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이
책을 몇 장 읽어내려가면서 무언가 SF 장르인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을 소개하는 이가 바로 투명인간이 이였으며 그 투명인간은 또
다른 투명인간인 김만수를 마주하게 되면서 시작되기에, '투명인간'
이라는 단어를 마주하면서 잠시 멍하니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언젠가 투명인간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이유에 대해서 망막에 상이 맺히기 위해서는 수정체가 필요하며 그 수정체에 맺히는 것을 통해 앞을 볼 수 있기에 이 부분마저 투명할 수
없기에 모든 것이 투명하게 된다고 해도 눈만은 투명하게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르며,
소설을 읽으면서도 조합한 과학 지식을 들이대며 과연 이 장르는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비슷한 이가 있다면, 이 책은 제목처럼 SF 공상 과학
소설 장르가 아닌 우리의 아스라한 시대를 오롯이 담은 이야기라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까 20~30대의 이들이 그저 어르신들의 이야기나 영화 혹은 오래된 시대극 속에서나 마주했던 이야기들이 3대의 이야기를 거쳐 이 안에서 되살아 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미약한 인간이었던 '김만수'를 통해 보여지는 이 이야기는 살아나아야만 했던 당시의
긴박하고도 촉박했던, 빠른 경제 성장과 동력을 안고 아시아에서도 유래 없이 성장한 우리나라의 외형이
아닌 그 내면에 담고 있던 성장통에 대해 담고 있었으며 그 진실을 목도하게 되면서 가슴이 아려와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만수는
남보다 머리가 커서 뇌세포도 남보다 많은 줄 알았더니 공부는 잘 못했다. 하지만 백지처럼
순수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을 잘 들었다. 내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하려 애썼다. 나는 만수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ㅡ만수야, 너는 아직 재주가 다 드러나지 않은 망아지, 덜 버려진 칼과
같구나.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가지만 돈 끼호테의 로시난떼처럼 비루먹고 약한 말도 열흘을 부지런히
가면 철리는 간다고 했다. 또 천리마의 꼬랑지에 붙어 있는 쇠파리 또한 천리를 간단다. 네가 하루 천리를 가는 명마가 아니라고 실망하지 마라.
-본문
부모님의
시대 이전부터 그러했듯 지금과는 다르게 형제자매들이 어쩜 그렇게 많았는지들 모르겠다. 이 책의
주인공인 김만수 역시도 형과 동생은 물론, 큰누나,
작은누나와 막내까지 있는 여섯 형제가 함께 지내고 있는데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개운리에서 지내고 있는 그들은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그저 지루한 듯 하지만 그 나름의 행복을 안고서 살 것만 같았으니 이 작은 시골마을에 드리우는 어둠의 그림자는 그들 가족 모두를 덮치려 하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비디오를 틀면 옛날 어린이들에게는 호환, 마마,
전쟁등이 가장 무서운 것들이었다면 현대 어린이들은 불법, 불량 비디오를 시청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광고를 하곤 했었는데, 내가 이 불법,
불량 비디오를 보는 것을 주의 받던 세대였다면 이 이야기는 호환, 마마, 전쟁을 담고 있는 훨씬 이전의 세대였기에 비리비리하니 그다지 오래 살지 못할 것만 같던 김만수는 아들로
태어났음에도 늘 불안한 아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제법 머리가 큰 이후에도 그의 지능은 여전히 어린
아이와 같은 상태였으며 그렇기에 그는 집안의 장남이자 기대주였던 백수의 그늘아래 있었으며 뒤의 동생인 석수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는 형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아버지와
나의 공통점은 있었다. 우리는 모두 맏이였다. 그리고
맏이를 잃었다. 아버지와 나는 같았다. 황소울음 같은
소리가 내 목을 타고 올라왔다. 나는 무릎을 꿇고 엉엉 울었다.
죽은 아들이 내 몸속에서 같이 우는 것 같았다. 옆에서 엎드리고 있던 만수가 따라 울기
시작했다. 만수의 울음은 온식구가 소리 높여 울게 하는 신호가 되었다.
울음과 눈물로 집이 떠나갈 듯 했다. -본문
그런
그가 공업전문학교에 나가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고 사회 안에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사람구실을 하면서 살아가게 된 것은 큰 누나인 금희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저 농사나 지으며 살아가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고집을 완강히 꺾고 만수에게 모든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녀는 친구의 바람을 미화 시킨 편지로 인해 구로공단에서 마주한 현실을 보았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이
집안의 기대주였던 첫째 백수가 생각지도 못했던 길로 빠져들게 되면서 그는 베트남 전쟁에까지 참전하게 되고 그곳에서 주검으로 돌아와야만 했던
순간, 개운리에서의 이야기는 서울로 이전을 하게 된다.
첫째였던
백수에 대한 기대도 기대지만 그 아들이 증발해버렸다는 것에서 그들의 아버지인 충현은 매일을 술과 함께 지내고 있으며 아이들만이 어떻게든 살아야
했던 이 다섯 형재자매들은 초반에는 그래도 괜찮은 삶을 지내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연탄가스라는 화마는 명희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로 전락 시켜 버리고 사라져버린 석수가 남기고간 태석까지.
그들의 앞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돛단배 같았으며 그 돛단배는 기사 식당을 차리게 되면서 나아지는 것 처럼 보였다. 만수도 다니고 있던 직장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그들의 인생이 사그러드는 것은 또 풍파 한번이면 족하였다. 벌집과 같은 방에 살고 있던 진주는 투석을
받아야 할 정도로 몸은 망가졌고 태석은 점점 엇나가고 있다. 그 옆의 명희는 세상과는 동떨어진 듯
삶을 살고 있었고 어디서도 빛날 수 없는 그들의 삶은 세상의 풍파를 받아들이다 못해 투영하게 변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얼마 지나기 않아서 꿈처럼 깨버렸다. 그게 그 느낌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다시 무섭고 추악한 껍데기 속에 들어왔다. 투명한 얼음이
녹아버린 것처럼 좋았던 나는 사라졌다. 나는 똥싸는 더러운 주머니였다.
역시 기적은 없는거야. 꿈이었다. 나는
울었다. -본문
이
이야기를 어떻게 다 담아 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아, 이런 것들이었구나, 하면서 계속된 탄식을 자아내며 읽어내려갔다. 파란했던 과거를 넘어
유례 없는 성장의 가속을 달려온 우리나라의 현재 역시도 수 많은 투명인간들을 만들어 내는 환경이 아닐까,
라는 것을 되돌아 보면서 그저 한 편의 소설로만 받아들 일 수가 없다. 씁쓸하면서도 또
그 안의 이야기들에 푹 빠져 읽어내려갈 수 없었던 지난 우리의 이야기들을 많은 이들이 마주해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