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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때론 책을 읽으면서 그 전에는 절대 무너질 수 없다 생각했던 도덕적인 관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신념들이 점점 유연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것은 옳은 것이고 저것은 옳지 못한 것이야, 라며 세상을 흑과 백으로만 나누었다면 점차 그 경계가 회색조로 물들어 가는 느낌이다.
간통하면, 나쁘다, 옳지 않다, 더럽다 등의 단어의 조합만 읊조리는 내게 이 소설은 묻고 있다. 이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나서 여전히 그들의 이야기가, 이 간통이 더럽다고만 치부할 수 있을 것이냐고 말이다.
조선 양반가의 간통사건이라는 한 줄의 설명보다도 그 한 권이 이야기는 ‘아프다’와 ‘아름답다’가 더 크게 다가왔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심장을 갈가리 찢는 것만 같았다. 문을 박차고 나와 마루 끝에 서자 칠흑빛 밤하늘이 와락 달려들었다. 애초에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는 하늘이었다. 움켜쥘 수 없는 물이었다. 일생에 단 한번뿐인 사랑은 부정하고 도망친대도 벗어날 수 없었다. 늪이었다. 덫이었다. 아픈 환희, 거룩한 질곡이었다. –본문
조선시대라는 틀 안에서, 당대의 규범이라는 이름 하에 녹주와 조서로는 허락되지 않은 사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린 계집아이에게 처음으로 이름을 불러주었던 소년은 장난을 담아 그 마음을 전하였으니 사랑에 있어 우선순위가 통했더라면 그들은 함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숭유억불정책과 신분제도, 그리고 남녀차별이라는 장벽 안에서 녹주와 조서로는 ‘간통’ 이외의 이름으로는 불리 울 수 없는 운명에 놓여있었다. 그 누가 그녀의 사랑에 돌팔매질을 하고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현대든 당시든 간통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설명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그 단어에 동일하게 함께 치부되는 것들과는 완연히 다른, 오롯이 사랑을 담고 있었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의 난폭함과 사랑이 두려운 사람들의 시기를 찾아볼 수 없는, 순정한 투명이었다. 그 눈길에 기억이 되살아났다.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회오리바람의 중심에 선 듯 어지러운 채 짐짓 고요했다. 왈칵 치밀어 오르는 울음기와 함께 그녀는 끝끝내 부인했던 죄를 비로소 자복하고 싶었다. –본문
단 한 순간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누릴 수 없었던 그 저릿저릿한 사랑 속에, 역사 속 몇 줄 기록되지 않았던 그 때의 아스라한 추억이 이 책을 통해 생생히 살아나고 있다. 남들에게는 죄였으나 그들에게는 추억이었던 사랑이 나에게는 저릿한 이야기이자 내가 가진 틀의 경계를 흐릿하게 혹은 좀 더 확장해 주는 이야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