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국의 딸들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르's Review

박경리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토지. 그 방대한 분량 때문에 손도 못 대고 있던 찰나 400페이지 남짓이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김약국의 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읽어보고 싶었다. 토지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맥이라면 김약국의 딸들은 헐떡거리면서라도 넘고 싶은 산이랄까. 그런 비장한 마음으로 이 책만큼은 꼭 섭렵하고 싶었다.

읽는 내내 일전에 읽었던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작품과 오버랩 되어 이 책 안의 딸들의 내용이 보이기 시작했다.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과 일제 강점기를 지난 개화기 시대를 그린 김약국의 딸들은 분명 다른 배경을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으나 그 안의 여자들의 이야기는 그 어디도 평이하지 않은. 왜 이렇게 구슬프고 보는 내내 아린지 모르겠다. 왜 그렇게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 힘든 것인지. 왜 그녀들은 항상 이렇게 어딘가 상처 가득한 모습으로 하자 있는 인생을 살아야만 하는 것인지. 읽는 내내 답답해 하면서 다시 한숨 한 번 내쉬고 또 뒷이야기를 읽어 내려갔다.

언제나 푸르른 바다가 상쾌한 바람만을 불러 일으킬 것만 같은 통영에서 비극의 바람만이 계속 불어 닥치고 있다. 나에게 통영은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이 소설 안에서의 통영은 왜 이리도 시리고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이야기들뿐 인지 모르겠다.

저의 아버지는 고아로 자라셨어요. 할머니는 자살을 하고 할아버지는 살인을 하고, 그리고 어디서 돌아갔는지 아무도 몰라요. 아버지는 딸을 다섯 두셨어요.본문

이전 세대의 과욕이 부른 대가를 딸들이 고스란히 받은 것일까? 현재였다면 그녀들의 할머니는 굳이 자살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혼전에 만났던 남자의 갑작스런 방문은 현재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도 탐탁지 않은 일이겠지만은 그 당시에는 이러한 일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나 보다. 그렇기에 그녀들의 할머니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자 비상을 입안에 털어 넣었으며 그녀들의 할아버지는 이 상황에 격분하여 찾아온 남자는 죽음으로 몰아넣고 홀연히 사라지게 된다.

분노로 인해 누군가를 죽인 그 대가로 인해 손녀인 그녀들은 이 안에서 하자 있는 삶을 계속 살고만 있는 것일까. 가혹하리만큼 잔인하게 얽혀버린 그녀들의 삶을 보는 내내, 어찌 보면 김약국의 딸들이기에 남들보다 더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을 그녀들은 되려 보통보다 못한 이야기들이 계속 이어지게 되는 모습에서 대체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인가에 대한 물음만을 되뇌이고 있었다.

1864, 고종이 왕위에 오름으로써 그의 아버지 대원군은 집권하였다. 그러나 병인양요를 겪고 극도에 달한 경제적 파탄으로 드디어 대원군은 그 패권을 민비에게 빼앗겼다. 정권이 민씨 일파로 넘어간 후에도 여전히 나라 안은 소연하였다. .일 두 세력의 대립, 민씨파와 대원군파의 암투, 개화파와 보수파의 갈등, 개화파 중에서도 일본식을 따르자는 친일파, 청국식을 따르자는 사대파, 이러한 파벌의 발호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국운은 차츰 기울어만 갔다. –본문

그녀들의 아버지이자 김약국의 주인인 성수의 가족사는 위의 이야기대로 파란만장하다. 어느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만 일어났을 것만 같은 이야기가 자신의 핏줄에 대한 과거이자 현재요 이는 자신의 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모진 운명의 시초가 된다.

젊은 과부인 용숙. 그래, 과부라는 것만으로도 안타까울 법 하다. 하지만 그녀의 시련은 이제부터 시작이었으니 바로 이미 가정이 있는 남자와의 정분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이해 받고 용서 받을 수 없는 그 사랑으로 인해 그녀는 모든 사람들의 지탄을 받게 된다. 과연 그녀가 평범한 남자와 사랑을 나누었다면 그때에는 과연 이러한 질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옳지 못한 방향으로 튀어버린 사랑도 문제이긴 하겠지만 오롯이 여자인 용숙에게만 쏟아지는 지탄이 그리 달갑게만 보이진 않았다. 어찌되었건 첫째인 용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에 대한 남다른 소유욕을 과시하듯 조금씩 부를 축적해나가며 자신만의 성을 만들어 나간다.

둘째 용빈. 집안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덕분에 딸이지만 아들 노릇까지 톡톡히 하고 있다. 신 여성답게 똑 부러지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갈 것만 같은 그녀도 하필이면 친일파에 몸담고 있는 집안의 아들인 홍섭과 교제를 시작하게 된다. 하필, 이라는 단어와 같이 이 사랑 역시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다.

그리고 셋째 용란. 가장 외모가 뛰어난 그녀는 당시 머슴이었던 한돌과 정을 통하게 된다. 여전히 신분의 차이가 존재했던 그 당시로는 이러한 사랑을 신분을 뛰어넘는 로맨스가 아닌 절대 발생해서는 안될, 꿈도 꿀 수 없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으로 본다. 이 사건 때문에 그녀는 아편쟁이인 남편에게 시집을 가게 되는데, 이것이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었다. 왜 하필 약쟁이인 남자에게 용란을 보내야만 했을까. 머슴과 정을 통한 여자는 남편에게 매일 얻어 맞고 살아야 할 만큼이나 끔찍한 사건이었을까. 그렇게 용란을 아편쟁이에게 떠넘기듯 보낼 바에는 차라리 자식 하나 버린 셈 치고 머슴인 그와 멀리 떨어져 살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을까. 어찌되었건 소설 속 용란은 그의 남편과의 감정 없는 결혼 생활 속에서 다시금 나타난 한돌이를 보고 제 2의 인생을 꿈꾸지만 남편으로 인해 조부모때의 비극이 다시 한 번 발생하게 되면서 그녀는 결국 정신을 놓고 만다.

넷째 용옥 역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인물이다. 그 짧은 인생 동안 찬란하게 꽃 피울 수 있는 시간이 없었을지. 보다 보다 한스러운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다시 한 번 새롭게 살아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녀에게 허락된 시간은 그녀가 안고 있던 한을 채 풀기도 전에 가라앉아 버린다.

그나마 마지막에서 용빈만이 다섯 째 동생인 용혜를 데리고서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 한다. 3대에 걸친 집안의 몰락 속에서 한 줄기 새로운 빛이 들고 있는 것이었다. 대체 왜 이렇게 암울하고 힘든 것일까를 가만히 생각하다, 개화기의 이 당시에 밀려드는 혼란 속의 모습을 3대 속에 걸쳐 전달하고 싶었던 것을 아닐까, 라고 생각해본다.

표면상 김약국들의 딸들 속에서 발생한 비극을 단편적으로 드러내고 있기에, 그리고 그 딸들의 가혹한 운명들을 보면서 같은 여자로서 울컥하게 되기도 한다. 왜 이토록 버겁기만 한 것일까. 하지만 아마 저자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대를 지나온 것이 우리들의 역사라고. 말도 안될 것만 같은 이 소설과도 같은 삶을 살아온 것이 우리의 지난날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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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공지영저

독서 기간 : 2013.04.29~05.06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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