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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에 대한 이 책을 읽는다고 펼쳐 놓았을 때만 해도 주변에서 ‘대체 이 책을 왜 읽는 거야?’ 라는 질문을 받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보의 홍수를 넘어 쓰나미 보다 거대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단 몇 초의 기다림도 용납할 수 없다며 LTE A의 속도가 범람하고 있는 와중에 뜬금 없이 곤충에 대한 책이라니. 그것도 곤충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든 빌딩 숲 사이에서 별안간 무슨 생각일까, 하며 지인들은 나를 궁금해하면서도 참 별난 책도 다 읽는다, 라며 웃으며 지나가곤 했다. 아마 내가 그들이라고 해도 이 책 왜 읽어? 라고 질문 했을 것이다. 읽고 배워야 할 책들이 차고 넘친 상황에 방학 숙제도 아니고 왠 곤충에 대한 탐구람, 하며 핀잔을 주고 지나갔을 텐데 사실은 그 이유에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오랜 시간을 지구에서 우리와 함께해 온 곤충이지만, 곤충의 존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나비나 개미, 잠자리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거나 딱정벌레나 사슴벌레를 정성껏 키워 본 경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일상의 삶에서 곤충은 관심을 받기에는 너무도 미미한 생물체이거나 파리, 모기, 바퀴처럼 귀찮은 대상에 불과할 것이다. –본문
곤충에 대해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나에게 던져보았다. 초등학교 때 머리, 배, 다리고 구성되어 있고 3쌍의 다리를 가진 것이 곤충의 특징이라 배운 기억이 어렴풋이 나고 탐구생활을 위해 곤충채집을 한답시고 잠자리채를 들고 여기저기 뛰어 다녔다는 기억. 그리고 요 근래에는 가끔 등장하는 모기나 바퀴벌레 때문에 몸서리를 쳤다 정도가 내가 곤충에 대해 생각을 했다면 생각을 한 시간의 전부였다. 물론 곤충을 보기 힘든 곳에 살고 있고 볼 것도 많고 할 것도 많은 일상 속에서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왜 나는 곤충에 대해 단 한번도 호기심을 갖거나 궁금해한 적이 없었을까, 라는 그 근본적인 물음 때문에, 내가 모르는 어떤 거대한 세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읽어보고자 책을 넘기기 시작했다.
곤충이 인간의 역사에 무엇을 기여했다기 보다는 그저 같은 공간에 각자의 영역에서 함께 지내왔다는 것이 그들에 대한 나의 견해였다. 그저 이 책을 통해서 곤충의 생리나 일반적인 상식을 얻고자 했던 것이었는데,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정말 나는 곤충을 그저 한낱 곤충으로만 봐 왔었구나, 라며 그 무지의 당당함에 부끄럼이 가해진다.
곤충이 전체 지구 생명체의 생존에, 나아가 우리 인간의 생존에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는 것이다.
곤충은 거의 모든 지상 생태계와 수중 생태계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초본 식물은 아니라고 해도, 꽃을 피우는 종자 식물은 대부분 곤충에서 수분을 의지한다. 곤충은 식물의 씨앗을 널리 퍼뜨리고, 새와 물고기를 포함한 여러 동물의 먹이가 된다. 또한 곤충은 배설물과 동식물 사체를 흙으로 돌려보낸다. –본문
염료로 쓰이는 것은 물론 잉크의 원료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치료제로도 쓰이는 곤충의 이야기들은 실로 놀라울 정도였는데 특히나 이곳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의미에 대해 잘 모르고 있던 곤충들에 대한 지식은 물론 이 지구상에 있는지도 몰랐던 다양한 곤충들의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 있어 어릴 적 잠자리채를 들고 여기저기를 뛰어 다니며 신나게 뛰어 놀던 그 때의 마음이 되살아 나, 정말 정신 없이 읽어 내려간 듯 하다.
영어로 무당벌레를 뜻하는 ladybird는 ‘성모 마리아의 새’라는 뜻이다. 톰 터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중세 유럽 농부들은 진딧물이 농작물을 망치는 해충임을 알고 있었다. 진딧물을 없애고 싶었던 농부들은 성모마리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농부가 기도를 올릴 때 마가 무당벌레가 찾아와 진딧물을 먹고 작물을 구했을 것이다. 그래서 영국의 무당벌레에 성모 마리아 이름이 붙게 되었다. –본문
아마존에서나 만날 수 있다는 무언가 신비로우면서도 매혹적인 빛깔을 나는 모르포나비를 시작으로 골치덩어리에서 찬란한 태양으로 칭송 받게 된 목화바구미 이야기들은 아마 이 책이 아니었다면 평생 동안 모르고 지나갔을 곤충들의 이야기다. 특히나 벌꿀의 꿀을 지키기 위해 이집트 시대에는 ‘꿀단지 봉인자’라는 직책마저도 존재했다고 하니, 곤충을 그저 한낱 작은 개체로 생각했던 초반의 의식은 사라지고 곤충과 함께, 곤충에 의해서 변형된 인간의 역사를 마주하며 그들의 존재가 신비롭게만 느껴졌다.
꿀벌이 어떻게 꿀을 모으는가에 대한 고찰은 그야말로 경이로움마저 느껴지는 부분이었는데, 자신의 몸무게의 85%나 되는 꽃꿀을 배에 가득 담아와 이를 벌꿀로 만드는 그 일련의 과정은 가히 과학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할 정도로 ‘대단하다’라는 말만 되뇌게 한다. 수분 증발을 위해 밀랍의 방에 1/4정도만 채우고 다양한 효소를 첨가해서 만들어 지는 벌꿀을, 그저 달콤하다는 생각으로 한 숟가락 그득 떠서 먹기에만 바빴으니. 앞으로는 벌꿀 한 숟가락을 뜰 때마다 꿀벌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먹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먹는 과일과 채소의 수분을 거의 대부분 꿀벌이 돕는다. 캘리포니아 주가 1년에 2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해주는 아몬드도 모두 꿀벌이 수분시킨다. 수분 매개 곤충이 줄어들면 고기 공급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가축이 먹는 정향과 콩과 식물도 모두 꿀벌이 수분시킨다. –본문
작다는 이유로, 눈에 잘 띄지 않는 다는 이유로, 때론 해충이라는 이유로, 우리의 삶과는 관련 없을 것이 기타 수 많은 이유에서 그 동안 곤충에 대해 외면해 왔던 시간 동안 그들은 묵묵히 그들의 시간을 이어왔다. 비단 인간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그 곤충들 역시 자연의 순리에 따라 자신들의 삶을 위해서 살아온 것이라곤 하지만 그들의 삶의 영위를 위한 모든 과정 덕분에 인간의 삶은 더 풍요로워졌고 풍족해졌다. 그들의 일방적인 수혜 덕분에 우리는 오늘날까지 호위호식하며 살고 있었으나 단 한 번도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지난날에 대해 반성해보며 그들이 계속해서 우리의 주변에서 자리를 지켜주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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