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의 구조 이야기 - 과학 원리로 재밌게 풀어 본
미셸 프로보스트.다비드 아타 지음, 필리프 드 케메테르 그림, 김수진 옮김, 허재혁 감수 / 그린북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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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인간으로서 살기 위한 기본적인 요소인 의식주. 어느 정도의 삶이 정착된 오늘날에는 의식주의 의미가 필수적인 요소라기 보다는 얼마나 더 삶을 풍족하게 해주느냐의 척도로서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좋은 곳에 살고 더 좋은 음식들을 먹고.

앵겔지수는 무의미해지고 옷은 외부로부터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도구로 변화되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자신의 소득 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평가 기준으로 변모되었다.

 그래서인지 그다지 건축물에 대한 흥미, 관심이 별로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미친 듯이 오르기만 하는 집값과 전세 대란이라는 말만으로 집을 소유한다는 것의 행위 자체는 너무도 어려운 것으로만 이해되었으며 간혹 특이한 인테리어나 눈에 띄는 것들을 보며 잠깐 눈길을 주기는 했으나 단 한 번도 저 건물이 어떻게 세워졌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매일 들락거리는 회사 건물이며 아파트 맨 꼭대기의 집이며, 왕복하기에 건너야만 하는 다리며 그 어느 것도 의미 있게 그리고 눈 여겨보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라는 고민을 해보지 않았다. 그만큼 사는 게 팍팍해서 그래, 라고 핑계 대며 이야기 하겠지만 어찌되었건 인간으로 살기 위해 충족시켜주는 것들 중 하나면 중요할 법도 한대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쩜 이렇게 무심했던 것일까? 라는 반문을 하게 된다.

근본적으로 건물이든 구조물이든 오늘처럼 내일도 그 자리에 있을 테고 그렇기에 내가 그것들에 대해 모른다고 한들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하루하루 보내기에 급급한 내게는 이런 것들이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책을 선택한 것은 그렇게 내 주변에 곳곳이 있는 것들을 너무 모르는 것도 무심을 넘어 무섭기까지 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책에서 인간의 필수적인 3요소인 의식주 중에서 인간 문명의 하드웨어적인 발전인 의 발전을 구조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본문

 너무 익숙해서 도통 관심이 없었던 것들. 얼마 전 한강 주변을 거닐면서 마주한 거대한 다리의 아래에 서서 어쩜 이런 걸 만들 수 있었을까? 라는 탄식을 머금은 지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주변에 널린 세잎클로버 중에 네잎클로버를 찾는데 열중하는 것처럼 주변에 있는 건축물들에 대해 그 전에는 질문조차 하지 않았던 방면들에 대해 질문과 답변의 형태로, 모든 것을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 알려 주듯 하나씩 관심거리를 던지며 주의를 집중시키게 한다. 다만 주로 다리에 치우쳐져 있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일부라도 차근차근 배워나간다는 마음으로 읽어 내려갔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웠던 과학 교과서의 내용인 작용, 반작용에 관한 부분을 마주하게 된다. 사실 학창시절에도 이 부분이 도통 이해되지 않아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부분이라 배우는 내내 괴로웠고 다행이 지금 하는 일이 과학과는 그다지 연관 없는 일이라 다시 마주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바로 이 책에서 딱 마주하게 되었다. 진정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처럼 작용, 반작용을 넘어 우력을 이해하고 평형상태를 이해해야만 기본적인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기에 10여년 전보다도 더 열심히, 더 필사적으로 이해하려 아등바등하고 있었다.

 우력은 작용과 반작용이 일직선 상에 있지 않아서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생기는 힘이야. 우력의 크기는 작용과 반작용 사이의 거리에 작용을 곱한 값과 같단다. –본문

 무엇보다도 직사각형 판을 세우기 위해서 단 3개의 다리만 있으면, 그러니까 3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탁자 위에 그 무엇도 올리지 않고 그 자신만을 지탱하려 한다면, 3개의 다리면 안정적으로 서있을 수 있다고 한다.

 네모난 탁자의 다리는 언제나 4개이기에 이 책 속의 운동축과 평형유지 기반에 대한 설명을 보면서 이론상 가능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왠지 계속해서 이게 될까? 하는 의구심 속에서 이 모든 것이 중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배우게 된다.

 또한 고층빌딩의 설계에 있어서 높이가 높으니까 튼튼하게만, 지으면 되겠다는 단순한 생각과는 달리 그 안에는 정교한 과학이 숨어 있었다. 견고하면서도 변형되지 않은 고층빌딩을 세우기 위해서는 중심에 기둥을 세우거나 외관을 튼튼하게 하거나 구조물을 이용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자체를 건물의 척추처럼 활용할 수 있단다. 이 같은 건물의 척추를 두고 중심 기둥이라고 해. 바로 이 기둥 안에 층계와 승강기, 위생시설 등을 설치하지. 유럽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중심 기둥을 콘트리트 판으로 만들어. 반면, 미국에서는 대체로 금속 트러스를 사용해 만든단다. –본문

 어린 아이가 처음 건물의 기반에 대해 배우듯이 하나하나 차분히 설명해 주는 형식이기에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이해되기는 하나 그림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건물 실제의 모습과 함께 그리고 조금 더 자세한 그림이나 도면 설명이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혀 관심조차 가지지 않던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이끌어주었기에 그 하나만으로도 즐거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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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건축물 / 데이비드 맥컬레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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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가운데서 초한지를 읽다 - 전쟁같은 삶을 받아낸 천 개의 시선
신동준 지음 / 왕의서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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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부끄러운 이야기이겠지만, 나에게는 삼국지는 그나마 익숙한 것일지 모르나 초한지는 낯설기도 하고 그 등장인물들 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이 책을 만나기 이전까지의 모습이었다. 그나마 초한지를 기반으로 했다는 샐러리맨 초한지라는 드라마를 보고서는 동생이 꼭 한 번 책이든, 안되면 드라마라도 보라는 조언을 통해서 이 책을 골라 집기는 했으나 분량이 500페이지 남짓이라 그 두께만으로 일단 압도되어 읽을 수 있을까, 라고 고민하며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다.

 삼국지 이전 시대의 초한지가 오늘날의 드라마로도 재현되고 또 이렇게 책으로 나오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고전에 대한 끝없는 찬양에 말미암아 그 이유를 생각해보려 하지만 이미 몇 천년 전의 이야기가 현재까지도 재현 되는 이유. 아마도 그것은 그 당시나 현재나 끊임없이 전쟁 위에 우리가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창과 칼을 휘두르며 적장을 누비는 모습은 아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정보나 마케팅 등 또 다른 계략으로 우리는 서로의 목을 겨누고 있기에 무기만 달라졌을 뿐 전쟁터와 같은 배경은 달라지지 않았기에 여전히 그 당시의 전략과 행태에 대해 참고할 수 있고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한 것이다.

 기록상 단 7년의 시간이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그 이유가 이 책 안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재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정강산 빨치산 혁명기지운운하며 이를 미화하고 있으나, 당시의 관련 기록을 종합해보면 아무리 잘 봐줘도 마오쩌둥은 토비 수준에 불과했다. 후술하는 바와 같이 유방의 경우가 꼭 이와 같았다. 그가 천하는 거머쥔 뒤 사가들을 여러 수사를 동원해 이를 은근슬쩍 덮어버렸다. –본문

 이문열의 초한지는 10권까지 그 내용들을 세세히 집필하고 있는 반면 이 책은 단 한 권으로서 그 당시의 이야기 중에서 현재와 중첩될 만한 이야기를 끄집어 내어 함께 설명하고 있기에 원본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읽게 되었다.

 요새 사회면이며 경제면이며 매일 시끄러운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새로운 정계가 출범하면서 그 진통이 없을 리 만무하다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진통에 관한 기사들이 최소화 됐으면 하는 것이 한 표의 소중한 투표를 행사한 유권자이자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의 바람이다.

천하를 발 아래에 두고 있던 한왕과 초왕의 흥망은 단지 한 사람의 선택과 리더십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을 때 정저지와가 되기 싶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패망으로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초왕의 선택을 보며 다시 한 번 가슴을 쓸어 리게 된다.  

 한 사람의 힘으로는 여러 사람의 힘을 대적할 수 없고, 한 사람의 지혜로는 만물의 이치를 다 알 수 없다. 군주 한 사람의 힘과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온 나라 사람의 힘과 지혜를 이용하는 것만 못하다. 군주 한 사람의 지혜와 힘으로 무리를 대적하면 늘 무리를 이룬 쪽이 이기게 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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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람을 얻는가』 / 신상이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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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꽃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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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면서 때론 책을 읽으면서 그 전에는 절대 무너질 수 없다 생각했던 도덕적인 관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신념들이 점점 유연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것은 옳은 것이고 저것은 옳지 못한 것이야, 라며 세상을 흑과 백으로만 나누었다면 점차 그 경계가 회색조로 물들어 가는 느낌이다.

 

간통하면, 나쁘다, 옳지 않다, 더럽다 등의 단어의 조합만 읊조리는 내게 이 소설은 묻고 있다. 이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나서 여전히 그들의 이야기가, 이 간통이 더럽다고만 치부할 수 있을 것이냐고 말이다.

 조선 양반가의 간통사건이라는 한 줄의 설명보다도 그 한 권이 이야기는 아프다아름답다가 더 크게 다가왔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심장을 갈가리 찢는 것만 같았다. 문을 박차고 나와 마루 끝에 서자 칠흑빛 밤하늘이 와락 달려들었다. 애초에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는 하늘이었다. 움켜쥘 수 없는 물이었다. 일생에 단 한번뿐인 사랑은 부정하고 도망친대도 벗어날 수 없었다. 늪이었다. 덫이었다. 아픈 환희, 거룩한 질곡이었다. –본문

 조선시대라는 틀 안에서, 당대의 규범이라는 이름 하에 녹주와 조서로는 허락되지 않은 사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린 계집아이에게 처음으로 이름을 불러주었던 소년은 장난을 담아 그 마음을 전하였으니 사랑에 있어 우선순위가 통했더라면 그들은 함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숭유억불정책과 신분제도, 그리고 남녀차별이라는 장벽 안에서 녹주와 조서로는 간통이외의 이름으로는 불리 울 수 없는 운명에 놓여있었다. 그 누가 그녀의 사랑에 돌팔매질을 하고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현대든 당시든 간통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설명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그 단어에 동일하게 함께 치부되는 것들과는 완연히 다른, 오롯이 사랑을 담고 있었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의 난폭함과 사랑이 두려운 사람들의 시기를 찾아볼 수 없는, 순정한 투명이었다. 그 눈길에 기억이 되살아났다.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회오리바람의 중심에 선 듯 어지러운 채 짐짓 고요했다. 왈칵 치밀어 오르는 울음기와 함께 그녀는 끝끝내 부인했던 죄를 비로소 자복하고 싶었다. –본문

  단 한 순간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누릴 수 없었던 그 저릿저릿한 사랑 속에, 역사 속 몇 줄 기록되지 않았던 그 때의 아스라한 추억이 이 책을 통해 생생히 살아나고 있다. 남들에게는 죄였으나 그들에게는 추억이었던 사랑이 나에게는 저릿한 이야기이자 내가 가진 틀의 경계를 흐릿하게 혹은 좀 더 확장해 주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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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 매창 / 윤지강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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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알렉상드르 졸리앙 지음, 성귀수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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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지나가다 띠지 속의 살포시 웃고 있는 그의 얼굴만 보았다면 그리고 제목을 한 번 읽고 내려갔다면 처세술이나 심리에 관한 이야기려니 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강렬한 색채의 책 표지 때문에 눈길이 끌렸던 것을 사실이었으나 그다지 호감을 끌만한 것은 아니었기에 우연치 않게 읽게 된 책 소개글이 아니었다면 영영 그를 못 만났을 수도 있다. 무엇이든 접해보지 않고서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법이지만, 여전히 책을 고르는데 편협한 시각으로 점철된 내게 그 우연한 스침을 통해 읽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해준 그 찰나가 참 고마우니 말이다.

그는 그 스스로 자신의 직업을 철학자, 뇌성마비인, 아버지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아버지라는 지위와 철학자로서의 삶은 자신의 선택이나 의지에 의해서 이룰 수 있는 것들이기에 그리고 수 많은 아버지와 나름의 철학자들은 주변에도 산재해 있으니까, 보통의 이야기이겠구나 했던 찰나 뇌성마비라는 단어가 불현듯 도드라져 보였다.

그제서야 제목에 담겨 있던, 그저 말로만이 아닌 그가 진정으로 그의 삶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이것이었구나, 라는 생각에 꼭 읽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의 책을 만날 수 있었으며 읽고 나서는 참 편안해지면서도 또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뭐랄까, 정말 그 모든 것들을 넘어선 후 꼭 해탈한 사람의 어투 같은 느낌이다. 화려한 수식어나 별 다른 꾸밈이 없지만 담백한 그 문장들이 진한 울림을 전달해 주고 또 생각만큼 쉽게 쉽게 읽히지 않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놓지 않고 책에서 눈을 땔 수 없게 한다.

내 아내는 내 아내가 아니다. 바로 그래서 나는 이를 내 아내라고 부른다.” 제 아내가 실제로 제가 생각하는 그대로의 존재는 아니라는 얘깁니다. 만약 제가 내 아내는 바로 이런 존재다라고 말한다면, 저는 그녀에게 집착하는 것이요, 몇몇 꼬리표로 가두는 것이며, 결국엔 그녀를 죽이는 꼴입니다. 세상의 꼬리표들이 사람과 사물을 가둔다는 걸, 즉 죽여버린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 꼬리표를 올바로 사용할 줄 알게 됩니다. –본문

아마 금강경을 혼자 읽었다면, 나는 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하면서 그 문장에 잡혀서 계속 고민하고만 있었을 것이다. 이미 그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 그런지 그는 참 쉬우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그리고 그가 어떻게 이것들을 이해했는지에 대해 담담히 고백하면서 그 과정을 쉬이 알려주고 있다.

장애를 안고 있던 그는,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에 대한 원망의 시간도 보냈을 것이다. 끊임없는 원망과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에 빠져 그 안에서만 허우적거리고만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가 금강경을 읽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자신의 장애를 훌훌 털어놓고 그것에 대한 큰 의미를 두기 보다는 말 그대로 툭 내려놓고 있다. 이는 자신이 처한 상태에 대한 외면이 아닌 오히려 또렷이 그것을 즉시하고 서야 할 수 있는, 알고는 있으나 쉬이 행동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특히나 내가 그였다면 절대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일들을 그는 이미 해냈으며 그래서 오늘 이 책을 통해 담담히 이야기 하고 있다.

뇌성마비로 인해 오랜 시절 요양원에서 머물러야만 했다는 그에 대한 소개 글 때문에 읽게 되었으나 읽는 동안에 점점 그의 장애가 도드라지기 보다는 오히려 옅어지다 못해 그 흔적들이 모두 사라진 느낌이다. 오히려 그의 앞에 서면 내가 더 문제가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니 말이다.

원래도 공상이 많긴 했지만, 작년에 발생한 교통사고 이후 망상이 더욱 심해졌다. 잘 달리고 있는 버스 안에 있어도 어느 새 갑자기 사고가 발생할 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젖어 있고 괜한 상상의 나래는 언제나 공포로 마무리 되곤 한다. 그런 내 모습을 알고라도 있었다는 듯이 그는 명상에 대해 권하고 있다. 한 마리의 새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파랗게 드리워진 하늘을 봄으로써 숨을 고르라는 것이다.

명상 수행이란 텅 빈 상태를 바라보는 일이며, 텅 빈 상태에서 모든 긴장을 이완시키는 거라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들을 새를 보듯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새가 지나가고 나면 항상 광막한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지요. 불안과 두려움이란 여전히 그 새들한테만 시선이 고정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은 거죠. 바로 하늘 말입니다. –본문

읽는 내내 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나는 그의 장애 때문에 이 책에 눈길을 돌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제 그는 그것들을 툴툴 털어내고 나서 이미 자유로운 몸인데도 여전히 나는 그를 장애 안에 두고 바라보고 접근하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는 아마 이렇게라도 자신을 마주한 나를 보며 그저 싱긋 한 번 웃고 넘어갈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시작이 어찌되었던 마지막에 되어서 나는 그와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어떤 것을 보더라도 담담하게 그 안에 작은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그래서 다시 웃으며 나아갈 수 있기에 든든한 친구를 곁에 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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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이 전하는 일상에서 접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특별한 지혜!

불안한 존재들을 위한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철학의 위안』. 이 책은 인기 없는 존재들, 가난한 존재들, 좌절한 존재들, 부적절한 존재들, 상심한 존재들, 어려움에 처한 존재들을 위해 철학자들의 난해한 사상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와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 등 철학자 6명을 통해 철학의 본질과 목적이 무엇인가를 묻고 답한다.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에 대한 이해와 삶의 방식에 대한 진지한 모색을 친절하게 이야기해주며, 끊임없이 위안을 구하고 행복을 찾고자 하는 우리에게 철학이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준다. 이처럼 용기, 우정, 순명, 사랑, 고통의 승화 등에 대한 철학자들의 지혜를 적용해 일상에 행복과 위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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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간 : 2013.05.13~05.14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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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에 관한 진실 - 우리가 거짓을 사랑하는 이유
볼프 슈나이더 지음, 이희승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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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거짓에 대한 진실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왠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거짓과 진실의 접목이기에 그러는 것이겠지만, 어찌되었건 왠지 함께 있으면 안될 것만 같은 것들의 조합처럼만 느껴졌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신랄하게 거짓에 대한 그 모든 것들을 밝혀내려 하고 있다. 다른 것으로 명명되고 있으나 거짓의 탈을 쓰고 있는 수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예전에 보았던 거짓말의 발명이라는 영화가 문득 떠오른다. 초반에 소개팅 자리에 나온 남녀의 모습으로 거짓이 없는 세상에 대해 여실히 보여주게 되는데 남자의 생각은 어떠할 지 몰라도 여자는 그 남자에 대해 특별한 관심은 없다. 그래서 그녀는 전화 너머로 현재 소개팅 남자가 어떠하냐는 질문에 별 관심 없다는 듯이 외모는 어떠하고 그는 자신과 더 오래 만나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그럴 생각이 없다고 이야기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소개팅 남자의 바로 앞에서 여과 없이 전해지고 있었다. 영화라는 가상 공간을 벗어나서 현실이었다면 왠만해서는 상대방을 바로 앞에 두고 이런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괜찮은 사람인 거 같아, 하며 둘러대고 있었을 것이다.

거짓말, 이란 단어를 들으면 부정적인 의미가 먼저 급습해온다. 그렇기에 우리는 거짓말을 하면 안돼, 거짓말은 나쁜 거야, 라는 어른들의 조언을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을 돌이켜 보면 거짓말을 하면 안돼, 라고 말하는 그 순간마저도 그들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과 다름 없었다. 사는 동안, 아니 길게 보지 않아도 매일 얼마나 많은 거짓으로 함께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조차 헷갈리니 말이다.

진실이 지구 상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 하나는 우리가 진실을 날조하고 은폐한다는 사실, 그리고 대다수는 진실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또 다른, 더 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진실을 특별히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실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혼동하는 것이다. –본문

얼마 전 읽었던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 에서 매일 아침 상인들은 거짓을 팔기 위해 길을 나선다고 했다. 과연 상인들이 파는 거짓은 무엇일까? 그들은 마케팅이라는 이름 하에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더욱 좋은 면을 부각시키고 감추고자 하는 부분들은 예쁘게 포장하는 기술, 바로 그것을 브레히트는 거짓을 파는 것이라 했을 것이다.

저자 역시 위와 같은 진실이 숨겨져 있는 이면이 것들 혹은 거짓의 가능성이 있지만 다른 이름으로 명명되고 있는 것들 예를 들어 예언이라든가 추측, 심지어는 선입견 등에 관해서도 망라하여 그 안에 가미된 거짓의 의미를 도출하고 있다.

완벽하게 안다라는 표현은 절대로 만족시킬 수 없는 조건이다. ‘선입견 없는이라는 표현은 차라리 말의 모순에 가깝다. ‘선입견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들의 총칭이다. 만약 우리가 끊임없이 악의적인 선입견을 범하지 않도록 긴장을 늦추지 않고 행동하기 전에 조금 깊이 생각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것으로 최선을 다한 것이다. 선입견은 바로 알고 사용한다면 삶을 편하게 만들 수 있다. –본문

넘실거리는 광고의 물결 안에서도 거짓의 유혹은 계속된다. 매주 추첨을 하는 복권들도 그렇고 어떤 것을 사지 않는 순간 괜히 내가 더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을 가중시키는 매체의 모든 것들 안에는 오도이자 거짓이 담겨 있다.

저자의 말마따나 우리는 거짓의 세상 안에서 살고 있는 것과 진배 없는 거짓과 친숙하게 지내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거짓이라는 이름이 아닌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있기에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지, 어디서나 거짓은 꿈틀거리며 존재하고 있었다. 거짓이라는 자체에 대한 심도 있는 내용 보다는 어디까지 거짓이라는 녀석이 숨어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거짓의 진화가 어디까지일지는, 그리도 또 얼마나 많은 거짓 속에서 살게 될지 가늠도 되지는 않지만 그 동안 거짓과 살아온 시간이 나쁘다기 보다는 그랬구나, 라며 유쾌하니 한 번 웃어 줄 수 있는 책이었다.

독서 기간 : 2013.05.14~05.15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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