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류시화 옮김 / 연금술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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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로서의 책임을 통감하며 원본의 내용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하여 이전 발행된 책들을 절판시키고 5년여 간의 시간을 들여 재번역에 번역을 거쳐 나온 이 책의 탄생 비화를 들으며, 그 번역가가 다름 아닌 류시화 시인이라는 것 때문에 실은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토록 이 책에 대한 열과 성을 다하고 그렇게 쏟아 부을 만큼의 대단한 내용의 책이란 대체 무엇일까, 라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접근이었기 때문인지 나에게 이 책은 쉬이 곁을 내주지 않았다.

 책에 대한 두께감 때문이라기 보다는 제대로 읽고 저자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해서 진정한 나를 만나보자, 라는 바람 때문에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고 읽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잠시 내려놓고, 이런 과정들을 거치다 보니 이 책 한 권을 읽는데 일주일이란 시간이 걸렸다. 문제는 그렇게 어떻게든 일독을 하긴 했지만 나는 여전히, 아직 이 책을 읽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하질 못하겠다.

 그 동안 나에게 있는 것만으로 만족을 하는 방법이라든지, 마음을 비우는 방법이든지 다양한 형태의 나를 버리고 진정한 나를 찾는 법에 대해 논하는 책들을 마주한 적이 종종 있었는데, 이 책은 뭐랄까. 이전에 내가 접했던 내용의 책과는 또 다른 형태의 것이었다. 예를 들어 나쁜 감정을 버리고 좋은 감정을 안고 있으며 타인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 선인의 삶이라고 배워왔다면 저자는 타인에게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려 노력하는 것 역시도 피해야 하는 것이라 이야기 하고 있다.

 더 좋은 인간, 더 나은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칭찬받을 만하고 고상한 일처럼 들리지만, 의식의 전환이 일어나지 않는 한 결국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노력이다. 왜냐하면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것 역시 똑 같은 기능장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더 미묘하고 순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자기를 강화하려는 형태이다. 그런 노력 역시도 자신이 관념 속에서 라고 여기는 이미지를 더 크게, 그리고 더 강하게 만들려는 욕망과 아무 차이가 없다. –본문

 순수한 나를 찾기 위해서, 나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 이름이라든지 직책이라든지 직위라든지, 아니면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은 실제 내가 아니다. 나를 대변해 줄 것만 같은 이 모든 것의 실상은 에고이며 이 에고는 결국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나를 치장하고 대변해 줄만한 것들을 계속해서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명품을 걸치는 순간 내 스스로도 명품으로 빛이 날 것 같지만 그것은 에고의 욕망에 의한 구매에 대한 합리화일 뿐, 나는 여전히 텅 비어 있는 것이다.

 에고는 소유와 존재를 동등하게 여긴다. “나는 소유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더 많이 소유할수록 우리는 더 많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에고는 비교를 먹고 산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보는가를 결정한다. 그러나 외부의 대상들 속에서 자신을 찾는 것은 언제나 실패로 끝난다. –본문

 그렇다면 나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그는 자아의식의 인지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이 부분 역시 다른 책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주장의 것들이라 생경하면서도 받아들이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특히나 생각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낯설기만 했다.

 나는 생각한다.”라고 말하면 자유 의지가 담긴 행동을 의미한다. 그 일에 결정권이 있고 당신 쪽에서 개입할 선택권이 있음을 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나는 생각한다.”나는 소화한다.”나는 혈액을 순환시킨다.”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틀린 문장이다. 소화가 일어나고, 혈액순환이 일어나며, 생각이 일어날 뿐이다. –본문

 자유의지에 의한 생각이 아닌 생각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현되는 상태, 그 상태 속에서 마치 우리는 생각이 나를 대변하는 것이라 착각하기에 에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생각과 비슷한 맥락의 에고인 감정 역시 내가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믿고 반응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고 안에서만 허덕이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데 생각과 감정이 오롯이 나라는 위험한 믿음은 우리를 영원히 에고 속에서 벗어날 수 없게 스스로를 가둬 두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순간에 깨어나야만 하는데 이 깨어남을 통해서 생각과 알아차림이 분리되고 그 안에서 나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깨어나서 생각을 내 뜻대로 쥐락펴락 할 수 있는 그 상태. 이 상태야 말로 나는 생각한다, 라는 말이 거짓이 아닌 진실로 깨어날 수 있는, 알아차림이 나라는 것을 인지하고 나의 삶의 영위할 수 있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생각은 당신의 삶에 주역이 되는 대신 알아차림을 위해 봉사하게 된다. 알아차림은 우주 지성과의 의식적인 연결이다. 알아차림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현존’, 즉 사념없는 의식이다. –본문

 서평을 정리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저자가 이야기 한 것들을 제대로 받아들인 것인지 하는 의문이 든다. 다른 곳에서 본 적 없었던 관념들에 대한 접근과 그러한 접근을 통해 오롯이 나를 인지하게 되는 것. 책을 읽다 보면 이 일련의 과정이 어느 순간 이뤄져 아! 하는 탄성이 자아난다고 하는 애석하게도 나는 여전히 에고 안에 있는가 보다. 아무래도 일독으로는 제대로 깨우쳐지기 힘든 내용인 듯 하니, 어찌되었건 한 번은 이 산을 넘어 왔으니 다시 몇 번 읽어볼 생각이다. 모든 이에게 이렇게 쉬이 열리는 것이었다면 저자 역시 그 오랜 시간이 필요 없었을 테니 속성으로 모든 것을 가지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또 다시 읽어봐야겠다.

 

 

 

아르's 추천목록

 

 

인간, 즐거움 / 크리스티앙 보뱅저

 

 

독서 기간 : 2013.09.2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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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곤충학 - 자원 곤충, 인간의 물질문명을 진화시키다
길버트 월드바우어 지음, 김소정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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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충에 대한 이 책을 읽는다고 펼쳐 놓았을 때만 해도 주변에서 대체 이 책을 왜 읽는 거야?’ 라는 질문을 받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보의 홍수를 넘어 쓰나미 보다 거대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단 몇 초의 기다림도 용납할 수 없다며 LTE A의 속도가 범람하고 있는 와중에 뜬금 없이 곤충에 대한 책이라니. 그것도 곤충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든 빌딩 숲 사이에서 별안간 무슨 생각일까, 하며 지인들은 나를 궁금해하면서도 참 별난 책도 다 읽는다, 라며 웃으며 지나가곤 했다. 아마 내가 그들이라고 해도 이 책 왜 읽어? 라고 질문 했을 것이다. 읽고 배워야 할 책들이 차고 넘친 상황에 방학 숙제도 아니고 왠 곤충에 대한 탐구람, 하며 핀잔을 주고 지나갔을 텐데 사실은 그 이유에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오랜 시간을 지구에서 우리와 함께해 온 곤충이지만, 곤충의 존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나비나 개미, 잠자리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거나 딱정벌레나 사슴벌레를 정성껏 키워 본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일상의 삶에서 곤충은 관심을 받기에는 너무도 미미한 생물체이거나 파리, 모기, 바퀴처럼 귀찮은 대상에 불과할 것이다. –본문

 곤충에 대해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져보았다. 초등학교 때 머리, , 다리고 구성되어 있고 3쌍의 다리를 가진 것이 곤충의 특징이라 배운 기억이 어렴풋이 나고 탐구생활을 위해 곤충채집을 한답시고 잠자리채를 들고 여기저기 뛰어 다녔다는 기억. 그리고 요 근래에는 가끔 등장하는 모기나 바퀴벌레 때문에 몸서리를 쳤다 정도가 내가 곤충에 대해 생각을 했다면 생각을 한 시간의 전부였다. 물론 곤충을 보기 힘든 곳에 살고 있고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은 일상 속에서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왜 나는 곤충에 대해 단 한번도 호기심을 갖거나 궁금해한 적이 없었을까, 라는 그 근본적인 물음 때문에, 내가 모르는 어떤 거대한 세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읽어보고자 책을 넘기기 시작했다.

 곤충이 인간의 역사에 무엇을 기여했다기 보다는 그저 같은 공간에 각자의 영역에서 함께 지내왔다는 것이 그들에 대한 나의 견해였다. 그저 이 책을 통해서 곤충의 생리나 일반적인 상식을 얻고자 했던 것이었는데,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정말 나는 곤충을 그저 한낱 곤충으로만 봐 왔었구나, 라며 그 무지의 당당함에 부끄럼이 가해진다.

곤충이 전체 지구 생명체의 생존에, 나아가 우리 인간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는 것이다.

곤충은 거의 모든 지상 생태계와 수중 생태계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초본 식물은 아니라고 해도, 꽃을 피우는 종자 식물은 대부분 곤충에서 수분을 의지한다. 곤충은 식물의 씨앗을 널리 퍼뜨리고, 새와 물고기를 포함한 여러 동물의 먹이가 된다. 또한 곤충은 배설물과 동식물 사체를 흙으로 돌려보낸다. –본문

 염료로 쓰이는 것은 물론 잉크의 원료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치료제로도 쓰이는 곤충의 이야기들은 실로 놀라울 정도였는데 특히나 이곳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의미에 대해 잘 모르고 있던 곤충들에 대한 지식은 물론 이 지구상에 있는지도 몰랐던 다양한 곤충들의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어 어릴 적 잠자리채를 들고 여기저기를 뛰어 다니며 신나게 뛰어 놀던 그 때의 마음이 되살아 나, 정말 정신 없이 읽어 내려간 듯 하다.

 영어로 무당벌레를 뜻하는 ladybird성모 마리아의 새라는 뜻이다. 톰 터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중세 유럽 농부들은 진딧물이 농작물을 망치는 해충임을 알고 있었다. 진딧물을 없애고 싶었던 농부들은 성모마리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농부가 기도를 올릴 때 마가 무당벌레가 찾아와 진딧물을 먹고 작물을 구했을 것이다. 그래서 영국의 무당벌레에 성모 마리아 이름이 붙게 되었다. –본문

아마존에서나 만날 수 있다는 무언가 신비로우면서도 매혹적인 빛깔을 나는 모르포나비를 시작으로 골치덩어리에서 찬란한 태양으로 칭송 받게 된 목화바구미 이야기들은 아마 이 책이 아니었다면 평생 동안 모르고 지나갔을 곤충들의 이야기다. 특히나 벌꿀의 꿀을 지키기 위해 이집트 시대에는 꿀단지 봉인자라는 직책마저도 존재했다고 하니, 곤충을 그저 한낱 작은 개체로 생각했던 초반의 의식은 사라지고 곤충과 함께, 곤충에 의해서 변형된 인간의 역사를 마주하며 그들의 존재가 신비롭게만 느껴졌다.

 꿀벌이 어떻게 꿀을 모으는가에 대한 고찰은 그야말로 경이로움마저 느껴지는 부분이었는데, 자신의 몸무게의 85%나 되는 꽃꿀을 배에 가득 담아와 이를 벌꿀로 만드는 그 일련의 과정은 가히 과학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할 정도로 대단하다라는 말만 되뇌게 한다. 수분 증발을 위해 밀랍의 방에 1/4정도만 채우고 다양한 효소를 첨가해서 만들어 지는 벌꿀을, 그저 달콤하다는 생각으로 한 숟가락 그득 떠서 먹기에만 바빴으니. 앞으로는 벌꿀 한 숟가락을 뜰 때마다 꿀벌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먹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먹는 과일과 채소의 수분을 거의 대부분 꿀벌이 돕는다. 캘리포니아 주가 1년에 2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해주는 아몬드도 모두 꿀벌이 수분시킨다. 수분 매개 곤충이 줄어들면 고기 공급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가축이 먹는 정향과 콩과 식물도 모두 꿀벌이 수분시킨다. –본문

 작다는 이유로, 눈에 잘 띄지 않는 다는 이유로, 때론 해충이라는 이유로, 우리의 삶과는 관련 없을 것이 기타 수 많은 이유에서 그 동안 곤충에 대해 외면해 왔던 시간 동안 그들은 묵묵히 그들의 시간을 이어왔다. 비단 인간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그 곤충들 역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자신들의 삶을 위해서 살아온 것이라곤 하지만 그들의 삶의 영위를 위한 모든 과정 덕분에 인간의 삶은 더 풍요로워졌고 풍족해졌다. 그들의 일방적인 수혜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까지 호위호식하며 살고 있었으나 단 한 번도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지난날에 대해 반성해보며 그들이 계속해서 우리의 주변에서 자리를 지켜주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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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섹토피디아 / 휴 래플스저

 

 

 

독서 기간 : 2013.09.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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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돌아오는 곳 창비청소년문학 52
존 코리 웨일리 지음, 이석연 옮김 / 창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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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돌아오는 곳, 이라는 제목을 보면서 어떠한 희망의 메세지가 가득한 내용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추측이 명백히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사실 초반에 이 소설을 마주하면서 든 느낌은 희망이라기 보다는 절망적인 내용들 때문에, 하지만 그 이야기들을 너무도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는 문체 때문에 때론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너무나 일상적으로 죽음은 이 책 안에 자리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도 죽음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외면하는 것에 더 익숙하고 구태여 끄집어 내지 않으려 하는 우리들의 불문율을 생각했을 때 이 초반 이야기들은 참으로 대범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너무나 태연한 컬런의 말투를, 자신을 염세적이라 소개하고 있는 그를 마주할 때면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한 모습에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열일곱에 소도시에서의 일상에 따분해하던 나는 가끔 염세주의자인 척하는 걸 좋아했다. 사는 건 원래 이런 식이고, 나도 거기서 벗어날 도리가 없어. 인생은 지랄 같은 때가 대부분이지. 세상은 온통 개소리뿐이야. 고등학교도 지랄 같고. 학교나 다니고 50년간 일이나 하고 그러다 저 세상 가는 거야. -본문

이러한 컬런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선교 활동을 위해 에티오피아에 있는 벤턴의 이야기가 컬런의 이야기와 함께 이어지고 있다.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목사가 되는 길을 선택해야 했던 벤턴 마저도 세상을 등지고 떠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대체 이 곳에서 무엇이 돌아오는 것을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자괴감까지도 들곤 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계속 되고 있다.

갑자기 사라진 컬런의 동생인 가브리엘의 실종은 그 가족들에게는 절대적인 사건이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저 전체 숫자 중 단지 1이라는 숫자가 빠진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그들은 나사로 딱따구리의 존재로 인해 마을이 유명해지고 그로 인해 그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에 더 집착하는 모습들이 보이곤 하는데 그리하여 마을은 딱따구리에 의해 점령된 듯한 모습을 보이는 장면에서 씁쓸한 모습마저 느끼게 된다.

모든 것에 그저 방관자적인 모습을 하고 있던 컬런은 동생의 실종으로 하여 그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변모하게 되는데 그에게 심리적인 압박이 가해지면 가해질 수록 그는 동생에 대한 그리움이 증폭되어 괴로워하고 있었다.

", 우리는 아직 인간을 포기해서는 안 돼. 누구나한테나 새 출발의 기회가 있는 거 알아? 홍수가 난 다음의 노아처럼 다시 시작하면 돼. 인간이 아무리 악해지더라도 어떻게는 새롭게 출발할 기회는 있는 거야. -본문

모든 사건의 결집은 엉뚱한 사건에 의해서 발생하게 되는데 절대적인 신앙 속에 있다고 믿는 인간이 그저 한낱 질투와 욕망에 눈이 멀게 되면서 벌이는 사고에 의해 이 이야기는 시작되고 끝을 맺게 된다. 사실 후반에 가서는 다소 힘이 빠진 듯한 느낌이라 살짝 집중감이 떨어지곤 하지만 마지막을 포커스가 아닌, 그 사건의 발단으로 하여금 변화되는 가족간의 심리상태와 변화에 대해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 속의 모습과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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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 주도 디아스저

독서 기간 : 2013.09.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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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와디의 아이들 - 성장과 발전의 인간적 대가에 대하여
캐서린 부 지음, 강수정 옮김 / 반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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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다녀왔던 뭄바이에서의 일주일 간의 시간은 인도, 라는 나라에 대해 짧지만 많은 기억과 아련함을 여전히 느끼게 한다. 사실 인도에 간다, 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우리나라보다 현저히 낮은 GDP를 보면서, 치안이나 환경이 좋지 않다는 사실에 걱정을 하곤 했었는데 실상 내 눈앞에 펼쳐진 뭄바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그 이상의 화려함과 화려함의 이면에 묻혀져 있는 가난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차도도 제대로 표시되어 있지 않는 도로에 BMW며 벤츠가 쉴 새 없이 지나다니고 TATA의 택시가 가득 메운 그 가장자리에 집도 없이 살고 있는 이들을 보면서, 어쩜 이 어울리지 않는 듯한 끝없는 격차의 현장이 바로 이 곳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것을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경제의 수도라는 뭄바이를 방문하면서 사실 그 이상 철저히 조사를 하고 간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안나와디라는 곳이 있는 줄도 몰랐다. 인도를 다녀오고 나서 다큐멘터리로 마주했던 것이 전부였는데, 잠깐 들렀던 곳이기에 그리고 그 곳에서 사스의 공포를 핑계로 외면했던 아이들의 눈빛이 계속 마음에 걸리기에 그 미안함을 참회하고자 이 책을 집어 들고 있었다.

과연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는 그곳에 아이들이 있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 대해, 그 아이들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이 안전하고 따스한 곳에서 툴툴거리며 불만을 표하고 있을 때, 그들은 끼니 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며 기본적인 교육은 커녕 생존을 위해서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노동 현장에 투입되어야 했으며 그들이 하루를 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곤 쓰레기 더미에서 내다 팔만한 물건들을 찾는 것이었다.

급격한 인도의 경제성장이라는 빛나는 성과를 안고 북적이는 공항의 사람들이 오가는 그 자리에 남겨진 쓰레기들. 800여톤의 쓰레기가 그들의 생계 수단이자 내일을 꿈꾸게 하는 밑천인 것이다.

크리켓 패거리를 물리친 압둘의 앞에는 종류별로 나뉘어 담긴 열네개의 울룩불룩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주변 호텔에서 모깃불 연기가 구름처럼 자욱하게 일어날 때 압둘은 남동생 둘과 함께 이 자루들을 끌어다가 라임 색의 구식 삼륜 트럭 짐칸에 실었다. 후사인 집안의 가장 중요한 재산인 그 소형차 덕분에 폐품을 재활용 공장으로 실어 나를 수 있었다. -본문

그 누구도 마주하고 싶지 않을 이 현장에서 압둘은 오늘도 이 일이 끊이지 않고 내일도 이어질 수 있길 바란다. 그래야만 그의 동생들을 먹여 살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버려지는 음식물들이 누군가에게는 일용한 양식이 되고, 그저 깨끗한 음식을 가족들을 위해서 먹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는 곳. 그 곳에 아이들은 세상을 원망하기는 커녕 여전히 희망을 꿈꾸며 밝게 웃고 있었다.

정치인도, 경찰도 외면하고 오히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그들을 끊임없이 압박하고 구속하려 드는 현실을 마주하며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쓰레기보다 더 악랄한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어찌 보면 그들의 횡포가 이 아이들을 쓰레기 더미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옭아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인생은 보기만 해도 바짝 긴장이 되지. 하지만 그게 삶이야. 개처럼 사는 사람에게도 나름대로의 인생은 있는 거잖아. -본문

언제나 부패의 지배아래 있는 이들이지만, 그들은 언제나 밝고 맑으며 그 누구보다도 선량함을 유지하고 있다. 검은 물결이 그들의 삶의 터전에 쓰레기 더미처럼 덮쳐오고는 있으나 그들은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고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었다.

뭄바이 어느 길가에서 마주했던 어린 아이들의 자그마한 손을 가진 이들도 아마 이 책의 이야기처럼 살고 있을 텐데 나는 왜 그때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지 못했나 하는 죄책감도 일게 된다. 이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들의 안녕과 건강과 조금 더 밝은 내일을 기원하는 것이 전부라는 게 몹시도 미안하고 창피해지는 순간이다. 바라건대 이 아이들에게 더 이상의 고통이 침범할 수 없도록 개개인의 양심에만 맡기는 것이 아닌 좀 더 적극적인 대처가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아이들에게 더 큰 행복의 웃음을 알게 해줘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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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데서 피는 꽃』 / 이지성, 김종원저

독서 기간 : 2013.09.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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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의 소설 속 인생 - 치열하게 살고, 장렬하게 죽은 명작 속의 인생들
서지문 지음 / 이다미디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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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류의 책을 가장 즐겨 읽으세요? 라고 묻는 다면 나는 두말할 나위 없이 소설이라 답할 것이다. 물론 요 근래 들어 인문학에 관한 서적들을 찾아보고는 있으나 이것은 그야말로 나의 심연적인 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인한 노력이 깃들여진 선택이며, 소설은 그런 노력 따위는 필요 없는, 본능적으로 끌리는 장르인데, 왜 소설을 즐겨 읽는가에 대해 묻는 다면, 내게 현실에서 살고 있는 인생은 지금 나 하나이지만 소설을 통해서는 그야말로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삶들을 엿볼 수 있고 때로 내가 그 작품 속에 투영되어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것이 즐겁고 그리하여 매번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 라 대답하겠다.

어떠한 것을 좋아한다는 것과 잘 안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을 다시금 목차를 보면서 깨우치게 된다. 소설을 좋아하는 하지만 영국 소설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는 것이 극명하게 나타나는 바, 목차 속 차례를 살펴보니 그나마 눈에 익은 것은 오만과 편견,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위대한 유산 정도이며 그것들 역시 제목만 겨우 알고 있는 상태인지라 민망함과 동시에 당혹스러움마저 밀려들었다. 그럼에도 어느 책에서 읽었듯이 이토록 내가 읽어야 할 책들이 많이 남았다는 것에서, 그 책들을 마주하며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라 생각하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천천히 읽어 내려가 본다.

사실 처음 저자의 소개로 접한 책들을 보면서 읽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곤 했지만 클러리사 할로나 톰 존스의 책의 두께와 권수를 찾아보고선 압도되어 대체 이 책들을 읽을 수 있을까? 란 의문과 함께 도저히 섭렵할 수 없는 책들이기에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클러리사 할로만 해도 시중에서 총 8권의 전권으로 판매하고 있으며 1권당 페이지수만 580페이지 남짓이기에, 그 안의 내용이 매력적이라고 해도 도저히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서체를 모아둔 이 책은 17세기와 18세기 유럽의 여성들의 신분, 특히나 숙녀에 대한 내용이 계급적 상승으로 인해 오히려 여자들의 발목을 잡는 덫으로 작용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읽어보고 싶다 와 읽을 수 있을까? 의 사이에서 계속 내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숙녀는 육체노동을 면제받는 반면 억지로라도 고상해야 했고, 무엇보다도 정절에 일말의 의혹도 없어야 했다. 경제 활동에서 완전히 배제된 숙녀는 경제력을 가진 남성이 구매하는 상품과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남성에게는 여성 편력이 트로피였지만 정조를 잃은 여성은 가문과 사회에서 축출되었고, 결국 거리의 여인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다. –본문

철학적으로 널 사랑해라는 책에서도 접해 보았던 내용들을 클러리사 할로를 통해서 마주하게되면서 이 모든 내용을 단 몇 페이지만으로 끝내고 넘어가기에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밀려드는데, 저자의 말마따나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쉼 없이 페이지가 넘어간다고 하니 기회 될 때 도서관에 가서 내용을 확인해 보려 한다.

특히나 댈러웨이 부인은 예전에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던 작품이었는데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의 대한 접근부터 시작하여 그녀의 삶의 원한과 슬픔을 고스란히 담아낸 댈러웨이 부인은 어떻게 서든 마지막까지 살아보려 했던 그녀의 의지가 담겨 있는 듯 했다. 비록 버지니아 울프 그녀 스스로는 비관된 삶으로 마지막을 장식했지만, 이 소설 속에서만큼은 살아 남으려 했던 그녀의 이야기는 그래서 인지 더욱 슬픔이 느껴진다.

그러나 클래리서는 비관에 몸을 맡기지 않는다. 아침에 런던의 거리를 걷는 것은 즐거움이고, 거리에서 부닥치는 작은 사건, 새로운 물체도 호기심의 대상이다. 단골 꽃집의 점원이 그녀를 반기고 집의 하녀가 그녀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섬기고 싶어 하는 것도 크나큰 행복이다. 이런 작은 기쁨들이 그녀를 절망의 심연에 빠지지 않게 해 준다. –본문

단순히 연애 소설로만 인식하고 있던 오만과 편견을 여성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이고 자기 가치를 충실했다는 점에서의 접근은 여러 번 영화 및 소설을 접했던 나에게는 또 다른 안목으로의 접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으며 영화 타인의 삶이 오버랩 되는 듯한 1984 1949년에 근미래를 그린 소설이었다는 사실과 가상의 세계이지만 그토록 실제하고 있는 듯한 끔찍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을 보면서 이 책 속의 모든 책들을 섭렵하고 싶다는 욕구가 들끓는다.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을 접하는 모든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책 하나하나의 줄거리와 저자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영국의 시대상까지 알려주고 있기에 이 소설들을 접하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어보면 꽤나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 든다.

소설에 대한 관심만 있었지 그 안의 영국 소설이 무엇이다, 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던 나에게 하나의 나침반으로 작용될 이 책을 한 동안 꽤나 유용이 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아르's 추천목록

작가의 얼굴 /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저

독서 기간 : 2013.09.27~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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