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을 땐 사하라로 떠나라
유영만.유지성 지음, 김필립 사진 / 쌤앤파커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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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세상에서 가장 넓다는 사하라 사막. 그 이름만으로 무언가 신비스럽고 경이로운 자태를 느낄 수 있지만 사막이라는 단어에서 그 장엄함과 인간이 탐할 수 없는 그 무엇인 듯 하다. 다큐멘터리에서 종종 본 적이 있던 사하라는 화면 속에 보여지는 모습은 장관이다, 라는 생각이 들곤 했지만 막상 이 곳에 가야 한다면 갈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먼저 드는 것이 사실이다. 어디를 보아도 무한하게 널려있는 모래 숲 속에서 모든 것이 메말라 버릴 것만 같기 때문이다. 이 황량한 사막에, 그저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아는 것을 넘어 이곳을 다녀오고 사하라의 매력을 널리 알리는 책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들이었다.

이 지구상에 가장 메마른 그 땅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굳이 가보지 않더라도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구태여 그곳에 가야 하는 것일까? 라는 망설임을 하고 있는 나에게 그는 이야기 하고 있다.

세상을 다르게 보고 싶으면 다르게 체험하라.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이미 내가 본 것이다. 지금 내가 사막을 바라보는 것도 내가 이제까지 생각하고 믿은 것 안에서 보고 싶은 사막만 본 것이다. 내가 볼 수 없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본문

체험해 보지 않고 그저 영상을 통해서 보는 것을 보고서 나는 그 세계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자만하고 있었다. 실제 그 사막의 뜨거운 모래바람을 마주하고 새벽이 되어 쏟아지는 별을 보지도 못했으면서 이미 그곳을 모두 알고 있는 냥, 굳이 고생을 하러 갈 필요가 없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는 나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었다. 과연 내가 보고 있는 지금의 사막은 진실한 사막인가? 라고 말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막은 내가 생각한대로만 상상한 곳으로 그의 눈을 통해 본 사막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마 내가 그의 삶이었다면 나는 이렇게 다시 일어날 수 있었을까. 자신이 기억하기도 전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고 고등학교 때 어머니마저 세상을 등지던 그 순간. 세상에 오롯이 혼자 남겨 져 있는 그 순간마저 그는 잠깐의 방황을 끝내고서 자신의 삶을 위해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마땅한 그 자리에 우뚝 선 순간 다시 찾아온 교통사고라는 늪은 그를 다시 바닥으로 추락시켰다. 살아야 한다는 그 일념 하나로 이겨냈던 시간들을 넘어 이제 그는 사하라 사막으로 자신을 내던지고 있었다. 그 누가 떠민 것도 아니지만 그는 이 생명의 레이스에 자신을 몰아가고 있었다.

사막에는 시작과 끝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시작하면서 끝이 생기고, 끝에서 언제나 다시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나이고 내가 곧 길인 곳이 사막입니다. -본문

하루 40키로라는 거리를,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모두 어깨에 짊어지고서는 평지도 아닌 사막을 걷는 것.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하루 20여키로 남짓 걷는 것도 힘들어 했던 나에게는 가히 상상만으로 아득한 거리였다. 그런 그곳에서 그는 남들과의 경쟁이 아닌 오롯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고 광활한 자연이 주는 거대한 숙제를 처연히 받아들이며 한걸음씩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먹먹한 사막 한가운데서 그는 걷는 동안 수 많은 생각들을 하면서 삶에 대해 되뇌고 있었다. 아직 그의 나이만큼의 인생을 살아보지도, 그렇다고 사막이라는 곳에 가보지도 않았기에 나는 이만큼의 깊이의 생각들을 할 수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들이 절로 들 정도로 그의 고뇌는 편히 소파에 누워 책을 읽고 있던 나에게도 무언가를 꿈틀거리게 하는 힘이 있었다.

참 아이러니한 말이겠지만 나는 치열하게 살고 싶지 않아서 치열하게 살기를 선택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장 편안한 방법으로 근심 걱정 없이 살고 싶어한다. 나 또한 그렇다. 그런데 세상은 치열함을 거치고 살아남은 자들에게만 편암함이라는 대가를 제공한다. 그래서 나는 치열한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 치열한 시기를 다 지나고 나면 편안하게 내가 걸어온 길을 웃으며 기억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본문

그는 책의 서문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이 그저 사하라 사막을 건넌 그의 경험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사막으로의 초대장이 바란다고 말이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 지루하고 실증을 느끼면서도 그 무엇도 행동하지 않는 나날의 연속인 나에게 이 책을 통해 그와 함께한 며칠간의 시간은 나로 하여금 어디로든 떠날 것을 권하고 있다. 아마도 그는 사하라를 건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건너온 것처럼 보였다. 모든 준비를 하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떠나는 것이 모든 준비의 완성이란 그의 말처럼, 나 역시도 나를 찾아 이곳으로 길을 떠나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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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크레이지』 / 유지성저

 

 

독서 기간 : 2013.12.06~12.07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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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드 NERD - 세상의 비웃음을 받던 아웃사이더, 세상을 비웃다!
외르크 치틀라우 지음, 유영미 옮김 / 작은씨앗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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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덥수룩한 머리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는 그들만의 세상에 빠져서는 고립 되 있는 이들을 본다면 아마 말 없이 그들을 지나쳐 갈 것이다. 한번 눈길을 주고서는 더 이상의 시선을 공유하는 일이 없을 것만 같은데, 생각해보면 이들에 대해 뭐라 딱히 명명할 만한 단어가 없는 듯 하다. 그나마 비슷한 느낌의 단어가 '괴짜'라 생각했는데 영어로 이들을 Nerd라고 한다고 한다.

'Nerd'라는 단어를 처음 접해 보았기에 이 단어에 대해 사전으로 찾아보면 1. 멍청하고 따분한 사람 2. 컴퓨터만 아는 괴짜, 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저 재미없는 괴짜로만 정의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느낌이 드는데 이들에 대한 진짜 보고서가 바로 이 책, 너드에 담겨 있다.

너드는 약간 특별하다. 자신의 분야에서 - 그것이 아직은 좀 생소한 분야일지라도 - 보콩 사람들이 따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에서는 눈에 띄지 않는다. -본문

너드라는 단어는 요 근래에 생겨난 것들이지만 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구상에 머물고 있었다. 남들보다 무언가에 집중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자신들의 관심 분야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인물들. 그들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문자와 종이의 발명 이후 기록이 되었지만 실상 이 지구상에서 언제나 그들은 세상을 놀라게 할만한 행보를 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평범한 일반인들 사이에 있을 때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쓸데 없는 일에 목숨 걸고 있는 시덥지 않은 사람'으로 비춰졌을지 언정, 그들 스스로는 자신의 일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자부심을 안고 있었다.

너드는 삐딱하고, 괴팍하고 무정부적이고, 세상 물정에 어두워 보이지만 '능력'이라는 이상에 기본적으로 의무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컴퓨터 해커의 세계에서는 능력 있는 사람만이, 특별히 잘하는 사람만이 대접받고 존경받는다. 겉보기에만 그럴싸해 보이는 사람들이나 허풀을 떨며 스스로 대단한 사람인 체하는 사람들은 너드들의 세계에서는 먹혀들지 않는다. 너드 시스템은 소위 미니 버전의 능력 사회다. -본문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 급급했던 원시적인 생활을 지나고 나서부터 역사 속에서 그들은 찬란하게 빛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들의 몸을 사리며 조용히 지내기도 했다.

아무리 너드, 라는 이들이 인간사가 시작되면서부터 계속 있었다고는 저자는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 그다지 와 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너드라는 이름을 벗고 그들의 이름으로 다가오니 그들의 실체는 가히 어마어마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임마누엘 칸트, 니체부터 아이작 뉴턴, 스티븐 잡스까지. 이름만 들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이들이 모두 일명 '너드'였다고 한다.

분명 그들이 일반인들 사이에, 그러니까 우리 사이에 섞여 있었다면 우리는 그들을 그저 일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괴짜로만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이 발휘되고 세상을 뒤흔든 지금, 우리는 그들을 너드가 아닌 천재로 기억하고 있으니 너드와 천재 사이의 그 경계는 우리의 편견이 만든 벽이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뉴턴은 나무 아래에서 머리 위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이런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뉴턴이 사과 나무 밑에 앉아 했던 일은 고독을 즐기는 것뿐이었다. 떨어지는 과일로부터의 영감을 얻는 일 따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을 게다. -본문

예전에는 집 안에 틀어박혀서 책과의 씨름만 했을 것 같은 너드들은 세상이 변모하게 되면서 그들의 영향력이 점점 거대해 지고 있다. 전세계 네트워크 망의 연결로 인해서 그들은 점차 세상을 점령하고 있는 듯 하다.

너드들에게는 관련 없어 보이던 패션계를 넘어 언론과 엔터테이먼트 영역까지. 과연 그들의 행보는 어디까지 가게 될지, 이제는 그들에 대한 시선이 외면이나 편견이 아닌 경외심으로 변모되며 설레기까지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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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괴짜가 세상을 움직인다 / 요나스 리더스트럴러저

 

 

 

독서 기간 : 2013.12.05~12.06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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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섹스를 배울 시간 - 만지고 느끼고 사랑하고 성장하라
조명준 지음 / 성안당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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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책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신나게 책 봉투를 뜯고서 이 책을 마주하는 순간, 부모님과 나 사이에는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평소에도 책이 워낙 많이 도착하는 터라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으시던 부모님이지만 그날따라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도란도란 TV를 보고 있는 와중에, 자랑스럽게 책이라며 뜯은 책이 바로 이 책이라니. 아직까지도 그 때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아득하기만 하다.

 유교 사상을 오랜 동안 지속해 온 우리에게 있어서, 현재의 세대들이 성에 대해 개방되어 있다고 한들,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해서는 드러내기 보다는 숨기는 것이 일반적 인 듯 하다. 연인 혹은 부부 사이에 있어서도 속궁합이 중요하다, 혹은 성격차이는 격차이다, 라는 우스갯소리를 왕왕 듣는 요즘에도 그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서 발설하기 보다는 그저 유야무야 흘리는 것이 대부분이니 말이다.

 어둠이 짙게 깔린 곳에서만 허용되는 성에 관한 이야기들을 구태여 끄집어 내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든 저자의 대담한 입담과 주장을 펼치기까지도 과연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고민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부끄럽고 잘못된 것이 아님에도 왜 이토록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룰 수 없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들면서 섹스에 대한 나의 편견에 대해서도 깨트려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종족 보존을 위해 섹스를 하는 것이라고 성욕을 왜곡시켜 놓았다. 배설이 성욕을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 충족이 되지 못하면 사람은 탐욕스러워진다. 뭐가 불만인지도 모르면서 채워지지 않는 성욕을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섹스가 천박해지는 것이다.

 섹스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이다. 섹스가 사랑인 이유는 바로 서로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본문

 사랑하는 남녀가 마음을 나누고 몸을 나누는 행위는 시대 속에 상품화되기도 하고 때론 문란하게 그려지는 것들도 있기에 아름답다, 라는 생각보다는 보이지 않게 숨겨야 하는 것들로 인식되고 있다. 성교육의 도입마저도 선진국들보다 현저하게 뒤쳐져 있는 우리나라는, 내가 학창시절일 때만 해도 성관계를 맺는 것은 그야말로 죄악이라는 듯이 교육을 받고는 했으니, 섹스에 대한 무궁무진한 물음표만을 던진 채 가까이 하지도 말아야 하는 금기로 치부되었으며 그러면서 이것은 점점 더 미궁 속에 갇힌 수수께기로 남게 되었다.

 사랑은 혼자 사랑의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관계를 맺고 조정을 하면서 행복을 위해 각각의 개인을 인정하면서 서로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은 사랑에서 빠져나와 부부가 성숙한 관계를 제대로 맺어가는 순간에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관계를 맺고 조정해야 하는 사랑을 두려워한다. –본문

 사랑에 있어서 성욕은 기본적으로 수반되는 것으로서 누군가를 보고 반하고 설렘을 느끼는 것 역시 우리에게 성욕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이러한 욕구는 모두 사랑의 욕구로서 이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우리는 행복에 도취되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행복으로의 도취를 이끄는 것이 우리의 사랑의 전반적인 과정이며 그 안에서 섹스로서 얻을 수 있는 행복에 대해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남자와 여자의 신체에 대한 접근 등등 다양한 관점에서 이 모든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다.

 플라톤의 <향연>을 보면 인간이 에로스를 추구하는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런 행복을 가져다주는 대상을 소유하려는 것이 에로스라는 것이다. 그리고 에로스가 정말 원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좋은 것이라고 한다. ‘좋은 것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좋은 것이다. –본문

 일반적으로 3년이 유효기간이라는 사랑을 느끼는 호르몬들의 유효기간을 지나서 권태기를 느낄 즈음, 이 모든 것들을 넘어 설 수 있는 것은 명품 섹스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짝퉁 섹스와 명품 섹스라는 부분을 보면서 섹스라는 것에도 이런 급이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우면서도 부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가 그저 사랑을 나누는 것을 넘어서서 이토록 중요한 문제였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배우게 된다.

 성적으로 미완성된 존재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해서 충분한 인지와 배움을 통해서 더 깊은 사랑을 나누고 삶의 행복감을 누리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때론 낯뜨거운 이야기들이 마주하면서 어머나, 하며 중얼거리기도 했지만 그 어디서도 속 시원하게 마주할 수 없었던 것들을 마음껏 접할 수 있다는 것에서 또 하나의 해방구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잘못된 지식을 안고 잘못된 시각으로 바라보며 성에 대한 왜곡된 관념을 떨쳐버리고 사랑에 대한 근원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색다른 시간들이었다.

 

 

아르's 추천목록

 

『인생학교 섹스 : 섹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법』 / 알랭 드 보통저

 

 

 

 

독서 기간 : 2013.10.19~10.20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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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브 데이즈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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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르's Review

 


 

  읽는 내내 먹먹함이 밀려들었다. 물론 표지를 보고선, 물론 더글라스 캐네디의 소설을 실제로 접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의 이야기들을 영화를 비롯해서 대략 알고 있었기에 무언가 불륜에 가까운 현장이 아닐까, 하는 지레짐작만을 하고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글라스 캐네디의 소설이라면 단순하게 그렇게 만은 끝나지 않을 거라 믿고 있었다.

 

   파란만장했던 4일과 1년 후의 하루로 구성되어 있는 이 이야기의 절반가량인 250 페이지를 읽고 나서 우연히 뒷 표지를 보는 순간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나고 말 것이라고 믿었던 로라의 일탈 아닌 일탈에서 마주한 코플랜드와의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던 그 정도를 읽은 나에게, 그것이 그녀의 23년간 지속해온 결혼생활에 종언을 고한다는 결론을 보는 순간, ', 이 소설. 이렇게 또 하나의 불륜으로만 끝났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허탈감이 들기까지 했다.  

 짧은 여행 도중 만난 한 남자와의 여정 속에서 그녀가 새로운 삶을 깨닫게 되고 그리하여 그녀의 결혼을 종식시키고 만다는 설정은 요 근래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막장 드라마'의 소재처럼 느껴졌다.  

 내가 15세기에 지도를 그리는 사람이었다면 내 지도는 브런즈윅에서 끝났으리라. 브런즈윅 경계 너머로는 가본 적이 있으니까. -본문 

 물론 그녀의 삶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자신을 여자로 바라보지 않는, 매일 똑같은 테두리 안에서만 활동하고 있는 그야말로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였던 로라를 보면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엄마가 든다는 것은 이래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통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그녀가 한 순간의 불꽃으로 녹아 내리는 것이 왠지 마땅치 않게 느껴졌다. 

 여하튼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더글라스 케네디는 그저 그런 소설을 쓴 것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한 여자의 인생을 되찾아주는, 한 인간의 삶을 오롯이 자신만을 조명하고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었다. 

 내가 만약……’

내가 만약 돈 많은 의사와 결혼했다면? 아니, 내가 만약 돈 많은 의사가 되었더라면? 이 지역을 지날 때마다 단검에 찔린 듯 아린 기분이 드는 건 그런 가정들 때문일까? 중년이 되면 인생에 대해 후회의 감정이 생기기 마련일까? –본문

 이제 회사에 입사한지 3년 여 남짓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취업을 하기만 하면 모든 걱정이 사라질 것이라 믿었던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내 이름이 새겨진 명함과 출입증 카드를 목에 걸기만 하면 더 이상의 바람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내 것이 되어버린 명함과 출입증카드는 특별했던 의미는 퇴색되고 그 당시 다른 길을 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고 있다.

 마찬가지로 결혼 생활 역시 그렇지 않을까. 모든 것이 아름답고 행복할 것만 같은 동화 속 주인공을 상상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으며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의 호르몬도 점차 떨림에서 익숙함으로 넘어가, 이제는 그저 함께 사는 사람이상의 의미가 사라지는 순간들이 도래하곤 하지 않을까. 사랑을 전제로 한 결혼이라는 두 사람의 서약도 한낱 종이 안에 묶이는 것으로 부부로서의 연이 맺어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그러든다 해도 일명 때문에 혹은 자식들때문에 사는 부부들을 보며 과연 그들에게 그 삶의 연장을 종용할 수 있을까.

 내가 부딪혀야 하는 절망적인 바닥은 이전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사랑이 거세된 생활, 아무런 활기도 없는 부부생활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본문

이 소설 속 로라의 행태에 대해 모든 것이 옳다, 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결혼을 한 그녀가 4일간의 출장 동안에 외도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녀의 외도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사건 그 후, 그녀의 행적을 주로 보았다.

 종합병원의 영상의학과 기사인 그녀는, 그녀의 눈에 보이는 영상 속 결과를 환자들에게 말할 수 없다. 그것이 그녀의 직업상의 룰이자 법적 규범이기 때문이다. 고로 그녀는 결과를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드러낼 수 없는, 딜레마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비단 직업적인 스트레스뿐만이 아닌 로라는 그녀의 삶 속에서도 이런 비극적인 딜레마를 느끼고 있었다. 더 이상 애정에 대한 흔적마저 사라져 있는 부부의 삶 속에서 그녀는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이기에 그 자리를 말 없이 지키고만 있어야 했다.

 엊그제, 전혀 뜻밖에 벌어진 일 때문에 나는 여태껏 생각하지 않은 진리 하나를 깨달았다. 스스로 달라질 각오만 있다면 인생은 언제나 경이를 드러내며 열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일깨운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경이를 스스로 껴안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경이로울 수 있다는 걸 망각하고 살아왔다. 변화를 두려워해 능력을 매몰시켰다. –본문

코플랜드를 만나고 난 후 로라의 삶이 달라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코플랜드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동일한 상황에서 로라는 경이를 온 몸으로 껴안고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났고 코플랜드는 인생의 경이를 다시금 맛보고도 그 자리로 돌아갔으니 말이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라고 그들의 삶을 판달 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로라의 선택과 용기를 지지하는 바이다. 코플랜드로 인해 촉발된 위기였으나 이것은 그가 아니더라도 로라가 깨달아야만 했던 그녀의 삶을 본질이었다. 더 이상 누군가의 누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과 희망을 찾아 나가야만 하는, 오롯이 그녀 자신을 위한 삶이 필요했던 것이다.

인생은 소설이 아니잖아요. 소설에서는 작가가 마음대로 무슨 일이든 일어나게 만들 수 있죠. 저는 물론 코플랜드가 전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어요. (중략)

그런 해피엔드는 현실에서 절대로 일어나지 않죠.” –본문

해피엔딩이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지만 내 눈에는 더 없이 행복한 결말이라 생각한다. 그 모두를 위한 최선을 선택은 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로라에게 그저 전처럼, 다른 이들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그저 그것이 삶이라 체념하고 사는 것이 옳다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지금 내가 생각하는 삶은 5일이 지난 로라의 삶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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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다 / 파울로 코엘료저

 

 

 

독서 기간 : 2013.12.0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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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인문학 소소소 小 少 笑
윤석미 지음 / 포북(for book)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아르's Review

 

 

 

小少笑라는 제목처럼 그리고 저자의 바람과도 같이, 이 책은 부담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이었다. 말 그대로 1페이지 남짓한 내용 속에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대 짧지만 읽고 나면 고개가 주억거리게 하는 것들을 모아 놓았으며 실상 책의 반 정도만을 읽으면 되기에 펼쳐 보는 순간에 저절로 책에 대한 벽이 허물어 졌다.

: 마음이 작아진다는 것은 마음이 외롭다는 신호입니다. 이제 더 이상은 그 마음을 방치해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찬찬히, 사려 깊게 들어주시죠. 지금 당신의 마음이 하고 있는 그 말들을.

: 가진게 너무 적다는 것은 채울 수 있는 것들이 충분히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다 가진 사람들에게 희망이란 욕심이지만, 덜 가진 우리에게 희망이란 사는 이유입니다. 세상이 온통 다 당신 것인데 골탕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당신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세기의 명언들도 다들 그렇게 웃으며 견뎠습니다. 오늘을 웃어가며 이겨낸 사람들은 모두가 기적이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웃으시죠. , 그렇게 말입니다. –본문

 외로움을 덜어주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하면서 살포시 웃게 하는 힘. 그 비법이 이 책 안에 담겨 있었는데 워낙 짧은 분량이다 보니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보기에도 쉽고 부담이 없이 인문학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인 듯 하다.

청춘이라 하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젊음의 산물을 의미하는 것이다. 언제나 청춘에 대한 찬사를 보내며 청춘에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만끽할 것은 조언해주는 사회에게 청춘의 어두운 면이라 볼 수 있는 모라토리엄 인간에 대해 지양해야 할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연령적으로는 충분히 어른이 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미숙하기 때문에 사회에 참여할 수 없는 어정쩡한 상태인데요.

이들은 평생을 주인 의식 없이 손님처럼 살아가길 원합니다. 인간관계도 매우 표피적입니다. 잠시 만나 가계약한 상태 같습니다. –본문

또한 이미 고인이 되어 버린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도 마주할 수 있는데 현재는 지구상 누구라도 그의 이름을 알고 있지만, 그가 창업을 할 때만 해도 성공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자금이 부족한, 그야말로 자신만을 믿고서 창업이라는 새로운 물결 속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의 생각은 아마도 나카타니 아키히로의 <독립하기 위하여 알아야 할 15가지>란 책에 서술되어 있다.

반드시 성공한다고 약속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린 아직 젊다. 실패하더라도 상관없지 않은가. 훗날 우리 아이들에게 아빤 옛날에 회사를 세운 적도 있단다.’자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해 볼 만한 일이 아닌가. 세상에는 회사는 많아. 회사에 근무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직접 회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그런 점에서 우린 행운아들이다. –본문

 삶의 다양한 면모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와중,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드문드문 눈에 보이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괴테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이 남는다. 74살이었던 괴테가 사랑했던 울리케라는 여인은 고작 17살이었다고 한다. 마치 로리타 혹은 은교를 떠올리게 하는 이 이야기는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았으며 그는 그 고통을 글로 승화시켜 <마리앤바트 비가> <파우스트>를 남기고 유유히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사랑스런 모습 중에 가장 사랑스러운, 그녀가 즐겁게 춤추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잡으려 들면 사랑스런 그 모습 대신 허공의 모습만을 움켜쥐게 될 뿐, 가슴속으로 돌아가자! 거기서 그 모습을 더 잘 보게 되리라. –본문

단문의 이야기들이라고 해서 가벼운 것만은 아니었다. 접근하기 쉽다는 이점과 그 안에 읽어 내려가면 아, 이런 것들도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들이기에 더욱 가까이 두고선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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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 주현성저 

 

   

 

독서 기간 : 2013.09.01~09.03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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