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날리어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아르's Review

 

 

 

일본 문학계의 거장이라는 저자의 이름을 이 책을 통해서야 처음 마주했다. <청춘의 문>이란 작품으로 초판만 100부 이상을 판매했다는 그를 향한 수식어보다도 일제 식민지 시대에 그가 우리나라에 거주했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청춘들에게 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는 것에서 과연 그가 우리나라에 있는 동안 본 것은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에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나의 이야기이기에 어떠한 형태로 한다 한들 무관하겠지만 그가 들려주는 방식은 마치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 듯 한 느낌이다. 그것도 타인의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자신의 것인냥 이야기하는 타입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너무도 덤덤하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려주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을 피아노 연주로 한다면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이 아닌 하나의 단조로만 이뤄진 그야말로 변주 없이 연주되는 이야기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몇 십 년 후의 나는 그와 같이 모든 것을 덤덤하게 보는 사람으로 변모하게 될까? 지금의 나를 요리조리 둘러볼 때면 나는 그와 같은 사람과는 원래부터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나에게는 그 사람들이 왠지 멀고 먼 이국의 인간처럼 보였다. 아마 그때 나는 10년 전 그 시대의 공기 속으로 조금이나마 되돌아갔던 게 아닐까 싶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듯한 감각이 내 안에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분주한 로비에서, 우리가 매양장부를 팔아 어묵집을 시작하기 위해 상담하는, 갈피를 못 잡는 두 명의 학생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순간, 결국 멀리까지 왔다는 감개가 일순간 되살아났다. –본문

 그의 기억 속에 묶여 있던 기억의 조각들이 이 안에 하나의 이야기들로 되살아 나고 있다. 바람이 빠져버린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으며 부끄러워하던 여인의 이야기에서부터 러시아어를 전공으로 한 당시 친구들과 함께 어묵집이나 하자던 일들을 회자한다거나 바닷가를 택시를 타고 질주하지만 결국 25미터를 몇 시간을 걸려 넘었다는 이야기, 가난했던 당시의 그가 스쿨버스를 타고 눈을 마주친 선생님에게 드는 죄송함 등, 어찌 보면 당시에는 상당히 뜨거웠던 일상들이었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가 들려주는 그 날의 일들은 참으로 잔잔한 하루로 전해지고 있다.

 남성주간지의 젊은 독자들이 야구기사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한 시대가 끝난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야구가 끝났다는 게 아니다. 당시 우리 소년들을 사로잡았던 시대 그 자체가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스포츠를 통해 정치와 사회의 그림자를 보는 건 도리에 어긋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과 동떨어진 스포츠나 예술이 있다는 생각 또한 착각이다. 지금의 소년들은 과연 시대의 스포츠로 무엇을 고를까. –본문

 특히나 야구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요즘 시대의 사람들을 보면서 그는 왠지 모를 애잔함을 느끼고 있다. 이전처럼 캐치볼을 하는 이들도 없고 그저 야구를 눈으로만 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이 야구를 몸소 즐기고 관람했던 때와는 다르다는 것에서 스포츠란 것에서도 느껴지는 격세지감과 같은 시간을 회상하고 있는데 그가 야구와 함께 유년기를 보냈던 당시와는 너무도 다르게 바쁜 일상을 보내는 그들에게 그는 젊은 이들이 말하는 스포츠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순간 나 역시도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나에게 스포츠는 무엇일까. 학창 시절 체육시간이 아니고서야 누군가와 함께 운동을 해본 적도 없는 듯 한데 그렇게 누군가와 함께 무엇을 하지 않아도 지금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지금이 과연 괜찮은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이 조센진 놈들!”
 
만약 내가 이런 모욕적인 야단을 맞는다면 어떻게 했을가. 그때가 되어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예상 밖의 사태가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때 A씨는 침묵했다. 그런 사람이다. A와 동행한 청년이 한순간 멈칫하더니, 불쑥 말을 던졌다.

 아저씨……….”
 
그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여유로웠다.
 
당신, 우리가 조선인이 아닌 걸 다행으로 생각해.” –본문

 이 책을 읽으며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 그는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 때문에 이 책을 보게 되었기에 나는 장면들을 읽으며 왠지 마음이 아련해졌다. 일제 시대에 우리나라에 살고 있던 일본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의 모습은 어떠했을지, 에 대한 물음은 조센진 놈들이라는 단어를 듣고 그가 느낀 모욕적인 야단이라는 대답에서 확고히 알 수 있었기에 울컥한 마음마저 들었다.

 아직 그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는 이러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인종 차별에 대한 이야기나 편견을 끄집어 내려는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다른 인간에 대한 분노 혹은 질투 등을 느끼는 것은 같은 인간이기에 느끼는 것이기에 구분이 아닌 동종의 인간에게 느끼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 중반에 담겨 있는 이 이야기가 목울대를 누르는 기분이라 그 이후의 이야기들은 처연하게 그저 페이지만 넘겼는지 모르겠다.

 한창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어봐야 그의 진가를 알 수 있을 듯 한대 과연 다시 펼쳐 읽어볼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자신이 없다.

 

아르's 추천목록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 / 후지와라 신야저


 

 

독서 기간 : 2014.07.06~07.0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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