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내가 만약 돈 많은 의사와 결혼했다면? 아니, 내가 만약 돈 많은 의사가 되었더라면? 이 지역을 지날 때마다 단검에 찔린 듯 아린 기분이 드는 건 그런 가정들 때문일까? 중년이 되면 인생에 대해 후회의 감정이 생기기 마련일까? –본문
이제 회사에 입사한지 3년 여 남짓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취업을 하기만 하면 모든 걱정이 사라질 것이라 믿었던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내 이름이 새겨진 명함과 출입증 카드를 목에 걸기만 하면 더 이상의 바람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내 것이 되어버린 명함과 출입증카드는 특별했던 의미는 퇴색되고 그 당시 다른 길을 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고 있다.
마찬가지로 결혼 생활 역시 그렇지 않을까. 모든 것이 아름답고 행복할 것만 같은 동화 속 주인공을 상상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으며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의 호르몬도 점차 떨림에서 익숙함으로 넘어가, 이제는 그저 함께 사는 사람이상의 의미가 사라지는 순간들이 도래하곤 하지 않을까. 사랑을 전제로 한 결혼이라는 두 사람의 서약도 한낱 종이 안에 묶이는 것으로 부부로서의 연이 맺어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그러든다 해도 일명 ‘정’때문에 혹은 ‘자식들’때문에 사는 부부들을 보며 과연 그들에게 그 삶의 연장을 종용할 수 있을까.
내가 부딪혀야 하는 절망적인 바닥은 이전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사랑이 거세된 생활, 아무런 활기도 없는 부부생활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본문
이 소설 속 로라의 행태에 대해 모든 것이 옳다, 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결혼을 한 그녀가 4일간의 출장 동안에 외도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녀의 외도’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사건 그 후, 그녀의 행적’을 주로 보았다.
종합병원의 영상의학과 기사인 그녀는, 그녀의 눈에 보이는 영상 속 결과를 환자들에게 말할 수 없다. 그것이 그녀의 직업상의 룰이자 법적 규범이기 때문이다. 고로 그녀는 결과를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드러낼 수 없는, 딜레마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비단 직업적인 스트레스뿐만이 아닌 로라는 그녀의 삶 속에서도 이런 비극적인 딜레마를 느끼고 있었다. 더 이상 애정에 대한 흔적마저 사라져 있는 부부의 삶 속에서 그녀는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이기에 그 자리를 말 없이 지키고만 있어야 했다.
엊그제, 전혀 뜻밖에 벌어진 일 때문에 나는 여태껏 생각하지 않은 진리 하나를 깨달았다. 스스로 달라질 각오만 있다면 인생은 언제나 경이를 드러내며 열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일깨운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경이를 스스로 껴안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경이로울 수 있다는 걸 망각하고 살아왔다. 변화를 두려워해 능력을 매몰시켰다. –본문
코플랜드를 만나고 난 후 로라의 삶이 달라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코플랜드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동일한 상황에서 로라는 경이를 온 몸으로 껴안고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났고 코플랜드는 인생의 경이를 다시금 맛보고도 그 자리로 돌아갔으니 말이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라고 그들의 삶을 판달 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로라의 선택과 용기를 지지하는 바이다. 코플랜드로 인해 촉발된 위기였으나 이것은 그가 아니더라도 로라가 깨달아야만 했던 그녀의 삶을 본질이었다. 더 이상 누군가의 누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과 희망을 찾아 나가야만 하는, 오롯이 그녀 자신을 위한 삶이 필요했던 것이다.
“인생은 소설이 아니잖아요. 소설에서는 작가가 마음대로 무슨 일이든 일어나게 만들 수 있죠. 저는 물론 코플랜드가 전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어요. (중략)
그런 해피엔드는 현실에서 절대로 일어나지 않죠.” –본문
해피엔딩이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지만 내 눈에는 더 없이 행복한 결말이라 생각한다. 그 모두를 위한 최선을 선택은 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로라에게 그저 전처럼, 다른 이들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그저 그것이 삶이라 체념하고 사는 것이 옳다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지금 내가 생각하는 삶은 5일이 지난 로라의 삶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