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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신나게 책 봉투를 뜯고서 이 책을 마주하는 순간, 부모님과 나 사이에는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평소에도 책이 워낙 많이 도착하는 터라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으시던 부모님이지만 그날따라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도란도란 TV를 보고 있는 와중에, 자랑스럽게 책이라며 뜯은 책이 바로 이 책이라니. 아직까지도 그 때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아득하기만 하다.
유교 사상을 오랜 동안 지속해 온 우리에게 있어서, 현재의 세대들이 성에 대해 개방되어 있다고 한들,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해서는 드러내기 보다는 숨기는 것이 일반적 인 듯 하다. 연인 혹은 부부 사이에 있어서도 속궁합이 중요하다, 혹은 성격차이는 性격차이다, 라는 우스갯소리를 왕왕 듣는 요즘에도 그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서 발설하기 보다는 그저 유야무야 흘리는 것이 대부분이니 말이다.
어둠이 짙게 깔린 곳에서만 허용되는 성에 관한 이야기들을 구태여 끄집어 내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든 저자의 대담한 입담과 주장을 펼치기까지도 과연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고민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부끄럽고 잘못된 것이 아님에도 왜 이토록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룰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들면서 섹스에 대한 나의 편견에 대해서도 깨트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종족 보존’을 위해 섹스를 하는 것이라고 성욕을 왜곡시켜 놓았다. 배설이 성욕을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 충족이 되지 못하면 사람은 탐욕스러워진다. 뭐가 불만인지도 모르면서 채워지지 않는 성욕을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섹스가 천박해지는 것이다.
섹스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이다. 섹스가 사랑인 이유는 바로 서로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본문
사랑하는 남녀가 마음을 나누고 몸을 나누는 행위는 시대 속에 상품화되기도 하고 때론 문란하게 그려지는 것들도 있기에 아름답다, 라는 생각보다는 보이지 않게 숨겨야 하는 것들로 인식되고 있다. 성교육의 도입마저도 선진국들보다 현저하게 뒤쳐져 있는 우리나라는, 내가 학창시절일 때만 해도 성관계를 맺는 것은 그야말로 죄악이라는 듯이 교육을 받고는 했으니, 섹스에 대한 무궁무진한 물음표만을 던진 채 가까이 하지도 말아야 하는 금기로 치부되었으며 그러면서 이것은 점점 더 미궁 속에 갇힌 수수께기로 남게 되었다.
사랑은 혼자 사랑의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관계를 맺고 조정을 하면서 행복을 위해 각각의 개인을 인정하면서 서로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은 사랑에서 빠져나와 부부가 성숙한 관계를 제대로 맺어가는 순간에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관계를 맺고 조정해야 하는 사랑을 두려워한다. –본문
사랑에 있어서 성욕은 기본적으로 수반되는 것으로서 누군가를 보고 반하고 설렘을 느끼는 것 역시 우리에게 성욕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이러한 욕구는 모두 사랑의 욕구로서 이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우리는 행복에 도취되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행복으로의 도취를 이끄는 것이 우리의 사랑의 전반적인 과정이며 그 안에서 섹스로서 얻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해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남자와 여자의 신체에 대한 접근 등등 다양한 관점에서 이 모든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다.
플라톤의 <향연>을 보면 인간이 에로스를 추구하는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 행복을 가져다주는 대상을 소유하려는 것이 에로스라는 것이다. 그리고 에로스가 정말 원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좋은 것’이라고 한다. ‘좋은 것’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좋은 것’이다. –본문
일반적으로 3년이 유효기간이라는 사랑을 느끼는 호르몬들의 유효기간을 지나서 권태기를 느낄 즈음, 이 모든 것들을 넘어 설 수 있는 것은 명품 섹스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짝퉁 섹스와 명품 섹스라는 부분을 보면서 섹스라는 것에도 이런 급이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우면서도 부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가 그저 사랑을 나누는 것을 넘어서서 이토록 중요한 문제였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배우게 된다.
성적으로 미완성된 존재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해서 충분한 인지와 배움을 통해서 더 깊은 사랑을 나누고 삶의 행복감을 누리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때론 낯뜨거운 이야기들이 마주하면서 어머나, 하며 중얼거리기도 했지만 그 어디서도 속 시원하게 마주할 수 없었던 것들을 마음껏 접할 수 있다는 것에서 또 하나의 해방구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잘못된 지식을 안고 잘못된 시각으로 바라보며 성에 대한 왜곡된 관념을 떨쳐버리고 사랑에 대한 근원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색다른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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