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들이 다녀간 날이면 어김없이 듣는 질문들이 있다. 남자친구는 있니, 결혼은 언제 할거니, 지금도 늦은 것 아니니, 어서 시집을 가야 좋다니 등등. 20대를 지나 30대를 거쳐 들어서면서 서른의 여자가 대한민국에서 솔로로 세상에 있다는 것은 여전히 뭔가 문제가 있다는 듯한 눈빛들로 인해 매번 웃으며 농담조로 받아 들여야 하는 것도 고역이다.
“그게 아니고 당신들이 남자기 때문이죠. 당신들은 당신들이 당신들의 주름살을 사랑하거나, 최소한 그를 못 본 척할 여자를 언제라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걸 알고 있는 거예요.”-본문
오래된 연인들의 결별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연예계를 보더라도 혼기가 다 되어 헤어진 아름다웠던 커플을 보노라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여자 쪽을 먼저 걱정하고 있다. 좋은 시절 다 보내고 왜 하필 이제서야 헤어지는 것인가, 라는 원망과 푸념을 혼자 되뇌어 보기도 하고. 그렇게 새벽 2~3시까지 뒤척이면서 잠이 안 와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꾸뻬 씨의 시간 여행. 일전에도 꾸뻬씨의 인생여행을 읽기는 했다만, 평이한 내용이라 그냥 그러했는데, 이번에는 또 어떨까라는 생각과 혼자 이런 잠념에 빠져 있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책을 펼쳐 읽고 있다.
시간이 흘러가네, 시간이 흘러가네, 나의 여인이여
아아!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흘러가고 있네
그리고 이제 곧 우리는 칼날 아래 누워 있게 될걸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사랑도
우리가 죽으면 더 이상 새롭지 않을걸
그러니 날 사랑해주오, 당신이 아름다운 동안….. –본문
과연 시간을 만들어 낸 이는 누구일까. ‘도르와 함께한 인생 여행’에서 시간을 발견했다는 이유로 평생 타인의 시간에 대한 갈망의 소리를 들어야 했던 도르일까. 아니면 이 책에서 말하는 대로 신이 창조한 것 일까. 혹은 또 가능성으로 다른 빅뱅 이론 말미암아 탄생한 지구라는 행성이 존재할 때부터 이미 있어 와있던 것 일까.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하고 나서도 여전히 드는 생각은 왜 우리는 그 시간 안에서 매일 바둥거리며 살고 있냐는 것이다.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회사에 나와 오전 9시부터 짧게는 오후 6시, 길게는 더 많은 시간 동안 일을 하고 그 이외에 시간 동안 누군가를 만나고 자기 계발도 하고 때론 휴식도 하고. AM / PM 이라는 12시간이 2번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누가 만들어 놓은 지도 모르는, 사실 피상적으로 인간에 의해 시간이라는 것이 쪼개어져 나누어지고 그러면서 낮과 밤에 따라 하루라는 시간을 정해 놓은 뒤 1년 이라는 시간을 만들었으면서도 우리는 철저히 그 시간 위에서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저 하나의 숫자에 불과한 것이라는 수 많은 위안 속에서도 여전히 나는 오늘도 눈가의 주름에 신경 쓰고 결혼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있다. 영생을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만, 뭔가 시간이 조금 더디게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이 책 안에서 그런 것들을 얻기는 바랐다.
결론적으로 보면 이 부분에 대해 정확히 언급되어 있기는 하다. 다만 그것을 인생의 시간을 지연시키려 하면 할수록 바둥거릴 수 밖에 없다는 것과 그럼에도 우리는 바보처럼 또 그 길을 계속해서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 밤 거울을 보며 눈가를 바라보는 내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늘 젊어 보이거나 오래 사는 것, 그것이 그들이 우리에게 접근하는 이유 중에서 가장 안 좋은 이유이지요.”
그는 현세의 삶에 대한 집착은 그 자신의 종교와 꾸뻬의 종교. 그리고 거의 모든 다른 종교에서 가장 큰 속박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본문
그렇다며 그들에게 시간은 무엇일까. 과거보다 여전히 미래가 많이 남아 있는 30대의 나이에서도 벌써,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나에게 과연 저자는 무엇을 이야기 해주고 싶은 것일까. 진시황제처럼 불로장생을 꿈꾸겠다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잠시 유보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은 나에게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인생은 채워야 할 병 같은 게 아닐세. 그보다는 차라리 음악에 가깝지. 어느 순간에는 따분하게 느껴지지만 또 어느 순간에는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음악 말일세. 음악은 시간에 관한 아주 훌륭한 생각들을 제공해준다네. 어떤 음이 자네를 감동시키는 건 오직 자네가 그 이전의 음을 기억하고 그 다음의 음을 기다리기 때문일세…… 각각의 음은 어느 정도의 과거와 미래에 둘러싸여 있을 때만 그 의미를 가진다네.” –본문
“시간이 음악 같다고요?”
“맞습니다. 각각의 음은 오직 그 이전과 이후에 음이 있을 때만 의미를 갖지요. 하나의 음은 계속해서 과거에 속하는 현재와도 같은 것입니다.” –본문
어느 책의 제목과도 같이 오늘은 내 생의 가장 젊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가장 늙어 있는 나를 보듯이 한숨만 쉬고 있다. 언젠가는 지나가야 할 결혼이라는 것도 그렇고 현재 직장에서의 일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도 그렇고. 지금 나의 상황이 과연 적당한 것인지. 이 시간 정도에는 뭔가 더 달라진 내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때문에 불안과 초초함 속에서 잠도 설치고 있는 나를 안타깝다는 듯이 지그시 바라보며 채우려 하지 말고 흘러 보내라고 말하고 있다.
과연 나는 오늘 밤에는 별 다른 생각 없이 편히 잠들 수 있을까? 오늘 밤에도 꾸뻬씨를 찾지 않기를 그의 이야기를 계속 되새겨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