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이현 작가의 ‘달콤한 나의 도시’가 서울대 학생들의 도서 대출 순위의 상위권에 자리 매김 했다는 기사를 보면서도, 시큰둥한 반응만을 보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베스트셀러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 당시에 히트를 치고 있다는 책에 대해서는 왠지 모를 반발심이 생겼으며, 남들이 다 읽으니 나도 읽어야지, 라는 생각보다는 남들이 하는 대로 똑같이 하지 않겠어! 라는 생각에 얼마 전부터는 제목만 대면 모든 사람들이 알만한 책들은 일부러라도 기피하고 읽지 않고 있었다. 그 덕분에 ‘정이현’ 작가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그녀의 이야기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렇듯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읽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든 것은 이 책 속의 내용이 내가 지나왔던 시대에 대한 회고이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지나왔던 90년대의 후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는 내용을 보면서, 한창 학창시절이었던 내 모습과 그들의 이야기는 분명 교집합이 존재할 것이며 미세하게 걸친 그 접합 부분은 이 책을 어서 읽어야겠다는 독촉장과 같은 역할을 했다. 서태지가 가요계의 반란을 일으키고 김일성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세상을 뒤 흔들 때, 아직은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던 나는 당시는 내 스스로가 이미 어른과 같은 존재처럼 커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나와 친구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어렴풋이 떠오르지도 않는, 세세한 일들을 가지고 그 때에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인 듯 고민하고 그로 인해 하루 종일 머리를 마주하며 고민하고 슬퍼하고, 때론 그 때문에 웃기도 하는, 어른의 탈을 쓰기를 원하는 마냥 어린 학생이었나 보다. . 벌겋게 익은 얼굴로 연방 목의 땀을 닦아내는 준보를 쓱 쳐다보다 지혜가 중얼거렸다. “준모야, 긴 바지 진짜 덥지? 내가 남는 교복 치마 한벌 가져다줄까? 우리는 함께 픽 웃었다. –본문 시시콜콜한 일상 속에 자신들은 그 누구보다도 심도 있는 고민을 하는 위인들이라 자신했던 그날은 어느새 시간이 지나며 추억을 넘어서 아련한 기억으로 조차 남아있지 않은, 분명 그 시간을 지나오긴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정확한 기억 따위는 없이 그 당시의 친구들은 지금은 주변에 몇 몇 남아있지 않다. 과연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가 함께 웃고 떠들고 울던 시간은 존재했었는데, 희한하게도 그들은 지금 내 곁에 없다. 시간은 늘 체력장 오래달리기 같았다. 눈을 감고 뛰다보면, 저 앞에 도무지 내가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속도로 달리던 아이가 어느 순간 내 뒤로 뒤로 처져 있는 거다. 늙어간다는 건 따라잡을 아이가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 아무도 없어진다는 거겠지. 앞만 보고 뛰는 일도 뒤를 돌아보는 일도 두려울 것이다. 그러면 좀 쓸쓸할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도 커다란 감정의 변화 없이 평이한 느낌을 간직한 채 그렇게 소설을 마무리가 되었다. 밋밋하다기 보다는 뭔가 큰 임팩트는 없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입 안에 뭔가 남겨진 것처럼, 양치를 해도 개운하지 않을 그 무언가가 턱 끝에 매달려 있는 느낌이었는데 그런 희한한 감정 때문에 곱씹어 볼수록 왠지 서글퍼지는 이야기다.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는 지혜나 틱 장애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욕을 내뱉는 준모나, 드라마 속 주인공 같이 부잣집 손녀딸로 한 순간 탈바꿈한 세미나. 그저 평이한 고등학생인 듯 했지만 그들은 그날의 사건을 함께 했기 때문인지 더 이상 같은 공간 안에서 마주할 수 없었다. 마치 지금의 내와 나의 친구들이 그러하듯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시간은 정해졌고 장소가 남았다. 준모가 떠나고 나면 당분간 셋이 모일 일은 없을 것이다. 당분간이란 잠깐과 얼마나 비슷한 단어이고 또 다른 단어일가. 얼마의 틈을 당분간이라고 하는 걸까. 그 당분간이 지나간 뒤에 우리가 다시 모인대도 우리가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 길 위를 나란히, 서로의 등을 밀며 걷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본문 숨막힐 것만 같았던 그 때를 함께 했던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 시간을 견뎌왔지만 어느 새 그들은 각자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서로에게 있어서 의지가 되었던 우리들의 시간은 세미의 할머니의 바람대로 이대로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는 말씀처럼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누가 먼저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습격당하지만 않는다면 그는 쎄렝게티 초원의 기린처럼 아무한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였다. 지혜도,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초식동물인 척 살 수 있을까? –본문 안녕, 내 모든 것, 이라는 어느 글귀의 이야기처럼 은연중에 그러하리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나의 목울대를 통해 소리 내어 본다. 분명 함께 했던 우리들의 시간은 공중분해 되어 사라져버렸다. 그 조각이라도 일부 남아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그들처럼 엄청난 사건에 휩싸인 것도 없이 그저 평이한 삶이었는데도 아련함에 아쉬움이 남는다. 대체 우리의 그 모든 것은 어디로 가 버린 걸까.
*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