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모래 - 2013년 제1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구소은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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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지도 속에 마치 마지막의 마침표처럼 자리하고 있는 제주도는 그리하여 우리에게 평온을 주는 휴양지이자 관광명소로서 현재 우리의 곁에 있는 남아 있는 가보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바라보았던 제주도의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의 최대 관광지이자 아름다운 섬으로 삼다도라는 애칭을 가진 섬. 그 안에 살고 있는 푸근한 돌하르방이며 하늘하늘한 유채꽃과 망사리 가득 전복이며 해삼, 멍게 등 갖가지 해산물을 담아오는 해녀들의 모습은 온 세상을 하얀 눈꽃으로 뒤덮인 그 찬란하게 빛나는 표면만을 바라본 것이었다.

 

뽀얀 눈꽃 위에 빛이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찬란하고 탐스러운 세상이 내가 바라는 우리의 삶이자 현재이길 바랐다면 눈 속에 뒤덮인 세상은 그야말로 생채기가 지나간 자리에 앉은 딱지를 다시 헤집는 듯한 아픔이 아련하게 베어 들어 있었다.

 

지지리도 복 없이 태어난 팔자를 탓해야 할까, 아니면 불행한 나라에 태어난 백성이라 나라와 함께 겪어야 하는 업이라고 해야 할까. 국으로 가만히 있기에는 억장이 무너졌다. 혓바늘이 온몸에 돋았고 그대로 굳어갔다. -본문

 

이들의 삶을 투영해 바라보지 않더라도 이들이 겪어온 파란했던 역사 속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조선의 멸망과 일제 강점기라는 뼈 아픈 시간을 지나 가까스로 맞이한 해방이라는 기쁨도 잠시 이념이라는 차이로 인해 다시 두 동강으로 단절되어야만 했던 다사다난했던 우리나라의 역사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위용을 떨치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노라면 더 없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때론 세계지도 속 아스라히 자리 하고 있는 이 나라의 과거는 왜 이토록 지독하게도 아픈 것 들이어만 했는지에 대한 푸념도 해보곤 했다.

 

아니,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이 지난함을 제대로 느꼈다기 보다는 그저 아픈 역사라고 하니 그렇게 받아 들이고 인식했던 것이 더 올바른 표현 일 것이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에 목숨 바쳐 총칼 앞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수 많은 민중들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그들에게 숭고함을 표현하기 이전에 나는 문제집 속의 정답을 찾는 것에 급급하여 역사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그저 단기간 암기해야 하는 공식처럼 받아들였으며 문학 시간에 마주했던 문학 작품 속에 녹아 있다는 恨이란 정서는 그저 글자로서만 인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모든가 험하게 떠났다. 박상지는 원폭으로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었고, 구월은 바다에서 넋을 빼았겼으며, 한태주마저 한국전쟁으로 위한 목숨을 소각해버렸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해금의 주변에는 가난하고 슬픔 삶과 처절한 죽음이 너무도 흔했다. 시대가 그랫고 전쟁이 그랬고 인생이 그랬다.

쇠털같이 많은 사람들이 민들레 홀씨마냥 풀풀 날아서 고단한 육신 내려 앉힌 곳. 그곳은 곧 삶의 터전이 되었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었다. 고통까지도, 고국산천을 떠나온 사람들의 운명은 질척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가나이라는 저주의 대명사가 덕지덕지 붙었고, 버짐이 피고 윤기 없는 피부는 허옇게 각질이 일었으며, 발뒤꿈치는 가뭄 난 논밭처럼 쩍쩍 갈라지고 터졌다. -본문

 

국사 교과서 속에 그렇게 자리하고 있던 우리의 역사는 이 소설 속 4명을 인물들을 통해서 다시 재현되고 있다. 이전의 국사는 역사적 흐름에 따라 시대순으로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 주목을 하여 배운 것들이라면 <검은 모래> 속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부모이자 형제자매이며, 이웃이자 더불어 우리의 이야기로서 국사가 하나의 레시피라면 소설은 이 레시피 대로 하나의 음식을 완성하여 보여주는 듯 했다. 한 세기 전의 과거가 현재의 내 눈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기지에 그 어느 때보다도 살갑게 다가오면서 그 때문에 진정 가슴이 먹먹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삶의 연맹을 위한 자맥질을 하고자 구월과 해금은 우도를 떠나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으나 그곳은 동일한 이곳의 바다가 아니었다. 전복이나 해초류로 그들의 빈 속을 채울 수는 있을지언정 그들에게 그곳은 영원히 타국이자 초대받지 못한 손님으로서 점점 되돌아 갈 길이 막막하게 하는 시대의 흐름은 마치 조국마저 그들은 잊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여러 번의 분화와 화산재로 폐허가 된 미이케우라에 한국인 촌락이 있었다는 사실은 나이 든 원주민이 아니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미유는 처음 이 지역을 지나다가 너무도 흉물스러워 보이던 폐허가 한국인들, 특히 제주에서 건너온 해녀들이 살았던 촌락이라는 얘기를 해금에게서 듣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제주 해녀들이 돈을 벌기 위해 건너온 일본의 여러 해안 마음 중에서 유독 많은 무리를 지어 산 곳이 이 화산섬이다. 여기서도 그네들끼리 모여 살았던 곳이 미이케우라였다. 지금은 용암과 화산재와 풍파에 만신창이가 되어 너덜거리는 넝마의 땅, 저주의 땅이 되어 주인 없이 버려져 있다. -본문

 

한 세기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가 하프가 되고 쿼터가 되어 점점 희석되어 가고 있다. 이식된 뿌리 속에 흐르고 있던 한국인의 피는 점차 옅어지고 있었으며 의도하였건 의도하지 않았건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그들의 빛은 점점 흐려지고 있다. 한국인이라는 씨앗은 디딤돌로 시작되어 어느새 걸림돌로 전락해버리고 있었으며 그 전락해버린 시간과 역사 앞에서 과연 나는 그들 스스로의 외면을 비난할 수만은 없었다.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무관심이자 감추고 싶은 아픈 과거였으니 말이다.

 

나도 조선 사람이고 네 아버지도 조선 사람이었어. 네가 일본 사람들처럼 살 수는 있으나 일본인은 아니다. 그까짓 종이 쪼가리가 피를 대신 할 수는 없는 거야. 아무리 일본 이름을 가지고 산다 해도 네 피를 속일 수는 없잖니. 그리고 네 몸 속에 흐르는 조선인의 피는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순결한 피야.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잊지 마라. -본문

 

그럼에도 단 1%의 힘은 다시금 그들을 들끓게 하고 처음 그 자리로의 회귀를 꿈꾸게 하고 있다. 태어나서부터 한국인이라는 혈을 안고 태어난 이들이기에 그것이 한낱 종이 위의 다른 국적을 표기하고 있다 한들 이 뜨거움은 사그러지지 않았다.

 

지난했던 한 세기를 거쳐 다시 오늘로 오기까지, 구월이 그러했든 해금은 마지막 순간 박씨를 심고 있다.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얻은 박씨가 훗날 흥부에게 복을 가져다 주었다는 전래 동화처럼 박씨를 심는 모녀의 의식 속에는 그들이 가고 난 후 남겨진 자손들에게 남겨 줄 미래가 담겨 있다. 이 모든 것이 아프고 견디기 힘든 것들이었지만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뼈와 살이 되는 젖줄이 되어 우리를 살찌우게 할 것이며 또 다시 살게 하는 것이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과거의 기록 속에 남겨져 있었다면 4대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하루하루가 가슴 속의 흔적으로 남는 시간이 되었다. 여전히 과거의 역사 속에만 살아야만 하는 이들을 이제는 자유로이 숨쉴 수 있도록, 그리하여 역사 속 그들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방향키를 제대로 쥐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박씨가 어떠한 꽃을 피우게 될 지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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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 박경리저

 

 

 

 

독서 기간 : 2013.12.1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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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아침을 열다 - 마음이 한 뼘씩 자라는 이야기
사색의향기문화원 지음, 이영철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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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수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낑낑거리며 출퇴근을 하고 터덜터덜 옮기는 발걸음에는 힘없이 축 늘어져서는 오늘도 습관처럼 나는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한때는 이 길을 걸으면 모든 것이 행복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이제는 일상을 넘어 두 어깨를 짓누르는 현실을 가끔은 일탈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을 하고 있다.

  게다가 지금 우리 사회는 모두들 자신의 내면에 기수를 앉혀놓고 스스로에게 가혹한 채찍질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지요.

 그러다 보니 지금의 삶의 중요성을 놓치고 살아갑니다. 큰 행복을 자꾸만 뒤로 미루게 되지요. 작은 행복은 더더욱 뒤로 미루게 됩니다. 행복을 위해서 산다고 믿었는데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태연하게 살게 됩니다. 모두들 그렇게 살고 있다고 위로하며 사는 겁니다. -본문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갈망하는 삶의 모습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아등바등한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라며 우두커니 허공을 바라보곤 한다. 그러다 마주한 이 책 속의 짧은 단상들은 축 쳐진 어깨며 꽉 막혀버린 머리 속은 잠시나마 잊고서는 공허하니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채워주는 해방구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야말로 도심 속에 푸르른 숲을 마주한 기분. 이 책은 나에게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시간을 주었고 그리하여 내가 숨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며 여유라는 것이 사치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한 시간임을, 그리고 그것이 꼭 필요한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로마의 휴일>,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이란 영화를 다 보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영화 속 여주인공이었던 오드리 헵번만큼은 톡톡히 알고 있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영화라고는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수 많은 사람들의 뮤즈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여전히 뮤즈로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비단 그 당시 스크린 속에 담긴 모습이 아름답다라는 것 때문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흔히들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얼굴은 아무리 길어봐야 고작 몇 년이다, 라는 말처럼 외모는 금새 잊혀지니 말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그녀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세상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에 있었습니다. 1988년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임명되면서 그녀는 무관심속에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봉사했습니다. (중략)

 두개의 손 중,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손이란다.” –본문

 세월이 흘러 할머니가 된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녀가 아름답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영화 속의 젊음은 이미 그녀를 지나간 상태였지만 그녀는 그녀의 주름 안에까지도 사랑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으니, 그녀를 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미소를 띄게 하는 영원한 뮤즈로 살아있는 듯 하다.


 

 가면이란 글을 보면서 이게 바로 내 모습이었구나, 라며 한참을 멍하니 이 페이지에 잠겨 있었다. ‘꽃 같은 이름표를 얻기 위해서 내가 아님에도 그것이 나인 듯 꿰어 맞추어 놓은 듯 행동하면서 그것이 과연 나인지 아닌지도 모르게 지나와버린 듯 하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누구라도 아마 각자의 가면을 쓰고 있을 게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다양한 페르조나를 안고 살아야 하는 운명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잠시 만이라도 나는 내 안에 안고 있던 모든 가면을 던져 버린 느낌이었다. 비록 그 시간이 짧은 소나기가 지나간 찰나였다고 하지만 그 상쾌함과 편안함은 종종 찾게 될 것 같다.

 

  비록 너와 내가 땅에 금을 긋고 사는 세상이지만 네가 바라보는 하늘과 내가 바라보는 하늘이 같듯이 서로 평등하다는 생각과 생명에 대한 존중으로 배려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본문 

인간의 잣대로 보았을 때 독버섯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식물이지만 자연이라는 거대한 관점에서 볼 때 독버섯은 분해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필요 없는 것들이지만 이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기에 그 무엇 하나도 소중히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 이야기에 다시금 지난 날의 무지했던 나의 생각들에 대해 반성해 보게 된다.

 

  

 

 

 짧은 이야기들로 하여금 잠깐의 쉼표는 휴식이라는 의미는 물론 나로 하여금 생각의 전환을 가져오게 한다. 많은 노력을 하지 않고도 그저 이 책을 몇 장 넘겨 보는 것만으로도 지금 탁 막혀버린 가슴을 조금씩 이완시키며 진정한 나를 바라보게 하는 힘을 가져다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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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철학을 말하다 / 강신주저

 

 

독서 기간 : 2013.12.1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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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귀신의 노래 - 지상을 걷는 쓸쓸한 여행자들을 위한 따뜻한 손편지
곽재구 지음 / 열림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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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제목만 보고서는 사실 이 책을 그냥 지나치려고만 했다. 책의 내용이나 저자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서도 그저 제목 안에 귀신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을씨년스럽다는 느낌에서 그저 넘기려고 생각했었는데 문득 제목만 보고서 그저 흘리는 것도 왠지 아깝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다시 소개글을 읽다 보면서 문체 속에 녹아 든 따스함에 첫인상에서 받았던 거부감은 오간대 없이 바로 책을 집어 들었다.

 길귀신이라는 말을 듣고 조금 움찍했을 이가 있을지 모르게군요. 그냥 길동무라고 해도 좋겠지만 이들이 이 지상에 머물렀을 시간을 생각하면 동무라는 말이 한없이 친근하고 포근해도, 그냥 귀신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은 것입니다. 길 위에 서면 나는 이 셋의 사랑스런 길귀신들에게 내마음의 혼을 모아 다정하게 인사하는 것입니다. –본문

 어릴 적 길을 잃어 40리를 넘게 걸어 도착한 왠 낯선 마을에서 마주한 손님이라는 그 단어와의 첫 만남이 저자로 하여금 어딘가로 계속 떠나게 만드는 시초가 된 듯 하다. 스마트 폰 때문에 길을 잃을, 누군가를 찾는 것마저도 순식간에 이뤄질 수 있는 요즘과는 좀 다른, 그야말로 느림의 미학이 오롯이 발현되는 그 당시만 해도 그 나름대로의 정겨움이 물씬 풍겨 나는 듯 하다. 그래서 일까. 저자가 걸어왔던 그 여행길의 길목길목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그래서 따스함이 느껴져서 계속해서 그 길을 따라 걷고 싶어 진다.

 봄 언덕을 보면 나는 늘 길 하나를 생각한다. 아카시아 꽃잎을 따 먹으며 걷던 들길과 그 길 끝에 자리한 마을의 집을 생각한다. 내 나이 아홉 살, 길 위에서 처음 손님이란 말을 들었고 그것이 내 여행의 시작이 되었다. 꽃잔디 위로 나비들이 날아들고 밥 냄새와 국냄새가 한 없이 포근했던 그 집의 길의 끝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린다. –본문

 여행의 여정은 딱히 어느 곳을 정해 놓은 곳이 아니었다. 그가 발길이 닿는 곳곳이 모두 여행이자 배움의 샘터였는데 목욕탕에서 마주한 눈이 먼 아저씨의 이야기를 보면서 아내가 좋아하는 꽃이라며 프리지아를 안고 가는 그와 그의 아내를 보며 눈에 보이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배우게 된다. 내 눈에는 프리지아의 향긋함이 우선으로 보였다면 그들에게는 프리지아에 담은 사랑이 담뿍 담겨 있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 배운 것들 중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바로 인도의 인사말이었다. 이전에 인도를 방문 했을 때에도 기본적인 인사말인 나마스테를 알고 가긴 갔으나 그저 우리나라의 안녕하세요의 동일한 인사말이라고만 생각했다. 요즘 들어서야 그저 인사로서 안녕하세요이라고 하지만 보릿고개로 하루하루 배를 굶주리며 살아야 했던 우리네 예전의 모습 속에서 이 인사말은 지난 밤 동안 안녕했는지에 대해 묻는, 생과 사의 문턱에서 이웃에 대한 정겨움의 표현이 더욱 배가 되었듯이 인도의 인사말인 나마스테역시 그 뒤에는 더 깊은 뜻을 안고 있었다.

 인도나 네팔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이 인사말은 나를 사랑하는 내 영혼의 신이 당신의 영혼 또한 사랑하기를!’이라는 아름다운 의미를 지녔다. –본문

 비좁은 기차 안에서 손을 꼭 맞잡고 잠이 든 부부의 모습이나 바로 옆에 자리한 국화빵과 붕어빵을 파시는 어머님들의 서로 간의 배려도 그렇고 새봄이 오는 소리에 누군가에게 따스한 인사를 전해볼 것을 권하는 저자의 이야기들을 보노라면 나도 어느새 이 따스한 여정에 빠지게 된다.

 이 모든 여정들을 걸어오는 동안 많은 것들을 그에게 알려준 지혜가 쌓일수록 그 쌓이는 것들만 것 저자는 한 해 한 해 세월을 담았을 것이다. 어느덧 돌아본 길목에서 꽤나 오랜 여정을 걸어온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단 한 권을 통해 그의 길을 걸어볼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아마도 그가 스물 살에 만난 가장 아름다운 사람에게 건넸다는 그 공책을 마주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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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집 / 박완서저

 

 

 

 

독서 기간 : 2013.12.0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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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미스터 갓
핀 지음, 차동엽 옮김 / 위즈앤비즈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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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흘러내리는 낙엽이 그저 낙엽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지나간 사랑이고 슬픔으로 보일 때가 있다. 또 다른 이에게는 흘러간 시간일 수도 있고 새로운 계절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기도 한다.

눈 앞에 있는 '안나'가 그들에게는 잊혀진 존재였지만 이 책을 마주한 이들에게는 세상에 다시 없을 천사의 모습이었다. 작은 모습 안에 담겨 있는 그 아이의 이야기들은 읽는 내내 평온했던 마음 속의 잔잔한 파동을 만들어내며 할 수만 있다면 안나를 꼭 안아 주고 싶었다. 그리하면 다시 그 아이를 구원할 수만 있을 것 같았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이미 그 아이는 내 눈 앞에 보이는 듯 했고 내 마음속에 실존하고 있었다.

! 지금 내가 발보고 있는 이 아이를 요 몇 년 동안 매순간 순간 바라볼 수 있었던 특권이여, 행복이여! 최상의 거룩, 지극한 순진무구, 존재의 더할 수 없는 직접성! 산더미 같은 지식들을 쓰레기처럼 무시할 줄 아는 아이. 그 아이가 '지금'내 곁에 있었다. -본문

때론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신이 계시다면 어쩌면 이 모든 세상에 이토록 많은 슬픔과 절망을, 비탄과 통탄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인지에 대한 원망이 들 때도 있다. 가끔은 이 모든 것들이 너무 가혹하게만 느껴지는 그 순간들을 마주하며 절망하게 될 때 그 누구를 향해야 할지 모를 원망을 안나는 어른보다도 더 어른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작은 몸으로는 도저히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기적일 만큼 말이다.

"그 올챙이들 있잖아, 그들을 나는 죽을 때까지 사랑할 수 있어. 그치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을 사랑한다는 걸 분명 모를 거야. 그치? 내가 그들보다 백만 배도 더 크잖아. 똑같이 미스터 갓은 나보다 백만 배도 더 크잖아. 똑같이 미스터 갓은 나보다 백만 배도 더 크지. 그치? 그러니까 미스터 갓이 하는 일은 내가 어떻게 알겠어? -본문

인간이 바라보는 관점에서의 접근이 아닌 전지전능의 관점에서, 마치 드라마나 영화를 바라보듯 인간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안나가 올챙이를 바라보듯이 신은 인간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씨앗을 바라보는 안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천연덕스러움과 순수함을 함께 볼 수 있다. 아주 작은 것에서 푸르름과 화려한 꽃을 내뿜는 그 신비야말로 안나라는 아이의 본현을 보는 듯 했다. 끊임없는 질문을 쏟아내는 모습에서는 미운 네 살이라는 꼬마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 모든 질문을 안고 있는 것이 하나의 답이라는 것에서 그 누구보다도 현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아이를 보면서, 그저 평범한 한 아이로서의 만남만을 생각했던 나는 그 이상의 것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을 다 펼치기도 전에 아스라히 사라져버린 그 아이가 남기고 간 '사랑'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벅차면서도 아름다운 단어였던가, 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안나가 보았던, 안나가 보여주려 했던 세상을 이제 더는 마주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서 나는 계속 안나를 만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 누구보다도 빛나고 고귀했던 작은 씨앗의 발아를 보며 나는 찬란한 진리를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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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 미하엘 엔데저

 

독서 기간 : 201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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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꿈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 - 우리 내면에 숨은 무의식의 정체
김현철 지음 / 나무의철학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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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눈을 뜬 순간 '무슨 꿈을 꾸었다' 라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뭔가 꿈 속에서는 매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졌기에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참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을 꿈을 꾸는 도중에도 했던 기억이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아 아쉬움에 입맛만 다시곤 한다.

이와는 반대로 너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이것이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를 혼동하게 만드는 것들도 있는데 개중에는 리얼함을 뛰어넘어 두려움마저 들게 하는 꿈들이 있다.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나간 이들을 마주한다던가 때로는 이가 다 빠져버린 꿈을 꾼다든가, 하는 꿈들 말이다. 꿈이라는 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계처럼 만들어 놓은 꿈 해몽에 관해서도 전문가는 아니지만서도 여기저기서 들어봤던 이야기들 중 섬뜩했던 결말로 들어 봄직한 것들을 꿈에서 마주한 날이면 왠지 모르게 몸가짐을 조심하게 하게 된다.

그저 꿈이라, 하기에는 뭔가 찝찝하고 그렇다고 앞으로 일어날 일이라고 하기에는 두려운 이 꿈에 관한 진실을 저자는 우리 안의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것이자 우리를 들여볼 수 있는 내면의 열쇠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어젯밤 꿈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은 무의식의 대표 공간인 꿈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밤마다 꿈을 통해 내면의 목소리를 오감으로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의 전체를 폄하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꿈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 마음 어딘가 아픈지, 어떻게 아픈지를 반복하여 보여줌으로써 삶의 균형을 찾아주는 심리 치료 센터인 셈이다. -본문

꿈 속에서 만큼은 모든 제약들이 사라지게 된다. 현실의 나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꿈 속에서는 남성의 모습이 되기도 하고 중력 따위는 무시하고 하늘을 날기도 하고 때로는 수 많은 자객들과 싸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몇 십 년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때론 전혀 본 적이 없는 타인이 꿈 속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 등장하기도 한다.

대체 왜 이런 꿈을 꾼 거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며 이 책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 꿈은 그저 꿈이 아닌 나를 투영하거나 때론 내가 되고자 하는 방향의 모습들을 왜곡시켜 제 3자의 모습으로 나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그전의 우리는 꿈을 그저 한낱 꿈으로만 치부했다면 이 책 안에 있는 꿈들을 보는 순간,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닌 현재의 나를 대변하고 있는 또 다른 외침인 것이다.

꿈은 구속과 처벌을 담당하는 교도소이자 원리, 원칙, 삶의 교훈을 얻을 수 있는 학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꿈은 징벌의 공간이자 삶의 교훈을 배워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본문

망측하고 기괴한 꿈을 꾸고 나면 누구에게 이야기하기도 힘든, 차마 입 밖으로 내기 힘든 상황들까지도 이 책 안에 모두 담겨져 있다. 때론 내 스스로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스런 꿈들마저도 내 안에 잠겨 있던 또 다른 자아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을 들으며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꿈 속에 이토록 많은 것들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고풍스런 꿈 해몽 집에 가깝다는 것이 이 책의 한계인 듯 하지만 심심풀이로 읽어볼 만 하다. 중요한 것은 꿈이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현재 내재되어 있는 나를 반영하고 있다고 하니 꿈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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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뇌의 비밀 / 안드레아 록

독서 기간 : 2013.12.12~12.13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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