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모래 - 2013년 제1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구소은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아르's Review

 

 

 

 우리나라의 지도 속에 마치 마지막의 마침표처럼 자리하고 있는 제주도는 그리하여 우리에게 평온을 주는 휴양지이자 관광명소로서 현재 우리의 곁에 있는 남아 있는 가보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바라보았던 제주도의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의 최대 관광지이자 아름다운 섬으로 삼다도라는 애칭을 가진 섬. 그 안에 살고 있는 푸근한 돌하르방이며 하늘하늘한 유채꽃과 망사리 가득 전복이며 해삼, 멍게 등 갖가지 해산물을 담아오는 해녀들의 모습은 온 세상을 하얀 눈꽃으로 뒤덮인 그 찬란하게 빛나는 표면만을 바라본 것이었다.

 

뽀얀 눈꽃 위에 빛이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찬란하고 탐스러운 세상이 내가 바라는 우리의 삶이자 현재이길 바랐다면 눈 속에 뒤덮인 세상은 그야말로 생채기가 지나간 자리에 앉은 딱지를 다시 헤집는 듯한 아픔이 아련하게 베어 들어 있었다.

 

지지리도 복 없이 태어난 팔자를 탓해야 할까, 아니면 불행한 나라에 태어난 백성이라 나라와 함께 겪어야 하는 업이라고 해야 할까. 국으로 가만히 있기에는 억장이 무너졌다. 혓바늘이 온몸에 돋았고 그대로 굳어갔다. -본문

 

이들의 삶을 투영해 바라보지 않더라도 이들이 겪어온 파란했던 역사 속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조선의 멸망과 일제 강점기라는 뼈 아픈 시간을 지나 가까스로 맞이한 해방이라는 기쁨도 잠시 이념이라는 차이로 인해 다시 두 동강으로 단절되어야만 했던 다사다난했던 우리나라의 역사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위용을 떨치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노라면 더 없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때론 세계지도 속 아스라히 자리 하고 있는 이 나라의 과거는 왜 이토록 지독하게도 아픈 것 들이어만 했는지에 대한 푸념도 해보곤 했다.

 

아니,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이 지난함을 제대로 느꼈다기 보다는 그저 아픈 역사라고 하니 그렇게 받아 들이고 인식했던 것이 더 올바른 표현 일 것이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것에 목숨 바쳐 총칼 앞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수 많은 민중들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그들에게 숭고함을 표현하기 이전에 나는 문제집 속의 정답을 찾는 것에 급급하여 역사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그저 단기간 암기해야 하는 공식처럼 받아들였으며 문학 시간에 마주했던 문학 작품 속에 녹아 있다는 恨이란 정서는 그저 글자로서만 인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모든가 험하게 떠났다. 박상지는 원폭으로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었고, 구월은 바다에서 넋을 빼았겼으며, 한태주마저 한국전쟁으로 위한 목숨을 소각해버렸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해금의 주변에는 가난하고 슬픔 삶과 처절한 죽음이 너무도 흔했다. 시대가 그랫고 전쟁이 그랬고 인생이 그랬다.

쇠털같이 많은 사람들이 민들레 홀씨마냥 풀풀 날아서 고단한 육신 내려 앉힌 곳. 그곳은 곧 삶의 터전이 되었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었다. 고통까지도, 고국산천을 떠나온 사람들의 운명은 질척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가나이라는 저주의 대명사가 덕지덕지 붙었고, 버짐이 피고 윤기 없는 피부는 허옇게 각질이 일었으며, 발뒤꿈치는 가뭄 난 논밭처럼 쩍쩍 갈라지고 터졌다. -본문

 

국사 교과서 속에 그렇게 자리하고 있던 우리의 역사는 이 소설 속 4명을 인물들을 통해서 다시 재현되고 있다. 이전의 국사는 역사적 흐름에 따라 시대순으로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 주목을 하여 배운 것들이라면 <검은 모래> 속의 이야기는 누군가의 부모이자 형제자매이며, 이웃이자 더불어 우리의 이야기로서 국사가 하나의 레시피라면 소설은 이 레시피 대로 하나의 음식을 완성하여 보여주는 듯 했다. 한 세기 전의 과거가 현재의 내 눈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기지에 그 어느 때보다도 살갑게 다가오면서 그 때문에 진정 가슴이 먹먹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삶의 연맹을 위한 자맥질을 하고자 구월과 해금은 우도를 떠나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으나 그곳은 동일한 이곳의 바다가 아니었다. 전복이나 해초류로 그들의 빈 속을 채울 수는 있을지언정 그들에게 그곳은 영원히 타국이자 초대받지 못한 손님으로서 점점 되돌아 갈 길이 막막하게 하는 시대의 흐름은 마치 조국마저 그들은 잊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미 여러 번의 분화와 화산재로 폐허가 된 미이케우라에 한국인 촌락이 있었다는 사실은 나이 든 원주민이 아니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미유는 처음 이 지역을 지나다가 너무도 흉물스러워 보이던 폐허가 한국인들, 특히 제주에서 건너온 해녀들이 살았던 촌락이라는 얘기를 해금에게서 듣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제주 해녀들이 돈을 벌기 위해 건너온 일본의 여러 해안 마음 중에서 유독 많은 무리를 지어 산 곳이 이 화산섬이다. 여기서도 그네들끼리 모여 살았던 곳이 미이케우라였다. 지금은 용암과 화산재와 풍파에 만신창이가 되어 너덜거리는 넝마의 땅, 저주의 땅이 되어 주인 없이 버려져 있다. -본문

 

한 세기의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가 하프가 되고 쿼터가 되어 점점 희석되어 가고 있다. 이식된 뿌리 속에 흐르고 있던 한국인의 피는 점차 옅어지고 있었으며 의도하였건 의도하지 않았건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그들의 빛은 점점 흐려지고 있다. 한국인이라는 씨앗은 디딤돌로 시작되어 어느새 걸림돌로 전락해버리고 있었으며 그 전락해버린 시간과 역사 앞에서 과연 나는 그들 스스로의 외면을 비난할 수만은 없었다. 그 모든 것들이 우리의 무관심이자 감추고 싶은 아픈 과거였으니 말이다.

 

나도 조선 사람이고 네 아버지도 조선 사람이었어. 네가 일본 사람들처럼 살 수는 있으나 일본인은 아니다. 그까짓 종이 쪼가리가 피를 대신 할 수는 없는 거야. 아무리 일본 이름을 가지고 산다 해도 네 피를 속일 수는 없잖니. 그리고 네 몸 속에 흐르는 조선인의 피는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순결한 피야.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잊지 마라. -본문

 

그럼에도 단 1%의 힘은 다시금 그들을 들끓게 하고 처음 그 자리로의 회귀를 꿈꾸게 하고 있다. 태어나서부터 한국인이라는 혈을 안고 태어난 이들이기에 그것이 한낱 종이 위의 다른 국적을 표기하고 있다 한들 이 뜨거움은 사그러지지 않았다.

 

지난했던 한 세기를 거쳐 다시 오늘로 오기까지, 구월이 그러했든 해금은 마지막 순간 박씨를 심고 있다.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얻은 박씨가 훗날 흥부에게 복을 가져다 주었다는 전래 동화처럼 박씨를 심는 모녀의 의식 속에는 그들이 가고 난 후 남겨진 자손들에게 남겨 줄 미래가 담겨 있다. 이 모든 것이 아프고 견디기 힘든 것들이었지만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뼈와 살이 되는 젖줄이 되어 우리를 살찌우게 할 것이며 또 다시 살게 하는 것이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과거의 기록 속에 남겨져 있었다면 4대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하루하루가 가슴 속의 흔적으로 남는 시간이 되었다. 여전히 과거의 역사 속에만 살아야만 하는 이들을 이제는 자유로이 숨쉴 수 있도록, 그리하여 역사 속 그들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방향키를 제대로 쥐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박씨가 어떠한 꽃을 피우게 될 지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는 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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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 박경리저

 

 

 

 

독서 기간 : 2013.12.13~12.16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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