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이면서 감성 바보라 불리는 남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저자의 양력을 보면서, 얼마나 감성적이기에 감성 바보라는 애칭을 얻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던 호기심이 책을 읽어내려 갈 수록 이해가 된다. 글과 사진이 함께 있으면 먼저 사진에, 그림에 눈이 먼저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일텐데 어느 새 나는 그의 글에 집중하고 있었으며 사진은 그저 곁들여 있는 추가메뉴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하여 점차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는, 그야말로 감성의 무풍지대였다.
자칫하면 그저 소품들을 소개하는, 그저 홈쇼핑의 책자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는 이 위험한 시도의 책은 하나의 아이템을 마주하면서 그가 끌어오는 기억과 추억의 습작으로 말미암아 따뜻한 이야기가 가득한 책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남자가 청승이다, 라고 핀잔 받을 일이지는 모르겠지만 하나의 아이템을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이 사람이 나는 참 따스한 사람이라 느껴졌고 그래서 인지 그의 이 청승스러움이 좋았다.
또래 남자애들이 갖고 있는 감성의 임계점을 넘어섰다고 느꼈지만, 별다른 능력이나 자랑이 아니었기에 밖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나이 들면, 감성 대신 이성이 더 커질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성적인 사람이 되고자 했으나 지극히 감성적인 사람으로 성장했다. 나는 여전히 주위에서 감성적인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 -본문
눈에 드는 여러가지 아이템들이 있지만, 책을 덮고 나서도 가장 많은 잔상이 남는 것이 굿프렌즈의 다니오라는 이름의 어항이었다. 물고기를 기르는 공간을 말하는 어항을, 물고기가 없이 그저 어항만 덩그러니 있는 그 장면을 보면서 오히려 그 자체만으로 편안하면서도 아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어찌되었건 어떠한 물고기에게는 하나의 보금자리가 될 것이라는 그 자명한 사실만으로 그러한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이 포근함은 첫 문장을 읽어 내리고 순간 두려움이 밀려 들었다.
"애들은 죽기 위해 사네." 회집 큰 수족관에 떠 있는 너절한 잿빛의 몸뚱이와 검은 눈을 보고 말했다.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사람들은 줄 서서 그들을 탐닉한다. 나도 그 무리 중 한 명이다. 수족관과 나와의 거리는 1m 남짓이지만 그들과 내가 있는 공간은 너무나 다른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생의 경계는 그렇게 명확하고 잔인하다. -본문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한 하나의 물건이 다른 이에게는 이토록 많은 과거를 회상하게 하는 매개체가 된다는 것에서, 하지만 나는 그러한 글을 읽고 나서야 또 나의 이야기를 더듬어 볼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며 살짝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아마 이 책이 아니었다면 굳이 되새겨 보지 않았을 나의 이야기들 역시 다시 한 번 빛을 보게 되었다는 점에서 나도 잠시나마 감성적인 사람이 되어 보았다. 책을 펼치기 전에만 해도 몰랐던, 그저 예쁜 아이템들로만 가득할 것 같은 책은 완연히 한 남자의 기억의 회로에 따라 함께 따스한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하는 마법같은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