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브 데이즈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아르's Review

 


 

  읽는 내내 먹먹함이 밀려들었다. 물론 표지를 보고선, 물론 더글라스 캐네디의 소설을 실제로 접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의 이야기들을 영화를 비롯해서 대략 알고 있었기에 무언가 불륜에 가까운 현장이 아닐까, 하는 지레짐작만을 하고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글라스 캐네디의 소설이라면 단순하게 그렇게 만은 끝나지 않을 거라 믿고 있었다.

 

   파란만장했던 4일과 1년 후의 하루로 구성되어 있는 이 이야기의 절반가량인 250 페이지를 읽고 나서 우연히 뒷 표지를 보는 순간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나고 말 것이라고 믿었던 로라의 일탈 아닌 일탈에서 마주한 코플랜드와의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던 그 정도를 읽은 나에게, 그것이 그녀의 23년간 지속해온 결혼생활에 종언을 고한다는 결론을 보는 순간, ', 이 소설. 이렇게 또 하나의 불륜으로만 끝났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허탈감이 들기까지 했다.  

 짧은 여행 도중 만난 한 남자와의 여정 속에서 그녀가 새로운 삶을 깨닫게 되고 그리하여 그녀의 결혼을 종식시키고 만다는 설정은 요 근래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막장 드라마'의 소재처럼 느껴졌다.  

 내가 15세기에 지도를 그리는 사람이었다면 내 지도는 브런즈윅에서 끝났으리라. 브런즈윅 경계 너머로는 가본 적이 있으니까. -본문 

 물론 그녀의 삶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자신을 여자로 바라보지 않는, 매일 똑같은 테두리 안에서만 활동하고 있는 그야말로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였던 로라를 보면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엄마가 든다는 것은 이래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통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그녀가 한 순간의 불꽃으로 녹아 내리는 것이 왠지 마땅치 않게 느껴졌다. 

 여하튼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더글라스 케네디는 그저 그런 소설을 쓴 것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한 여자의 인생을 되찾아주는, 한 인간의 삶을 오롯이 자신만을 조명하고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었다. 

 내가 만약……’

내가 만약 돈 많은 의사와 결혼했다면? 아니, 내가 만약 돈 많은 의사가 되었더라면? 이 지역을 지날 때마다 단검에 찔린 듯 아린 기분이 드는 건 그런 가정들 때문일까? 중년이 되면 인생에 대해 후회의 감정이 생기기 마련일까? –본문

 이제 회사에 입사한지 3년 여 남짓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취업을 하기만 하면 모든 걱정이 사라질 것이라 믿었던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내 이름이 새겨진 명함과 출입증 카드를 목에 걸기만 하면 더 이상의 바람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내 것이 되어버린 명함과 출입증카드는 특별했던 의미는 퇴색되고 그 당시 다른 길을 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고 있다.

 마찬가지로 결혼 생활 역시 그렇지 않을까. 모든 것이 아름답고 행복할 것만 같은 동화 속 주인공을 상상했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으며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의 호르몬도 점차 떨림에서 익숙함으로 넘어가, 이제는 그저 함께 사는 사람이상의 의미가 사라지는 순간들이 도래하곤 하지 않을까. 사랑을 전제로 한 결혼이라는 두 사람의 서약도 한낱 종이 안에 묶이는 것으로 부부로서의 연이 맺어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그러든다 해도 일명 때문에 혹은 자식들때문에 사는 부부들을 보며 과연 그들에게 그 삶의 연장을 종용할 수 있을까.

 내가 부딪혀야 하는 절망적인 바닥은 이전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사랑이 거세된 생활, 아무런 활기도 없는 부부생활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본문

이 소설 속 로라의 행태에 대해 모든 것이 옳다, 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결혼을 한 그녀가 4일간의 출장 동안에 외도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녀의 외도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사건 그 후, 그녀의 행적을 주로 보았다.

 종합병원의 영상의학과 기사인 그녀는, 그녀의 눈에 보이는 영상 속 결과를 환자들에게 말할 수 없다. 그것이 그녀의 직업상의 룰이자 법적 규범이기 때문이다. 고로 그녀는 결과를 빤히 알고 있으면서도 드러낼 수 없는, 딜레마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비단 직업적인 스트레스뿐만이 아닌 로라는 그녀의 삶 속에서도 이런 비극적인 딜레마를 느끼고 있었다. 더 이상 애정에 대한 흔적마저 사라져 있는 부부의 삶 속에서 그녀는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이기에 그 자리를 말 없이 지키고만 있어야 했다.

 엊그제, 전혀 뜻밖에 벌어진 일 때문에 나는 여태껏 생각하지 않은 진리 하나를 깨달았다. 스스로 달라질 각오만 있다면 인생은 언제나 경이를 드러내며 열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일깨운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경이를 스스로 껴안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경이로울 수 있다는 걸 망각하고 살아왔다. 변화를 두려워해 능력을 매몰시켰다. –본문

코플랜드를 만나고 난 후 로라의 삶이 달라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코플랜드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동일한 상황에서 로라는 경이를 온 몸으로 껴안고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났고 코플랜드는 인생의 경이를 다시금 맛보고도 그 자리로 돌아갔으니 말이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라고 그들의 삶을 판달 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로라의 선택과 용기를 지지하는 바이다. 코플랜드로 인해 촉발된 위기였으나 이것은 그가 아니더라도 로라가 깨달아야만 했던 그녀의 삶을 본질이었다. 더 이상 누군가의 누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과 희망을 찾아 나가야만 하는, 오롯이 그녀 자신을 위한 삶이 필요했던 것이다.

인생은 소설이 아니잖아요. 소설에서는 작가가 마음대로 무슨 일이든 일어나게 만들 수 있죠. 저는 물론 코플랜드가 전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어요. (중략)

그런 해피엔드는 현실에서 절대로 일어나지 않죠.” –본문

해피엔딩이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지만 내 눈에는 더 없이 행복한 결말이라 생각한다. 그 모두를 위한 최선을 선택은 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로라에게 그저 전처럼, 다른 이들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그저 그것이 삶이라 체념하고 사는 것이 옳다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지금 내가 생각하는 삶은 5일이 지난 로라의 삶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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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다 / 파울로 코엘료저

 

 

 

독서 기간 : 2013.12.02~12.04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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