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사물들 - 시인의 마음에 비친 내밀한 이야기들
강정 외 지음, 허정 사진 / 한겨레출판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아르's Review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추억이나 이야기거리를 대변하는 물건이나 장소, 향기나 이미지들이 있을 것이다. 내게는 바로 '식빵'이 그런 존재인데 남들이 들으면 의아해 할 제과점의 가장 기본적인 제빵 중 하나인 식빵이 무엇이 그리 좋고 기억에 남을 것이냐 웃어 넘길지는 몰라도 지금도 나는 '아빠가 만들어 내던 그 따끈한 식빵'이 여전히 그립기만 하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제과점을 운영하셨다는 부모님 덕분에 나는 유치원에서나 학교에서나 '빵집 딸래미'로 친구들 사이에서 불리곤 했다. 당시 슈퍼마켓이나 중국집처럼 빵집 역시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매번 보다 못해 질려버린 나로서는 그들이 부러워하는 빵이 매일 포장해서 진열해야 하는 하나의 상품으로만 보였을 뿐이었고 심지어 아침에 밥을 대신 빵을 먹는 다는 이들이 측은하게까지 보이기도 했다.

그만큼 빵은 나에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나의 곁에 있는 것이었으나 벗어던지고 싶은 것이기도 했는데 그러한 빵집 딸래미의 수식어는 25년 만에 떨어져 나갔고 이제는 그냥 내 이름을 가지고 사회에서 지내고 있다.

사람이란 것이 희한하게도 그렇게 즐비할 때는 몰랐던 것들이 사라지고 나니 문득 그리워지고 먼저 찾게 된다는 것이다. 언젠가 처음으로 제과점에 식빵을 사러 들어선 순간, 25년 동안 한 번도 해본적 없는 '빵을 산다'라는 행위는 생경하다 못해 무언가 죄를 짓는 듯한 느낌마저 들어 가슴이 두근두근했는데 그렇게 사온 식빵을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아빠가 만들어 주셨던 그 식빵과는 다른 무언가 까끌한 느낌에 되려 입맛만 버리고 며칠 동안 식탁위에 두다 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종종 제과점에 들러 식빵을 하나씩 사오는 날이 있기는 하나 20여년 동안에 각인된 입맛은 변함없이 아빠가 만들어주신 식빵만을 기억하고 있기에 그 어느 식빵도 아직 내 입맛에 맛는 것을 찾은 적이 없어 식빵을 볼때면 예전의 맛이 그립기도 하고 이전의 모습들을 왜 그토록 싫어했을까, 하는 회한도 밀려들게 된다.

오랜만의 추억에 대한 설을 푸느라 서문이 길어졌지만 이 책 역시 그들의 눈에 비친 사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들이라는 지칭이 바로 '시인들'이라는 것과 그리하여 그들의 들려주는 추억은 더 애잔하며 마음 속에 와 닿는 것이 있지만 어찌되었건 그들도 우리와 같은 추억의 조각 하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기억 속에 주인공이 된 냥 자유롭게 유영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내 어릴 적 별명은 국숫집 막내아들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누구나 나를 그렇게 불렀다. 내 몸도 국수처럼 가늘고 길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도 별명도 국수였다. 난 그렇게 불리는 게 싫었다. 그러나 나는 국수를 사랑했다. 형들은 국수를 가난의 상징처럼 여겼지만 나는 국수가 말라가는 마당에서 보는 파란 하늘을 미친 듯이 좋아했다. 그래서 절대로 국수를 싫어할 수 없었다. 당에서 국수가 흔들리며 마르는 동안 나 그 밑에서 졸았고 그 밑에서 키가 컸다. 어쩌면 생각도 키만큼 자라지 않았을까 싶다. –본문

국수가락에 대한 그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나는 자연스레 식빵에 대한 기억들을 추억을 떠올리며 이전의 내 모습들도 하나둘 씩 떠오르게 된다. 잊고 있었다거나 생각조차 못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 놓는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푹 빠지게 된다.

시간이 흘러 전동 타자기는 워드프로세서라는 물건에게 자리를 내 주었고, 곧이어 컴퓨터 시대가 도래했다. 타자기의 시대가 종말을 고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나의 타자기 시대'는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타자기가 내게 남겨준 추억은 아주 강렬했다. 난 지금도 타자기를 버리지 못한 채 이사할 때 마다 끌고 다닌다. –본문

이제는 다 사라져 버린 타자기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가만히 계시다 어느 순간 손가락을 쉴 틈없이 움직이는 엄마를 보면서 다시금 이전의 모습이 떠오르게 되는데, 한때는 엄마가 무언가 불안한 것이 있어 손가락을 저는 것인가, 라는 두려움이 들 정도로 무서웠던 것이 알고 보니 타자기를 쳤던 시절의 습관이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이라 그렇다는 이야기에 몇 년 동안의 두려움이 한 번에 녹아내려간 일들도 자연스레 스쳐지나 가게 된다.

매일 마주하는 사물들인 시계에서부터 가방들은 물론, 소소한 물품들에서부터 사라진 것들까지 그들의 눈과 기억에 남겨져 있는 이야기들이 한 가득 담겨 있다.

이 사물들은 이제 더 이상 그들만의 것이 아닌 수 많은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일테지만 그로 인해 수 덧붙여진 수 많은 이야기들이 이 책을 더 살찌우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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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난다 / 이형동저

 

독서 기간 : 2014.07.18~07.19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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