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꿈결 클래식 1
헤르만 헤세 지음, 박민수 옮김,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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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데미안>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이 딱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이 책을 10대에 읽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라는 아쉬움이었고 두 번째는 모두가 다 읽었을 이 책을 지금에서야 읽기에, 대부분의 내용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과 이해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밀려들었다.

 첫 번째의 아쉬움이야 어찌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저 아쉬움만 안고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밀려드는 허탈함과 과연 이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일까, 라는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하는 나로서는 책을 붙잡고 씨름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물론 10대에 읽었더라면 지금의 내가 이해한 것보다도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이 정도의 나이가 되어 읽은 이 책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안타까움을 넘어 절망감으로 치닫고 있었으며 내 모습을 본 동생을 책을 읽고서 그렇게 스트레스 받을 거라면 그냥 던져버려.” 라고 까지 이야기를 했으니 <데미안>을 읽는 내내 내 나름대로의 심연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데미안의 주인공이 데미안으로만 알고 있을 정도로 이 책의 내용에 무지했던 나는 싱클레어가 프란츠 크로머에게 사과를 훔쳤다는 거짓말을 한 이후로 그에게 속박되어 있었던 시간들이 지나고 나서 불쑥 등장하는 데미안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책 속 안의 데미안은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조연 배우 같은 느낌으로 싱클레어의 삶에 잠시 등장했다가 다시 사라지고 있었는데 비록 그가 등장하는 장면을 그리 길지는 않지만 그가 프란츠로부터 싱클레어를 구원해준 순간부터, 싱클레어의 마음 속에는 데미안에 깊숙이 뿌리 앉게 된 것으로 보이기에 데미안은 보이지 않지만 그가 데미안을 안 순간부터 계속해서 그와 함께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사실이 그랫다. 나는 갑자기 악마의 그물에서 풀려난 나를 보았고, 다시금 밝고 명량한 모습으로 내 앞에 펼쳐진 세계를 보았으며, 더는 밀려드는 두려움과 죄어오는 심장의 떨림을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속박은 사라졌고, 나는 이제 고통에 괴로워하고 저주에 떠는 자가 아니라 예전처럼 평범한 학생이 되었다. 내 본성은 가능한 한 빨리 균형과 안정을 되찾고자 했으며, 추악하고 위협적인 많은 것들을 밀어내고 망각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 잘못과 두려움의 기나긴 역사가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내 기억에서 지워져 나갔고, 별다른 상처나 인상도 남지 않았다. –본문

그러니까 싱클레어는 자신의 유년기 동안에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생각할 수 밖에 없던 부모님을 틀을 벗어나 새로이 마주한 세상인 프란츠를 통해서 어두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고 그 어둠 속의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이가 데미안이었으니, 싱클레어에게는 데미안은 친구를 넘어 구원자와 같은 느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데미안에게 고맙다는 인사보다는 조용히 다시 부모님의 세계로 편승하게 되며 그 이후 데미안과 멀어진 다음 다시 그는 술과 함께 나락의 생활을 하게 된다.

 모두가 그가 이제는 낭떠러지에 있는 것으로 보며 더 이상의 구원이 불가할 것이라고 생각할 때 조차 알폰스 베크가 들려운 야켈트 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 문구점에 들어서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아직 그의 내면까지 어둠이 가득 차지는 않았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데 우연히 마주한 베아트리제를 보면서 그리기 시작한 초상화가 데미안을 지나 다시 자신의 모습으로 회귀되는 것을 보면서 그가 이전의 방탕했던 삶을 청산하고서 다시 이전의 밝은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그의 삶은 데미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늘 데미안이 함께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할 만큼 위기의 순간에 그를 잡아주는 이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피스토리우스를 통해서 우리가 남들이 가는 뻔한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그렇기에 그는 대학에 들어가서 의미 없이 시간을 지내는 젊은 이들의 모습을 보며 회의를 느끼게 되며 그리하여 그는 어떠한 인생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 조금씩 인식하게 된다.

 그 모든 것은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것에 불과했다. 누구에게든 참된 사명은 오직 하나,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뿐이었다. 인간의 삶이란 시인으로 마감될 수 있는가 하면 미친 사람으로 마감될 수도 있고, 예언자로 끝날 수도 있는가 하면 범죄자로 끝날 수도 있다. 그것은 인간 스스로 정하는 일이 아니었고, 궁극적으로 전혀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인간의 일이란 임의로 정해진 운명이 아닌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 그 안에서 온전하고 의연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불완전한 것이고, 회피의 시도이며, 대중적이상으로의 도피이고, 순응이며, 자기 내면에 대한 두려움 뿐이었다. –본문

 오랜 시간을 지나 데미안과 그녀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을 마주한 싱클레어는 이제서야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듯한 안도를 느끼게 되는데 그의 이 평온한 상태는 전쟁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외부의 요인에 의해서 다시 흔들리게 된다.

 꼬마 싱클레어, 내 말 잘 들어! 나는 떠나야 할 거야. 언젠가 너는 프란츠나 그 밖의 다른 일로 다시금 내가 필요할지도 몰라. 그때 나를 부르면 말이나 기차를 타고서 단번에 달려오진 못할거야. 그러면 너는 네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내가 네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거야. 알겠니?” –본문

 수 많은 사람들 틈에 함께하고 있어도 인간은 외로움을 느낀다. 아무리 나의 모든 것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고 한들 나의 모든 것들을 뼈 속까지 알알이 이해하고 안아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몇 십 년을 같이 산 가족들도 어려운 일일 테니 말이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보면서 어린 싱클레어가 지금의 어엿한 청년이 될 때까지 데미안은 그의 곁에서 그가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어두컴컴한 길 위의 한 줄기 빛을 밝혀주는 조력자와 같은 일은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현재의 싱클레어가 완벽하게 다듬어 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제는 혼자 나아갈 수 있기에 데미안은 그를 홀로 남겨두고 떠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홀로 남은 싱클레어도 자신이 어떠한 길을 가야할지를 알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다사다난했던 유년기의 성장통은 값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책을 덮는 순간에는 막막했고 리뷰를 쓰는 지금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맞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에 조만간 다시 한 번 읽고 나서 리뷰를 다시 올려봐야겠다

 

아르's 추천목록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저


 

 

독서 기간 : 2014.07.08~07.10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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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꿈결 클래식 1
헤르만 헤세 지음, 박민수 옮김,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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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미안>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이 딱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이 책을 10대에 읽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라는 아쉬움이었고 두 번째는 모두가 다 읽었을 이 책을 지금에서야 읽기에, 대부분의 내용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과 이해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이 밀려들었다.

 첫 번째의 아쉬움이야 어찌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저 아쉬움만 안고서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밀려드는 허탈함과 과연 이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일까, 라는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하는 나로서는 책을 붙잡고 씨름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물론 10대에 읽었더라면 지금의 내가 이해한 것보다도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이 정도의 나이가 되어 읽은 이 책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안타까움을 넘어 절망감으로 치닫고 있었으며 내 모습을 본 동생을 책을 읽고서 그렇게 스트레스 받을 거라면 그냥 던져버려.” 라고 까지 이야기를 했으니 <데미안>을 읽는 내내 내 나름대로의 심연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데미안의 주인공이 데미안으로만 알고 있을 정도로 이 책의 내용에 무지했던 나는 싱클레어가 프란츠 크로머에게 사과를 훔쳤다는 거짓말을 한 이후로 그에게 속박되어 있었던 시간들이 지나고 나서 불쑥 등장하는 데미안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책 속 안의 데미안은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조연 배우 같은 느낌으로 싱클레어의 삶에 잠시 등장했다가 다시 사라지고 있었는데 비록 그가 등장하는 장면을 그리 길지는 않지만 그가 프란츠로부터 싱클레어를 구원해준 순간부터, 싱클레어의 마음 속에는 데미안에 깊숙이 뿌리 앉게 된 것으로 보이기에 데미안은 보이지 않지만 그가 데미안을 안 순간부터 계속해서 그와 함께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사실이 그랫다. 나는 갑자기 악마의 그물에서 풀려난 나를 보았고, 다시금 밝고 명량한 모습으로 내 앞에 펼쳐진 세계를 보았으며, 더는 밀려드는 두려움과 죄어오는 심장의 떨림을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속박은 사라졌고, 나는 이제 고통에 괴로워하고 저주에 떠는 자가 아니라 예전처럼 평범한 학생이 되었다. 내 본성은 가능한 한 빨리 균형과 안정을 되찾고자 했으며, 추악하고 위협적인 많은 것들을 밀어내고 망각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내 잘못과 두려움의 기나긴 역사가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내 기억에서 지워져 나갔고, 별다른 상처나 인상도 남지 않았다. –본문

그러니까 싱클레어는 자신의 유년기 동안에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생각할 수 밖에 없던 부모님을 틀을 벗어나 새로이 마주한 세상인 프란츠를 통해서 어두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고 그 어둠 속의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이가 데미안이었으니, 싱클레어에게는 데미안은 친구를 넘어 구원자와 같은 느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데미안에게 고맙다는 인사보다는 조용히 다시 부모님의 세계로 편승하게 되며 그 이후 데미안과 멀어진 다음 다시 그는 술과 함께 나락의 생활을 하게 된다.

 모두가 그가 이제는 낭떠러지에 있는 것으로 보며 더 이상의 구원이 불가할 것이라고 생각할 때 조차 알폰스 베크가 들려운 야켈트 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 문구점에 들어서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아직 그의 내면까지 어둠이 가득 차지는 않았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데 우연히 마주한 베아트리제를 보면서 그리기 시작한 초상화가 데미안을 지나 다시 자신의 모습으로 회귀되는 것을 보면서 그가 이전의 방탕했던 삶을 청산하고서 다시 이전의 밝은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그의 삶은 데미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늘 데미안이 함께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할 만큼 위기의 순간에 그를 잡아주는 이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피스토리우스를 통해서 우리가 남들이 가는 뻔한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그렇기에 그는 대학에 들어가서 의미 없이 시간을 지내는 젊은 이들의 모습을 보며 회의를 느끼게 되며 그리하여 그는 어떠한 인생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 조금씩 인식하게 된다.

 그 모든 것은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것에 불과했다. 누구에게든 참된 사명은 오직 하나,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뿐이었다. 인간의 삶이란 시인으로 마감될 수 있는가 하면 미친 사람으로 마감될 수도 있고, 예언자로 끝날 수도 있는가 하면 범죄자로 끝날 수도 있다. 그것은 인간 스스로 정하는 일이 아니었고, 궁극적으로 전혀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인간의 일이란 임의로 정해진 운명이 아닌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 그 안에서 온전하고 의연하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불완전한 것이고, 회피의 시도이며, 대중적이상으로의 도피이고, 순응이며, 자기 내면에 대한 두려움 뿐이었다. –본문

 오랜 시간을 지나 데미안과 그녀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을 마주한 싱클레어는 이제서야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듯한 안도를 느끼게 되는데 그의 이 평온한 상태는 전쟁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외부의 요인에 의해서 다시 흔들리게 된다.

 꼬마 싱클레어, 내 말 잘 들어! 나는 떠나야 할 거야. 언젠가 너는 프란츠나 그 밖의 다른 일로 다시금 내가 필요할지도 몰라. 그때 나를 부르면 말이나 기차를 타고서 단번에 달려오진 못할거야. 그러면 너는 네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러면 내가 네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거야. 알겠니?” –본문

 수 많은 사람들 틈에 함께하고 있어도 인간은 외로움을 느낀다. 아무리 나의 모든 것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고 한들 나의 모든 것들을 뼈 속까지 알알이 이해하고 안아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몇 십 년을 같이 산 가족들도 어려운 일일 테니 말이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보면서 어린 싱클레어가 지금의 어엿한 청년이 될 때까지 데미안은 그의 곁에서 그가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어두컴컴한 길 위의 한 줄기 빛을 밝혀주는 조력자와 같은 일은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현재의 싱클레어가 완벽하게 다듬어 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제는 혼자 나아갈 수 있기에 데미안은 그를 홀로 남겨두고 떠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홀로 남은 싱클레어도 자신이 어떠한 길을 가야할지를 알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다사다난했던 유년기의 성장통은 값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책을 덮는 순간에는 막막했고 리뷰를 쓰는 지금도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맞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에 조만간 다시 한 번 읽고 나서 리뷰를 다시 올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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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저



 

 

독서 기간 : 2014.07.08~07.10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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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파이트 - 애플과 구글, 전쟁의 내막과 혁명의 청사진
프레드 보겔스타인 지음, 김고명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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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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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기사나 뉴스를 보아도 별 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그 날의 뉴스만큼은 아직도 또렷이 기억을 하고 있다. 애플이 삼성을 상대로 자신들의 기술을 무단으로 도용했다는 명분으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고 이 재판결과 배심원들의 결론은 삼성이 애플에게 10억 달러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평이 나왔다는 것이었는데 10억 달러라는 그 숫자도 숫자였지만 대체 이들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어마어마한 숫자의 소송이 오가는 것일까, 라는 궁금증을 안고서 이런 식이라면 삼성이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입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지나갔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삼성과 애플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핸드폰 기종을 고를 때만 고민을 하고 있던 나에게 이 <도그 파이터>라는 책은 그 제목부터 무언가 강렬하기도 했지만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애플과 삼성의 대결 구도에 대해 다루고 있었고 특히나 책의 부제로 각인되어 있는 애플은 구글을 견제하기 위해 삼성과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라는 것에서 그 동안 표면적으로 비춰졌던 양 사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고 그리하여 이 안에 담겨 있는 치열을 넘은 비열해 보이는 각축전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저 애플과 삼성이라는 양 사간의 싸움으로 볼 수 있지만 이 혈투에는 그 외에 관계 없어 보이는 수 많은 업체들의 이목이 이곳으로 주목되고 있다. 그러한 이유에 대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무리 강력한 기업이라고 한들 스마트폰과 태블릿으로 뉴스를 보고 오락 상품을 소비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날로 늘어나는 무수한 시청자에게 다가가려면 여전히 애플과 구글이라는 두 회사를 거쳐야만 한다. , 애플과 구글의 싸움에 오직 실리콘밸리의 미래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뉴욕 및 할리우드의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의 미래도 달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추천억 달러의 수익이 걸려 있다. 그래서 앞으로 최소 2, 아마 5년 동안 이들 기업과 그 협력업체들, 또 거기에 기생하는 업체들은 죽기 살기로 싸움을 벌일 것이다. –본문

 그저 그들만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렇게 들여다보고 나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보면서 생각보다 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잠들기까지 스마트 폰이 없으면 생활할 수 없게 된 우리에게 삼성 VS 애플은 그저 핸드폰을 고르는데 있어서의 차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들의 숙적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혁신적인 아이폰이 탄생하기까지, 그 전에만 해도 애플과 구글은 파트너로서 함께 하고 있었다. 새로운 체제를 가지고서 고객들의 니즈에 맞춘 아이폰이 탄생하는 순간, 구글은 그와 동시에 내부적으로 개발하고 있던 안드로이드 시스템을 선보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애플과 구글이 서로를 향한 칼날을 겨누게 되는 사건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2011년 중반이 되자 아이패드가 아이팟은 물론이고 아이폰보다는 혁명적인 상품으로 밝혔다는 사실이다. 아이팟과 아이튠스는 사람들이 음악을 구입하는 듣는 방법을 바꿨다. 아이폰은 사람들이 휴대폰에 기대하는 것을 바꿨다. 하지만 아이패드는 다섯 개 산업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고 있었다. –본문

 너무도 낙후되어 있던 휴대폰 소프트웨어 산업에 동시에 있던 그들이 구글의 안드로이드 시스템은 삼성이 차용하게 되면서 이제는 애플과 삼성의 대결이 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저자인 프레드 보겔스타인이 말하는 것은 실제 싸움을 그 이면에 있는 내부를 보아야 한다고 전해주고 있으며 그 내부를 마주하면 할수록 그 동안 보아왔던 기사가 전부가 아니었음을 마주하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생활 속에서 없어서는 안될 스마트폰에 담겨 있는 뜨거운 감자의 이야기는 물론 우리의 손안에 담긴 이 작은 제품이 탄생하여 우리의 삶에 스며 들 때까지의 일련의 모든 과정들은 물론이거니와 이후의 전망들에 대해서도 한 번에 마주할 수 있기에 이 책의 읽기 전과 후에 내 손안에 쥐고 있는 핸드폰이 다르게만 느껴진다.

 

 

독서 기간 : 2014.07.01~07.03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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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리어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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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르's Review

 

 

 

일본 문학계의 거장이라는 저자의 이름을 이 책을 통해서야 처음 마주했다. <청춘의 문>이란 작품으로 초판만 100부 이상을 판매했다는 그를 향한 수식어보다도 일제 식민지 시대에 그가 우리나라에 거주했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청춘들에게 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는 것에서 과연 그가 우리나라에 있는 동안 본 것은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에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나의 이야기이기에 어떠한 형태로 한다 한들 무관하겠지만 그가 들려주는 방식은 마치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듯 한 느낌이다. 그것도 타인의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자신의 것인냥 이야기하는 타입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너무도 덤덤하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려주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을 피아노 연주로 한다면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이 아닌 하나의 단조로만 이뤄진 그야말로 변주 없이 연주되는 이야기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몇 십 년 후의 나는 그와 같이 모든 것을 덤덤하게 보는 사람으로 변모하게 될까? 지금의 나를 요리조리 둘러볼 때면 나는 그와 같은 사람과는 원래부터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나에게는 그 사람들이 왠지 멀고 먼 이국의 인간처럼 보였다. 아마 그때 나는 10년 전 그 시대의 공기 속으로 조금이나마 되돌아갔던 게 아닐까 싶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감각이 내 안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분주한 로비에서, 우리가 매양장부를 팔아 어묵집을 시작하기 위해 상담하는, 갈피를 못 잡는 두 명의 학생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순간, 결국 멀리까지 왔다는 감개가 일순간 되살아났다. –본문

 그의 기억 속에 묶여 있던 기억의 조각들이 이 안에 하나의 이야기들로 되살아 나고 있다. 바람이 빠져버린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으며 부끄러워하던 여인의 이야기에서부터 러시아어를 전공으로 한 당시 친구들과 함께 어묵집이나 하자던 일들을 회자한다거나 바닷가를 택시를 타고 질주하지만 결국 25미터를 몇 시간을 걸려 넘었다는 이야기, 가난했던 당시의 그가 스쿨버스를 타고 눈을 마주친 선생님에게 드는 죄송함 등, 어찌 보면 당시에는 상당히 뜨거웠던 일상들이었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가 들려주는 그 날의 일들은 참으로 잔잔한 하루로 전해지고 있다.

 남성주간지의 젊은 독자들이 야구기사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한 시대가 끝난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야구가 끝났다는 게 아니다. 당시 우리 소년들을 사로잡았던 시대 그 자체가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스포츠를 통해 정치와 사회의 그림자를 보는 건 도리에 어긋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과 동떨어진 스포츠나 예술이 있다는 생각 또한 착각이다. 지금의 소년들은 과연 시대의 스포츠로 무엇을 고를까. –본문

 특히나 야구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요즘 시대의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왠지 모를 애잔함을 느끼고 있다. 이전처럼 캐치볼을 하는 이들도 없고 그저 야구를 눈으로만 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이 야구를 몸소 즐기고 관람했던 때와는 다르다는 것에서 스포츠란 것에서도 느껴지는 격세지감과 같은 시간을 회상하고 있는데 그가 야구와 함께 유년기를 보냈던 당시와는 너무도 다르게 바쁜 일상을 보내는 그들에게 그는 젊은 이들이 말하는 스포츠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순간 나 역시도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나에게 스포츠는 무엇일까. 학창 시절 체육시간이 아니고서야 누군가와 함께 운동을 해본 적도 없는 듯 한데 그렇게 누군가와 함께 무엇을 하지 않아도 지금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지금이 과연 괜찮은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이 조센진 놈들!”
 
만약 내가 이런 모욕적인 야단을 맞는다면 어떻게 했을가. 그때가 되어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예상 밖의 사태가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때 A씨는 침묵했다. 그런 사람이다. A와 동행한 청년이 한순간 멈칫하더니, 불쑥 말을 던졌다.

 아저씨……….”
 
그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여유로웠다.
 
당신, 우리가 조선인이 아닌 걸 다행으로 생각해.” –본문

 이 책을 읽으며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 그는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 때문에 이 책을 보게 되었기에 나는 장면들을 읽으며 왠지 마음이 아련해졌다. 일제 시대에 우리나라에 살고 있던 일본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떠했을지, 에 대한 물음은 조센진 놈들이라는 단어를 듣고 그가 느낀 모욕적인 야단이라는 대답에서 확고히 알 수 있었기에 울컥한 마음마저 들었다.

 아직 그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는 이러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인종 차별에 대한 이야기나 편견을 끄집어 내려는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다른 인간에 대한 분노 혹은 질투 등을 느끼는 것은 같은 인간이기에 느끼는 것이기에 구분이 아닌 동종의 인간에게 느끼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 중반에 담겨 있는 이 이야기가 목울대를 누르는 기분이라 그 이후의 이야기들은 처연하게 그저 페이지만 넘겼는지 모르겠다.

 한창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어봐야 그의 진가를 알 수 있을 듯 한대 과연 다시 펼쳐 읽어볼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자신이 없다.

 

아르's 추천목록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 / 후지와라 신야저


 

 

독서 기간 : 2014.07.06~07.0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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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도사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 2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아르's Review

 

 

 

연작으로 나오는 시리즈를 기다리는 게 싫어서 드라마도 꾹 참고 한 번에 몰아서 보고, 만화책도 완결이 나오지 않는 한 시작도 않는 나에게 <검은 수도사>  1편인 <사형 집행인의 딸>은 시리즈로 연결될 것을 모르고서 읽기 시작했던 것으로 1편을 다 읽고 나서 이걸 어떻게 기다리지, 하는 마음으로 허탈해 하고 있었는데 그 허탈함을 다 잊어버리고 다른 책에 몰두하고 있을 즈음 2편인 <검은 수도사>가 이렇게 전해졌다.

 1편이 마녀 사냥을 하던 그 때의 모습들을 초점을 맞춰 그린 이야기라면 2편으 <검은 수도사>는 판타지 모험 소설 같은 느낌으로, 소설로 치자면 댄 브라운과 같은 느낌이고 영화로 본다면 인디아나 존스 혹은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내셔널 트레져 와 비슷하다. 그러니까 1편과는 또 다른 느낌의 이야기임은 물론 이전에는 주인공임에도 비중이 낮았던 야콥 퀴슬의 딸인 막달레나의 역할이 배가되면서 이야기에 금새 몰입하게 된다.

 수탁이 울기 직전에 가벼운 욕지기와 함께 통증이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코프마이어는 자신의 식탐을 소리 없이 저주하며 하늘을 향해 짤막한 기도를 드렸다. 식탐이 일곱 가지 죄악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십중팔구 마그다는 그 정도 양이며 며칠 동안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도넛이 너무 맛있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욕지기와 통증으로 그에게 즉각적인 벌을 내리고 있었다. –본문

사건은 바로 이 도넛을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저 하나의 도넛을 먹었을 뿐인데 신부는 세상을 떠나게 되고 죽음이 드리운 그 순간, 그는 온힘을 다해 석관 앞의 무언가를 가르키게 된다. 신부가 그러한 상황에 빠져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던 지몬 프론비저는 그의 죽음을 앞에 두고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되면서 사형집행인인 야콥 퀴슬을 호출하게 된다.

의사라는 직위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형집행인을 부른 이유는 1권에서 알 수 있듯 당시의 사형집행인들에게는 의사보다도 뛰어난 의술 행위에 약초 등에 대한 박식한 지식이 있기에 지몬 프론비저는 야콥 퀴슬에게서 의술에 대한 지식들을 배우고 의지하게 되며 그렇기에 신부의 죽음 앞에서 그들은 함께 고민하게 되는데 하나 둘씩 드러나는 진실 속에서 이 사건이 단순 사망이 아닌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살인이라는 것을 밝혀내게 된다.

 신부가 사망하기 직전 자신의 동생인 베네딕트 코프마이어에게 쓴 편지를 받고서 그녀는 이 마을에 당도하게 되고 그렇게 지몬 프로비저와 그녀는 신부의 죽음 뒤에 숨겨져 있는 내용들을 하나 둘 파헤치게 되는데 이른바 템플기사단의 보물에 한 단계씩 다가가면 갈수록 그 안에 쳐있는 거대한 장막은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계속해서 다음 퀘스트를 전해주고 있다.

그녀의 눈에 비친 광경은 무시무시했다. 높고 둥근 천장이 있는 방은 어지간한 성당만 한 크기였으며, 사방의 벽을 거칠게 깎아서 천장까지 만들어놓은 벽감들 속에는 뼈가 가득 쌓여 있었다. 그리고 앞쪽에 있는 돌 제단 뒤편 벽에는 낡은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적어도 스무 명은 넘는 남자들이 수도복에 망토를 걸치고 십자가 주위에 모여 있는 광경이 횃불 빛에 드러났다. 그들은 무릎을 꿇거나 선 자세로 성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이 하나같이 검은 수도복 위에 걸친 하얀 망토에는 제단 뒤에 걸린 것과 모양과 색깔이 똑같은 십자가가 장식되어 있었다. –본문

 그렇게 지몬 프로비저와 베네딕트 코프마이어가 신부의 죽음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그들이 가까워질까 내심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지몬의 연인인 막달레나는 그와의 말다툼이 있던 날 산파를 대신해서 돕는다는 핑계로 마을을 떠나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녀 역시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이들을 조여오는 검은 그림자는 야콥은 물론 지몬과 베네딕트 코프마이어, 막달레나까지 각기 다른 방향에서 그들을 추격하고 있는데 이 암흑의 사도들은 그들이 원하는 템플 기사단의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살인도 주저하지 않을 만큼 극악무도하다. 뿐만 아니라 어찌된 일인지 이들이 이 사건을 더 이상 파헤치지 못하도록 시의원은 야콥에게 강도 소탕 임무를 맡기는 등 그들의 눈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려 노력하고 있는데 대체 어디서부터 이 욕망의 그림자는 드리워져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며 그 궁금증을 향해 이들은 계속해서 문제의 핵심인 템플 기사단의 비밀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미 역사 속에서나 마주할 수 있는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는 실존 인물들을 기반으로 하여 그렸다는 것에서 더욱 설레는 마음을 안고서 책을 읽게 된다. 판타지와 같은 모험은 물론 이거니와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두뇌 싸움과 이 안에서 양념처럼 묻어나는 로맨스를 느낄 수 있었던 이 소설을 마지막을 덮으며 또 다시 3권을 기다려 보는 바이다 

 

아르's 추천목록

 

사형집행인의 딸 / 올리퍼 푀치저


 

 

독서 기간 : 2014.07.06~07.0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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