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의 남녀의 구성이 주인공이라는 그들이 천문부의 유일한 기수이며 서로 성격이나 취향마저 다른 이들이 함께 '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함께 한다는 이 책의 소개 글을 보면서 중학교 때 시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를 포함해서 남자 2, 여자 2의 구성으로 이뤄졌던 우리는 2학년 때 같은 반의 일원이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매개체가 되어 체육시간이며 그 외의 시간 동안 한창 활동을 같이 했었다. 배드민턴이며 농구며 평가라는 이름 하에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그 시간을 언제나 깔깔 거리며 웃으며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이 친구들과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다. 성격이나 외모, 성향마저 모두 다른, 특히나 이성관에 대해선 각기 뚜렷한 주관이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여전히 함께 모여 있는 거라며 우스갯소리를 하는 우리 4인방의 이야기를 오버랩 되며 떠올라서 인지 당장에라도 이들의 이야기가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미 과거 속에만 존재하는 그때의 이야기가 그들에게는 현재일 테고 그들만의 밤 속에 스파이란 이름으로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설레면서도 궁금해졌다. 우리가 가진 기억 속 모습과 그들의 모습은 얼마나 비슷하면서도 다를지. 과거의 졸업사진을 펼쳐보든 떨리는 마음을 안고 책을 읽어 내려갔다. . 이야기는 나인 조, 붓치, 게이지, 기 이렇게 4명의 일원으로 구성된 천문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모두가 평범해 보이는 고등학생이고 천문부라는 무언가 있어 보이면서도 슬쩍 따분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이 곳에 모인 아이들. 누군가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아, 실제로 그러한 완벽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이 천문부에 모인 이들은 아무런 공통분모도 없는 이들은 조합이기에 오히려 희한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도 한다. 학교 내에서 그렇게 친한 것도 아니고 서로 각자의 무리가 따로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천문학이라는 것에 그토록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이 서클의 담당 선생님 조차도 쿨할 정도로 이 모임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보다는 방관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와중 활발하지 않지만 이들은 주기적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 보면 누구의 인생이든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이 아이들은 평범한 학생으로서 이 자리에 있는 듯 보였지만 들여다 보면 모두 그들만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 순간 내가 만들어 놓은 음식에서 뜨거운 김이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시집, 시집, 시집, 시집만 가면 내 인생이 완성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대학은? 취직은? 사회가 얼마나 다양해졌는데 한 가지 길만을 강요받는 게 과연 행복한 삶인가? -본문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업을 포기하기를 바라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어떻게든 학업의 꿈을 이어가고자 하는 조, 모든 것에 척척인 만물 박사인 듯 보이는, 그러면서도 능구렁이 같이 여자들에게 쉬이 허니, 베이비라는 말을 서스름없이 하는 게이지. 갑작스런 실업 이후에 폭력적으로 변해 버린 아버지와 그런 폭력과 폭언을 그저 방관하고 있는 그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기. 그녀의 화려한 옷차림과 4개의 피어싱은 무언의 자기 방어적인 것이다. 그리고 매일 폭탄을 안고 이동하는 붓치. 사실 폭탄을 매일 안고 이동하는 자신의 임무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는 붓치의 이야기를 들으며 순간 흠칫 놀랐었는데, 그 자세한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이 친구들은 어른보다 훨씬 성숙하고 너그럽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전쟁터라는 환경을 스파이라는 신분으로 위장하고 함께 밤을 공유합니다. 이제는 그 어떤 조직보다 단단한 유대를 가진 동료들이 되었고,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그 사람이 내 곁을 떠나는 날이 온다 해도 함께 싸운 동료들이 내 인생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본문 자칫 무거워 질 수 있는 현실의 이야기들을 아이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세상과 자신들이 꿈꾸는 세상 속에서 '스파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며 지내고 있다. 그들에게 밤이란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며 꿈꿀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며 자신들을 지지해주는 동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그야말로 해방구와 같은 시간인 것이다. 천문학 클럽이지만 그들은 밤 하늘을 바라보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미스터리 한 사건들을 풀어가며 아이들은 서로의 결속을 다지고 있었다. 물음표가 계속되는 정체 모를 사건들을 훌륭하게 풀어나가는 이들의 모습은, 시간이 흐를 수록 그들간의 거리를 가깝고 친근하게 만들었으며 때론 어른들보다도 훨씬 더 현명하고 의젓해 보이기도 했다. 특히나 기의 이야기는 보는 내내 안쓰럽기만 했는데 그 아이는 당당히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었다. 여자이기 이전에 아직은 보호받아야 하는 청소년이지만 가정 폭력의 중심 속에 덩그러니 놓아졌던 아이. 언니에게 갈 수 있는 편도 티켓을 마지막 비상의 열쇠를 삼아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려 했던 이 아이의 귀에 자리하고 있는 피어싱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최후의 몸부림이자 발버둥의 의지였다. "피어스를 늘리지 않았잖아. 그러니까 약하지 않아." 자신이 있는 곳을 가족에게 감추고 살아야 한다는 것.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요리를 다닞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할 수 밖에 없다는 것. 기에게는 그동안 피어스를 더 늘릴 만한 계기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도 기는 거기에 상처라는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다. -본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지만 그 상처를 회복하게 하는 것도 사람이라고 했다. 친구든 가족이든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이 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한 상처를 또 내 곁에 있는 이들에게서 치유 받곤 한다. 가장 감성적이고 또 불안한 시기였던 청소년 시기에 나 역시 이 책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친구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본다. 그들만의 스파이라는 임무가 있었기에 이들이 지금 웃고 있듯이 세상에 이런 수 많은 스파이와 그들의 활동이 있기를 바라본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들려지는 암울한 뉴스들의 소식이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더 많은 스파이들의 등장이 더 많은 이들에게 따스함을 전해질 수 있길 바라며, 그들의 맛있는 이야기가 오늘까지도 지속되길 기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