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 일에서든, 사랑에서든, 인간관계에서든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관계 심리학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1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두행숙 옮김 / 걷는나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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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누구를 향해야 할지 모른 분노 때문에 몇 날 며칠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세상이 등진 모습 안에서 배신감에 치를 떨었고 그 모든 것의 부정의 나의 존재마저도 부정해야 하는 현실이 참혹하게만 느껴졌다. 그리하여 나는 그 시간 속에서 나에게 고통을 안겨 주었던 그들 역시 나와 똑같은 고통을 받기를, 아니 그 이상의 고통 속에서 보내기를 바라왔었다. 그렇게 하면 나는 내가 안고 있는 이 문제들을 훨훨 털어낼 수 있으리라 믿고 있었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라는 표지를 보면서 '이미 당신은 나에게 더 할 나위 없는 고통과 상처를 주었소' 라며 낙담하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상처투성이가 된 몰골을 하고서 상처를 줄 수 없다는 이 책을 안고 있는, 그야말로 이율배반적인 독서를 하면서 이 책도 습관처럼 책장을 넘기며 빨리 읽어 내려가길 바랐다.

우리에게 모욕감이나 열등감을 안겨 주었던 사람을 한번 떠올려 보자. 창피함과 수치심 때문에 그 사람을 '태어날 때부터 나쁜 놈'으로 만들고 모든 책임과 잘못을 떠넘기며 발악하듯 욕한다. 자신이 누군가로부터 모욕을 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너무 괴롭기 때문에, 그를 경멸하고 깔아뭉갬으로써 있는 힘껏 상처를 거부하려고 하고 있다. -본문

책을 읽는 동안에 꽤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모든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문제에 대해 마주할 생각보다는 이 모든 것을 가져다 준 그 누군가를 향한 오롯한 분노는 점점 기괴하게 변모하고 있었으며 사실 그 분노는 그 사람을 향해 던져지고 있기 보다는 내 안의 나를 잠식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이 고통을 전해 줄 수 없을까, 만을 생각하며 이 문제의 근원적 태동에 대해서는 함구하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 분노의 유일한 씨앗이자 뿌리였으며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었으니 말이다.

'네가 상처를 준다면 나도 똑같이 복수를 해 줄 것이다'라는 경계의 메세지를 보내면서 '또 다른 나'는 누군가 감히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자신을 다루려 한다는 것에 격분한다. 이때 적당한 분노 조절이란 있을 수 없다.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같은 상처를 두 번 받았을 때 느끼는 모욕감과 아픔은 평상시 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격렬하다. -본문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항상 웃는 것이 습관화 된 내 모습이 낯설게 다가올 때가 있다. 과연 이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기계적으로 웃어야만 하는 그 순간들이, 어릴 때부터의 강박적으로 다가왔던 이야기들이 나를 옥죄어 오는 듯 했다.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듯, 슬프지만 슬프지 않는 듯, 울고 싶어도 웃으며 지나왔던 지난 날 속의 나는 하나의 얼굴만을 가진 듯 했다. 거울 속의 나는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철학자 헤겔의 말처럼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안쪽에만 달려 있다. 내가 먼저 열지 않으면 밖에 있는 사람은 내 마음의 귀퉁이조차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더 이상 실망하고 상처 받고 싶지 않다면 꽁꽁 닫아 둔 마음의 문을 열고 말해야 한다. 지금 내 마음이 아프다고, 있는 그대로만 이야기하면 되는 것이다. -본문

예전부터 나에게 고통을 주는 대상을 없는 것으로 인식하는, 그 부존재화 하는 의식은 나를 지금까지 지탱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자 통로와 같은 것이었다.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어떠한 형태이든 간에 상처를 던져주는 사건의 뒤에 있는 그 누군가를 순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면서 문제 자체를 바라보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타인과의 관계의 종결 또는 암전과도 같은 상황 속에서 과거와 현재의 단절로서 다시 또 다른 미래를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에 대한 상처 따위는 사라진 듯 외면하면서 말이다.

그 때의 그러한 행태들은 치유되지 않고 내 안에 어딘가에 자국으로 남겨져 있었을 것이다. 다만 나는 그것을 바라보려 하지 않았을 뿐이었지만. 어찌되었건 나를 향해 있던 화살의 촉을 겨누고 있던 그들에게 나는 언제나 '당신들 때문이야'라며 그들에게 이 모든 상황을 전가하고서는 나는 그 자리에 없었던 듯 하고 또 그들에게만 분노를 던져주고 떠나버리려 하고 있다. 예전의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다시 일어나는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찌되었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는 상처를 주고 받는 그 안에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 누구는 작은 생채기를 느끼지만 누구에게는 칼날에 깊게 베인 듯 크나큰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타인이 주는 상처에 대해서 그 상처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처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나에게로 향한 상처를 받아들이거나 아니거나, 받아들였다면 그것을 어떠한 크기와 형태로 받아들일지에 대한 것은 오직 '' 만이 선택 할 수 있는 문제임을 인지하는 순간 과연 이 모든 것이 누구를 향한 분노와 상처인가, 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된다.

우리가 어떤 삶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여있다. 필요한 해답은 모두 우리 안에 있으니까. -본문

또 다시 진창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그때의 나를 내버려두고 다시 태연한 듯 내일을 사는 것보다는 나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타인을 향한 잣대를 나를 위한 시간으로의 전향만으로 이전과는 다른 편안함을 느끼면서 요 며칠 동안의 고민들이 많이 수그러든 기분이다.

모든 해답의 열쇠는 나에게 있으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줄 몰랐던 나에게 나를 열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꽤나 평화의 상태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도움을 톡톡히 받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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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 김혜남저

 

독서 기간 : 2013.12.1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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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과학책 - 과학에서 찾은 일상의 기원, 2014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이동환 지음 / 꿈결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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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고 난 느낌이다. 난이도 때문에 버겁거나 혹은 어디선가 보았던 내용들이기 때문에 식상하거나 하는 점이 없이 새로우면서도 즐거운 내용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한번 펼치자 마자 금새 마지막 페이지로 도달해 있었으며 개인적으로 다큐멘터리 애청자로서 이 책의 내용들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도 손색이 없겠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이 한 책에 푹 빠져 감성과 이성을 가득가득 채워 풍족해진 느낌이다.

과학에 대해 어렵다, 라는 느낌보다는 재미있고 즐겁다, 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책이었는데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그것도 주변에서 종종 들어왔던 것들에 대해 다루고 있기에 훨씬 이 책의 내용들이 가깝게 다가온 듯 하다.

독버섯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그저 먹지고 못한 독버섯은 대체 왜 그리 많이 피어나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던졌던 나는, 다분히 인간의 시각에서 바라본 편협한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독선이었던가를 배우게 되었다. 인간의 관점에서만 바라본 지구는 그 안에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으로 나뉘겠지만, 자연의 모습에서 본 인간은 굳이 없어도 되는 존재였다. 아니, 오히려 없는 것이 지구에는 훨씬 이로울 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지구에겐 진정한 독버섯은 인간일 테니 말이다.

독버섯은 가열하거나 조리를 해도 독소가 파괴되지 않는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식용 버섯과 독버섯을 구분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인간에게 해를 주는 독버섯도 자연에서는 분해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독버섯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자연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다. 독버섯은 지구의 주인이 자연이지 결코 인간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본문

 나비의 날개 짓 한번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회오리 바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이른바 나비효과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나 책 안에서 몇 번 마주한 적이 있기에 그저 그 내용이 현상의 전부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 책 안에서 역시 나비효과에 대해 소개를 하고 있는데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 금방 읽어 넘겨야지, 하며 읽기 시작한 책 안에는 나비효과의 의미에 대한 기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고 왜 이것이 나비효과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를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기후 예측을 위해 변수를 입력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는 이 현상은 정말 실생활에서는 미미한 것들이 엄청난 차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실생활에서 0.000001 0.001의 차이를 말해보시오라고 한다면 그 누구든 어차피 거의 없는 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소수점 여섯 자리와 셋째 자리의 차이는 그다지 중요한 숫자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기후를 예측하기 위한 과정 속 이 차이는 엄청난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1,000분의 1 차이는 무시해도 될 만큼 미미한 숫자라고 보았고 기상 예측 결과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났다. 1,000분의 1차이에 불과할 정도로 미미한 나비의 날갯짓이 허리케인이 되어 버린 셈이다 나비라는 용어가 나온 이유는 연구 결과 도출된 수치를 화면에 표시하고 보니, 그 모습이 나비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본문

또 하나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바로 호르몬에 관한 내용이었다. 생물시간에 테스토스테론이라던가 에스트로겐이라던가 호르몬에 관한 내용들에 대해 배운 적은 있으나 실상 우리 몸 안에 있다는 이것들을 단어로 마주해서는 그다지 실감이 되지 않았다. 만질 수도 보이지도 않는 것들이 우리 몸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고 때론 어쩜 이 모든 것이 이토록 자연스럽게 때에 맞춰서, 그들 스스로 움직이는 것일까? 라는 고민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러한 고민도 그저 잠깐이고 또 다른 것들에 눈이 돌아가곤 했는데 이 책 속에서 마주한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생각보다 그 이상의 현상들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남성 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되면 어떻게 될까? 다시 말해 균형이 맞지 않는다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까? 일단 이른 나이에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다. 대머리가 된다는 말이다. 더 큰 문제는 테스토르테론이 자기 면역 시스템을 파괴한다는 점이다. 즉 질병에 약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가 여성보다 수명이 짧은 이유 가운데 하나로 테스토스테론을 들기도 한다. –본문

수치나 실험 등 복잡한 수식이나 용어만이 가득할 것 같은 과학 안에서 너무도 익숙한 내용들을 마주하면서 그 동안에는 그저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무엇보다도 복잡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닌 누구나 쉬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라서 보는 내내 즐거움에 환호를 지르게 한다. 계속해서 알고 싶어지는 과학을 만나 그 언제보다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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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것의 역사 / 빌 브라이슨저

 

독서 기간 : 2013.12.08~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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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이중섭 - 전2권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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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탄식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 모든 것이 오롯이 이중섭 화가, 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어찌되었건 그를 뿌리로 하여 나온 작품이니 만큼 그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이 담겨 있을 테고 그리하여 그 안의 활자들은 그저 문장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현실이 되어 책을 안고 있는 내내 가슴이 절절하고 먹먹해지게 한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기에 되돌릴 수도 없다지만 나는 계속해서 그와 그의 환경을 두고만약에라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덕혜옹주를 읽었을 때에도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조선의 마지막 공주였던 그녀가 아스라히 사라져 버린 지금에서야 그녀의 존재를 알고서 안타까워했듯이 이 소설을 통해 이중섭을 만나며나는 그의 삶에 대한 통금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의 삶보다도 더 파란만장한 시간들을 보냈던 그의 작품들은 진품/가품 논란이 계속되었으며 이제는 그가 남긴 작품이 작품이 아닌 재산으로서 상속을 가지고 분란이 일고 때론 그를 친일파로서 바라보는 시각 등등 이중섭이란 이름은 그가 사라진 이후에 더욱 가열되는 듯 하다.

천재 화가로 불리는 그의 이름은 나에게는 소박하면서도 정겹게만 느껴진다. 아마도 그의 모든 것을 담아 그렸던 것들이였기에 나는 그가 죽어서도 뼈와 가죽을 남기는 소처럼, 순박하게만 비춰진 듯 하다.

캄캄한 식민국의 남자인 그가 지배국의 여자인 마사코를 사랑하는 사실에, 그 사랑에 회의했고 고개를 흔들었으며 많이 아파했다는 것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같이 걷고 같이 영화를 보고 같이 잠을 자면서도 그의 표정 갈피에 설핏 묻어나던 슬픈 눈매를, 공소했던 미소를 때로는 먼산바라기고 그녀를 밀어냈던 그 아득한 소실점의 의미를 그녀는 헤아리지 못했었다. -본문

당시의 시대상만을 보아도, 아니 지금을 기점으로 해서 바라본다고 해도 이들의 이야기는 가십거리이면서도 그들을 바라보는 이들뿐만 아니라 당사자로서도 억겁의 고난들이었을 게다. 감히 이 나라를 침범한 자의 딸의 사랑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일지. 그들에게는 그저 사랑이었을지는 몰라도 국경을 넘어선, 식민국과 지배국 사이의 그들의 연은 시작부터 어쩌면 아픈 가시밭길의 시작임을 울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들의 사랑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아니 그 전부터 식민국과 지배국이라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로 국가가 대립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아련함은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야마모토 마사코가 아닌 이남덕으로, 이중섭의 아내로 살았던 그녀의 손에 이제 이중섭의 팔레트만이 남아 있다. 이마저도 전시회장에 기부하기 위해서 온 그녀는 이곳을 찾으며 다시 그와의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헤헤, 하며 바보처럼 웃기만 하는 그를 보노라면 때론 그 해맑음이 너무 답답하게 다가오고도 한다. 어린 시절 외가에서 지냈던 때, 살아남기 위한 그의 무던한 몸짓임을 알고 있지만 남들처럼 조금만 더 약았더라면, 그저 눈에 들어온 것들을 흘리고 조금만 더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서 살았다면 이토록 힘겨운 나날들을 버텨야만 했을까. 너무 사람이 좋으면 주변 이들이 힘들다는 말처럼, 그는 그 나름대로의 신념을 안고 살았지만 나는 그가 조금만 더 모나고 조금 더 때가 뭍어 그만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랐다.

하지만 그에게만 허락된 천부적인 재능과 같이 그의 유려한 성품은 언제나 한결 같았다.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리하여 소설을 읽는 내내, 허수라는 자의 만행 속에서도 그는 늘 햇살같은 모습이었다.

그는 소의 분신이었을까 화신이었을까. 아니 대향 자체가 소였는지 몰랐다 .슬픈 눈매가 그랬고 숙맥같이 순수하기만 했던 처세의 서투름이 그랬다. 소의 화가라는 선입견 때문은 아니었다. 멀리 던져둔 소실점, 그 슬프고 유순한 순응의 몸짓과 눈의 표정은 바로 소 그 자체였다.(중략) 일본에 있을 때 그는 뼈만 앙상한 소를 그렸다. 소는 소였지만 한국 소가 아니었다. 소의 커다란 눈망울에 맺힌 그렁한 슬픔에는 조국의 약탈당한 민족의 서러움이 담겨 있었다. -본문

그리하여 그는 소를 그토록 그렸나보다. 그에게 어머니이자 민족을 대변하는 상징이었으며 때로는 슬픔을 가득 안은 조국의 모습도 보였을테니 말이다. 그가 그린 소는 그저 한 마리의 소가 아니라 그의 가슴 안에 품은 뜨거운 모든 것들을 담아 그린 것이었다.

그렇게 여린 그가 가족과 떨어져서 사는 그 세월동안, 그리움과 아득함에 메말라가는 그를 위해 지인들은 그를 일본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아니 가족의 품안에서 웃음을 안고 살길 기원하며 그를 남덕에게 보내게 된다.

하지만 이미 뒤틀릴 대로 뒤틀려 버린 관계는 넘어설 수 없는 강이 되어버렸다. 오롯한 사랑으로 시작되었던 관계는 현실이라는 배경 아래서 점점 짓이겨 졌으며 한 예술가로서의 혼과 한 가장으로서의 혼이 뒤엉켜 서로를 가시처럼 찌르고 있었다.

나른한 퇴폐와 무질서와 알코올에 절어 즐거운 건지 행복한 건지 불행한 건지 그 경계가 흐릿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신이 금 밖에 서 있다는 명징한 깨달음이었다. 그 세계의 가두리로 밀려난 화공이었다. 보이지 않았다. 선명한 형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예술에서 그렇게 강렬하게 표출되었던 형태가 후물후물 지워지고 있었다. -본문

가족의 상봉이 무엇이 그리 어려운 일일까 만은 이들에게는 그 작은 행복마저도 쉬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 평범한 삶의 허락되지 않던 이들의 시간 속에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반쪽 인생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그를 바라보아야만 했던 이남덕은 물론, 가장으로서 이 모든 삶을 지키지 못했던 이중섭은 그대로 또 켜켜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들 모두에게 살을 애는 듯한 고통을 주던 시간이 아이러니하게 이중섭이란 화가에게는 생을 걸작을 남긴 시간들이라고 한다. 결국 가족을 애타게 그리다 쓸쓸히 사라진 그는 그의 작품으로서는 더 없이 아름다운 것들을 남겼다고는 하나 그의 삶은 홀연히 태워버리고 떠나버렸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그저 역동적이다, 아름답다 라는 생각만을 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그의 그림을 보면 먹먹함이 밀려온다. <부부>라는 이름을 안고 날개를 펴고 안고 있는 이들은 과연 그곳에서는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것일까. 천재 화가라는 타이틀을 내려 놓고 평범하게 살았더라면 이들은 웃으며 지낼 수 있었을까. 읽고 난 후에도 그들의 이야기에 먹먹해져서 무언가 가슴이 툭 하고 내려앉은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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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 이중섭저

 

독서 기간 : 2013.12.0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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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천재적인
베네딕트 웰스 지음, 염정용 옮김 / 단숨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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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의 시작을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제목을 보고서는 무엇을 이야기할 지를 가늠조차 할 수 없었고 한국독자들에게 편지를 쓴 젊은 작가의 글을 보면 고스란히 그의 감격이 느껴졌다. 그들의 여행 루트를 보노라면 미국 동부인 뉴욕에서 시작해서 대륙을 가로질러 샌프란시스코에서 멕시코를 거쳐 다시 돌아가는, 그야말로 미국 전 지역을 누비는 그들의 행보에 그저 젊은이들의 여행을 그린 소설이라고만 생각했다.

 제목은 거의 천재적인이라고 쓰였지만 이 소설을 덮는 순간 천재적인, 이라는 가늠이 아닌 천재가 맞았구나, 라며 그가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저 그런 여행이 아닌 한 인간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과연 한 인간 안에 담겨 있는 유전적인 요소들의 영향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며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그 가족의 피를 물려받은 한 인간이 굴레를 넘기 위해서 어떠한 일들을 펼쳐야 하는지 등등 광범위하면서도 복잡다단한 사고를 계속하게 한다.

 천재적인(Geneal)이라는 말 자체는 이미 유전자(gen)라는 말이 들어있다.” 이전의 많은 야심을 가진 사람들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도 그저 부모들에 의해 만들어져 이 세상에 태어났을 뿐, 자신이 그들과 달리 무언가 전혀 새롭고 놀라운 생명체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본문

 한 때는 촉망 받던 학생이었던 프랜시스는 따스하고 안락했던 가정 속의 주인공이었던 시절은 이미 그에게 아득한 과거로 남겨져 있다. 현재 그는 조증과 우울증을 오가고 있는 엄마의 보호자이자 니키의 이부형이며 한때는 자신의 아버지익도 했던 라이언은 니키의 아버지로만 남아져 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일을 하는 동안 그들은 어느 새 컨테이너 더미 안에서 사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으며 프랜시스는 그에게도 가족이란 울타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회상하면서 라이언과의 관계에 대해 되뇌보기도 한다. 레슬링마저도 그만 둔 상태에서 현재 학년마저도 유급되어 졸업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군인이 되어 컴백한 예전의 문제아 마버스 제닝스를 보며 그도 군인이 되어 자원 입대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한 줄기 빛과 같은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삶에 있어서 또 다른 터닝포인트가 되어 다가오게 된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빡빡 깎은 머리에다 이는 시원찮았고 지진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것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 인생이 밑바닥일고 결정된 사람만이 갖게 되는 표정이었다. 프랜시스가 이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한지가 벌써 2년 반이다. 어머니는 병이 심해져서 부동산 회사의 비서 자리를 잃었고, 그 직후에 프랜시스의 의붓아버지 라이언은 주식 투기로 재산을 나려버렸다. (중략)  본문

 한 두 번 정도 생각해 보았던 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도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하늘에서 내린 동아줄과 같은 존재가 되었으며 꿈속에 계속해서 아른거리는 로또 당첨과 같은 잭팟은 그에게 이 여행의 출발을 종용하고 있었다.

 루저로서의 삶만 남았을 것이라 막연하게 믿고 있던 프랜시스는 베스트 친구이자 너드이면서 또 다른 천재인 그로버와 유리의 성 속에서 살고 있던, 아픔을 안고 있는 앤메이와 함께 이 겁 없는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것이 완벽하리라 생각했던 여행은 그의 뜻대로 되어가질 않는다. 앤메이에 대한 마음이 커져갈수록 그녀는 그로버에게도 호감을 갖는 듯 보였고 잭팟이 터질 것이라 믿었던 룰렛 게임에서는 파란 작업복을 입은 미지의 남자가 등장하지 않아서인지 그의 수중에 있는 돈마저 털리고 만다.

 다양한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들과 천재적인 과학자들의 정자를 사들이기 위해 거액을 지출했다고 했어. 우리가 듣기로는 그는 1980년대 초에 천재 정자은행을 설립했고, 그렇게 해서 태어난 최초의 아이들이 벌서 몇 살쯤 되었다는 거야. 먼로는 새로운 유전자 엘리트층을 길러낼 계획이었고, 그때부터 계속해서 이런 아이들을 낳아줄 똑똑하고 입이 무거운 여자들을 모집하러 다녔어. –본문

 이 모든 것이 계획과는 다르게 돌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프랜시스에게는 한 가닥 희망이 있었다. 천재 과학자가 자신의 친부라는 사실은, 자신에게도 이러한 천재적인 유전자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고 그 친부는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를 이 구렁에서 꺼내줄 존재가 되어 줄 것이라는, 마치 키다리 아저씨와 같은 구세주가 되어 주리란 희망에 그는 계속해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그리하여 마주하게 된 그의 또 다른 시초가 된 아버지를 마주한 순간, 프랜시스는 그 안에 흐르고 있는 친부의 유전자에 대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기 안에 천재적인 무언가가 흐르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던 그에게, 현실은 또 다시 아득함만을 남기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너의 좌절된 모든 꿈과 희망에 매달려 그걸 절대 놓아주지 않는 거야. 비명을 질러도 좋고 애원해도 좋아. 하지만 너 자신을 더 이상 믿지 못할 때조차 그것들을 놓아버려서는 안돼. 만약 놓아버리면 그땐 모든 것이 끝장이야, 꼬마야. 그 시절 이후로 너의 인생은 허깨비야. 네가 몇 십 년을 더 이 세상을 헤매로 다닌다 해도 내적으로는 이미 죽은 거와 다름 없어 . –본문

 여전히 벗어날 수 없는 트레일러 촌에서 프랜시스는 그로버를 예일대로 떠나 보냈으며 앤메이 역시 그들의 아이인 존을 안고서 그의 품을 떠나게 된다.

 한 때는 그 안에 품었던 천재적인 유전자에 모든 것을 걸었다면 이제는 그에게 남은 것은 룰렛의 꿈뿐이다. 그에겐 천재라는 실존은 이미 신기루가 되어 버린 상태이니 거의 천재적인 룰렛의 꿈만이 그의 현실이 된 셈이다.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나서 마지막의 룰렛이 도는 순간, 이 소설의 장막은 내리게 된다. 그 후에 모든 것을 잃든 아니면 그 배를 벌어들였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우리네 인생이 룰렛처럼 어디서 마감하게 될지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어찌되었건 프랜시스는 그가 원하던 모든 것들을 이룬 셈이었다. 그 결과가 어찌되었건 친아버지를 찾았고, 그가 원하던 앤메이와의 사랑을 이뤘으며 꿈 속의 룰렛 앞에 있으니 말이다.

 연구소의 유리관 속에서 시작된 그의 인생은 한 인간의 욕망에서 이 모든 것들이 시작되었으며, 그 욕망의 대가에 눈이 먼 남녀의 지원으로 인해 프랜시스라는 인간의 탄생되었다. 부조리한 인간의 욕망이 인간을 탄생시킨 이야기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를 살고 있던 프랜시스는 과연 룰렛을 통해서 그의 꿈을 이루었을까? 다음 번 그를 만나는 장소는 룰렛과 트레일러촌이 아닌 제 3의 장소이기를 바라본다.

 

 

 

아르's 추천목록

 

《레몬》 / 히가시노 게이고저

 

 

 

독서 기간 : 2013.12.07~12.08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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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미처 몰랐던 클래식의 즐거움
홍승찬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아르's Review

 

 

아침에 눈을 떠서 출근하는 동안 이어폰을 귀에 꽂고서는 노래를 들으며 시작을 한다. 일상 속에 흔한 소리보다는 무언가 아름다운 소리로 하루를 시작하고픈 마음에 한 일들이 이제는 매일을 여는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매주 이번 주 음악 차트 순위의 노래들을 다운받아 업데이트를 하는 것이 주요 일과 중 하나인데 그렇게 매일 듣던 노래들 역시 때론 지겹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럴 때면 그 무슨 가사도 없고 기계음이 없는 클래식을 찾곤 한다. 무언가를 제대로 알기 보다는 그저 흘러나오는 선율을 듣고 있자면 아름다운 소리에 자연스레 마음도 편안해지곤 한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곧 누군가의 인생을 듣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거장들은 음악가로서뿐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존경할 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의 단순함과 우아함, 고결함으로 말미암아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

저자의 두 번째 책이었다는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을 통해서 클래식에 대한 책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제목은 모르지만 선율이 익숙했던 것들에 대해 음악가는 물론 그 이야기들을 보면서 아, 이래서 클래식을 듣게 되는 구나, 하면서 책 속의 음악들을 찾아본 기억들이 난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에 책을 읽었는데, 이번에는 QR코드가 음악 소개된 마지막 페이지에 자리하고 있어서 이전의 수고를 한결 덜 수 있었다. 음악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유투브로 바로 연결되는 시스템 덕분에 책을 읽으며 바로 감상할 수 있기에 아마도 그 감동은 배가 되어 다가오는 듯 하다.

음악을 듣는 것이 누군가의 인생을 듣는 거라 생각한다는 저자의 생각처럼 이 책 안에는 음악가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동안 꽤나 들어봤던 이름들도 있고 처음 보는 이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었는데 최고의 소프라노 가수로 꼽는 <마리아 칼리스>의 이야기는 보는 순간 먹먹해지게 되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아들을 기리며 아들이 태어나길 바랐던 가정에 태어나게 된 마리아 칼리스는 어머니의 사랑을 얻고자 노래를 불렀으며 뒤늦게 그녀의 인생은 조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를 만나 그의 헌신적인 사랑에 힘입어 세기의 소프라노로 등극하게 되었다.

"내 노래는 말이 아니라 느낌이 필요해, 나는 노래 안에서 눈물 흘려요." -마리아 칼라스

태어나면서부터 미운 오리 새끼였던 칼라스는 어머니의 사랑에 목말라 노래로 그 사랑을 얻고자 했습니다. 어쩐 일인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테발디의 노래와 연기를 너무나 절제되어 있어 고상하기만 할 뿐입니다. 그와 반대로 사랑에 굶주린 칼라스의 노래는 구구절절한 사랑으로 넘칩니다. 이미 가진 사람은 절실하지 않겠지요. 그래서 궁핍이 예술을 낳는다고 하나 봅니다. 본문

사랑을 위해 노래를 불렀던 그녀의 목소리는 천상 속의 환희를 가득한 것처럼 보였으며 아름다웠던 그녀의 모습과 가녀린 듯 하지만 힘있는 소프라노의 선율들은 서글프면서도 아련함이 남게 된다.

음악 뿐만 아니라 스토리를 담고 있기에 귀와 눈과 가슴이 즐겁게 이 책을 읽은 듯 하다. 특히나 책 속에 소개된 음악 뿐만 아니라 책과 영화까지도 찾아보게 하는 연쇄적인 효과들을 불러 일으켰는데 드라마 시크릿 가든과 비슷한 느낌이라는 영화 <엘비라 마디간>을 통해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도 찾아보게 되며 이 슬픈 이야기 속에 푹 빠져 내가 마치 그 주인공이 된 듯한 상념에도 빠져보게 된다.

살면서 점점 더 깨닫게 되지만 세상엔 해도 되는 일보다 하면 안되는 일이 더 많습니다. 남녀의 사랑이 특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현실이 아닌 문학과 예술이 그토록 말도 안되는 사랑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잇는 궁극적인 위안이겠지요. -본문

클래식에 대한 책이라기 보다는 스토리가 담긴 클래식으로의 초대가 더 맞는 이야기 같다. 책을 보다 보면 그 음악들을 찾지 않고서는 베길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저 클래식을 듣는 것이 아닌 클래식 속에 담겨있던 이야기들을 듣고 음악을 접하게 되니 그 안엔 울림이 더욱 깊이 내 안으로 다가오는 듯 하다.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며 그 안에 스토리를 스스로 좇게 만드는 이 책 덕분에 한동안 또 클래식을 들으며 지낼 것 같다.

아르's 추천목록

 

『클래식이 필요한 순간들』 / 홍승찬저

 

 

독서 기간 : 2013.12.04~12.06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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