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 나의 친구, 나의 투정꾼, 한 번도 스스로를 위해 면류관을 쓰지 않은 나의 엄마에게
이충걸 지음 / 예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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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책을 읽기 전에 제목만을 보고생각했다.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면, 분명 저자는 딸'이겠구나, 라고 말이다. 딸과엄마는 친구같이 좋을 땐 마냥 좋지만 또 다툴 때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다투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 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고 있는 그들의모습을 매일 재현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마냥 저자는 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아들이자 남자였다. 아들이 쓰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그 누구의 엄마든 자식은 딸이든 아들이든 동일함에도 나는 엄마하면 딸, 아빠하면 아들이라는그 조합만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생각한 두 번째 오류는 아들이 엄마에 대해 썼다면 왠지모르게 딱딱하면서도 살갑지 않은 느낌일 것만 같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나의 생각과 엄마에 대해 쓰는 문체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그의 이야기가 무관심한 듯한 텁텁한 글이 아니라 무던한 듯 하지만 그 안에 또 다른 깊이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엄마에 대해 생각하고 쓰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그와 같이 글을 쓰고싶어졌다. 문체 덕분에 종종 남자가 아닐까, 라는 오해를받는 여자임에도 나는 이 저자의 문제를 똑 닮고 싶어졌다.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의 표현이 오히려더 뜨겁게 다가온다.

딸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작은 것들로 소소히 싸우고 또 웃고 떠드는 일이 많다. 장난 치며 웃기도 하고 때론 아프면서도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엄마와 싸우기도 하고, 그런 엄마를 보며 속상해 하면서 울기도 하는. 그것이 딸과 엄마의모습이라면 저자의 이야기는 딸의 입장에서 보면 왜 이렇게 차가워, 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디가 아프대? 라는 질문에 얼버무리는 엄마의 대답을 보며 답답하듯이 진단서를 꺼내 들고 그안에서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마주 했다면, 나는 아마 신경질부터 냈을지 모른다. 그러게 왜 이제서야 병원에왔어 아니면 그렇게 힘들면 말을 하던가 왜 이렇게 될 때까지 혼자 있었어, 라며 엄마를 쏘아 붙였을것이다. 그러면서도 아마 매일을 엄마를 이렇게 외롭게 둔 내 자신을 비관하며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어떤 뚜렷한 형태의 반응이없이 그저 조용히 엄마의 밥 위에 도라지 나물을 얹어 줄 뿐이다. 그의 생각을 몰랐다면,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봤다면 나는 그에게 어쩜 이렇게 냉담할 수 있느냐며 혀를 찼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누가 부모의 아픔에 있어서 무던할 수 있겠는가. 그 발현의모습만 다를 뿐인지 아프다는 분모는 동일했다.

시간은 무정형으로 느껴졌다. 뚫고들어갈 수 없는 벽으로 막힌 기분. 우린 늘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엄마와 나를 설명하는 우연한 증후는삶의 불확실성에 대해 좀 더 현실적이 되어야 한다고 일러주고 있었다. 날은 이렇게 쌉싸름하게 온화한데, 단풍잎의 남은 빨강은 갈색으로 오그라든 지 오래였다. 곧 있으면봄이 올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멍든 것 같았다. -본문

나이가 들면서 맛있는 것이 생기면 어떻게든 집으로 가져가고 싶어졌다. 예전에는 혼자 그것을누리는 것에 행복했는데 언젠가 혼자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것이 엄마한테 미안해졌다. 그래서 요즘은 인터넷에서갑자기 뜨는 공구, 일명 조업 나가서 잡아왔다는 산지 직송물이 올라오면 매번 결제를 하고 또 집으로보내곤 한다.

소띠인 엄마는 매번 소처럼 풀만 찾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풀을 좋아하는 줄만 알았다. 그녀도 해산물이나 육류를 좋아했지만, 매번 자식들과 남편에게 양보하는그 모습을 보고서는 그것이 엄마의 식성 탓 인줄만 알았다.

엄마가 모르는 시공에서 생선된 음식, 음식이주는 삶의 이미지는 도 그렇게 기름 엿처럼 충만하거만, 그 모든 걸 언제나 나만 누렸다. 엄마를 위한 식단은 언제나 '다음에'라는 공허한 품사 속에서 차려져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따금 별식을사 들고 집에 가면 엄마는 입맛에 맛건 아니건 반색하기 바빴다-본문

똑같은 자식이지만 아들의 관점에서 본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느낌을 배워간다. 같지만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그의 이야기는 툭툭 던지는 듯 하지만 깊이가 느껴진다. 엉엉 울어야만 슬픔이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담담함 속에서 내뱉는 독백이 오히려 더 울리게 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이야기와 문체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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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 / 이충걸저

 

독서 기간 : 2013.05.1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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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정 사랑에 살다
최정미 지음 / 끌레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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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하면 조선시대의 가장 표독스러운 여자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투기의 화신이었으며 마지막 사약을 받는 장면은 드라마로 재연될 때면 그 모습이 어떻게 그려질 것인가에 대한관심이 쏠리곤 했었다. 한 시대의 국모로서의 자리까지 올라갔던 그녀는 왜 이렇게 악녀로만 남아야만 했던걸까.

웬만해서 드라마를 보지 않던 터에 우연치 않게 장희빈 사랑에 살다, 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장희빈이 아닌 장옥정으로서의 삶을 비춘다는것이 이색적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바느질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닮아 역관으로서의 능력도 출중했다는 모습과 표독스럽기 보다는 오히려 여성스러운모습을 보면서, 그녀도 한 남자의 마음을 얻고자 하던 천상 여인의 모습이었다.

"저의 마지막을 지켜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너의 마지막이라니."

"중전 마마가 승하하실 때 전하께서는그 마지막을 지켜주셨습니다. 슬프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습니다.그때 저도 가슴에 같은 소망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광영은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했었지요. 그저 죽을 날을 받으면 사가로 돌아가 조용히 홀로 맞는 것이 궁녀의 마지막이 아닌지요?." -본문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는 사람일 수는 없다. 또한 이미 지나간 이야기이기에 어느 것이 사실인지 알 수도 없는 것도 사실이다. 숙종이 진정 장희빈의 미모에 홀려 베겟송사로 국사의 길을 잃게 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인현왕후와 장희빈 두 여인의사이에서 남인과 서인간의 권력을 쥐락펴락 했던 것인지. 그것은 기록한 사람과 그것을 읽는 사람들의 몫일것이다.

역사를 기반으로 한 소설이기는 하나 그 동안의 전해졌던 시선이 아닌 한여인으로서의 삶을 조명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매력적이었다. 사씨남정기나 그간 다뤄졌던 장희빈이나 모두인현왕후는 천상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장희빈은 그 누구보다도 극악한 여자였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던 장희빈은 그토록 악녀였으며 숙종은 그녀의 치마자락에만 홀려 있었을까?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간의전쟁이라고 하기에는 숙종의 환국정치가 너무도 잘 맞아 떨어진다.

"전하는 처첩 간의 갈들을 이용해 서인과남인으로 하여금 대리전을 치르게 하셨지. 그리고 그때마다 원하는 것을 얻어내셨다. 나와 희빈 장씨를 번갈아 쥐었다 폈다 하며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내신 것이지.내가 중전의 자리를 다시 찾으면 기쁠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어. 위안이 되는 것이 없진 않다. 가문이 다시 일어서고 왕비로서의 자존심을지킬 수 있게 된 것! 그 사이 전하께서는 시시때때 중궁전의 주인을 바꾸는 동시에 환국을 주도하셨지. 그리고 그를 통해 왕권을 강화해나가셨다. 결국은 희빈 장씨와 나모두 그분의 희생양이었던 것이야. -본문

마지막 장면에서 숙종은 장옥정에게"나를 위해 죽어달라"라고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정치 기반은 물론 차후 세자가 될 자신들의 아들을 위해서라도. 한때는 사랑했지만 권력의 이름 하에 그 연심마저도 이용당해야 했던 마지막의 모습에서 한 여자의 한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이 소설을 통해서 한 인물을 평가하고 이해하는데 있어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부분도 없지 않기에 그것이퍼지는 순간 기정사실이 되고 그 이후부터는 오롯이 그 틀 안에서만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조선 최대의악녀인지 아니면 정치적인 배후에 의해 희생당했던 한 여인이 맞는 것인지는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녀도 그저 한 여자였다는 것. 그것만으로 이 책에 푹 빠져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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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홍』 / 김별아저

독서 기간 : 2013.05.07~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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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 - 박광수, 행복을 묻다
박광수 지음 / 소란(케이앤피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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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라는 이름을보는 순간 '광수생각'이라는 만화가 떠올랐으며 그래서 박광수가집필했다는 이 책 역시 광수생각과 같은 느낌의 만화이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오래되었지만 그 당시 읽었던 광수 생각을 다시 만나볼 수 있다는 설레임과 그럼에도 왜 광수 생각이 아닌 민낯이라는이름으로 나왔을까 하는 생각은 책을 펼치는 첫 페이지에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은 광수 생각과는 다른 책이다. 보통사람들의진심 담긴 이야기들. 그들이 사는 동안의 행복의 이야기를 순수하게 담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 바로 민낯이라는이름으로 재 탄생하게 된 것이다.

나는 가면을 벗고 화장을 깨끗이 지워낸민낯의 보통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들과 맨얼굴을 마주하고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삶을 통해 지나온 내 삶도 뒤돌아보고 싶었다. -본문

사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은 화장기사였던 이해로씨의 이야기를 보고 싶었기때문이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그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몰랐던 화장기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죽음과 마주하고 있기에 그리고 여자로서는 그다지 선택하고 싶은 삶은 아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과 걱정으로 그리고 한 켠으로는 쉬이 만날 수 없는 사람이자 여자의 삶의 호기심으로 그녀를 보고 싶었던것이다.

매일 죽음을 마주하고 있지만 딱히 죽음에 대한 뚜렷한 인식을 가지고 있지않은 그녀에게 죽음은 그저 낮과 밤과 같은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타협하기보다는 외롭게 지내는 것이낫다며 담담히 말하는 그녀의 삶은 아직 나보다는 어리지만 훨씬 깊고 험난했던 인생길을 걸어 왔다. 하지만누구를 탓하기 보다는 담담히 이야기 하는 그녀를 보면서 오히려 더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고 저자가 인터뷰를 하는 내내 생각했듯이 그저 말 없이 꼬옥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수고했다, 고생했다라는 말과함께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세상에나랑 꼭 닮은 사람이 한 명 살고 있었으면 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치유해주지 못하는 건 나를 모르기때문이고 나와 달라서니까, 아주 똑같은 사람을 만나면 서로 치유해줄 수 있지 않을까." -본문

책의 단면의 다양한 색깔처럼이나 다양한 삶이 존재하고 있다. 아마 살면서 마주할 기회조차 없을 사람들이었지만 저자덕분에 나는 편하게 이 곳에서 그들의 인터뷰에 함께 동참할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게 되었던<어둠 속의대화>운영자인 송영희씨와의 인터뷰에서 그간 가지고 있었던 선행에 대한편견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타인을 위한 선의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한 선의인지에대해 이제서야 생각해 본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냐면, 도움을 받을 상대의 의사를 묻지도 않아요. 시각 장애인의 길을 가다헤매거나 하면 대부분 사람들이 일단 잡아끌거나 소리를 질러요. 어느쪽으로 가라고, 온 동네방네 사람들이 다 알게.

지금 이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할까 아닐까를 고민하고 묻고 손을 내밀어야하는데 그냥 자기 상식으로는 '나는 이 사람한테 도움을 줘야 돼'하면서다가오는 거죠. -본문

무엇보다 가장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는 맨 마지막 인터뷰 대상. 바로 나였다. 저자는 책을 통해서 나를 인터뷰하고 있었고 앞의 인터뷰자들의이야기를 보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질문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또 대답하고 있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만 같던 행복에 대하여 과연 우리는 사는 동안 누군가에게행복하세요? 라는 질문을 하고 받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사람들의수 만큼이나 각기 각자의 삶과 행복이 있는 만큼 일관된 행복이 아닌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나의 행복에 대해 아무 꾸밈없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이 책의 무게가 가볍지만따스하게 느껴진다.

나는 위대한 영혼 따위는 존재하지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위대한 삶이 있다고 믿는다. '어떤위대한 영혼을 지닌 이도 혼자 있을 때는 코딱지를 판다'는 주지의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영혼의 무게보다삶의 무게를 더 믿는다. 그래서 나는 세상 사람들이 평범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삶이라는것의 위대한 흔적을 찾아보고자 했다.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허명을 얻은 유명인만이 철학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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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편지』 / 박시호저

독서 기간 : 2013.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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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와 함께한 인생여행
미치 앨봄 지음, 윤정숙 옮김 / 21세기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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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알람 소리로 눈을 뜨는 순간부터 시간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정해져 있는 패턴대로 정해진 시간 내에 빠르게 준비를 하고 얼마 후 도착예정이라는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한다. 그렇게 도착한 책상 위 모니터를 마주하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 순간 시간의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시간의 틀 안에 갇혀 사는 우리는 그 안에서도 더 정확한 시간을 알기 위해서 매 순간 노력하고 또 확인하고 있다. 대체 시간이 무엇이길래. 눈금을 지나치는 막대기의 움직임에 따라 우리는 왜 이토록 종종거리며 혹은 때론 지루해하며 시간에 목매고 있는 걸일까.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책의 제목이 도르와 함께한 인생여행이 아닌 시간여행이라고만 생각했다. the time keeper라는 원제를 본 잔상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어찌되었건 세 사람의 삶 안에서 각자의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인생을 조명하고 있으니 인생여행은 이 소설 속 주인공 세 사람을 모두 포괄하는 지칭이었다.

어느 날 햇빛 아래 막대기의 그림자 길이가 조금씩 달라진 다는 것을 발견한 도르는 그 때부터 줄곧 그림자가 의미하는 것들을 분석하게 된다. 만약 도르가 이처럼 시간에 대해 알고자 하는 호기심을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우리에게 시간이라는 숫자의 압박을 모르고 살 수도 있었을까? 매일 아침 눈뜨며 비몽사몽간에 이불을 걷어차고 나와 쫓기듯 하루를 시작하고 그 안에서 아등바등 하고 있지 않을 수 있었을까?

도르는 그렇게 형벌을 받고 있었다.

바로 그가 처음으로 알아낸 그것, 인간을 존재의 빛으로부터 더 멀리, 강박의 어둠으로 더 깊이 밀어내는 그것을 더 많이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애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형벌.

그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시간은 그를 제외한 모두에게 너무나 빨리 흘러가는 것 같았다. –본문

.도르 덕분인지 우리는 항상 시간이 가르키는 숫자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렇가면 도르가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시간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던 그는 자신의 아내를 위해 잠시 시간을 멈추고자 했다. 그는 병든 아내를 허무하게 보낼 수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에게 거스를 수 없는 시간에 반하여 인위적인 힘을 바라고자 했던 그는 오히려 그 자신만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고서 시간을 원하는 수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동굴 안에 혼자 남아 듣는 형벌을 받게 된다. 아내의 생사조차 알 수 없이, 도르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허락된 그 시간의 흐름을 그는 수 많은 사람들의 시간에 대한 욕망에 대한 바람만을 들으며 지내게 된다.

하늘과 땅이 맞닿는 순간 그의 형벌도 끝나게 될 것이라 했다. 억겁의 시간이 흘러 드디어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는 그 찰나 도르에게 인간과 같이 시간이 흐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임무가 하나 주어진다. 바로 또 한 번의 인생을그만 끝내주세요의 두 주인공을 찾아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에 대한 의미를 알려주는 것이다.

은하철도 999의 철이는 메탈과 같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했다. 그렇게 되면 시간에 구애 없이 엄마를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진시황 또한 불로불사를 원했고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꿈꿨을 영생을 몸소 체험했던 도르는 그러한 불가능을 꿈꾸는 인간을 대변하는 빅토르에게 현재를 즉시 하지 않던 자신의 후회에 대해 전해주고 있다.

그와는 반대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모두 버리려 하는 세라. 그녀는 그녀 앞에 엎마나 아름다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하고 오로지 현재의 자신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만 생각하고 있다.

신이 사람의 수명을 정해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죠?”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도록.” –본문

너무 많은 시간을 바란 빅토르와 너무 적은 시간 만을 원하는 세라. 그리고 그들이 바라는 시간의 길이보다도 아내가 아파했던 그 순간, 그 때로 돌아가 아내의 두 손을 꼭 잡아 주고 싶은 도르와의 여정을 통해 우리가 사는 동안 시간의 굴레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이 세 명의 인생으로 말미암아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인생을 사는 동안 실수하거나 잘못된 길에 들어설 때 즈음 도르와 같은 시간 지배자가 나타나 당신이 이 길을 가게 된다면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를 알려준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일생이기에 모두 처음 가는 그 길이기에 버둥거릴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라나 빅토르처럼 우리 스스로 어찌 할 수 없는 것들을 통제하기 위해 오늘을 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얼마만큼의 사탕이 우리의 바구니에 남아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태어나자마자 우리는 모두 사탕바구니를 안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 안에 얼마만큼의 사탕이 들어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누구에게나 동일한 시간이 지금 흐르고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 인간이 된 도르는 시간을 멈추기 위해 탑을 향해 뛰어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아내 곁으로 뛰어간다. 꼬옥 맞잡은 손의 온기를 통해 함께 할 수 있는 그 찰나의 행복을 깨닫는 그를 보면서, 그리고 자신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는 빅토르를 보면서, 낭떠러지라고 생각했던 그 시점부터 다시 일어서는 세라를 보면서 나는 지금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바라건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혹은 더디게 지나가기를 이라는 바람은 여전히 바람일 뿐이고 현재는 나의 바람과는 무관하게 흘러가고 있으니 말이다.

인간이 능률을 위해, 시간을 채우기 위해 하는 모든 것? 그건 만족을 주지 않아요. 오히려 허기져서 더 많은 일을 하게 하죠. 인간은 현재의 자기에게 집착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시간을 가지지는 못합니다.”

그는 빅토르의 눈에서 손을 내렸다.

삶은 재는 것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분명히 알아요. 내가 그 일을 한 최초의 인간이니까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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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또르 씨의 시간 여행』 / 프랑수와 를로르 저

 

독서 기간 : 2013.05.07~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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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너무 익숙해서 - 느리게 여행하기
서제유 지음 / 미디어윌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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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엽서 속 사진들을 보면 아, 이곳에 가보고 싶다 라는 생각에 하나 둘씩 모으기 시작했었다. 단 몇 백 원으로 그 곳의 풍경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사곤 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모으기도 귀찮아서 잘 사지는 않는다만 어찌되었건 언제라도 그런 풍경에 여전히 눈길이 옮겨지긴 한다.

서른 중반을 향해 다다르고 있던 회사 동료였던 언니가 어느 날 사표를 내고서는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다. 언니, 다녀오면 나중에 취업은 어떡하려고 또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 잠깐만 다녀오는 여행도 괜찮잖아, 굳이 사표를 내고 가야겠어? 라며 달래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사표 내는 것에 대해 만류해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언니는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홀연히 떠났었다.

매일 정신 없이 출근길에 오를 때만 그 언니가 생각난다. 언니는 그렇게 떠나갔는데 왜 나는 언제나 바라고만 있고 실천을 못하는 것일까? 에 대해 고민하다 어느 새 회사 모니터에 앉아 있다.

여기 이 책 속의 주인공이 내가 갖고 싶어 하는 2가지를 모두 손에 넣은 사람이다. 언제든지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어떻게든 떠나는 사람. 그리고 그 곳에서 엽서 속 예쁜 사진들과 같이 자신의 카메라에 담아오는 사람.

실상 책은 한 시간 남짓이면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책이었지만 그 안에는 그녀가 떠나기 전부터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무한한 시간과 상념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계속해서 다시 들쳐보게 된다.

이렇게 홀연히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라는 생각과 어떻게 그렇게 떠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들에게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레임만 있을 것 같은 그들의 속내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그것들을 이겨내고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면 나는 여전히 그 한계에 부딪쳐서 오늘 여기서 맴돌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나도 겁니다.

대책 없이 혼자 떠나는 여행이 사실은 나도 겁이나.

이름조차 낯선 나라로 아무 준비도 없이 비행기 표만 구해서 떠나는 일이 나도 겁이 나.

거미줄 쳐진 버스 좌석, 이름도 알 수 없는 도시를 밤새도록 달리는 일이 사실은 나도 겁이 나.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 사이에 홀로 서있는 일이 사실은 나도 겁이 나. 아닌 척하는 것뿐이야. –본문

그렇게 다녀올게, 라고 시작된 그녀의 여행은 빈번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계속 되고 있었다. 사진 속에 찍힌 날짜들을 보며, 그 안의 풍경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 새 사진이 아닌 실제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또 마음을 뒤 흔든다.

여행을 시작하는 주문

Open the door.

Open your eyes.

Open your mind. –본문

이 단순한 주문을 실행하기가 왜 이토록 힘들기만 한 것인지. 오늘도 책으로만 위로 삼으며 부럽다, 를 연발하고 있는 내 모습도 참 꾸준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되었건 비슷한 또래임에도 그녀는 하고 나는 그녀의 책을 보면서 욕망만 꿈틀거리고 있었다. 오늘의 현실을 매일 바랐던 어린 시절의 소망이 얼마나 무서운 주문이었는지, 한 번 발을 들여놓고 나면 다시 또 다른 세상으로 나가기엔 보이지 않는 족쇄를 풀기 힘들다는 사실은 다시금 깨닫고 있다.

엄마의 커다란 뾰족구두를 신고서 마냥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그렇게 갖고 싶었던 내 발에 꼭 맞는 뾰족구두를 이제 갖게 되었는데

엄마의 커다란 뾰족구두를 신었을 때보다 지금의 나는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본문

매일 이렇게 허덕이듯 쫓기며 하루를 보내면서도 언젠가는 이러한 삶에 대한 보상이 딱 하니 드리울테니 조금만 참아야지 하며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작은 기쁨과 행복을 포기한다면 과연 그것이 진정한 행복으로의 길로 가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치열하게 살 때는 살더라도 가끔은 한 박자 쉼표를 찍고 다시 나아갈 수 있는, 잠시 동안은 나를 위한 휴식을 갖고 다시 돌아오기 위한 여행을 준비해 봐야겠다. 열정도 상처를 낸단다. 이유 없이 뜨거운 것들의 필요 없는 유혹을 제대로 관철해 보아야겠다.

우린 항상 열정을 좋은 말들로만 포장하지만

열정이란 이름으로 삶의 불균형을 애써 감추고 있지는 않은지 뒤돌아볼 줄도 알아야 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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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외로움에게』 / 김남희 저

 

독서 기간 : 2013.05.07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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