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읽자마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떠올랐다. 화자는 다르지만 어찌되었건 그들이 주창하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겠구나. 비슷한 제목 때문에 이 책을 보게 된 것도 웃지 못할 이유라면 이유지만, 이 이유 하나만으로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을 사실이다. 무언가 있어 보이는 듯한 그 제목에 동하여 표지나 제목만 보고 책을 고르던 그 습관들을 아직도 못 버리고 또 저지른 것이다. 처음 표지를 넘기며 책을 한 번 훑어보면서 생각보다 짧은 단문들을 엮은 형태라 쉬이 읽을 수 있겠구나, 라며 다행이다 싶었다. 아직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읽어보진 않았지만 달바의 칼럼만으로 충분히 쉽지 않은 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혹여 이 책 마저 어렵다면 어떡하지 라고 불안해 하고 있었는데 다행이 그렇게 어려운 책은 아닌 듯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쉬운 책은 아닌 듯 하다. 냉철한 문체를 띄고 있는 그의 이야기들을 보게 되면 이게 무슨 뜻일까, 를 고민해 보기도 하고 어느 순간 고개를 끄덕거리며 보고 있으니 말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질문들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던지는 그와 조우하면서 아, 이런 것도 있구나 하며 처음에 그에 대해 가졌던 물음표를 어느 샌가 느낌표로 바뀌는 재미있는 순간들을 만끽하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K씨는 “만약 당신이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다?” 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 사람에 대한 청사진을 만들겠습니다. 그리고 그것과 비슷해지도록 하겠습니다.” “누구 말인가요? 그 청사진이요?” K씨는 말했다. “아뇨, 그 사람이요.” –본문 처음 보고서는 그저 휙 읽고 넘어갔다. 한 10초 정도 걸렸으려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려는 순간 응? 하는 생각에 다시 읽어보니 살다 보면서 누구나 저지르는 오류 중 하나를 콕 집어 놓은 것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그 사람이 나와 함께 하기만을 고대하게 된다. 그 혹은 그녀는 이런 점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또 세상에 다시 없을 완벽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상대는 어떠한 특정 상황에서 이렇게 움직일 것이고 그 상상의 나래 속에서 상대는 언제나 완벽하다. 하지만 실제 연애를 하다 보면 언제나 상상과 현실의 괴리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현상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종종 그 사람을 내가 원하는 대로 틀에 맞춰 바꿔보겠다는 생각이다. 바꾸어 생각하자면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상대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과연 상대가 원하는 대로 순순히 상대의 청사진 속의 모델로서 바꾸어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을 먼저 해보게 된다. 몇 십 여 년을 같이 지낸 가족들만 보아도 그 습관이나 행태는 쉬이 바뀌어 지지 않는다. 하물며 그 오랜 시간을 각자 살아온 남녀가 연애를 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상대가 나의 바람대로만 움직이기를 바랄까. 청사진과 비슷해지도록 상대를 조정하기 보다는 오히려 청사진을 다시 그리는 편이 훨씬 속 편한 일이겠구나 라는 생각에 웃음이 피식 흘러나왔다. 그는 사랑뿐만 아니라 정치, 예술, 행복이나 혁명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그의 냉철한 인식을 곳곳에서 펼치고 있다. 전쟁 중에 있어 가장 장인한 것은 길들여진 사람들이라며 코끼리에 빗대어 이야기 하고 세상을 뜯어 고치겠다고 설치는 이들에 대해 따끔하게 한마디고 충고하기도 한다. 빈민가는 인간적인 삶에 합당하지 않는 거주지이고 위생적이지 못하고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한 구역 전체를 다 철거하고 주민들을 타인강 스톡톤에 있는 멋지고 튼튼하고 위생적인 주택으로 이주시켰지. 그런데 5년 후에 많은 조사를 철저히 실시하고 통계 자료를 비교했더니 슬럼가의 사망률은 2퍼센트였는데 새 주택가에서는 2.6퍼센트가 나온거야. 그들은 꽤나 놀랐지. 내막은 단순해. 새 주택은 가구당 가격이 4에서 8실링 정도 비쌌던 거야. 그래서 주민들은 식품비를 아껴야 했던 거지. 세상 개혁가들과 인류의 구원자들은 이런 것은 생각도 못했었지. –본문 예전에 누군가가 텔레비전에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극빈층에게 더 좋은 집을 지어주고 그쪽으로 이주를 시키면 되는데 왜 그 간단한 일을 쉬이 처리하지 못할까? 라는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실제 극빈층을 돕기 위해 그들을 만나러 가서야 왜 이 쉬운 문제가 난제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유인 즉, 빈곤층에서 좋은 집을 무상으로 제공해 줄 수 있다. 그 집에는 깨끗한 물이 나오고 전기 걱정이 없고 따뜻하고 쾌적한 장소가 제공되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이 안락한 공간을 떠나게 된다. 이유인 즉, 그들은 이 공간에서 머무를 수 있는 유지비가 없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다시 길거리의 삶을 지내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도와주면 되지! 가 우선이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공간을 제공해 주면,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 되는 것으로 본 것이다. 브레히트의 말마따나 나는 그 멍청한 구원자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리고 또 머리 속을 쾅 하고 스쳐지나 갔던 질문은 ‘책 읽는 어느 노동자의 의문’에서 였다.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혼자서만 승리했었나?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승리의 이야기 누가 그 축하 잔치를 차렸나? 십 년이 멀다 하고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 누가 그 비용을 댔나? 이 많은 역사. 이 많은 질문들. -본문 역사는 그 순간을 지나온 이후에 기록된다. 그리고 그 기록은 누군가에 의해서 선택된 내용들만 기재되게 된다. 모두가 1등을 기억하듯이 역사에서도 제일 먼저 실행한, 혹은 그 무리의 우두머리만이 기록에 남게 된다. 그들에 의해서만 진행되고 기록된 역사. 과연 그 안에는 정말 그들만이 있었을까? 단 한 번도 가지지 않았던 의문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된다. 만약에 상어가 사람이라면 상어가 작은 물고기들에게 더 잘해줄까요?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부분 역시 꽤나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었다. 먹고 먹히는, 속고 속이는 관계 속에서 발생하게 되는 문화의 탄생과 존재에 대해, 전쟁이 계속 되는 이유나, 상인들의 그 속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할 질문들에 대해 그는 끝없이 나열하고 있다. 물론 이 책의 모든 내용이 다 냉철한 시선으로만 쓰였다고는 할 수 없다. 간혹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도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서 조금씩 인식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한 권의 책으로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배운다, 이 것만으로도 읽어 봄직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