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혁명 - 콜럼버스가 퍼트린 문명의 맹아
사카이 노부오 지음, 노희운 옮김 / 형설라이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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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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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식탁에 매일 오르는 김치가 오늘날의 이러한 빨간 고춧가루에 버무려져 입맛을 돋구는 빛깔을 내기까지, 중국에서부터 들여온 고추가 유입되기 이전의 조선 초기만 해도 우리네 조상은 백 김치를 즐겨 드셨다고 한다.

 워낙 빨간 양념의 김치가 익숙해져서 이것이 김치의 본래 형태일 것만 같았지만, 고추는 본디 우리나라에서는 재배되지 않던 외래 식물이었고 그 식물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자리잡고 난 후에야 바야흐로 우리가 김치, 하면 떠오르는 붉은 양념 가득 베인 맛깔스런 오늘날의 김치가 자리 매김 한 것이라고 하니 하나의 음식만으로도 역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신비로움이 있다.

 

여기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음식 또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물질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작은 씨앗 하나가 전 세계의 역사를 어떻게 변모시켰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신대륙을 발견한 것으로 익히 알고 있는 콜럼버스는 살아 생전에는 그 스스로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는지에 대해서 자각하지 못한 듯 하다. 신대륙의 발견을 넘어서 그가 퍼트린 이 씨앗의 이동은 전 세계의 운명을 뒤바꿔 놨으며 그리하여 작은 씨앗 하나는 세계사를 재편하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 4번에 걸친 항해는 예상도 하지 못했던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에 의해 방해를 받아 아시아에 도착할 수 없었고 사업은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1506 5 20, 콜럼버스는 자신이 이뤄 낸 업적의 참된 가치를 알지도 못한 채 스페인의 바야돌리드 마을에서 실의에 빠진채 55세의 생애를 마쳤다. –본문

 

햄버거 하면 자동으로 콜라와 감자튀김이 떠오르고, 스테이크 옆에도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메쉬 포테이토나 감자튀김은 지금 우리네 식탁 위에 자연스러운 메뉴 중 하나이고, 가끔 감자조림이나 감자칩 정도의 위치에 있는 것이 현재 내 머리 속에 떠오른 감자의 이미지라면, 그 옛날 감자가 처음으로 퍼지기 시작한 그 즈음에는 이 감자란 식물이 혁명적인 식물로 근대사를 뒤바꾼 엄청난 것이라고 한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는 인구의 식량 위기를 해결해주는 존재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인구가 늘어나면서 그만큼 국력이 증대되고 또한 땅 밑에서 자라는 감자의 특성 덕분에 전쟁 등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던 그 당시에도 보리류보다도 훨씬 다루기 쉽고 경작하기 쉬웠기에 모든 면에서 더할 나위 없는 값진 양식으로 그들의 식탁을 점령하며 세계사를 바꾸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감자의 발아와 확산에도 초반에는 걸림돌이 있었으니, 바로 새로운 식물에 대한 무지로 인한 두려움이 초반에 그들의 발목을 잡곤 했다.

 

 당시 유럽 사회를 지배하던 가치관의 근본은 성서를 원전으로 하는 기독교의 교리였다. 성서에 쓰여있지 않은 감자를 먹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식탁 위에서 미지의 것에 대한 도전을 한다는 대모험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식문화의 체계를 뒤흔드는 일이며 에덴동산에 있었던 금단의 열매를 먹는 것과도 같은 죄악에 가득 찬 행위라고까지 생각되었다. –본문

 생고무의 발견은 초반에는 그저 별 볼일 없는 것들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현대에는 없어서는 안될 바퀴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물질이었으며, 고무가 바퀴로 사용되는 그 시점부터 세계는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고무나무에 눈독을 들이게 된다. 그리하여 또 다시 식민지, 라는 아픈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노예제도 역시 이 부분에서 등장하게 된다.

요새에는 과학의 발전으로 합성 고무를 만들어 쓰기도 하기에 이러한 현상은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비행기 타이어와 콘돔에 쓰이는 고무만큼은 자연에서 나는 생고무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하니, 과학을 능가하는 자연은 언제나 경이롭게만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신기했던 것은 옥수수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옥수수의 원종이 현재까지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면 알아보지 못한 것이거나, 여하튼 둘 중 하나의 모습이라고 하는데 옥수수만큼은 자신의 씨를 뿌려서 이듬해에 싹이 나는 형태로 품종개량이 된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인간의 손을 거쳐야만 파종되는 형태로 자라나고 있다고 한다.

 

 지구상에서 재배되고 있는 작물은 돌연변이와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진 교배에 의해 변이종이 생겨나고, 그 작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알맞은 변이종이 선택되어 온 결과, 현존하는 품종은 모양과 성질이 원래의 종과는 다른 것이 보통이다. 지금도 재배되고 있는 작물 가운데 대부분의 주요한 작물은 원종이 되는 야생종이 발견되지만, 유일하게 옥수수만은 지금껏 원종이 되는 야생종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본문

 

메소아메리카에서는 식량으로 쓰이는 옥수수는 안데스 고지에서는 주조를 위한 원료로 이용이 된다. 현재 대부분의 지역에서 식량으로보다는 가축 사료용으로 재배되는 것이 더 많다고 알려진 옥수수는 저렴한 비용 때문에 노예 무역이 시작되고 나서 각광받는 값싼 식료로도 쓰였다고 한다.

 어찌되었건 인간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옥수수는 이제는 육류를 얻기 위한 사료로 전락해 버렸으며 이는 현재 또 다른 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근의 문제가 되고 있다.

 

 가축의 체중을 1kg 늘리는데 필요한 곡물 사료의 양은 소가 7~8kg, 돼지가 4~5kg, 닭이 2kg 정도이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불문하고 현대사회에서 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은 알든 모르든 그 몇 배에 해당하는 옥수수를 소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본문

 

이 책은 대부분 씨앗의 발아로 인해 변화된 혁명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책의 말미에서는 그로 인해 발생했던 식료 공급기지로 변모해 버린 원주민들의 땅이나 원주민들의 잃어버린 삶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기에 동전의 양면과 같은 현재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하나의 씨앗의 발아로 인해 변해가는 인간의 역사부터 씨앗에 숨겨진 이야기까지 모두 만나 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다. 하나의 씨앗이 세상을 바꾸다니. 그 어떠한 나비효과보다 강력한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아르's 추천목록

 

문명의 씨앗 음식의 역사 / 찰스 B.헤이저 2세 저

 

 

 

독서 기간 : 2013.08.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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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탄생
이재익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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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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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이라는 뜻의 욕망의 단어를 보면서, 그러한 욕망이 있기에 인류는 지금과 같이 진화를 하고 발전을 한 것일 텐데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너무 많은 것을 탐하려 했던 한석호 아나운서는 그 욕망에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운명의 수레바퀴 위에 올라타 있다. 시작은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으나 브레이크 없는 전차는 그의 목을 점점 죄어오고 있었으며 그에게 이러한 일이 도래한 것들이 어쩌면 당연하다, 하면서도 과연 누가 그를 향해 이 칼날을 드리우고 있는 지에 대해 생각하느라 정신 없이 책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 도시에 숨을 곳조차 없느 ㄴ사냥감으로 전락했다. 그는 사냥감의 운명이 얼마나 비참한지 잘 알았다. 그 역시 먹이사슬의 제일 아래에서 태어났다. 착취당하는 삶, 모욕으로 얼룩진 삶에 대해서 잘 알았다. 다시 그런 삶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고 싶었다. -본문

부정을 통해서 이룩한 부모의 거성을 벗어버리듯이 그는 그 자신이 우뚝 솟아 오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학벌이며 외모, 직업 등 모든 것이 완벽한 그에게 있어 그의 처가는 여전히 그의 집안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주어진 실낱같은 한 줄기 빛이 그에게 오는 그 절대 절명의 순간에 발생하는 의문의 교통사고. 그 사고로 말미암아 그는 천국에서 지옥행 티켓을 거머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미로 속에 갇힌 생쥐 꼴로 변모하게 된다.

그에게 남겨진 일주일의 시간. 그 시간 동안 한석호는 자신의 옥죄어 오는 조태웅을 제거하든지 아니면 조태웅의 지시대로 자신의 부인과 내연녀 들 중 한 명을 죽여야만 이 지옥의 레이스를 멈출 수만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지금껏 공들여 올라온 이 자리가 순식간에 사라지게 된다.

그도 그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처음의 부정만 꺼름칙했을 뿐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일상이 되어갈 때 즈음 발생한 조태웅의 등장으로 그는 하루하루 자신이 누리고 있던 것들에 대한 의미를 깨닫고 있지만 그것은 이미 너무 늦어버린 후이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한석호 그에 대해 이렇게 철저히 분석하고 그의 목을 죄어오는 것일까?

마지막 장에 다다르면서 설마, 했던 인물의 그의 뒤에 있었다는 사실과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점에서. 또 하나 드는 것은 한 인간의 욕망이었던 한석호의 탐욕이 복수를 불러 일으키고 그 복수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씨앗이었으며 복수는 통쾌함과 동시에 그 통쾌함 이후 밀려드는 처절한 자괴감과 타인의 눈물이 공존하며 '' 마저도 파괴하는 행위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음악으로 치자면 프레스토 보다도 훨씬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읽는 내내'대체 누구지?'에 대해서 생각하면서도 누군가에게 치욕을 준 기억은 자는 그 순간을 재빨리 잊어버리지만 그 치욕을 당한 자는 평생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는 말에 나는 누군가에게 비수를 꽂은 적은 없었는지, 언젠가 조태웅과 같은 인물이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을까? 라며 가슴 조이며 본 책이었다.

한 여름 밤에 열대야로 잠 못들고 있다면, 펼쳐 보시길. 대체 누가, ,를 외치며 열대야 따위는 잊게 되고 생각했던 것 보다 거대한 결말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독서 기간 : 2013.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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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정글만리 1~3 세트 - 전3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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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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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선생의 이름과 책 제목들은 수도 없이 들어왔고 이미 태백산맥을 선물 받아 소장하고 있기는 하나 여전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맥과 같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는데 이번에 정글만리로 그와의 첫 번째 만남을 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대체 왜 '조정래'라는 작가에 대해서 수 많은 이들이 끊이지 않는 찬사를 쏟아 내는 것인지를 이제서야 그 이유를 몸소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휴가 동안, 한 주 동안 이 책만 읽어보리라는 결심으로 들고 간 3권의 책은 생각보다 두툼했으며 일단 3권이라는 권수부터 부담이기는 했다. 어차피 시간이 길게 남아있으니 마음 비우고 읽어봐야지 하면서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와 함께 잠깐 읽어볼까? 라며 펼쳐 든 1권을 보면서 어느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150 페이지를 훌쩍 넘겨 보고 있었다.

made in China 하면 튼실하다기 보다는 싼 값에 사던 인식 때문인지, 아니면 짝퉁의 천국이라는 인식때문인지 '중국'하면 여전히 우리보다 뒤 쳐져 있는 듯한 나라라고만 인식이 든다. 전 세계의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를 보유하고 있고 모두들 G2로 중국을 명명하고 있다지만, 그리고 중국 에이전트와도 심심치 않게 일을 하고 있는 나지만 여전히 중국은 아직은 우리보다는 뒤쳐져 있지, 라는 인식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올해 초에 중국어를 배워봐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학원을 들락거린 것이 엊그제였는데, 이제서야 중국에 대해 조금 알아가고 있는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중국에 대한 거대한 입문서를 통달한 느낌이다. 그저 크기만 거대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이 생각,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 미국 등 각국의 나라들의 입장과 역사를 기반으로 한 오래된 그들간의 관계까지 한꺼번에 마주할 수 있는 이 3권의 소설은, 소설이라는 픽션보다는 논픽션을 기반으로 한 살아있는 현대사를 보여주는 듯 한 기분이다.

대만과 홍콩, 댜오위다오의 문제에서부터 과거사의 문제까지. 그리고 그들이 신으로 신봉하는 마오쩌둥의 이야기부터 짝퉁 시장에 대해 비난하는 애플의 공격에도 떳떳한 중국인들의 태도는 무엇인지, 너무도 빠르게 급변하고 있는 그들 조차도 자신의 모습이 얼떨떨한 와중에 생겨나는 문제들 등, 현재의 중국은 기회의 땅이면서 동시에 그 뿌려진 기회 만큼이나 복잡한 정글이자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1권이 이러한 현재의 중국의 무대 위에 진출해 있는 우리나라와 일본간의 모습을 조명한 것이라면 2권에서는 그 팽배한 싸움이 펼쳐지고 3권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서로에게 윈-윈하게 되는 방향을 모색하고 함께하기 위한 방안들이 펼쳐지고 있다.

만만디, 런타이둬를 계속 외치게 되는 중국인들과의 일 관계를 떠올려 보아도 그들은 우리와 비슷한 동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언제 어디서나 위풍당당하면서도 때론 철면피 같은 그들의 모습에 혀를 내두르게 되기도 한다. 잘못한 때에도 되려 당당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 기가 찰 때도 있는데 이 책을 읽는 내내 일을 하면서 답답했던 그들의 태도가 ', 이래서 그런거였구나' 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무엇보다도 꽌시와 체면을 중요시 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상업은 돈을 주고 받는 매매가 아닌 그들의 인맥을 살찌우게 하는 친구를 만들어 가는 과정과도 같은 것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너무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책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읽는 내내 내 생각을 정리한다기 보다는 아, 이런 것이었구나, 하면서 배워가는 입장이었기에 그 모든 것들이 새로우면서도 또 재 정리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일주일 동안 빠르게 읽어 내려가느라 놓친 부분들도 다소 있을 것 같아 다시 한 번 읽어볼 생각인데, 다시 읽다 보면 또 다시 이 모든 것들이 정리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어찌되었건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은 더 이상 내가 생각했던 중국이 아니라는 점. 조만간 나는 중국이라는 나라 앞에서 멍하니 그들의 성장을 보며 언제 이렇게 되었지? 가 아니라 지금에라도 그들의 발걸음을 맞춰서 함께 따라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독서 기간 : 2013.08.1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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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자
너대니얼 호손 지음, 박계연 옮김 / 책만드는집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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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주홍글씨, 인 책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녀의 가슴팍에 새겨진"A"라는 글자는 알파벳의 처음에 자리하고 있는 시작인 글자이건만 그 주황색은 한 여인을 한 인간이 아닌 천박한 죄인으로서 낙인 시키는 것으로 그녀의 삶은 평생을 비난 받으며 살아야 하는 족쇄보다 진한 자국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영화 '더 스토닝'이 오버랩 됐다. 두 손이 묶인 채로 구덩이 속에 파묻힌 여인은 간음이라는 죄명으로, 이것조차 누명이긴 하지만 어찌되었건 그 죄로 이웃들에게 그리고 그가 직접 낳은 자식과 함께 한 남편으로부터 돌 세례를 받아야만 했다. 온 몸이 멍으로 뒤덮이고 출혈이 멈추지 않았지만 계속되는 이 투석형은 주홍글자의 주인공 헤스터 프린의"A"와 별반 다르지 않다. 더 스토닝의 소라야에게 돌을 던진 이들이나, 헤스터 프린의 주홍글자를 보며 수근거리며 그 벌이 당연하다고 하는 이들이나,그들 모두는 한 점 부끄럼 없이 타인의 죄를 향해 손가락을 놀리는 것이 지극히 마땅한 것이었을까? 모두 청렴한 듯 꼿꼿이 허리를 세우며 거리를 누비고 있는 우리들 중 그 누가 티끌만큼의 먼지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나에게는 관대한, 하지만 타인에게는 무자비한 잣대는 영화나 소설이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 이야기 하고 있다.

그 타락한 여자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둠으로써 인간의 정의란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인가를 만인 앞에 나타내려고 했다고 했다. 인류의 정신적인 구원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그는 자신이 죽는 모습을 하나의 우화로 연출하면서, 완벽한 순결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모두 한결같이 죄인이라는 거부하기 힘든 슬픈 교훈을,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두려 했다는 것이다. -본문

해스터 프린을 중심으로 한 그녀의 남편과 그녀의 외도 상대였던 두 남자는 그녀 주변을 계속 맴돌고 있었다. 이미 한 남자의 아내인 그녀가 외도를 저질렀다는 것, 그리고 아이를 출산했다는 것. 얼마 전 읽었던 하비비에서 나왔던 문장을 빌어 이야기 하자면, 그녀의 자궁이 부정을 저질렀다는 사실만은 그녀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죄임에는 틀림 없다. 하지만 그 두 남자 역시 이 모든 이야기 속의 주인공, 아니 사건의 발단이자 결론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비난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갑작스레 등장한 의사와 그 마을에서 신망 받고 있는 목사라는 직책은 그들의 모든 것을 덮어주는 방어막이 되어 마을에 하나되어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자리잡게 된다. 그에 반면 A를 가슴에 새긴 해스터 프린과 그녀의 딸 펄은 이 마을에서 제발 사라졌으면 하는 존재로서 마을에서 버려진 사람들로 등장하게 된다.

그녀의 남편이었던 자는, 그 스스로도 그들의 결혼이 옳지 못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일방적인 사랑의 방식은 그녀에게 또 다른 폭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는 그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가 결국 타락의 길을 걸어 모두에게 그 사실이 폭로된 그 순간에도, 그리고 그로부터 7년의 시간 동안 그는 그가 그녀의 남편이라는 것을 철저히 숨긴 채 그는 그녀를 옥죄며 그녀의 부정의 대상을 찾아 헤매고 있다. 복수를 해야겠다는 일념 하에, 그러면서도 자신의 부인이 바로 주홍글자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밝힐 용기는 없이 말이다.

처음에 죄를 범한 것은 나요.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젊은 당신과 시들어가는 나와의 부자연스러운 관계를 원했으니 말이오. 그러니까 나는 당신에게 복수를 하거나 해코지를 할 생각은 없소. 당신과 내가 서로에게 죄를 지은 것은 피차 마찬가지니까. 그러나 헤스터, 우리 두 사람에게 죄를 지은 한 남자는 태연히 살아있소. 그자는 누구요? -본문

그리고 또 한 명의 비겁한 겁쟁이가 있었으니 바로 펄의 아버지이자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인 목사 딤스데일이었다. 그는 그녀가 광장 속의 인파들에게 손가락질과 경멸의 눈빛 속에서 버티고 있는 동안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의 죄책감으로 점점 병약해지고 만다.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죄가 되지 않지만 한 명이라도 타인의 죄를 알고 있을 경우 그것은 죄로 치부되는 이 희한한 세상이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긴 고통의 시간 속에서 짧은 참회로서 인생을 마감한 한 남자와 복수의 대상이 사라지고 나서 남은 허탈감에 죽어갔던 한 남자와는 대조적으로 A의 주인공이었던 해스터 프린은 오히려 그 죄 값을 치르기 위한 덕분인지 혹은 그녀의 원 심성 때문인지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때라면 언제나 그 곳에 향해 있었고 그리하여 이 셋 중 살아서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지 언정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짧은 줄거리를 보고서는 뻔한 이야기야, 라고 치부하기에는 문장 한 줄 한 줄이 마력이 있는 이 책을 보면서 짧은 시간 동안에 꽤나 많은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웬만해서는 동일한 책을 다시 보지 않는데 이번 9월에는 주홍글자를 다시 읽어보며 이 책이 던지는 문제를 심도 있게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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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군인』 / 포드 매덕스 포드

독서 기간 : 2013.08.15~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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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의 목적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단숨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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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판 섹스 앤 더 시티라는 띠지의 말에 먼저 눈길이 가면서, 섹스 앤 더 시티란 말이지! 라며 혼자 신나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미드를 보기 시작한지도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20대 초반만 해도 이 드라마를 본다고 밝히는 것 조차도 왠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시대가 흘러버린 것인지 아니면 내 스스로가 변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섹스 앤 더 시티, 이 드라마 좋아해요.' 라고 말하면 '섹스'라는 단어에 눈살을 찌푸리거나 뭔가 이상한 눈빛으로 보는 것들이 거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라는 군살 덕분인지 그런 눈초리를 마주할 때면 '당신이 생각하는 섹스에만 집착해 있는 포르노가 아닌 뒤에 앤 더 시티가 함께 접목되어 30~40대 여성들의 삶을 그리고 있는 드라마예요.' 라고 바로 꼬집어 준다. 여하튼 전편의 드라마를 최소 3번 이상씩 본 나에게 있어 일본 판 섹스 앤 더 시티라니. 더 없이 반가운 책이었다.

읽는 동안 내 이름은 김삼순이란 드라마 속에서 한 장면이 아른거렸다. 삼순이가 외박을 한 날이었나. 그래서 슬금슬금 들어오던 찰나 언니에게 그 장면을 들키고 만다. 그 때 언니가 뭐했어? 라고 말하면 삼순이는 '잤어.' 라고 대답을 한다.

그리고 나서 이어지는 언니의 매 세례. 삼순이는 '그 잠이 아니라 진짜 잠!' 이라며 언니의 호통을 멈추곤 한다.

침대의 목적이 인간의 하루 중 1/3 을 차지하는 '잠을 잔다'라는 행위를 위한 가구이면서도 삼순이의 언니가 기겁하던 또 다른 목적,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장소이다. 이 하나의 가구에 있는 다양한(?) 목적을 어떻게 이용할 지에 대해, 어떻게 보다는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에 대한 소소하면서도 심도 있는 목표가 이 책의 주 내용이다.

그런데 결혼이 내 마음같이 안 된다.

마음같이 안된다며 남의 말 하듯 내뱉고 마냥 희희낙락할 때가 아닌데......

심각하다.

아무리 해도 안된다.

왜일까? 도무지 모르겠어.

남자가 프러포즈를 안한다. -본문

서른이 넘어서는 결혼에 대해 관대해졌다면, 서른을 넘기 직전까지는 서른 이전에 결혼을 하지 않으면 도무지 인생의 길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오죽하면 어디서건 받아 든 청첩장을 보면 멍하니 '왜 나는....?'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 지금은 '좋은 사람과 하면 되지, 시기가 중요한 게 아니야.' 라며 내 자신을 다독일 줄 아는, 어느 정도는 해탈했나 보다. 물론 주변에서는 더 안달이긴 하지만.

어찌되었건 나와 비슷한 와다의 이야기를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맞아, 나도 그랬어.' 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오랜만에 찾아온 엄마의 양손에 가득 담긴 반찬을 보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엄마의 목소리는 마주하기 전까지는 그토록 그리우면서도 막상 마주하면 왠지 모르게 투닥거리기 마련이다.

자신의 오래된 친구인 '처녀'인 요미코와 우정도 있지만 때론 시샘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녀에게 소개시켜 주려 했던 남자로 보이지 않던 '우메모토'의 소개팅의 순간 왠지 이 남자가 갑자기 이 남자가 멋있어 보이면서 아깝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린 시절 연애의 대상이었던 '후미오'의 끈질긴 구애에 두둥실 떠오르면서도 현실을 보기도 하지만, 영원히 그가 자신을 갈망하기를 바라기도 하고.

"아무리 현실적인 성격이어도 여자라면 마음 한 구석에 '꿈꾸는 몽상가'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거든요." -본문

새 하얀 웨딩드레스를 꿈꾸고 오각형 방안의 큼지막한 침대의 주인공이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 바뀌어 지는 무대 속에서 와다는 실망을 하다 그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보게 된다.

인연이 어디에서 시작되어 누구와 결혼을 하게 되고 결혼이 내가 꿈꾸던 핑크 빛의 낭만 가득한 하루가 아닐지는 모르지만 여전히 나는 결혼을 꿈꾸고 있다. 와다처럼 말이다. 침대라는 공간을 누구와 나누게 될까. 나도 와다처럼 이 참에 침대를 들여야 하나, 라는 시시콜콜한 생각부터 하게 되는, 간만에 편안하게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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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니걸스』 / 최은미저

독서 기간 : 2013.08.09~08.10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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