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노예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09
미셸 오스트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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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모든 것에 덤덤한, 아니 무심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한 필립의 눈에 비친 세상은 그저 무엇 하나 특이한 것 없는, 자신과는 상관 없는 또 다른 세계일 뿐이다. 현재 그의 눈앞에 비쳐지는 것들은 그저 타인의 것들일 뿐이며 자신의 삶마저도 타인의 것인 냥 일관된 무관심으로 방치하는 그를 보면서 필립의 곁에 다가서기만 해도 그 자욱한 무기력증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런저런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과 에펠탑의 철 구조물을 기듯 올라갔다가 굴러떨어지듯 내려오는 여행객들은 단 1분도 허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제멋대로인 듯한 무기력한 걸음걸이란 사실 다른 사람들 눈을 속이려는 것에 불과하다. 아니다, 곧장 다리 끝까지 걸어가서 지하 철로가 파놓은 시멘트와 돌과 추철의 거무스름한 낭떠러지에 닿아야 한다. –본문

 그의 무심하면서도 신경질적인 이 성격은 아마도 그의 어머니와의 서먹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모자 사이라고 하기에는 그 관계의 끈은 너무나도 헐거웠으며 그 둘간에는 그 어떠한 유대관계도 살펴볼 수가 없다. 어머니를 제외하면 필립의 삶에 공존하고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 단정짓지만 그 유일한 자신의 삶 속에 드리운 어머니와의 시간들은 타인과의 시간보다도 버겁기만 하다.

 그렇기에 필립은 자신의 어머니의 말마따나 ‘마치 똥을 싸 지르듯 떠나 버린’ 아버지에 대해서 원망 보다는 오히려 이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모자를 위해서 넥타이 공장을 남겨 놓고 ‘독신으로서 성품이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토니 소앙을 남기고 떠난 자신의 아버지는 자신과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떠난 것이라 생각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나 자신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정상 인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예술가나 학자, 창작가가 그들의 허약한 신경조직 때문에 고통을 받고 미치광이나 기괴한 인물로 통한다면 예술이나 창작이란 그들에게 알리바이로 쓰인다는 사실을 나는 이해한다. (중략) 나로 말하자면 뭘 상상하거나 내 생각에 어떤 형태를 부여하는 데는 전혀 무능하기 때문에 감정 또한 어쩔 수 없이 메마르게 되었다. 그림 하나 감상하는 데도 무지막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으니 그 결과가 어떠했겠는가? –본문

  그러한 그의 삶에 있어서 커다란 혁신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은 바로 폴라를 만나서부터이다. 모든 것이 예전의 고착상태 그대로 있는 그에게 있어 2년 째 만남을 이어온 폴라와의 관계는 그에게 새로운 통로가 되어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에게 덩그러니 남겨진 방직 공장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물음을, 모든 사람이 칭찬해 맞이 않던 전쟁 속 영웅이자 레지스탕스였던 그의 아버지에게 이제 묻고자 하는 것이다.

 마흔이라는 세월 속에서 그는 이러한 공상 속에 살고 있었을 게다. 모든 것이 완벽할 것만 같은 그의 지지기반이 있기에 필립은 더 이상 진보 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도 별 문제 없이 지내왔다. 그가 굳건히 믿었던 그의 과거는 그토록 꿈에 그리던 아버지를 마주하는, 아니 엄청난 비용을 주고서 그가 마주한 것은 초라하다 못해 남루하고 추한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이 소설은 예상했던 대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 속 소설이 아니다. 그야말로 어른들을 위한 잔혹한 이야기인데, 필립이 마주했던 그 현재의 모습에서 덜컥하니 머물러 있는 것으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에게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주었던 폴리의 말처럼, 과거가 아닌 현재를 마주하고 오늘을 살아야 할 것을 다짐해야 할 것이다. 필립이 그의 아버지를 본 그 자리에 멈춰 있다면, 또 다시 그는 그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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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 F. 스콧 피츠제럴드저

 

 

 

독서 기간 : 2013.10.26~10.29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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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급은 없다 - 부속인간의 삶을 그린 노동 르포르타주 ㅣ 실천과 사람들 5
레그 테리오 지음, 박광호 옮김 / 실천문학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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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노동자, 라는 단어를 들으면서 왜 나는 육체 노동자들에 한정하여 그들을 생각했던 것 일까. 마치 피부색에 따라 우위를 나눴던 인종차별의 시대로 회귀하듯, 나는 노동자, 하면 육체노동자만을 한정 지어 생각하고 있었고, 소위 블루 칼라라고 불리는 그들을 화이트 칼라 보다는 하위의 피라미드에 있는 것으로 자연스레 생각했으며 그리하여 그들 중 한 명이 이런 거대한 르포르타주를 작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조금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이토록 거만한 생각에 빠져 살았으니, 참 읽으면서도 내 자신에 대한 책망과 그 동안 그 안일함에 빠져 그것이 진리인 냥 살아온 내가 한심에 보였다.

 어느 새 사회 속에서 졸업장이나 자격증은 현장에서 피땀 흘리는 노동자들 보다 더 값어치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으며 그 통속적인 세상에 부합하려 오늘도 수 많은 젊은이들은 책과 사투를 버리고 있다. 그것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부류의 노동인 듯 말이다.

 자본주의가 처음 도래했을 때만 하더라도 노동자는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거대한 축이었다. 그들이 없는 세상은 자본주의의 핵심이 빠진 굴레나 마찬가지이므로 소위 그 당시의 노동 계층이 필수 불가결한 존재였고 그들을 통해서 미국은 바야흐로 경제 대국으로 거듭 날 수 있었으나 이른바 기계화와 산업화를 지나게 되면서 그러한 노동 계층은 이제 더 이상 그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닌, 쓸모 없는 존재로 전락해 버리게 된다.

 혹자는 그렇게 이야기 할 수도 있다. 소위 노동자들이라 불리는 이들, 그러니까 육체 노동자로서의 삶이 싫다면 동일한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들이 조금 더 열심히 공부를 했어야 했던 것 아니냐며 그들을 채근할 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그러한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모두가 겪어 봤듯이 이수해야만 하는 교과목들이 누구에게나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언어 영역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 과목의 점수가 비례하게 나오지 않았듯이, 또 다른 맥락으로는 교과목의 점수 만으로 그들의 인생에 대해 판가름 할 수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머리가 몸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착된 생각이 아닐까?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러한 고단한 삶을 지내온 부모님은 그를 자신들과 같은 삶으로 인도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든 고등교육을 통해 블루 칼라가 아닌 화이트 칼라로서의 삶을 살기를 바라고 계셨다. 하지만 그는 그의 부모님의 바람대로가 아닌 그의 부모님과 같은 육체 노동자로서의 30여년을 보내게 된다.

경영진 입장에서 노동자가 앉아서 노는 모습은 절대 참을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노동자는 고용되어 임금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실직자가 앉아서 쉬는 모습에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자기들이 해고해서 실직한 것인데도 말이다. 결론적으로 사용자의 ‘기계화와 현대화’ 계획의 주목적은 작업 과정을 줄이는 것이 아니었다. 노동자를 없애는 것이었다. –본문

 부두에서 하역 작업을 하는 노동자로서 살아왔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이지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듣는 듯 했다. 요새는 모든 작업이 기계로 이뤄져 있기에 컨테이너선이든 벌크선이든 신속하고 정확한 작업은 물론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그에 따라 시간이 단축되며 결론적으로는 최적의 비용으로 작동될 수 있는 기계화에 철저히 의존하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진보의 모습이라 생각했었는데 그의 말을 따라 쫓다 보면 과연 이것이 누구를 위한 진보인가? 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자본주의의 기틀에서는 대거 노동자의 투입이 고용인과 노동자 모두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는 행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산업화라는 터널을 지나게 되면서 지금까지 함께해 온 노동자들은 일개 부품과 같이 전락하게 되었고 똑같은 부품이라면 조금 더 저렴한 것을 구입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산술적인 계산으로 제 3국의 노동자들이 그 자리는 메우게 되면서 실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노동자들은 그 자리를 내어주고 길거리로 흘러 나오고 있었다.

 대학 강의 중에서 경제성에 대해 배우면서 기계화와 자동화라는 혁신이 제품 생산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효율성을 증대하게 되었는가, 에 대해 배우면서 그것이 당연한 이치라고만 생각했었다. 왜 한 번도 사람을 대신하고 있는 기계들의 몫을 합당하다고만 생각했던 걸까. 경영이 철저히 수치를 근거로 한 이성적인 영역이라고 한다고 하지만 기계가 모든 인간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느새 철저히 경영자의 입장에서만 자리하게 된 경영의 방침들을 보면서 과연 노동자라는 계급이 경영자를 통해서 임금을 받는 층만을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한다. 회사를 위해서, 라는 명목으로 그들은 언제나 회사의 위기가 들이 닥쳤을 때 인원 감축을 하는 것을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회사 뒤에는 권력이라는 거대한 이익 집단이 그 경영 집단을 옹호하고 있는 터에 실제 그들에게 수 많은 이익을 전달해 준 개미와 같은 노동자들은 속수무책 그들의 뜻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는, 후퇴 할 수 없는 체스 판의 폰이 되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언제나 “Yes”를 외쳐야만 했던 그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결말은 허망하면서도 서글프기 짝이 없다. 노조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마저도 실제 노동자들을 대변하기 보다는 그 대변을 와해시키려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니, 참 인간이란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부두노동자들은 ‘한 사람이 위해를 당하면 모두가 위해를 당한 것’이라는 신조를 고수하며, 파업 불참을 가장 괘씸한 범죄 행위라고 여기는 이들이었다. 이들에게는 일부에서는 악명은 높지만 훌륭한 저명인사인 해리 브리지스가 수장을 맡고 있는 국제항만창고노동조합이라는 부두 노동자 노조가 있었는데, 이 조직은 1930년대 중반에 선박과 해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민주적인 힘을 합쳐 건설한 조직이었다. –본문

 책을 읽는 내내 섬뜩함이 나를 관통하는 느낌이다. 합리적이거나 효율적이라는 이름 하에 우리 역이 언제 이들과 같이 필요 없는 계층으로 전락해 버릴 지 모르는 일이다. 블루 칼라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그 다음 다른 집단에게도 이 섬뜩한 칼날이 드리워질 수 있다는 신호와 다름 없는 것이다. 과연 당신은 이 고요한 불도저의 움직임을 그저 관망하고만 있을 것인가? 에 대해 또렷이 생각해보게 하는,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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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놀이 / 공지영저

 

 

독서 기간 : 2013.10.25~10.27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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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샤니 보얀주 지음, 김명신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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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이 책 속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라는 역사적인 배경을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이 지리한 분쟁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 이 둘 간에는 영토 분쟁이 발생되었으며, 현재는 영토 분쟁을 넘어선 끊이지 않는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대치 국면의 그 정점 가운데에 태어난 이 3명의 소녀들은 현재 자신들이 속해 있는 이스라엘의 안위를 위하여 그들은 군대에 징집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남자만이 징집 대상이 되는 반면 이스라엘은 남녀 모두가 복무의 의무가 있는데 이 소설 속의 시점은 세 명의 소녀들이 돌아가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비추어 주고 있기에 다분히 이 안에서만큼은 소녀병들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소녀병들의 이야기는 여느 10대와 다르지 않게 그 발랄함과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과 그 만큼의 두려움이 드러나 있었는데, 다만 그들이 있는 곳이 분쟁의 지역이기에 언제 어디서 일촉즉발의 위기가 터질지 모른다는 시한 폭탄 위에 서 있다는 것이었다.

 RPG가 발사되면 뒤쪽 헤드에서 뿜어져 나온 불길이 머리에서 어깨로, 곧이어 샌들까지 옮겨 붙는다. 아무도 이 RPG포 아동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아무도 그들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 앞에서 RPG를 들었던 아이들에게도 뒤에서 들었던 아이들에게도. 그런데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은 대개의 경우 앞쪽에 있던 아이는 뒤에서 불타는 친구를 보면 뛰어들어 그를 껴안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사상자수가 현저히 증가했다. –본문

 미드를 좋아하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수줍게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자기들끼리 낙서를 주고 받으며 하루를 보내는 그녀들에게 피할 수 없는 그 복부의 의무는 어느새 성큼 다가와 있다. 이미 그녀의 어머니들 역시 군복무를 마치고 왔기에 그 딸들에게도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조우지만, 당연한 것들 앞에서도 긴장하고 두려움이 교차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그들이 놓여있는 배경 때문일 것이다. 안전할거야, 별일 없을 거야, 라고 다독이고는 있지만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그 곳에 그녀들은 각기 자리하고 있다.

 “그냥 애들이야.” 나는 보리스에게 발길질을 하며 소리친다. 그런 다음 시멘트 위에 엎드린 그의 몸을 덮친다.

 “기지에서 군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보면 사격하라는 게 규율 아닌가요?”

 내 보폭이 점점 넓어지자 그의 목소리가 조용해진다.

 소년을 쏘아서는 안 된다는 걸 가르쳐 준 사람이 아무도 없을까? 내가 가르쳐 줘야 하나? –본문

학교에서부터 배워야 하는 무기들의 사용법과 쓰임새, 용어들을 배우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이들에게 이러한 것들이 필요한 것일까? 라는 생각과 함께 대체 이들은 누구를 위하여 경계 태세를 하고서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고 총을 겨누고 검문 검사를 해야만 하는 것인가, 에 대한 고뇌에 빠지게 된다. 이제 채 20살도 되지 않은 그들에게 접경에서 만나는 이를, 민간인이 아닌 ‘적’으로 간주하여 사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이 논리의 전개를 보면서 세뇌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라는 섬뜩함이 밀려들었다.

이런 느낌이 든 건 근무하던 검문소에서 군 복무를 시작한 지 1년도 안 되었을 때 동료 군인 중 한 명의 목이 두 동강 나는 것을 본 뒤부터였다. 그녀는 사실 자신이 원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은 군대에서 살아남는 것뿐이고 그러려면 장교가 되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자신의 목이 거의 두 동강 날지 모를 위험 속에서 멍청한 검문소 군인으로 지내는 것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본문

나에게 10대는 수능이라는 문턱을 넘기 위해 아등바등 하면서 지내야 했던, 그 암흑과도 같은 시간 속에서 일 년에 단 한 번뿐인 시험을 통해서 10대의 결과물이 나타난 다는 것에서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을 했었는데, 이 책 속에 있는 그 소녀들은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뛰어 넘어 생과 사의 순간에서 담담한 듯 목도하고 그것을 일상처럼 견뎌내야 했다.

이 책 속에서 그녀들이 왜 이러한 상황에 놓여져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저 그녀들은 그러한 곳에 태어났고 그곳에 태어난 이상 이 모든 일련의 행위는 자연스러운 굴레일 뿐이다. 거점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신분증을 확인하고 신분증 만으로 그들이 위험인자인가를 판별해야 했으며,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그들이 군 복무 중 해야 하는 일의 전부이기도 했다. 수류탄을 어떻게 던져야 할지, 적이라고 간주되는 이들이 시위를 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매뉴얼을 읽으며 적과 아군이 대치, 아니 그 다음 상황을 함께 의논해 가는 모습에서는 대체 이들이 무엇을 위하여 이곳에서 이렇게 적과 적의 형태로 마주하고 있는 것 일까. 평이한 사람들이 적과 아군으로 나뉘고 적이라고 해서 딱히 그들 스스로가 죄를 지었다는 것도 없었으며 아군이라고 해서 언제나 옳은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만일 수감자들 중에 죄 없는 사람이 있으면요?”

“내 어머니는 눈이 멀었어. 아버지가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변기 위에 앉혀 줘야 한다고. 그들 중에 무고한 사람이 있을 리 없어. 군대는 죄 있는 사람들이 전부 잡아들이지 못하고 있어.” 취사병이 말했다.

“수감자들 중에 단지 한 번 실수한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죠? 원해서 한 일이 아니라 무심코 저지른 일이면요?”

“그렇다면 내가 무슨 짓을 하든 정당한 거지  –본문

 평화와 안전을 위한 다는 명목으로 2~3년의 시간을 군대를 지나왔던 그녀들은 소녀와 여자의 과도기적인 시간은 그곳에서 보내게 된다. 별 탈 없이 건강하게 군대를 제대했다는 것은 너무도 다행스러운 일이겠지만, 과연 그녀들이 보여지는 것만큼이나 모든 것이 괜찮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섣불리 판단 할 수가 없었다.

 시작은 영토 분쟁이었지만 이들에게는 서로의 앙금만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국가를 위한 전쟁이 거듭될수록 누군가의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은 아스라히 그 곳에서 사라졌으며 남겨진 이들은 그 상처를 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어느 새 서로 쫓고 쫓기는 관계가 되어버린 이들의 끝나지 않을 지리한 싸움은 서로를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들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 우리 모두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어느새 이들의 분쟁은 서로를 넘어 자신들마저 잠식하고 있는 거대한 싱크홀이 되어 가고 있으니 말이다. 

  

아르's 추천목록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 주노 디아스저

 

 

 

독서 기간 : 2013.10.23~10.27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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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커피기행 1 - 고대 문명과 예술을 찾아 떠난 ㅣ 세계 커피기행 1
최재영 글.사진 / 북스타(Bookstar)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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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몇 블럭 지나지 않아서 수 많은 카페가 눈에 보인다. 대학교를 입학 할 때만 해도 한 두 곳에 불과했던 카페는 졸업 할 즈음에 거리를 다 메울 정도로 많아졌고, 직장 근처에는 점심시간만 되면 카페에는 줄이 늘어져 있다. 어느 순간부터 늘어서 있는 카페만큼이나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어느새 우리나라의 커피 소비량은 1인당 400여 잔에 달한다고 한다.

 

믹스커피가 전부인 줄 알았던 나에게 씁쓸하기만 하는 아메리카노가 익숙해졌을 때 무렵 커피의 맛도 모르지만 원두의 종류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주말에 가끔 카페에서 일을 돕게 되면서 커피에 대해 조금씩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카페를 운영하고 싶다는 작은 바람을 안고 하루를 살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의 저자는 그야말로 혁명과 같은 시도를 한 분이었다. 커피를 따라서 전 세계를 따라 그 맛과 이야기를 쫓는 여정은, 그저 카페에서 커피 향을 맡으며 지내고 싶다는 생각에서 멈춰 버린 나를 이끄는 자석과도 같았다.

 

15년 여간의 여행 동안에 50여개 국의 나라를 돌아본 그는, 책의 그저 한잔의 커피 안에서 향과 맛만을 탐했던 나에게 그 안에 담겨 있는 역사는 물론 과학과 다양한 인생사를 안겨주고 있었다.

 

인류사의 긴긴 세월 속에 수많은 부족과 나라가 탄생했다가 사라지고, 다시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업어지고, 또다시 찬란한 제국을 이루었다가 스러지는 문명의 흥망성쇠를 보여주고 있다. -본문

 

맨 처음 아프리카에서 발견되었다는 커피가 오늘 날 전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차가 되기까지, 그가 만난 다양한 풍경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 각양 각색의 커피 레시피들도 함께 만날 수 있다.

 

다만 커피 기행이라고 하기에는 그가 이 안에 담으려는 것이 너무 많았기에 가는 곳마다 그의 발걸음마다 여행의 기행문과 같은 내용 뿐만 아니라 과학과 역사, 그 전 세대들의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있는데, 이것이 딱히 구분이 없이 하나의 흐름 안에 담겨 있어서 좀 복잡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읽다 보면 굳이 '커피'라는 주제를 안고 모여있다기 보다는 여행기의 내용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기도 한데, 어찌되었건 이 안에서 각 나라마다의 고유한 커피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독일에서 만날 수 있는 진한 에스프레소에 더해지는 레몬주스와 레몬 껍질, 설탕을 넣어 마시는 커피는 이 곳에서 처음 마주하는 것이었는데 쌉쌀하면서도 시큼한 그 맛이 어떠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또한 위스키를 넣은 아이리시 커피 또한 한번 쯤 맛 보고 싶은 커피이다.

 

영국 등 유럽 국가의 80%는 커피콩을 로스팅해서 1개월 안에 소비하며 에스프레소 그날의 환경과 분위기에 따라 우유와 초콜릿을 넣어마신다. 사실 영국은 어느 나라보다 차와 커피 문화의 시작이 빨랐다. 처음 유럽에 커피가 들어왔을 때 너무 많은 커피 소비 문화를 감당하지 못하여 커피에 세금을 부과하게 되었다.-본문

 

유럽을 떠나 아시아를 지나오는 동안 그는 커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차 문화에 대해서도 소개를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보이차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몇 해 전 보이차를 선물 받았던 나는 그 음용 방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서 몇 번 마시고 고스란히 보관해 뒀었는데 이 책 속에서 보이차를 다시 만나니 다시금 그 차를 마셔보고 싶은 생각이었다.

 

한잔의 커피를 그저 마시기만 했던 나에게 이 커피가 나는 열매를 쫓아 현재의 내 컵 안의 들기까지, 그리고 다른 이들은 어떻게 커피를 마주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곳에 커피가 퍼져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주식이 아닌 그저 기호 식품인줄만 알았던 커피가 이토록 널리, 그리고 많이 퍼져 있다는 것을, 별 다른 많은 고심을 하지 않아도 넘어가는 페이지 덕분에 2권을 금새 읽어 내려갈 수 있는 것 같다. 조금만 더 정형화 된 내용들이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들기는 하지만 커피 몇 잔 가격에 전 세계를 구경했다는 것에서 만족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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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커피문화 기행 / 장수한저

 

 

독서 기간 : 2013.10.2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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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산고 -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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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를 책이며 영상으로 배우고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통해 그 시대를 배웠던, 일명 요즘 세대에 살고 있는 나에게 반일이라는 이 감정은 대체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가끔 들 때가 있다. 그 당시를 살았던 것도 아니고 활자 등을 통해서 배운 것이 전부인 나에게 이토록 뿌리 깊은 반일이라는 감정이 있다는 것. 아마도 현재의 그들을 마주하고 있는 나로서는 과거에 대한 그 어떠한 반성의 기미도 없이 일본의 망언과 그들의 비도덕적인 행태가 계속 이어지고 있기에 그로 인한 싹트는 그들에 대한 반발심, 이것이야 말로 그들 스스로 늪에 점점 들어가고 있는 형상일 텐데 여전히 그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신들이 옳은 것인 냥 말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불이익을 안고 과연 평등의 세계주의로 갈 수 있는 걸까? 허구요 망상이다. 한국인의 반일이 모두 그런 논리에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분풀이라는 본능적 감정인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정치적 차원이지만 일본인의 의식도 간과할 수 없는 만큼 일본은 왈가왈부할 처지가 못 된다. 그것은 과거의 잘못보다 오늘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인의 분을 풀어주지 않았다. -본문

 

일본 내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는 역사 왜곡의 현장을 들여다 보면서, 어느 새 독도가 일본의 땅이라고 믿고 있는 청소년들이 과반수가 되어 가고 있다는 설문조사의 % 속 너무도 높은 숫자를 마주하며, 단순히 그들이 광적인 망언의 수위를 그저 그들이 이상한 거야, 라는 식으로 목도하거나 육두문자를 날리며 내 스스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에게 있어서 활자로서의 자신들의 왜곡된 역사를 남기고 그것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것은, 현재의 그들이 비난 받는다고 할 지 언정 먼 훗날 그것이 그들의 또 다른 역사라는 초석이 될 수 있기에 이토록 철저히 준비하고 있는 것일 게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고립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를 절단하고 지금부터 새로이, 아무것도 없었던 순수한 모습으로 시작 하고자 하는 움직임. 이 태동이야 말로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행태가, 역사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를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나치가 저지른 일을 청산한 독일과 청산하지 않는 일본, 오히려 침략을 정당화하며 초등학교 우리의 어린이까지 전선으로 차출하여 하여 하루에도 수십 명 병사를 상대하는 지옥을 연출하고도 마이동풍, 미군이 성폭행을 했다 하여 지금 국론이 뒤끓고 있는 일본, 도대체 일본과 독일은 어떻게 다른가. 가스실과 위안부가 같지 않아 그럴까. 영육이 동시에 파괴되는 위안부가 가스실 참사를 상회하는데도. -본문

 

이 책 속의 박경리 선생이 몇 번이고 지적했듯이 백발이 되는 것이 두려워 빈 상자를 열지 못하는 그들은 과연 제대로 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전쟁은 문화의 어머니요 어쩌고 하는 말도 생각이 난다. 일본 지식인들의 대부분은 한국의 분노를 지겹고 불쾌하고 귀찮아한다. 언제까지 이럴 것이냐, 하면서도 철도를 놓아주었느니, 학교를 세워주었느니, 아무도 그것을 부탁한 바 없는 일을 좀스럽고 쩨쩨하게 늘어놓는 데 대해서는 말이 없다. -본문

 

지난 역사에 대해 반성과 그 뉘우침을 촉구하는 우리의 목소리는 철저히 묵살하면서 강행하고 있는 그들의 우경화. 일본산 농수산품에 대한 수입 금지 처분에 대해서 강경하게 맞서는, 그들의 자신만을 위한 소리만 키우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가 내는 목소리는 정당성이 없는 그저 과거에만 살고 있는 점철된 민족이라는 식의 접근은 참으로 어안이 벙벙하게 하는, 그야말로 안하무인이 따로 없다.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 -본문

일본의 양심을 기대하며 이 세상을 먼저 저버린 박경리 선생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더욱 심각해지는 일본의 우경화 행태를 보면서 무어라 말씀 하실까. 이 책의 모든 것을 제대로 집필하지 못하신 채로 세상을 떠나야만 했기에, 동일한 이야기들이 계속 눈에 띄기는 하지만, 그 반복 역시 일본과 우리나라 사이에 계속 이어져 왔던 또 하나의 모습인 듯 하다.

그들은 예전보다 더 철저히 자신들의 모습을 숨기고서 새로이 태어나는 것을 꿈꾸고 있는 듯 하다. 점 하나 찍어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듯한 막장 드라마의 스토리보다 더한 막장의 탈을 쓰고 있는 그들의 꿍꿍이를 이제는 우리도 제대로 인지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 가다가는 그들이 꿈꾸는 미래가 역사로 점철될지 모른다. 역사를 부정하는 그들에게 미래란 없다는 것이 진실임을 보여줄 수 있도록, 지금부터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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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천도 / 도요카와 젠요저

 

 

 

 

 

독서 기간 : 2013.10.25~10.26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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