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름보다 ‘엄마’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엄마를 보면서인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생각이 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혼과 육아에 대해 하나씩 아른거린다.
20대에 하나는 이뤘을 것이라는 막연한 바람과는 달리 어느 새 30대로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결혼과 육아는 미지의 세계인 듯 하다. 실존하고는 있으나 다가가면 갈수록 점점 거대해지는 탓에 어른들이 말씀 하시던대로 정말 철 모를 때 가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도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여고생 시절. 문학시간에 선생님이 들려주셨던 자신의 몸 안에 또 다른 생명이 자라나는 그 진귀한 경험을 여자라면 한 번 꼭 경험해보았으면 한다는 그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일까. 어느 새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 바람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과연 내가 누군가의 엄마가 될만한 자격이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부분이나 이런 것들의 문제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내게는 그보다도 한 아이의 탄생은 말미암아 그 아이 스스로의 선택은 없이 자연스레 엄마인 나와 혈연관계를 맺게 된다. 천륜이라고도 하는 이 관계 속에서 아이는 전적으로 나를 믿고 나의 영향을 받게 되는 작은 소 우주인 셈이다.
그래, 바로 이 부분이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문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그것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 이후 엄마로서 아이에게 응당 해주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생각도 하지 못했던 셈이다.
아이의 인격이 결정된다고 하는 4세까지의 중요한 시기에 과연 나는 엄마로서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일까? 아직 혼자서도 버거운 것들이 많은데 과연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싶다는 바람은 어찌 보면 이기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수 도 없는 고민 속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던 찰나 우연찮게도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에게도 엄마라는 자격이 처음이었다는 것. 그리고 또 미약한 인간이기에 모든 것이 서투를 수 밖에 없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나 一生이라는 단 한 번의 시간이기에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엄마와 아이간 유대관계에 대해 알아본다.
하지만 엄마의 영향력은 이 가운데 어떤 것에도 견줄 수 없는 만큼 강력하다. 늘 아이에게 귀를 기울이는 유능하고 자상한 엄마는 다른 불리한 조건들을 모두 상쇄할 수 있다. 사실 아이에게 가장 분리한 조건은 이런 엄마를 두지 못한 것이다. 엄마가 해야 할 몫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아이들의 기초적인 부분에 심각한 손상이 생기게 된다.
내가 엄마에게 중점을 두는 것은, 엄마들이 더 많은 죄책감이나 책임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가 자기 역할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발달이 결정되기 때문이다.–본문
책을 읽는 순간 두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엄마의 부존재, 엄마는 존재하나 실질적으로 합당한 영향을 받지 못한 그들, 그러니까 이미 성인이 되어 버린 그들은 여전히 어린 시절의 아픔을 토로하고 엄마에 대한 원망과 애증을 안고 있었다. 저자의 말마따나 이 책이 단순히 엄마에 대한 질타를 위한, 한 인생이 뒤틀어지거나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것에 대한 모든 책임을 엄마에게만 오롯이 돌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실존하고 있는 그들의 아픔을 보노라면 엄마라는 페르조나의 무게가 심히 무거움을 넘어 압박감으로까지 느껴졌다.
계속 읽어나가야 합니다, 라고 이후의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심심한 위로의 말이자 간곡한 부탁인 이 한 줄이 이 책을 덮는 순간에 비로소 빛을 바라게 된다. 진정으로 그러했다. 초반에 겁먹지 말로 끝까지 가봐야 한다. 서투르긴 하지만 절대 될 수 없는 것이 아니지 아니기에 여기서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그녀는 생명의 나무다;
생명의 나무. 쉴 곳과 집이 되어주고 위험에서 보호해주는, 타고 올라가면 먹을 것을 얻을 수 있는, 아주 어릴 때는 무척이나 커 보이는, 바로 당신의 나무. 신비적 전통의 세계에서 모든 생명을 바로 이 생명의 나무를 중심축으로 한다. 이와 비슷하게, 엄마는 가족과 아이의 정서적인 삶의 중심축이다. –본문
끊임없이 주는 나무와 같이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베푸는 입장에 선 엄마는 그 스스로 오롯이 설 수 없으면 타인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자신의 사랑을 나눌 수가 없다. 한 순간에 엄마가 되어버린 그녀들에게 있어서 엄마와 여자 사이에서의 중간 지점은 버겁기만 한 현실일 수 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 봐도, 부모님 세대만 해도 현재의 우리보다 결혼 적령기가 훨씬 빨랐고 그렇게 그들은 결혼을 했었다.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그들이 한 순간 짠, 하고 마법처럼 완벽한 부모가 된다는 것은 동화 속의 바람일 뿐인 것이다.
부족한 내가 또 다른 인간을 키워낸 다는 것. 그것은 어미이자 부모로서 엄마가 짊어져야 하는 평생의 과제와 같은 것이다. 아이에게 엄마는 거울과 같기에 모든 것이 투영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이는 태아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시작된다는 저자의 주창을 보면서 무엇보다도 엄마의 존재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도 쉬이 배울 수 있다. 거울을 생각해보면 간단하니 말이다. 내가 웃으면 웃고 내가 울면 웃는 거울 속의 나. 그 거울이 바로 작은 미니미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엄마는 거울 역할에서 좀더 나아가 나침반 같은 역할도 해줄 수 있다. (중략) 내가 나침반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우리가 방향을 잃었을 대 그것을 가르쳐주는 것도 엄마이고, ‘정확한 방향’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사람도 엄마이기 때문이다. –본문
애착의 관계를 넘어 그 애착이 혼자 설 수 있는 안정감으로 진화할 때, 아이는 혼자 세상을 맞설 준비를 하게 된다. 뒤에 언제나 엄마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아이는 놀이터에서 뛰어 놀 수도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어른 아이가 되어서 자신의 엄마와 함께 어린 시절의 아픔들을 치유하는 이들도 있었고 그저 과거의 일이라며 닫아 놓는 경우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내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 아이의 경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깨닫는 것과 그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만이 또다시 자신과의 같은 엄마와 아이간의 문제점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에게 따뜻한 손을 내미는 것은 어른 아이들이 갖고 있는 능력인 것 같다. 이것은 어른이 되어 치유를 받음으로써 엄마의 한계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되면서 엄마를 자신의 삶에 포함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본문
오롯이 엄마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고난은 물론 엄마 역시 나와 같이 모르는 것들이 많았을 어른이었다는 점들을 상기시키며 엄마의 선택들을 비난이 아닌 이해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엄마를 이해하면서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그들 나름대로 실수가 있었을 지는 몰라도 최선을 다 했을 그 순간의 선택들에 대해 감사하면서도 조금 더 성장한 엄마의 모습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