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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도 낯설기만 한 ‘아버지’라는 단어는 아마도 내겐 평생 그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20살이 넘으면 ‘아빠’라는 호칭 대신 ‘아버지’라고 바꿔봐야지 했지만 왠지 모르게 아버지, 하면 거리감이 느껴져서 여전히 ‘아빠’라고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아빠’라며 편히 아빠를 부르며 이야기를 나눈 것도 20대 후반이 되어서인 듯 하다. 아빠, 라며 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애교를 부리기 보다는 그저 묵묵히 아들 같은 딸의 모습이었던 나는 아마도 나도 모르게 장녀라는 이름 하에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어느 날인가, 내가 훌쩍 자라서인지 아니면 시간이 그를 잠식해가며 세월이 흘러서인지 아빠의 어깨가 너무도 작아 보이던 순간, 너무나 엄해서 태산만큼이나 높아 보이고 무서워 보이던 아빠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그저 주름이 얼굴에 자연스레 자리잡은 아빠만이 보였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하루에 최소 10~20분씩, 있었던 일들을 종알종알 혼자 이야기하고, 아빠는 별 말 없이 그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화자와 청자라고 하기엔 미약한, 점차 소통하는 부녀가 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29살이라는 나이에 결혼을 하신 후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아빠의 어린 시절부터 청춘의 이야기를 그저 흘러가는 술 안주로 종종 듣곤 했다. 워낙 과묵하신 분이라 그렇게 하는 이야기도 채 30분이 지나기 전에 마무리되는 터에 아빠의 옛날 이야기는 딱 그만큼만 내게 남아 있다. 30분 정도의 희극으로 말이다.
강산이 변해도 몇 번을 변했을 아빠와 나와의 간극은 그 어느 때 보다 극변했기에 내가 모르는 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 지나간 아빠의 시간들을 더듬어 보기 위해선 예전의 영화들을 본다던가, 다큐멘터리를 찾아본다던가 혹은 책을 찾아보는 방법이 있을 텐데,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안성맞춤인 책이었다.
지난 세월 속으로 시간을 되돌려 나의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마주하는 기분. 그 오묘한 기분을 이 책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으며 그리하여 나는 읽는 내내 잔잔하지만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부지, 하나씩 먹게 네 개씩 사오지 왜 꼭 두 개만 사오세요?”
철없는 나의 질문에 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아, 콩알 반쪽이라도 나누어 먹어야 맛있는 법이야.”
아버지의 도시락 가방 안에 들어있는 그 빵이 아버지의 간식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아버지가 일을 나가지 못하는 날에는 빵이 없었을 뿐 아니라 일터가 바뀌면 새참의 종류가 바뀌어서 빵을 가지고 오지 못했던 것이다. 새참은 대개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나온다. 아버지가 가져온 빵의 개수가 늘 두 개 였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본문
나는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배고팠던 시절이 없었다. 물론 부모님이 말씀 하시기론 내가 어릴 적만 해도 그다지 풍족하지 못했기에 매일 김치찌개만 먹었다곤 하시지만, 내 기억 속에는 풍족한 식탁만이 존재하기에 언제나 행복 그 자체였던 것 같다. 특히나 포장마차에서 친구분들과 약주를 하시는 날이면 그 곳에서 남은 안주를 하나 둘씩 가져다 주셨는데 아마 저자의 아버지처럼, 나의 아버지도 그 옛날 당신들의 배고픔 속에서도 자식들에게 맛있는 음식들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나 보다. 물론 당시에 나는 그런 아빠의 마음을 헤아리기 보다는 남은 음식들의 맛을 보는데 더 여념이 없었지만 말이다.
“어제, 일이 끝나서 새로운 일을 알아보러 나간단다. 다녀오마.”
“아부지, 하루쯤 쉬시면 안 돼요? 학교도 쉬는데……”
내 물음에 아버지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한숨을 쉬며 알했다. “그러면 오죽이나 좋겠니. 그렇지만 이 아비의 인생학교에는 일요일이 없단다.” –본문
언제나 나에겐 가장으로서 식구들을 위해 매일 일을 하던 아빠의 모습이 서글프게 보이던 날, 아마 그 즈음 나는 내 나름대로 철이 들었던 것 같다. 용돈을 타서 쓰고 학비를 지원 받는 것을 당연한 줄 알고 지냈던 그 과거의 날들은 당신의 과거에 대한 염원을 자식들에게만큼은 원 없이 해주고 픈 사랑이었음을, 그 누가 강요하지 않았지만 제 살을 깎아서라도 이룩하고 싶은 소망이자 당신의 미래였을 것이다.
나는 잠버릇이 심한 편이어서 아침에 일어나 보면 거꾸로 자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런 나의 눈에는 밤새 자세 한 번 흩트리지 않고 팔짱을 낀 그대로 아침까지 자고 있는 아버지의 자세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아버지의 잠의 형태는 식구들의 잠자리를 위해 그렇게 잘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생활의 단면도였다. 식구들을 배려하는 아버지의 몸과 마음이 무의식중에 선택한 생활의 형식이었던 셈이다. –본문
늘 무뚝뚝하니 별 다른 말씀이 없으셨지만 아빠는 나를 보고 계신 듯 했다. 감시를 위해 지켜보는 것이 아닌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칠까 바라보고 있는 모습. 그것이 바로 아빠의 모습이었다. 작은 습관들, 예를 들어 식습관에 있어서 동생은 멍게를 좋아하고 나는 해삼을 좋아한다, 는 식의 공식은, 때론 엄마는 반대로 잘못 알고 계시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아빠는 단 한 번도 우리에 대해서 잘못 알고 계신 적이 없었다. 이미 생활 속에 자식들에 관한 정보들은 빼곡히 담아 놓았기에 아마도 아빠는 그것이 굳이 떠올려야 하는 기억이 아닌, 내 것마냥 자연스럽게 베어 나오는 사랑일 것이다.
이미 아버지를 먼저 떠나 보낸 저자의 그 아련함과 추억이 담겨 따스한 이야기에 빠지다 보면 아빠의 모습도 덩그러니 함께 떠오르는 듯 하다. 그리하여 과거의 아빠와 현재의 내가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이다.
글을 읽는 내내, 퇴근을 하고 집에 가면 아빠를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늘어난 주름살 만큼 딸의 나이도 점점 늘어나고 다부졌던 아빠의 어깨를 먹고 산 딸은 점점 커져만 가는데 도리어 작아져만 가는 아빠를, 오늘만큼은 꼭 안아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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