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르's Review

 

 

처음 이 책을 몇 장 읽어내려가면서 무언가 SF 장르인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을 소개하는 이가 바로 투명인간이 이였으며 그 투명인간은 또 다른 투명인간인 김만수를 마주하게 되면서 시작되기에, '투명인간' 이라는 단어를 마주하면서 잠시 멍하니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언젠가 투명인간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이유에 대해서 망막에 상이 맺히기 위해서는 수정체가 필요하며 그 수정체에 맺히는 것을 통해 앞을 볼 수 있기에 이 부분마저 투명할 수 없기에 모든 것이 투명하게 된다고 해도 눈만은 투명하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르며, 소설을 읽으면서도 조합한 과학 지식을 들이대며 과연 이 장르는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비슷한 이가 있다면, 이 책은 제목처럼 SF 공상 과학 소설 장르가 아닌 우리의 아스라한 시대를 오롯이 담은 이야기라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까 20~30대의 이들이 그저 어르신들의 이야기나 영화 혹은 오래된 시대극 속에서나 마주했던 이야기들이 3대의 이야기를 거쳐 이 안에서 되살아 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미약한 인간이었던 '김만수'를 통해 보여지는 이 이야기는 살아나아야만 했던 당시의 긴박하고도 촉박했던, 빠른 경제 성장과 동력을 안고 아시아에서도 유래 없이 성장한 우리나라의 외형이 아닌 그 내면에 담고 있던 성장통에 대해 담고 있었으며 그 진실을 목도하게 되면서 가슴이 아려와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만수는 남보다 머리가 커서 뇌세포도 남보다 많은 줄 알았더니 공부는 잘 못했다. 하지만 백지처럼 순수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을 잘 들었다. 내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려 애썼다. 나는 만수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ㅡ만수야, 너는 아직 재주가 다 드러나지 않은 망아지, 덜 버려진 칼과 같구나.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가지만 돈 끼호테의 로시난떼처럼 비루먹고 약한 말도 열흘을 부지런히 가면 철리는 간다고 했다. 또 천리마의 꼬랑지에 붙어 있는 쇠파리 또한 천리를 간단다. 네가 하루 천리를 가는 명마가 아니라고 실망하지 마라. -본문

부모님의 시대 이전부터 그러했듯 지금과는 다르게 형제자매들이 어쩜 그렇게 많았는지들 모르겠다. 이 책의 주인공인 김만수 역시도 형과 동생은 물론, 큰누나, 작은누나와 막내까지 있는 여섯 형제가 함께 지내고 있는데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개운리에서 지내고 있는 그들은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그저 지루한 듯 하지만 그 나름의 행복을 안고서 살 것만 같았으니 이 작은 시골마을에 드리우는 어둠의 그림자는 그들 가족 모두를 덮치려 하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비디오를 틀면 옛날 어린이들에게는 호환, 마마, 전쟁등이 가장 무서운 것들이었다면 현대 어린이들은 불법, 불량 비디오를 시청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광고를 하곤 했었는데, 내가 이 불법, 불량 비디오를 보는 것을 주의 받던 세대였다면 이 이야기는 호환, 마마, 전쟁을 담고 있는 훨씬 이전의 세대였기에 비리비리하니 그다지 오래 살지 못할 것만 같던 김만수는 아들로 태어났음에도 늘 불안한 아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제법 머리가 큰 이후에도 그의 지능은 여전히 어린 아이와 같은 상태였으며 그렇기에 그는 집안의 장남이자 기대주였던 백수의 그늘아래 있었으며 뒤의 동생인 석수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는 형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아버지와 나의 공통점은 있었다. 우리는 모두 맏이였다. 그리고 맏이를 잃었다. 아버지와 나는 같았다. 황소울음 같은 소리가 내 목을 타고 올라왔다. 나는 무릎을 꿇고 엉엉 울었다. 죽은 아들이 내 몸속에서 같이 우는 것 같았다. 옆에서 엎드리고 있던 만수가 따라 울기 시작했다. 만수의 울음은 온식구가 소리 높여 울게 하는 신호가 되었다. 울음과 눈물로 집이 떠나갈 듯 했다. -본문

그런 그가 공업전문학교에 나가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고 사회 안에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람구실을 하면서 살아가게 된 것은 큰 누나인 금희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저 농사나 지으며 살아가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고집을 완강히 꺾고 만수에게 모든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녀는 친구의 바람을 미화 시킨 편지로 인해 구로공단에서 마주한 현실을 보았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이 집안의 기대주였던 첫째 백수가 생각지도 못했던 길로 빠져들게 되면서 그는 베트남 전쟁에까지 참전하게 되고 그곳에서 주검으로 돌아와야만 했던 순간, 개운리에서의 이야기는 서울로 이전을 하게 된다.

첫째였던 백수에 대한 기대도 기대지만 그 아들이 증발해버렸다는 것에서 그들의 아버지인 충현은 매일을 술과 함께 지내고 있으며 아이들만이 어떻게든 살아야 했던 이 다섯 형재자매들은 초반에는 그래도 괜찮은 삶을 지내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연탄가스라는 화마는 명희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로 전락 시켜 버리고 사라져버린 석수가 남기고간 태석까지. 그들의 앞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돛단배 같았으며 그 돛단배는 기사 식당을 차리게 되면서 나아지는 것 처럼 보였다. 만수도 다니고 있던 직장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그들의 인생이 사그러드는 것은 또 풍파 한번이면 족하였다. 벌집과 같은 방에 살고 있던 진주는 투석을 받아야 할 정도로 몸은 망가졌고 태석은 점점 엇나가고 있다. 그 옆의 명희는 세상과는 동떨어진 듯 삶을 살고 있었고 어디서도 빛날 수 없는 그들의 삶은 세상의 풍파를 받아들이다 못해 투영하게 변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얼마 지나기 않아서 꿈처럼 깨버렸다. 그게 그 느낌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다시 무섭고 추악한 껍데기 속에 들어왔다. 투명한 얼음이 녹아버린 것처럼 좋았던 나는 사라졌다. 나는 똥싸는 더러운 주머니였다. 역시 기적은 없는거야. 꿈이었다. 나는 울었다. -본문

이 이야기를 어떻게 다 담아 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아, 이런 것들이었구나, 하면서 계속된 탄식을 자아내며 읽어내려갔다. 파란했던 과거를 넘어 유례 없는 성장의 가속을 달려온 우리나라의 현재 역시도 수 많은 투명인간들을 만들어 내는 환경이 아닐까, 라는 것을 되돌아 보면서 그저 한 편의 소설로만 받아들 일 수가 없다. 씁쓸하면서도 또 그 안의 이야기들에 푹 빠져 읽어내려갈 수 없었던 지난 우리의 이야기들을 많은 이들이 마주해보길 바란다.

아르's 추천목록

파시 / 박경리저

독서 기간 : 2014.07.18~07.19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 최악의 의사결정을 반복하는 한국의 관료들
최동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르's Review

 

2014 4 16, 우리나라를 넘어 전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던 사고가 진도의 해상 위에서 발생하게 된다. 사건이 발생한 오전만 하더라도 탑승하고 있던 학생들 전원 구조라는 뉴스에 별 다른 생각 없이 일을 하고 퇴근을 하며 켠 뉴스에서 구조되었다는 이들의 숫자가 모두 실종자로 전환되어 있었고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찾아보던 기사에는 점점 얼굴을 굳게 만드는 것들 것 올라오고 있었다.

여전히 실종자 수색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들만 해도 우리가 얼마나 무방비 상태로 이 사고를 처리했으며 이른바 골든 타임이라 할 수 있는 그 시간들을 속수무책의 자세로 있었기에 구해낼 수 있는 안타까운 생명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아스라히 사라졌다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대체 이 나라는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분노만 쌓이게 된다.

탑승자 승객 수를 확인하는 대에도 여러 번이 소요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20여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 안일한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회한이 들게 된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행태를 보고 배웁니다. 그래서 나라꼴이 점차 이렇게 엉망으로 변해 가는 겁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교묘하게 남을 등쳐먹습니다. 기업가들은 권력을 가진 자에게 알아서 바치는데 그것은 소위 스폰서어장관리로 부정부패의 뿌리입니다.
그러니 건물은 무너지고, 배는 가라앉고, 가스관이 터지고, 비가 오면 강물은 폐수로 변해 버리고,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부은 4대강 사업은 오히려 환경오염을 불러일으키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원전부품의 품질보증서는 조작되고, 국가정보원은 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하더니 간첩까지 조작해 내고, 검찰은 이것을 제대로 수사하지도 못하고 (중략) –본문

이제 남아있는 어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 말도 안 되는 비합리적인 시스템을 뜯어 고치는 것으로 안일한 사회 속에 함께 있던 나는 그 책임을 통감하며 이 책을 잡고 있다.

저자는 이 모든 것들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품의제도에 문제가 있음을 전하고 있는데 가장 말단 직원이 최종 결정자에게 올릴 품의서를 만들어 결재를 받는 제도를 이야기하고 있다. 회사에 있다 보면 결재를 받아야만 처리할 수 있는 일들이 대부분이기에 시간 내에 처리해야 하는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최종 결재라인의 부재로 인해 업무가 중단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에 이러한 일들이 쉬이 공감되기도 한다.

실제 업무를 담당하는 책임자가 아닌, 그저 지시가 내려 오는 대로 업무를 수행하고 때론 말단 직원이 중요 업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위의 선임에게 전달하면 그 선임은 최종 결재 라인에 올리기만 하게 된다. 그러니까 일종의 앵무새가 되어 실질적인 내용은 제대로 파악되지 않으면서 일이 진행되는 것인데, 별 다른 문제 없이 진행될 때에는 이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고 태평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 경우, 그 누가 책임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도 문제이지만 실제 발생된 사건을 수습하는데 있어서 또 다시 수박 겉핥기 식의 방식만 계속되고 있기에 그 안에 묶여 있는 이들만 발을 종종 거리고 있다. 겉에서 바라볼 때면 답답하기 그지 없는 이 모든 방식들이 그들 나름대로는 철칙이고 원칙이 있다는 것에 입각하여 또 다시 느리고 진부한 형태로 굴러가는 것이다.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영어에는 결재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결재를 받기 위해서 보고서나 지출 결의서를 가지고서 다시 보고 또 보고 해야만 하는데 이 단어 자체가 없다니. 그들은 단위업부담당제라는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각 직책을 맡은 사람들은 자신의 고유업무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진다. 직무수행 결과에 대한 평가를 받기 때문에 규제를 위한 규제도 있을 수 없다. 한마디로 각자 자기 일을 자기가 알아서 하는 시스템인 것이다. 국가적인 위기를 경험할 때마다 개인의 의식을 바꾸고, 조직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의식개혁을 위한 각종 교육과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행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방법이다. –본문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는 일들을 보노라면 국민들을 대신하여 앞에서 일을 하고 있는 그들은 왜 그토록 모든 국민들이 염원하는 대로 대신해줄 수 없는지, 개개인으로 보았을 때 스펙이 완벽한 그들일지 몰라도 그 조직들은 굼벵이처럼 움직이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마주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그들의 문제만을 꼬집어 이야기하는 것으로, 그저 안타까워하며 그들만을 원망하는 것으로 멈춰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그저 시스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달려 있는 생명선과 같은 것임을 명심하여 10여년 전 저자가 이미 그려놓았던 이 이야기가 추후 10년에도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그야말로 합리적인 시스템과 조직으로 탈바꿈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아르's 추천목록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회사, 멍청한 사람들의 똑똑한 회사 / 칼 알브레히트저

독서 기간 : 2014.07.13~07.15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인의 사물들 - 시인의 마음에 비친 내밀한 이야기들
강정 외 지음, 허정 사진 / 한겨레출판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아르's Review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추억이나 이야기거리를 대변하는 물건이나 장소, 향기나 이미지들이 있을 것이다. 내게는 바로 '식빵'이 그런 존재인데 남들이 들으면 의아해 할 제과점의 가장 기본적인 제빵 중 하나인 식빵이 무엇이 그리 좋고 기억에 남을 것이냐 웃어 넘길지는 몰라도 지금도 나는 '아빠가 만들어 내던 그 따끈한 식빵'이 여전히 그립기만 하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제과점을 운영하셨다는 부모님 덕분에 나는 유치원에서나 학교에서나 '빵집 딸래미'로 친구들 사이에서 불리곤 했다. 당시 슈퍼마켓이나 중국집처럼 빵집 역시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매번 보다 못해 질려버린 나로서는 그들이 부러워하는 빵이 매일 포장해서 진열해야 하는 하나의 상품으로만 보였을 뿐이었고 심지어 아침에 밥을 대신 빵을 먹는 다는 이들이 측은하게까지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빵은 나에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나의 곁에 있는 것이었으나 벗어던지고 싶은 것이기도 했는데 그러한 빵집 딸래미의 수식어는 25년 만에 떨어져 나갔고 이제는 그냥 내 이름을 가지고 사회에서 지내고 있다.

사람이란 것이 희한하게도 그렇게 즐비할 때는 몰랐던 것들이 사라지고 나니 문득 그리워지고 먼저 찾게 된다는 것이다. 언젠가 처음으로 제과점에 식빵을 사러 들어선 순간, 25년 동안 한 번도 해본적 없는 '빵을 산다'라는 행위는 생경하다 못해 무언가 죄를 짓는 듯한 느낌마저 들어 가슴이 두근두근했는데 그렇게 사온 식빵을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아빠가 만들어 주셨던 그 식빵과는 다른 무언가 까끌한 느낌에 되려 입맛만 버리고 며칠 동안 식탁위에 두다 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종종 제과점에 들러 식빵을 하나씩 사오는 날이 있기는 하나 20여년 동안에 각인된 입맛은 변함없이 아빠가 만들어주신 식빵만을 기억하고 있기에 그 어느 식빵도 아직 내 입맛에 맛는 것을 찾은 적이 없어 식빵을 볼때면 예전의 맛이 그립기도 하고 이전의 모습들을 왜 그토록 싫어했을까, 하는 회한도 밀려들게 된다.

오랜만의 추억에 대한 설을 푸느라 서문이 길어졌지만 이 책 역시 그들의 눈에 비친 사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이라는 지칭이 바로 '시인들'이라는 것과 그리하여 그들의 들려주는 추억은 더 애잔하며 마음 속에 와 닿는 것이 있지만 어찌되었건 그들도 우리와 같은 추억의 조각 하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기억 속에 주인공이 된 냥 자유롭게 유영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내 어릴 적 별명은 국숫집 막내아들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누구나 나를 그렇게 불렀다. 내 몸도 국수처럼 가늘고 길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도 별명도 국수였다. 난 그렇게 불리는 게 싫었다. 그러나 나는 국수를 사랑했다. 형들은 국수를 가난의 상징처럼 여겼지만 나는 국수가 말라가는 마당에서 보는 파란 하늘을 미친 듯이 좋아했다. 그래서 절대로 국수를 싫어할 수 없었다. 당에서 국수가 흔들리며 마르는 동안 나 그 밑에서 졸았고 그 밑에서 키가 컸다. 어쩌면 생각도 키만큼 자라지 않았을까 싶다. –본문

국수가락에 대한 그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나는 자연스레 식빵에 대한 기억들을 추억을 떠올리며 이전의 내 모습들도 하나둘 씩 떠오르게 된다. 잊고 있었다거나 생각조차 못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푹 빠지게 된다.

시간이 흘러 전동 타자기는 워드프로세서라는 물건에게 자리를 내 주었고, 곧이어 컴퓨터 시대가 도래했다. 타자기의 시대가 종말을 고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나의 타자기 시대'는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타자기가 내게 남겨준 추억은 아주 강렬했다. 난 지금도 타자기를 버리지 못한 채 이사할 때 마다 끌고 다닌다. –본문

이제는 다 사라져 버린 타자기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가만히 계시다 어느 순간 손가락을 쉴 틈없이 움직이는 엄마를 보면서 다시금 이전의 모습이 떠오르게 되는데, 한때는 엄마가 무언가 불안한 것이 있어 손가락을 저는 것인가, 라는 두려움이 들 정도로 무서웠던 것이 알고 보니 타자기를 쳤던 시절의 습관이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이라 그렇다는 이야기에 몇 년 동안의 두려움이 한 번에 녹아내려간 일들도 자연스레 스쳐지나 가게 된다.

매일 마주하는 사물들인 시계에서부터 가방들은 물론, 소소한 물품들에서부터 사라진 것들까지 그들의 눈과 기억에 남겨져 있는 이야기들이 한 가득 담겨 있다.

이 사물들은 이제 더 이상 그들만의 것이 아닌 수 많은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일테지만 그로 인해 수 덧붙여진 수 많은 이야기들이 이 책을 더 살찌우게 하는 것 같다.

 

아르's 추천목록

탐난다 / 이형동저

 

독서 기간 : 2014.07.18~07.19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곱 성당 이야기
밀로시 우르반 지음, 정보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르's Review

 

 

 

    

 체코 프라하라는 이름만 들으면 아름다운 광장이나 그 곳에 가면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만 같은 로맨틱하면서도 황홀한 공간으로만 그려진다. 프라하를 걷는 것만으로도 그 곳의 모든 것들을 누리는 듯한 기분에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지는데 이 책은 내가 그 동안 가지고 있던 프라하와는 전혀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오전 8 45. 고막이 울릴 듯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만약 내가 이 곳에 있었더라면 그저 종이 잘못 울리고 있나 보다, 라며 귀를 막고서는 그 장소에서 멀어지려 종종 걸음을 하며 부단히 발을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인 크베토슬라프 슈바흐, 일명 K는 직감적으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라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곳에서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 이후에도 계속 마주하게 되는 엽기적인 사건들은 어찌하여 K앞에만 이렇게 드리우게 되는 것인지, 초반의 프라하에 대한 이미지는 어느새 사라지고 어두컴컴한 듯한 정적이 흐르는 장면만이 드리우고 있다.

내 불행의 역사는 나의 이름이 지어진 그날부터 시작된다. 가장 확실한 것은 모든 것이 내 아버지, 훗날 나에게 불쾌한 이름을 물려주게 될 바로 그 인물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본문

 K의 성장기 또한 그가 마주치는 사건들처럼이나 혹독하기만 했는데 무언가 그의 인생에 햇살이 드리울 즈음이면 태양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만다. 그의 이름 마저도 슬라브 민족의 나약한 꽃이라는 뜻이었으니 언제나 위축 되었을 법한 그의 일생을 따라 가다 보면 그야말로 그늘진 시간들의 함축이 바로 그의 지난날인 듯 하다. 한창 햇살을 받아 커 나아가야만 하는 어린 새싹이 발아하여 자라려고만 하면 다시 적막 속에 홀로 남겨지게 되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떠나가버린 선생이나 강도에 의해 살해되어 버린 신부님이나 세상에 오롯이 그 혼자 남겨진 듯한 그를 보면 애잔한 마음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다시 한 번 나는 현대라는 시대가 얼마나 하찮은지, 이 시대가 영감을 불러일으키거나 의사소통을 하는데 있어 얼마나 답답할 정도로 무능력한지 너무나 분명하게 보았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옛날 교회들의 자신 있는, 그러나 주제넘지 않은 완벽함과 눈에 띄게 대조되었다. –본문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다 중도에 멈춘 그가 경찰관으로 자리를 잡으려 할 즈음에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던 판델마노바 부인을 지키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것에 대한 긴박감, 왠지 모를 긴장과는 달리 그녀가 준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고 그 사이 그녀는 세상을 등지고 만다. 그렇게 자신의 이름으로 획득한 경찰관의 직위마저 내려놓아야 했던 그에게 그뮌드는 K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능력인 과거를 읽는 그의 능력을 빌어 자신의 계획들을 실행하고자 하고 있다.  

 연이은 살인 사건의 목격자로서 사건에 함께하게 되는 그의 모습도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경찰관이었던 그가 현직에서 물러나자마자 다시 사건에 합류한다는 것에서 그런 생각들이 드는데 K는 이 사건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이 사건들이 과거의 찬란했던 중세 시대와 엮어져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특히나 그 동안 참혹한 모습들로 발견된 이들이 과거의 성당 건축과 관련되어 있던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K는 이 모든 것들이 무언가 하나로 엮어져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건물에 손을 대면 과거를 볼 수 있는 K를 따라 가다 보면 자연스레 체코의 역사는 물론 건축물들에 대한 정보 또한 얻을 수 있는데 체코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이 이야기에 쉬이 빠져들 것이라 생각이 든다.

발전을 늦춰야 해. 멈춰야 한다고. 군주제는 느리고 안정된 삶, 과거에 대한 존경심, 전통에 대한 사랑을 제공하지. 변하지 않는 삶. 질서. 평화. 고요함. 시간. 바다와 같은 시간을 얻을 수 있어. 군주제의 황금시대는 언제나 우리 역사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였어. 14세기, 그리고 그 바로 뒤에는 19세기였지. 나도 자네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내가 이렇게 뒤늦게, 전자 기술의 노예가 되어 버린 이 지옥에서 태어나 버린 걸 얼마나 후회하는지 자네는 이해할 수 없을 걸세 본문

 어찌되었건 과거의 찬란했던 중세시대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는 그뮌드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K는 그가 가지고 있는 바람, 아니 욕망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가게 되고 그가 원하는 세상은 지금 그들이 있는 1900년대의 현재가 아닌 14세기의 모습들을 바라고 있다는 것에서 섬뜩함마저 불러일으키곤 한다.

 역사에 대해서 그저 관심이 많았던 K는 그뮌드와의 조우가 그저 자신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것이라면 그뮌드는 현재의 모습을 부정하고 과거에 존재했던 시간이나 현상을 현재로 부활시키기를 고대하고 있으니 이 둘은 동상이몽을 안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신성모독이라는 이름 하에 죽음을 당했던 이들을 하나하나 파헤쳐갈수록 드러나는 진실은 인간의 또 다른 악함을 드러내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어디에 존재하는지 모르는 일곱 번째의 성당이 당시에는 이 모든 것을 함께 당연하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었으며 그 때가 체코의 황금시대로 군림하였다는 것과 지금은 사라져버렸다는 것.

 과연 이 몽환적인 이야기 안에서 일곱 번째 성당을 마주할 수 있을지, 그리고 과거에 살고 있던 그들은 현재에 자리하고 있는 이 공간 안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모든 답이 이 안에 담겨 있다.

 

아르's 추천목록

 

붉은 죽음의 가면 / 에드거 앨런 포


 

 

독서 기간 : 2014.07.14~07.17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치도록 가렵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4
김선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르's Review

 

 

   

 처음에 이 소설의 제목과 표지를 보면서 왠지 내 몸도 가려워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팔이 닿을 듯 닿지 않는 그 가려운 부분을 시원히 긁어내려는 이들의 몸짓을 보는 것만으로도 당장이라고 손을 뻗어 그들의 등을 긁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이 책 안의 이야기에 호기심과 무언가 이들을 위한 일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감당하기 힘든 아이들의 모습이 다가왔으며 너무도 강한 그 아이들을 모습을 보면서 주위만 뱅뱅 돌고 있을 뿐 고개 숙이고 조용히 지나가는 용기 없는 어른 중 하나의 모습을 한 채, 거리를 유지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마주하고 있었다. 

 엄마는 새로 시작하자면서 마지막으로 전학을 가자고 했어요. 집을 내놨는데, 아이 씨, 집 보러 온 아줌마가 저를 괴물 보듯 하는 거예요. 무슨 사스나 에이즈 환자 보듯 기겁을 하며 도망가는 거예요. 그때 알았죠. 이제까지 내가 어떤 물건이었는지. –본문

수인은 고개를 수그리며 말했다. 본질은 자취도 없고, 껍데기만 가지고 애기가 겉돌았다. 정작 도서관을 왜 옮기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형식과 절차가 더 중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좋은 제안이라도 쓰레기다. 그것이 조직의 습성이며 힘이다. –본문

그렇게 초반에 이 책을 덮어버렸더라면 나는 강도범에 대해서 그의 이름처럼 문제아로만 인지하고 말았을 것이다. 모든 것들에는 다 이유가 있고 그렇게 흘러가기 위한 근본적인 문제들이 있을지 언대 나는 여전히 결과에 비춰진 모습들로만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고 분명 나 역시도 학창시절, 그런 고리타분한 어른들을 보며 답답해하며 나중에 커서 절대 이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라며 다짐했었는데 어느 새 영락없는 그 빡빡한 어른이 되어 버린 나를 바라보게 된다.

전학생으로 형설중학교에 온 강도범은 세호와 해명, 일명 해먹과 함께 도서관에서 뛰쳐나가는 순간 이 학교의 도서관 사서로 부임받은 수인과 마주하게 된다. 해먹의 가방에서 떨어지는 망치와 함께 어줍잖은 첫만남을 한 이들은 독서회 모임이라는 이름하게 다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이전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전학을 온 도범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꼬리표가 어디든 자리하고 있다. 소위 논다는 아이들에게 있어 도범은 과연 어느 정도의 급이 되는지가 궁금한 상태였고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꿔다 놓은 보리 자루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이 학교에는 도범이 전 학교에서 쫓겨나듯 전학을 해야만 했던 주범인 양대호마저 이 학교에 있으니 전학생으로의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을 예고하고 있다.

 도범과 마찬가지로 이 학교로 배정을 받은 수인 역시 수산나고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며 아이들과 잘 지내던 사서 선생님이었다. 형설중학교로 배정을 받았다는 그녀를 보면서 혀를 차던 이들은 물론, 문제아 학생들만 잔뜩 모아놓은 학교라며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 그녀의 앞에 드리운 현실은 마치 귀신이 나타날 것만 같은 도서관이 더 심란하게 다가왔다.

 중요한 건 자신이 자신을 내치지 않으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밖에서 아무리 찧고 까불어도 끄떡없어요. 밖이 뭐가 중요해요. 안이 중요한 거지. 스스로가 채워지지 않았는데 밖에서 아무리 채우려고 해보세요. 채워지나. 오히려 불행하고 불안한 자신만 발견할 뿐이죠. 그런 어른들이 희곤이 같은 아이들의 싹을 죽여버리는 거예요. 희곤이는 정말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였는데, 인간의 소리보다는 영적인 텔레파시에 더 예민한 아이였어요. 난 아직도 그 아이 그림을 기억해요. –본문

 모두다 하나씩 그들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것들을 표출하는 방식은 제 멋대로이다. 자신을 보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아이들과 문제아는 변하지 않는다는 어른들의 시선을 향해 도범이 할 수 있는 것은 또 다시 주먹을 드러내는 것이었고, 말을 하지 못하는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해명은 수화보다는 말로 이기려 하는 아이들 때문에 매번 놀림과 아이들의 폭력 앞에서도 꿋꿋이 참고 있었으며 세호는 그의 모든 이야기를 밖으로 끄집어 내어 표출하고 있었다.

 책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며 책에 푹 빠진 이담은 수인과 같이 시골에서 전학을 왔고 선생님들이 먼저 벽처럼 이야기하는 시골 도시의 갭에 주눅이 들어 조용한 도서관에서 스스로의 배움을 깨닫고 있었다. 매번 삐딱하게 왜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준표도 자신의 이름을 알아주자 어느 새 조용히 말을 따라오는 것도 그렇고 전교 1등을 자처했었지만 한 문제 한 문제에 사시나무 떨 듯 두려움에 떨던 희곤이는 스스로의 문을 닫아버린 상태다.

 그 나름의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서로에 대해 조금씩 들여다 보며 그 마음들을 헤아리게 된다. 그러니까 인간은 매 순간 자신이 처음 마주하는 순간들에 대해 성장통을 경험하고 있었으며 그것은 이미 다섯 아이를 장성하게 키워 낸 수인의 어머니에게도 비켜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어디에서 어디로 넘어가는 것이 쉬운 법이 아녀. 다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갈 수 있는겨. 애들도똑같아. 제일 볼품없는 중닭이 니가 지금 데리고 있는 애들일 겨. 병아리도 아니니께 봐주지도 않지, 그렇다고 폼 나는 장닭도 아니어서 대접도 못 받을 거고. 뭘 해도 어중간혀. 딱 지금 니가 가르치는 학상들 아니겄냐. –본문

 우리가 기억하는 사람의 틀은 늘 매한가지인가 보다. 학생은 공부 잘하는 모범생 이어야만 하고 직장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능력을 인정받는 슈퍼맨이어야만 하듯 그 안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획일적인 하나의 모습만을 그리는 이 안에서 그들은 가려움증을 호소하고 있었으며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애잔해지는 것이 눈물이 그렁 맺히기도 한다.

 ​불안하고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몰랐기에 방황할 수 밖에 없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방황도 조금 다 잡아 지는 듯한 느낌이다. 초반의 강한 느낌에 외면했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이 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성장통의 완화제를 마주하길 바라는 바이다.

 

아르's 추천목록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 이경혜저


 

독서 기간 : 2014.07.14~07.15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