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맥주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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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새 하얀 뭉게구름이 떠오른 풍경을 앞에 두고서 맥주를 한껏 들어 바다와 건배를 하는 모습의 한 청년은 아마도 이 책을 통해서 나에게도 이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의 짜릿함을 나에게도 전해주려 하고 있다.  

 

 모리사와의 좌충우돌 가득한 이야기들은 ''하는 소리를 내게 만들기도 하지만 모험심 가득한 것만으로 때로는 충동적인 결정만으로 떠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내심 부러워 했던 것도 사실이다. 엉뚱하기도 하고 그 안에서 허덕이는 모습들을 보면서도 또 계속해서 읽게 만드는 것이 아마도 모리사와 아키오의 매력인 듯 하다. 

 

 책이 전반적인 느낌이 휴가같은 느낌이다. 단 며칠이기는 하지만 이전의 내가 있었던 공간이나 환경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 떨어져 홀로 지내고 있는 듯한 느낌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그 어떠한 부담감도 없이 그저 청량함만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임팩트가 있거나 반전이 있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지만 휴가와 같이 쉬어갈 수 있는 느낌을 전해주는 책이라 읽는 동안에도 편안하게 읽어내려갔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아침.
 
이불 속에서 누을 뜨니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꽃향기가 녹아 있는 듯 달콤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명백한 의지를 가지고 늦잠 꾸러기 나를 야외로 끌어내려 했다. 얼마 동안 '바람'과 이불' 나를 서로 끌어당기며 실랑이 했다.
 
승리의 여신은 '바람'에게 미소를 지었다.
 
일어나 전화를 건다.
 "
미안한데 오늘도 대리출석 좀 부탁해. (중략) 

 목적지는 보소 반도의 깊은 산속. 나는 스로틀을 기세 좋게 당기며 봄바람 속으로 뛰어들었다. - 본문 

 

 이와이 요시야스와 함께 급류를 타기 위해 시작된 여행에서부터 이 이야기들이 범상치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가의 주민이었던 후사모토씨가 이야기 한대로 이 강가에는 폭포 등의 위험한 요소들은 없다고 했지만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것은 엄청난 폭포의 기운이었다. 온 힘을 다해서 노를 저어 육지로 올라오긴 했으나 그들이 마주한 폭포의 위력은 고작 1m 남짓의 것이었으니. 그들에게는 온힘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겠지만 읽는 나로서는 그들의 이 어이없는 몸짓들마저 유쾌하게 느껴졌다. 

 

 큰 마음을 먹고 구매한 멀티플라이어에 마루짱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서 어느 날 갑자기 떠난 모리사와의 뒷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통쾌함이 밀려들었다. 그래, 대출이라는 것을 저렇게 써야했어! 라는 때 늦은 반성과 함께 이번에는 그의 힘찬 여행이 어떻게 될까, 라는 호기심도 잠시, 그의 여행은 희한하게도 결의에 찬 발걸음들이 늘 시트콤으로 마무리되며 그 나름의 매력들을 선사하고 있다. 

 

 갑자기 마주한 103세의 할머니도 그렇고 노천탕을 만든다며 이미 한 번의 실패를 맛본 그가 친구는 물론, 동생과 동생 친구까지 합세하여 이전과는 다른 비주얼로 성공의 쾌감을 맛보려 하는 순간 던져진 입욕제때문에 다시 실패를 거머줘야 했던 그의 이야기들은 한 사람의 인생의 여행에서 어쩜 이런 일들이 계속되는 것인지 신기하기까지한 느낌이다. 

 

 어찌되었건 이 이야기들의 곁에 항상 등장하는 맥주는 책을 읽는 내내 입가에 맴돌게 하는데 휴가를 떠나 이 책과 함께 맥주 한잔 들이키면 더 할나위 없을 시간이 될 것 같다. 아쉽지만 나는 휴가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어버렸지만, 휴가를 떠나 그처럼 맥주 한잔으로 그 모든 것들을 유쾌하게 받아들이고 즐기다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살짝 빈틈이 있지만 즐거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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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저기까지만, / 마즈다 미리저

 

 

 

독서 기간 : 2014.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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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펫 7 - 의리파 기니피그의 출동 좀비펫 시리즈 7
샘 헤이 지음, 사이먼 쿠퍼 그림, 김명신 옮김 / 샘터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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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좀비라는 단어에 개인적으로 거부감을 안고 있던 나로서는 어린 아이들이 보는 만화에 좀비라니, 하며 왠지 모를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 동화 속의 이야기는 좀비가 주가 아닌 으로 나오는 기니피그와 함께 우정은 물론 다양한 동물들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그려져 있었다. 

 좀비펫으로 나오는 기니피그인 바람돌이는 예기치 못한 사고로 그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 이생의 친구들인 날쌘돌이와 번개돌이가 뱀에게 잡아 먹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저승으로 갈 수 없는 바람돌이는 주인공 를 통해서 뱀을 찾아 친구들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친구들을 구해야만 자신이 저승으로 갈 수 있다는 바람돌이의 이야기에 조는 그 날부터 에린의 집에 있는 뱀을 찾기 위한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원치 않게 바람돌이와 침대를 같이 써야 하는 조는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바람돌이와의 생활도 괜찮다고 느껴지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조의 눈에만 보이는 바람돌이는 볼링장에서 모든 핀을 제거하며 연속 스트라이크를 만들어 내며 조를 영웅으로 만들어 주고 있으니 이들의 조우는 생각보다 점점 흥미진진해 진다.

 그렇게 에린의 집에 있는 뱀의 존재에 추적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 뱀이 같은 반 친구이자 조가 마주하기 꺼려하는 스파이커의 형이 키우는 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스파이커의 가족들에게는 비밀인 토르의 행방 묘연을 밝혀내기 위해 조는 스파이커의 집에 가게 된다. 파충류 구호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스파이크의 형인 할리가 애지중지하고 있던 토르는 따스한 곳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에린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서 토르를 찾기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우여곡절끝에 토르를 찾게 되면서 바람돌이는 저승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마주하게 되었고 이로써 좀비펫의 이야기는 끝이 나는구나, 라고 생각했을 때 조의 귀에 또 다른 소리가 들리게 된다. 소파 뒤에 자리하고 있는 또 다른 좀비펫의 등장으로 이 7권의 이야기는 마무리 되게 되는데 8권의 내용은 또 어떠한 이야기가 전개될 지 내심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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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소시지 개의 최후》 좀비펫8 / 샘 헤이저

 

 

 

독서 기간 : 2014.07.21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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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킬링필드 - “나”와 “우리”와 “세계”를 관통하는 불평등의 모든 것
예란 테르보른 지음, 이경남 옮김 / 문예춘추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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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불평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불편함이 먼저 밀려온다.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들리는 빈부격차에 대한, 그러니까 소득 불평들이 자연스레 떠오르면서 아무리 하루종일 일을 하고 노력을 한다고 해도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지는 이 시스템이 대체 왜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분노도 있을 뿐더러 빈부격차의 차상위 계급에 있는 이들은 자신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니 이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을테지만 피라미드의 든든한 받침목이 되고 있는 하단의 많은 사람들은 헐떡이고 있는 이 현실이 도무지 역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회한이 밀려들기도 한다. 그저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도 불쾌해지는 느낌이 엄습해오는 이 불평등에 대해서, 그것도 소득불평등을 넘어 세상의 모든 불평등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을 읽기도 전부터 깊은 공감을 하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나에게 불평등이라 함은 남녀의 차이에 따라 오는 불평등이나 소득 불평등이 떠오르는 전부이다. 아마도 이것은 내가 가장 잘 체감할 수 있는 것들이기에 내가 알고 있는 불평등의 대부분인데 저자인 예란 테르보른은 이에 더불어 건강이나 수명, 죽음 등의 불평등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교육이나 부모들에게 이전되는 것들에 대한 문제는 물론 불평등의 과여 역사와 앞으로 나아가야 해결 방안 등 그야말로 불평등에 대한 총망라한 내용들의 이 안에 고스란히 담아놓고 있었고 생각보다 넓고도 깊은 불평등의 심해를 마주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불평등이 자연스레 녹아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마주하게 된다.  

 

 불평등은 사람을 죽인다. 1990년도부터 2008년 사이에 대학 졸업장이 없는 미국 백인은 기대수명이 3년 줄었고,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한 백인 여성은 5년이상 수명이 짧아졌다. 클린턴과 부시가 정권을 잡았던 호경기 시절에 조성되었던 미국의 사회적 양극화보다 더 치명적인 영향을 준 것을 찾자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에이즈와 러시아의 자본주의로의 전환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미국의 흑인들은 백인보다 원래 수명이 짧았지만 1990년부터 2009년까지 20년동안 그 간격은 20세기 초에 비해 크게 좁혀졌다. 2008년에 인종과 교육이 결부된 불평등은 약자의 수명을 12년 줄였다. -본문 

 

 100세 시대가 이미 도래한 지금 수명의 단축보다는 연장이 더욱 익숙해져야 하는 이 시점에 수명의 불평등을 이 책에서 마주하면서 단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교육수준과 수명과의 연관관계에 대해서 조사한 저자에 따르면 영국의 최상위 직업과 최하위 계층의 격차는 조금씩 줄어들고는 있다고는 하지만 반대로 기대 수명은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어 최하위 계층의 수명은 점점 단축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저 경제적인 문제에만 한정하여 발생하는 불평등인줄만 알았으나 이것이 인간의 생명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니. 점점 이 책에 집중해서 마주하게 될 때 이제는 많이 낮아졌다는 신생아들의 사망률도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라니. 이 불평등이라는 것은 어쩌면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인간에게 드리우는 장막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짙게 내리게 된다.  

 

 부모가 베필을 정하는 결혼은 그 정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21세기에도 여전히 무시하지 못할 수준인 것만은 분명하다. (중략) 이슬람 율범은 강제 결혼을 금하지만 실제로 신부에게 어떤 동의도 구하지 않는다. 부모가 정하는 결혼은 중국, 그 중에서도 특히 서부 지방에서 엄격하게 지켜진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의 배우자를 결정하는 중매결혼이 현대적 개념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본문 

 

 태어나는 순간에서부터 그들의 선택할 수 없었던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났던 이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심심지 않게 발생했으며 또한 성적불평등은 전통이나 관습이라는 이름 하에 계속 전해지고 있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아직도 만연해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계속되게 된다. 특히나 인도나 아프리카의 소녀들은 얼굴도 모르는 이들에게 시집을 가야한다니. 그 아이들이 만 18세가 되기도 전에 절반 이상이 결혼을 하고 있다는 현실은 가히 충격적이었으며 자신의 삶에 대한 선택에 대해서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이 불평등한 사회가 미쳐있는 것처럼만 보였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불평등으로 몰아가는 주범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위에서 버티는 가장 부유한 사람들의 몫이다. 그런 점에서 최고소득의 몫을 역사적인 개관을 통해 세계적인 규모로 파악하려는 토마 피케티, 앤서니 앳킨슨, 엠마뉴엘 사에즈 등 여러 학자들의 노력은 세계의 국가 간 소득 불평등을 파악하는데 가장 정확한 그림을 제시해 준다. -본문 

 

 한번 수렁에 빠지면 나랏님도 구할 수 없다는 빈곤의 늪과는 달리 부유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의 세습은 교육은 물론 소득 이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총체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특히나 부모의 부가 자식에게도 계속 유지되는 경우에 대한 통계보다는 교육이 부를 거머쥐게 하는 정도가 더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바, 교육과 부라는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는 뷰유한 이들과 평범하다 못해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이들과의 경쟁은 시작부터가 불평등한 레이스일 수 밖에 없다. 그 결과는 참혹하기 그지 없는 우리의 현실로 드리우고 있기에 불평등에 대해서 바로 잡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평등을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할 때라고 그는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는 중산층 세계까 평등을 위한 싸움에 나서야 한다. 미국에서 중산층의 비애를 강조하고 무엇보다 그들을 내쳤던 과두집단에 대한 분노를 되살리는 것은 당연하고도 현명한 일이다. 그러나 북아메리카나 서유럽이 세계의 불평등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을 결정하는 곳은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일 것이다. -본문 

 

 불평등에 대한 전반적인 의식에서부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불평등에 대한 접근까지,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하나하나 꼬집어 내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세상에 이토록 불평등이 깊고 넓게 퍼져 있다는 것은 물론 이러한 불평등을 이제서야 인지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무언가 잘못 된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을 그저 지나칠 것인지 아니면 바로잡으려 행동하려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 방안을 제시한 사람이 아닌 그 방안을 들은 사람의 몫일 것이다. 아무쪼록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에 대한 더 넓은 식견을 통해서 불평등의 미래를 움직 일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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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한 어린시절 / 아네트 라루저

 

 

 

독서 기간 : 2014.07.24~07.26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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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나 1997 - 상 - 어느 유부녀의 비밀 일기
용감한자매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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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제목을 보고나서는 유럽을 배경으로 하거나 혹은 '줄리아나'라는 여인이 가지고 있는 기억들에 대한 회상으로 이야기가 시작될 줄 알았다. 그러니까 나는 이 소설이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 아닌 다른 나라, 서양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무엇보다도 고전의 느낌이 강할 것이라 기대하며 읽게 되었는데 첫 페이지부터 그 예감은 처참히 무너졌으며 오히려 당혹감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20대 초반의 내가 이 이야기를 읽었더라면 그야말로 막장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혀를 쯧쯧하고 찼을 것이다. 사랑에는 '영원'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했고 결혼이라는 서약은 서로의 배우자만을 바라본다는 숭결한 약속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지금도 이 생각에 대한 것은 바람은 변함이 없기는 하나 고전들은 물론이고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등장하는 '불륜'이라는 것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이 불륜이라는 소재를 참 흔히게 널려 있는 것 같다.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금기시 되는 것에 대한 욕망은 합리적이라는 인간을 우매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송지연은 40대에 접어든 가정주부인다. 한때는 줄리아나 나이트를 접수하며 지냈던 오자매 중 한 명으로서 지금은 그 화려했던 시절의 이야기는 가슴에 뭍어두고서는 한 아이의 엄마이자 평범한 남편의 아내로 살고 있다. 아니, 평범이라는 단어를 이 소설에 써서는 안될 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평범하지 않은 기억들을 안고 살고 있으니 말이다.  

 

 여하튼 그녀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20대의 기억을 담은 <줄리아나 1997>이라는 소설에 당선되면서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마주하게 된 모임에서 진수현이라는 남성패션잡지 편집장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금 그녀의 가슴은 뛰고 있었고 이는 남편이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나서 되려 떳떳하게 여대생과 바람을 피던 그 암울했던 시간들을 오롯이 요리에만 빠져 있던 엄마이자 아내 송지연을 여자로 다시 피어나게 하는 사건이다.  

  

 수현이라는 남자가 궁금했다. 애까지 있는 유부녀에게 느닷없이 입을 맞춘 남자. 외모는 물론, 말과 행동까지 분명히 뺀질뺀질한 선수 수준인데 이상하리만치 거부감이 들지 않는 그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가 내 인생에 별똥별처럼 날아든 이유가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신은 결코 아무 이유없이 운명의 방향키를 움직이시지 않으시니까. -본문 

 

 그녀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넘어 그녀의 친구들의 이야기까지 가미되면서 그녀들의 일상은 망망대해에 표류하고 있는 작은 섬들의 아우성같은 느낌이었다. 마흔이 되어서야 진정한 사랑을 마주하게 된 은영에게 그 사이에 진희가 끼어들어 있었고 서로의 이야기들을 마주하다 보면 그 누구하나만을 비난할 수 없이 그녀들이 조금씩 이해되고 있었으니, 인생이라는 것이 왜 이토록 고달파야만 하는지에 대한 씁쓸함도 맴돌게 된다. 

 

 현수에게 점심을 차려주러 부엌에 있었던 시간 외에는 계속 서재에 틀어박혀 있었다. 분노, 질투, 실망. 이 세 단어만이 마음에 가득했다. 원래는 오늘까지 에디터에게 새 소설의 샘플 원고 열 페이지를 보내주기로 했다. 여태 뭘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안 왔늗네 갑자기 글이 써졌다. 마치 스물 다섯 살에 <줄리아나 1997>을 썼을 때처럼 빛의 속도로. 그때도 실연당한 직후였는데 지금도 그런 기분인 건가? -본문 

 

 그렇게 지연과 수현이 가까워지는 동안의 여러차례 들어오는 잔잔한 파도를 넘어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불륜에 접어들게 되었을때 마주하게 되는 남편의 여전한 외도의 목격. 과연 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2권도 계속 읽어보려한다. 

 

 도덕적인 잣대와 함께 이 책을 읽는다면 읽는 내내 불편할 것이다. 이 모든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붸붸 꼬여있으니 말이다. 그저 사랑 앞에 녹아내릴 수 밖에 없는 미약한 인간들의 이야기라 생각하고 마주하면 조금 편할 것 같다. 어찌되었던 지금도 어딘가에 있는 이야기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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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 세이지 1~2 / 고선미저

 

 

 

독서 기간 : 2014.07.25~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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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은 내가 되는 것이다
허병민 지음 / 지식공간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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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개인적으로 나는 처세술이나 자기계발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랜 시간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작품들도 이미 책은 서재에 오래 전부터 꽂혀 있기는 했지만 매번 외면하며 다른 책들을 먼저 읽곤 했었는데 아마도 다른 사람들이 갔던 그 길에 대해서 구태여 관심을 둘 만큼의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오늘의 내가 살기도 아둥바둥하고 있는 와중에 그들이 갔던 길을 다시 쫒아 갈 만한 여유도 없었을 뿐더러 그런 책을 한 두번 읽고 나서 며칠 동안은 그래! 이렇게 살아야지 하면서도 자연스레 다시 나의 삶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내 자신이 싫었기에 자기계발서를 읽지 않는 것이 나름 나를 위한 자구책이라 할 수 있었는데 이 책은 되려 저자 자신이 갔던 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를 찾기 위한 방법들을 알려주고 있었고 그렇게 저자 '자신'이 아닌 독자인 ''를 위한 책이라는 생각에 이 책은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은 ''라는 사람에 대해 잘 알고 계신가요. 스스로에 대해 과연 얼마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어느 정도의 연봉을 받고 싶은지, 또 어떤 직업에 종사해야 그만큼 벌 수 있는지, 어느 정도이 사회적 레벨에 도달하고 싶은지, 몇 평 규모의 집에 살고 싶은지, 연비 빵빵한 외제차를 언제쯤 구입할 수 있는지, 우리는 이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꽉 차 있으면서도 정작 이 모든 것들을 영위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그다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 본문 

 

 그래,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렇다. 나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것은 나일 것이라는 당연한 확언이 있었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내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물음이 낯설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당연히 내가 나를 가장 잘 아는 것 아니겠어? 라고 시작된 혼자만의 탐사는 생각보다 캄캄하기도 하고 금새 벽을 마주한 듯 턱하니 막막하기만 했다. 

 

 '그 결과물이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얻어야 할 텐데.' 

 저는 '쓰고 싶어서'보다는 이런 '쓸 수 밖에 없는, 써야만 하는 이유들을, 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남을 위해서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간이 제 어깨를 푹푹 누르도록 스스로를 내버려두고 있었으니 저는 글 쓰는 과정 그 자체를 온전히 즐기지도, 거기에 완전히 올인하지도 못했던 겁니다. - 본문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나의 모습인지 아니면 내가 바라고 있는 모습들을 꿈꾼 허상의 나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이 그저 나는 어제를 지나 오늘을 지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인정하는 모습과 내가 보여지고 싶은 모습 안의 괴리가 있다면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들을 더 가다듬고 좋게하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었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타인이 보기에는 점점 가다듬어 가고 성장해 나가는 내 모습을 마주할 지언정 실제 내 안의 나는 과연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물음도 사라진 채 타인의 눈을 위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여야 하는 이유는 그의 '이야기'에 있지 않습니다. 이야기ㅡ의 비중이나 중요성과는 관계없이 그 초점은 바로 '상대방' 자신에게 있지요.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그것보다는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를 좀 봐달라. ''를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이야기에 집중할 거라는 기대감이 그로 하여금 이블 열게 만드는 결정적인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지요. -본문 

  

 나를 누군가에게 들어낸다는 것은 상대방이 있어야 하며 내가 그러하듯 상대 역시도 나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일방적인 관계로서 나만을 바라봐줘, 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바라봐주는 그런 쌍방의 소통이 있어야만 하지만 늘 바쁘다, 혹은 피곤하다는 핑계로 아니면 나의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다는 욕망에 늘 마주하고 있는 이의 이야기보다는 내 이야기를 하기 바빴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집으로 되돌아 오는 길에 돌이켜보면 서로 각자의이야기만 하기에 바빴던 하루를 보게 된다. 

 

 무엇을 해야한다, 자신은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가 아닌 그가 제시하는 조각의 퍼즐들을 따라 가다보면 그동안의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반추해 볼 수 있게 된다. 매일 거울 속에 마주하는 너무도 익숙했던 나에게 희한하게도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볼 있는, 그렇기에 타인의 삶을 마주하는 것이 아닌 나의 삶을 들여다보는 이 책은 한번쯤 마주하는 것은 필요하다 생각이 든다.  

 

 

아르's 추천목록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 로버트 존슨저 

 

 

독서 기간 : 2014.07.05~07.06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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