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기 전에 제목만을 보고생각했다.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면, 분명 저자는 딸'이겠구나, 라고 말이다. 딸과엄마는 친구같이 좋을 땐 마냥 좋지만 또 다툴 때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다투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 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고 있는 그들의모습을 매일 재현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마냥 저자는 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저자는 아들이자 남자였다. 아들이 쓰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그 누구의 엄마든 자식은 딸이든 아들이든 동일함에도 나는 엄마하면 딸, 아빠하면 아들이라는그 조합만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생각한 두 번째 오류는 아들이 엄마에 대해 썼다면 왠지모르게 딱딱하면서도 살갑지 않은 느낌일 것만 같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나의 생각과 엄마에 대해 쓰는 문체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그의 이야기가 무관심한 듯한 텁텁한 글이 아니라 무던한 듯 하지만 그 안에 또 다른 깊이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가 엄마에 대해 생각하고 쓰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그와 같이 글을 쓰고싶어졌다. 문체 덕분에 종종 남자가 아닐까, 라는 오해를받는 여자임에도 나는 이 저자의 문제를 똑 닮고 싶어졌다.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의 표현이 오히려더 뜨겁게 다가온다. 딸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작은 것들로 소소히 싸우고 또 웃고 떠드는 일이 많다. 장난 치며 웃기도 하고 때론 아프면서도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엄마와 싸우기도 하고, 그런 엄마를 보며 속상해 하면서 울기도 하는. 그것이 딸과 엄마의모습이라면 저자의 이야기는 딸의 입장에서 보면 왜 이렇게 차가워, 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디가 아프대? 라는 질문에 얼버무리는 엄마의 대답을 보며 답답하듯이 진단서를 꺼내 들고 그안에서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마주 했다면, 나는 아마 신경질부터 냈을지 모른다. 그러게 왜 이제서야 병원에왔어 아니면 그렇게 힘들면 말을 하던가 왜 이렇게 될 때까지 혼자 있었어, 라며 엄마를 쏘아 붙였을것이다. 그러면서도 아마 매일을 엄마를 이렇게 외롭게 둔 내 자신을 비관하며 억지로 눈물을 참고 있을것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어떤 뚜렷한 형태의 반응이없이 그저 조용히 엄마의 밥 위에 도라지 나물을 얹어 줄 뿐이다. 그의 생각을 몰랐다면, 그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봤다면 나는 그에게 어쩜 이렇게 냉담할 수 있느냐며 혀를 찼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누가 부모의 아픔에 있어서 무던할 수 있겠는가. 그 발현의모습만 다를 뿐인지 아프다는 분모는 동일했다. 시간은 무정형으로 느껴졌다. 뚫고들어갈 수 없는 벽으로 막힌 기분. 우린 늘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엄마와 나를 설명하는 우연한 증후는삶의 불확실성에 대해 좀 더 현실적이 되어야 한다고 일러주고 있었다. 날은 이렇게 쌉싸름하게 온화한데, 단풍잎의 남은 빨강은 갈색으로 오그라든 지 오래였다. 곧 있으면봄이 올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멍든 것 같았다. -본문 나이가 들면서 맛있는 것이 생기면 어떻게든 집으로 가져가고 싶어졌다. 예전에는 혼자 그것을누리는 것에 행복했는데 언젠가 혼자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것이 엄마한테 미안해졌다. 그래서 요즘은 인터넷에서갑자기 뜨는 공구, 일명 조업 나가서 잡아왔다는 산지 직송물이 올라오면 매번 결제를 하고 또 집으로보내곤 한다. 소띠인 엄마는 매번 소처럼 풀만 찾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풀을 좋아하는 줄만 알았다. 그녀도 해산물이나 육류를 좋아했지만, 매번 자식들과 남편에게 양보하는그 모습을 보고서는 그것이 엄마의 식성 탓 인줄만 알았다. 엄마가 모르는 시공에서 생선된 음식, 음식이주는 삶의 이미지는 도 그렇게 기름 엿처럼 충만하거만, 그 모든 걸 언제나 나만 누렸다. 엄마를 위한 식단은 언제나 '다음에'라는 공허한 품사 속에서 차려져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따금 별식을사 들고 집에 가면 엄마는 입맛에 맛건 아니건 반색하기 바빴다-본문 똑같은 자식이지만 아들의 관점에서 본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또 다른 느낌을 배워간다. 같지만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그의 이야기는 툭툭 던지는 듯 하지만 깊이가 느껴진다. 엉엉 울어야만 슬픔이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담담함 속에서 내뱉는 독백이 오히려 더 울리게 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이야기와 문체가 너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