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수레바퀴 아래서 (체험판)
헤르만 헤세 지음, 송영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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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학창시절 나는 그 누구에게도 너의 꿈이 무엇이니? 라는 질문을 받아 본 기억이 없는 듯 하다. 대신 어느 대학에 가고 싶니? 라는 질문은 매번 들어왔었다. 진로 상담이나 학원을 가거나 어른들을 만날 때면 항상 그들은 어느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학창시절을 평가했으며 점수라는 숫자는 그들의 염원을 이룰 수 있는지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가름 해주는 지수였다.

한스 역시 자그마한 동네에서 모두의 이목을 끌만한 수재였다. 그런 그에게는 이미 정해진 인생의 길이 있었으니 바로 신학교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타인들이 만들어낸, 수재라면 반드시 입문해야 하는 코스로서 그들 모두는 한스가 당연히 이 신학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며 그것이 그의 숙명이라 믿고 있다.

학교를 벗어나 사회에 나와보면 비로소 알게 되는 것 중 하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직업의 세계는 수박의 겉면처럼 피상적인 것들이라는 것이다. 정해져 있는 코스가 아니라 그 이외의 길도 무궁무진 하지만 여전히 정해진 몇 개의 길 밖에 없다는 듯이 말하는 사회의 통념 속에서 한스 역시 조용히 그 길을 따라 가고 있다.

이 소년이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이고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했다. 따라서 그의 장래는 확실히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슈바벤 지역에서 재능 있는 아이에게는 부모가 부자가 아닌 이상 오직 하나의 좁은 길만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 시험을 치르고 신학교에 들어간 다음, 튀빙겐 대학에 입학하여 목사라 되든가 가정교사가 되는가 하는 길이었다. –본문

한스에게 모두가 이 길을 종용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는 낚시꾼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낚시를 하는 동안 그의 눈빛은 살아났고 그 시간만큼은 오롯이 자신 자신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학창시절에 종종 그러하듯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닌 성적에 맞춰서 그는 그의 길을 가게 된다. 낚시는 그가 추억할 수 있는 아름다운 기억일 뿐 현재의 그에게는 사치스러운 행위일 뿐이다.

한스는 자신이 반나절 혹은 온종일 여기서 보냈던 것을 회상해보았다. 또 자신이 여기서 얼마나 헤엄치고 잠수하고 노를 젓고 낚싯대를 드리웠던가를 떠올렸다. , 낚시! 그것도 지금은 거의 잊어버리고 말았다. 지난해 시험 때문에 낚시질을 금지당했을 때 서러움에 북받쳐 울기까지 했다. 낚시! 그것은 기나긴 학창시절에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본문

그렇게 싫었으면 벗어나면 되지! 왜 이제서야 새삼스런 후회와 원망이람? 이란 핀잔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라. 과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이 있었는지. 단 하루의 일탈을 꿈꾸며 교실을 벗어난다고 한들 그것을 매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며 달라지지 않는 틀 안에서 혼자 소리치며 발버둥 친다 한들 우리는 다시 그 안에서 어떻게든 시간을 버티며 그 순간을 통과해야만 했다.

한스 역시도 그러했다. 광기 어린 듯한 울분을 담아 이 체제를 벗어나고 싶어했지만 결국 그는 초콜릿을 권하는 사회를 마주하며 먹기 싫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한 조각 물어내는 그만이 있을 뿐이다. 왠지 모르게 공장 속의 부품처럼 벗어날 수 없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진 제품이 떠올랐다. 벗어날 수 없는 컨베이어 벨트 위의 제품들처럼, 그리고 그 끝에는 각기 다른 길이 있기에 그 안에서 옆에 있는 다른 물품보다 더 좋아 보여야만 하는 도토리들의 반란 같은 느낌이랄까. 여하튼 한스는 그 컨베이어 벨트 위에 타인의 욕망에 의해 착륙한 나약한 존재였다.

소년은 피료에 지친 육신을 내던지고 소리 내어 통곡하고 싶은 심정에 사로잡혔다. 그는 마구간에서 작은 도끼를 가지고 나와 야윈 팔을 쳐들고는 토끼집을 사정없이 부숴버렸다. 얇은 널빤지가 사방으로 흩어지고 못은 끼익 소리를 내며 구부러졌다. 그렇게 하면 토끼나 아우구스트나 그 밖에 어린 시절 같이 놀던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지울 수 있다는 듯이. –본문

한스는 초콜릿을 꺼내 잠깐 동안 종이를 만지작거리다가 결국에는 아주 조그맣게 한 조각을 베어 먹었다. 그는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런 자기의 기호를 아주머니에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본문

하일러를 만났던 그 순간, 한스는 인생에서 자기 자신 바라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하일러와의 만남이 위험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것은 위험이 아닌 유일한 탈출구를 찾을 것이다. 틀에 박혀 있는 일상에서 벗어나 지금의 이 자리가 맞다, 라는 복제되어 이식된 생각이 아닌 나는 무엇을 위해 이 곳에 있는 것인가? 하는 그 질문을 던지고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자칫 정형화 된 세계에서 바라보았을 때 한스는 다분히도 위험한 장소에 던져진 방어체계 따위 없는 순수한 존재로 구해내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곳은 한스를 한스로서 살게 하는 유일한 곳이었던 셈이다. 소설이 끝나갈 때쯤 하일러와 한스가 타인들에 의해 그들의 끈이 무자비하게 끊어지지 않았다면, 오늘의 한스는 웃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이 밀려들었다.

도대체 고대 그리스의 작품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우리 가운데 누구든 약간 그리스식으로 생활해보려고 시도한다면 금세 추방되고 말 거야. 그런 주제에 우리 방을 헬라스라고 하지 않냐. 정말 우스운 일이야! 왜 쓰레기통이나 노예 감옥, 슬크해트라고 부르지 않지? 고전적이란 것은 모두 사기야! –본문

모두가 그 길을 갔으니 너도 가야만 해. 이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모두 똑같은 길을 종용하면서 모두에게 1등을 바라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이미 나도 지나왔으니 너도 무사히 지나올 수 있을 거야. 이 곳을 지나지 못하면 너는 인생의 낙오자가 될 거야. 라는 반 협박과 같은 알 수 없는 믿음의 강요는 오늘도 계속 되고 있다. 친구조차도 경쟁자로 만드는 이 나라의 세태 속에서 다들 그렇게 해 왔으니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냥 믿고 따라오라는 주입식의 동일한 공장이 대체 몇 개나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그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위험한 소년 시절에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야만 했던가? 왜 그에게서 토끼를 빼앗아버렸던가? 왜 라틴어 학교 시절 그를 친구들에게서 떨어뜨려 놓았던가? 왜 낚시질이며 돌아다니며 노는 것을 금지했던가? 왜 심신을 갈가리 찢어놓을 뿐인 쓸데없는 공명심을 부추겨 공허하고 저속한 이상을 불어넣었던가? 왜 시험이 끝나고 나서도 마땅히 누려야 할 휴식조차 허락하지 않았던가? 이제 지칠 대로 지친 노새는 길가에 쓰러져서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본문

결말보다도 서글펐던 장면은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대로 한스가 따라주지 않자 모두가 외면하는 그 순간이었다. 철저히 자신들의 욕망에 의해 한스를 탐했으며 그 욕망이 일그러지는 순간 한스는 공장 내에 발생한 불량품처럼 그 어디에서도 반겨주는 이 없이 덩그러니 버려지고 만다. 대부분이 공장에 나오는 순간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게 될 테이니, 그리고 그 행렬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끝없이 이어져 왔으니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이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일까? 어느새 나도 한스처럼 쓸모 없어지면 버려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두려움에 이 책 속의 수레바퀴가 그 어느 것보다 잔인하고 냉혹하게 보였다.

누구 하나 그에게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옛날 선생이나 목사도 거리에서 만나면 친절하게 고개를 끄덕여주었으나 사실은 더는 한스를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 그는 모든 것을 담아도 좋은 그릇이 아니었고, 온갖 씨앗을 뿌려도 좋은 밭이 아니었다. 그를 위해 시간이나 마음을 쓴다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 –본문

백 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공감되고 이해되는 한스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한스와 같이 아이들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 본다. 너무도 자주 바뀌는 입시 정책들 속에서 모두 미래의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 하기 전에 정말 이 모든 것이 그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바라는 사회 속 부속품을 만들어 내기 위한 공정인지에 대해 냉정하게 바라봐야 할 것이다.

*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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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굴레에서> / 월리엄 서머셋 모옴 저

 

독서 기간 : 2013.05.01~05.05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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