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엽서 속 사진들을 보면 아, 이곳에 가보고 싶다 라는 생각에 하나 둘씩 모으기 시작했었다. 단 몇 백 원으로 그 곳의 풍경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사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모으기도 귀찮아서 잘 사지는 않는다만 어찌되었건 언제라도 그런 풍경에 여전히 눈길이 옮겨지긴 한다. 서른 중반을 향해 다다르고 있던 회사 동료였던 언니가 어느 날 사표를 내고서는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다. 언니, 다녀오면 나중에 취업은 어떡하려고 또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 잠깐만 다녀오는 여행도 괜찮잖아, 굳이 사표를 내고 가야겠어? 라며 달래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사표 내는 것에 대해 만류해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언니는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홀연히 떠났었다. 매일 정신 없이 출근길에 오를 때만 그 언니가 생각난다. 언니는 그렇게 떠나갔는데 왜 나는 언제나 바라고만 있고 실천을 못하는 것일까? 에 대해 고민하다 어느 새 회사 모니터에 앉아 있다. 여기 이 책 속의 주인공이 내가 갖고 싶어 하는 2가지를 모두 손에 넣은 사람이다. 언제든지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어떻게든 떠나는 사람. 그리고 그 곳에서 엽서 속 예쁜 사진들과 같이 자신의 카메라에 담아오는 사람. 실상 책은 한 시간 남짓이면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책이었지만 그 안에는 그녀가 떠나기 전부터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무한한 시간과 상념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계속해서 다시 들쳐보게 된다. 이렇게 홀연히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라는 생각과 어떻게 그렇게 떠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들에게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레임만 있을 것 같은 그들의 속내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그것들을 이겨내고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면 나는 여전히 그 한계에 부딪쳐서 오늘 여기서 맴돌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나도 겁니다. 대책 없이 혼자 떠나는 여행이 사실은 나도 겁이나. 이름조차 낯선 나라로 아무 준비도 없이 비행기 표만 구해서 떠나는 일이 나도 겁이 나. 거미줄 쳐진 버스 좌석, 이름도 알 수 없는 도시를 밤새도록 달리는 일이 사실은 나도 겁이 나.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사이에 홀로 서있는 일이 사실은 나도 겁이 나. 아닌 척하는 것뿐이야. –본문 그렇게 다녀올게, 라고 시작된 그녀의 여행은 빈번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계속 되고 있었다. 사진 속에 찍힌 날짜들을 보며, 그 안의 풍경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 새 사진이 아닌 실제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또 마음을 뒤 흔든다. 여행을 시작하는 주문 Open the door. Open your eyes. Open your mind. –본문 이 단순한 주문을 실행하기가 왜 이토록 힘들기만 한 것인지. 오늘도 책으로만 위로 삼으며 부럽다, 를 연발하고 있는 내 모습도 참 꾸준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되었건 비슷한 또래임에도 그녀는 하고 나는 그녀의 책을 보면서 욕망만 꿈틀거리고 있었다. 오늘의 현실을 매일 바랐던 어린 시절의 소망이 얼마나 무서운 주문이었는지, 한 번 발을 들여놓고 나면 다시 또 다른 세상으로 나가기엔 보이지 않는 족쇄를 풀기 힘들다는 사실은 다시금 깨닫고 있다. 엄마의 커다란 뾰족구두를 신고서 마냥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그렇게 갖고 싶었던 내 발에 꼭 맞는 뾰족구두를 이제 갖게 되었는데 엄마의 커다란 뾰족구두를 신었을 때보다 지금의 나는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본문 매일 이렇게 허덕이듯 쫓기며 하루를 보내면서도 언젠가는 이러한 삶에 대한 보상이 딱 하니 드리울테니 조금만 참아야지 하며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작은 기쁨과 행복을 포기한다면 과연 그것이 진정한 행복으로의 길로 가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치열하게 살 때는 살더라도 가끔은 한 박자 쉼표를 찍고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잠시 동안은 나를 위한 휴식을 갖고 다시 돌아오기 위한 여행을 준비해 봐야겠다. 열정도 상처를 낸단다. 이유 없이 뜨거운 것들의 필요 없는 유혹을 제대로 관철해 보아야겠다. 우린 항상 열정을 좋은 말들로만 포장하지만 열정이란 이름으로 삶의 불균형을 애써 감추고 있지는 않은지 뒤돌아볼 줄도 알아야 한다. -본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