠지? 나는 너 우는 게 제일 싫어. 그 모습 보기 싫어서 널 떠나 보낸 거야. 나 너 많이 사랑했다. 이젠 추억으로 간직하고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아야 해.” –본문
세상을 먼저 등져야만 했던 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할 수 있었던 마지막 선물은 잔인한 이별이었다. 갑작스레 돌아서버린 남자를 보며 여자는 하염없이 돌아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 남자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여자는 그가 했던 이별의 통보가 어떠한 의미였는지를 알게 된다. 드라마 속 한 장면을 보면서 아주 가끔, 이런 상황들이 나에게 들이닥친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한다. 물론 짧은 상념으로 허무하게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눈물을 흘린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가슴을 아련하게만 한다.
사랑의 끝이 달콤한 결혼의 이야기라면 좋을 테지만 나와 함께 있는 이가 나와 동일한 바람인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확언할 수 없다. 서로 좋은 마음을 안고서 현재의 시간을 마주하고 있지만 미래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들이라면, 그것이 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사람들은 상대방의 청혼에 대해 “Thanks you, but no thank you”를 외친다. 그들은 사랑보다 자유를 더 상위 가치로 두는 부류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부디 자유보다 사랑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기를. –본문
몸이 좋지 않으신 부모님의 간병에 모자라 하나 뿐인 오빠네 가족의 불화로 조카까지 떠 맡게 되고, 게다가 조카는 자폐증을 앓고 있다는 한 여자의 사연을 보면서 어쩜 이토록 가혹한 일들이 그녀에게만 한대 모여 있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알코올 중독에 빠져버렸던 오빠마저도 세상을 떠나고 오빠의 부인이었던 언니마저 새로이 가정을 꾸리면서 조카와 그녀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상황 속에서 그녀가 이토록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곁에 있던, 그녀를 바라봐주는 한 남자가 있었기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남아 있던 이 작은 희망과 같던 빛 줄기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으니, 그마저도 세상을 떠나 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사랑하던 여자가 고통스런 현실 속에 남겨진 것을 보면서 그는 떠나기 전까지 매일 아침 그녀에게 들려줄 모닝콜을 위해 1년치의 메시지를 녹음을 해 두었고 그 마지막 날의 메시지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륵 흘러 내렸다.
“이게 마지막 녹음이야. 10년치 녹음을 하려 했는데 1년치만 한다. 왜냐고? 이제 나를 잊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야 해. 365이리면 내 봉사는 끝이다. 나도 이제 하늘에서 널 잊고 새 삶을 살 거야. 그러니 너도 너의 삶을 살아. 너 같이 예쁘고 마음이 따뜻한 애는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해야 해. 근데 한 가지. 네가 좀 무뚝뚝하지. 그것만 좀 고쳐보도록 해. 그러면 남자들이 따른 거야. 나 같이 완벽한 남자는 바라지 말고 좀 모자라도 마음이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잘 살아. 달이를 포용해 줄 좋은 남자 만나기를 기도하면서 나도 떠날게. 주현아, 사랑했어. –본문
한 권의 책이 아닌 수 많은 이들의 인생을 마주했던 시간이라 읽고 나니 무언가 기진맥진해 지는 느낌이었다. 단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그들의 삶을 그려보면서 어느 새 나 역시도 수 십 가지의 인생을 맛본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애잔한 느낌들이 내 스스로를 잠식해 가는 느낌이었는데, 책을 읽고 나서 이 한 가지는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오늘이 아니면 사랑한다는 말을 못할 수도 있다는 것 말이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오늘이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그들의 삶에 이제는 모두 행복의 빛이 전해지길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