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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 살기 위한 기본적인 요소인 의식주. 어느 정도의 삶이 정착된 오늘날에는 의식주의 의미가 필수적인 요소라기 보다는 얼마나 더 삶을 풍족하게 해주느냐의 척도로서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좋은 곳에 살고 더 좋은 음식들을 먹고.
앵겔지수는 무의미해지고 옷은 외부로부터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도구로 변화되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자신의 소득 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평가 기준으로 변모되었다.
그래서인지 그다지 건축물에 대한 흥미, 관심이 별로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미친 듯이 오르기만 하는 집값과 전세 대란이라는 말만으로 집을 소유한다는 것의 행위 자체는 너무도 어려운 것으로만 이해되었으며 간혹 특이한 인테리어나 눈에 띄는 것들을 보며 잠깐 눈길을 주기는 했으나 단 한 번도 저 건물이 어떻게 세워졌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매일 들락거리는 회사 건물이며 아파트 맨 꼭대기의 집이며, 왕복하기에 건너야만 하는 다리며 그 어느 것도 의미 있게 그리고 눈 여겨보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라는 고민을 해보지 않았다. 그만큼 사는 게 팍팍해서 그래, 라고 핑계 대며 이야기 하겠지만 어찌되었건 인간으로 살기 위해 충족시켜주는 것들 중 하나면 중요할 법도 한대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쩜 이렇게 무심했던 것일까? 라는 반문을 하게 된다.
근본적으로 건물이든 구조물이든 오늘처럼 내일도 그 자리에 있을 테고 그렇기에 내가 그것들에 대해 모른다고 한들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하루하루 보내기에 급급한 내게는 이런 것들이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책을 선택한 것은 그렇게 내 주변에 곳곳이 있는 것들을 너무 모르는 것도 무심을 넘어 무섭기까지 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책에서 인간의 필수적인 3요소인 의식주 중에서 인간 문명의 하드웨어적인 발전인 ‘주’의 발전을 구조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본문
너무 익숙해서 도통 관심이 없었던 것들. 얼마 전 한강 주변을 거닐면서 마주한 거대한 다리의 아래에 서서 어쩜 이런 걸 만들 수 있었을까? 라는 탄식을 머금은 지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주변에 널린 세잎클로버 중에 네잎클로버를 찾는데 열중하는 것처럼 주변에 있는 건축물들에 대해 그 전에는 질문조차 하지 않았던 방면들에 대해 질문과 답변의 형태로, 모든 것을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 알려 주듯 하나씩 관심거리를 던지며 주의를 집중시키게 한다. 다만 주로 다리에 치우쳐져 있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일부라도 차근차근 배워나간다는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과학 교과서의 내용인 작용, 반작용에 관한 부분을 마주하게 된다. 사실 학창시절에도 이 부분이 도통 이해되지 않아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부분이라 배우는 내내 괴로웠고 다행이 지금 하는 일이 과학과는 그다지 연관 없는 일이라 다시 마주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바로 이 책에서 딱 마주하게 되었다. 진정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처럼 작용, 반작용을 넘어 우력을 이해하고 평형상태를 이해해야만 기본적인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기에 10여년 전보다도 더 열심히, 더 필사적으로 이해하려 아등바등하고 있었다.
우력은 작용과 반작용이 일직선 상에 있지 않아서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생기는 힘이야. 우력의 크기는 작용과 반작용 사이의 거리에 작용을 곱한 값과 같단다. –본문
무엇보다도 직사각형 판을 세우기 위해서 단 3개의 다리만 있으면, 그러니까 3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탁자 위에 그 무엇도 올리지 않고 그 자신만을 지탱하려 한다면, 딱 3개의 다리면 안정적으로 서있을 수 있다고 한다.
네모난 탁자의 다리는 언제나 4개이기에 이 책 속의 운동축과 평형유지 기반에 대한 설명을 보면서 이론상 가능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왠지 계속해서 이게 될까? 하는 의구심 속에서 이 모든 것이 중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배우게 된다.
또한 고층빌딩의 설계에 있어서 높이가 높으니까 튼튼하게만, 지으면 되겠다는 단순한 생각과는 달리 그 안에는 정교한 과학이 숨어 있었다. 견고하면서도 변형되지 않은 고층빌딩을 세우기 위해서는 중심에 기둥을 세우거나 외관을 튼튼하게 하거나 구조물을 이용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탑’ 자체를 건물의 척추처럼 활용할 수 있단다. 이 같은 건물의 척추를 두고 중심 기둥이라고 해. 바로 이 기둥 안에 층계와 승강기, 위생시설 등을 설치하지. 유럽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중심 기둥을 콘트리트 판으로 만들어. 반면, 미국에서는 대체로 금속 트러스를 사용해 만든단다. –본문
어린 아이가 처음 건물의 기반에 대해 배우듯이 하나하나 차분히 설명해 주는 형식이기에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이해되기는 하나 그림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건물 실제의 모습과 함께 그리고 조금 더 자세한 그림이나 도면 설명이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혀 관심조차 가지지 않던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이끌어주었기에 그 하나만으로도 즐거운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