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흘러내리는 낙엽이 그저 낙엽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지나간 사랑이고 슬픔으로 보일 때가 있다. 또 다른 이에게는 흘러간 시간일 수도 있고 새로운 계절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기도 한다.
눈 앞에 있는 '안나'가 그들에게는 잊혀진 존재였지만 이 책을 마주한 이들에게는 세상에 다시 없을 천사의 모습이었다. 작은 모습 안에 담겨 있는 그 아이의 이야기들은 읽는 내내 평온했던 마음 속의 잔잔한 파동을 만들어내며 할 수만 있다면 안나를 꼭 안아 주고 싶었다. 그리하면 다시 그 아이를 구원할 수만 있을 것 같았다.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이미 그 아이는 내 눈 앞에 보이는 듯 했고 내 마음속에 실존하고 있었다.
아! 지금 내가 발보고 있는 이 아이를 요 몇 년 동안 매순간 순간 바라볼 수 있었던 특권이여, 행복이여! 최상의 거룩, 지극한 순진무구, 존재의 더할 수 없는 직접성! 산더미 같은 지식들을 쓰레기처럼 무시할 줄 아는 아이. 그 아이가 '지금'내 곁에 있었다. -본문
때론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신이 계시다면 어쩌면 이 모든 세상에 이토록 많은 슬픔과 절망을, 비탄과 통탄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인지에 대한 원망이 들 때도 있다. 가끔은 이 모든 것들이 너무 가혹하게만 느껴지는 그 순간들을 마주하며 절망하게 될 때 그 누구를 향해야 할지 모를 원망을 안나는 어른보다도 더 어른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작은 몸으로는 도저히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기적일 만큼 말이다.
"그 올챙이들 있잖아, 그들을 나는 죽을 때까지 사랑할 수 있어. 그치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을 사랑한다는 걸 분명 모를 거야. 그치? 내가 그들보다 백만 배도 더 크잖아. 똑같이 미스터 갓은 나보다 백만 배도 더 크잖아. 똑같이 미스터 갓은 나보다 백만 배도 더 크지. 그치? 그러니까 미스터 갓이 하는 일은 내가 어떻게 알겠어? -본문
인간이 바라보는 관점에서의 접근이 아닌 전지전능의 관점에서, 마치 드라마나 영화를 바라보듯 인간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안나가 올챙이를 바라보듯이 신은 인간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씨앗을 바라보는 안나의 모습은 그야말로 천연덕스러움과 순수함을 함께 볼 수 있다. 아주 작은 것에서 푸르름과 화려한 꽃을 내뿜는 그 신비야말로 안나라는 아이의 본현을 보는 듯 했다. 끊임없는 질문을 쏟아내는 모습에서는 미운 네 살이라는 꼬마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 모든 질문을 안고 있는 것이 하나의 답이라는 것에서 그 누구보다도 현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 아이를 보면서, 그저 평범한 한 아이로서의 만남만을 생각했던 나는 그 이상의 것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을 다 펼치기도 전에 아스라히 사라져버린 그 아이가 남기고 간 '사랑'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벅차면서도 아름다운 단어였던가, 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안나가 보았던, 안나가 보여주려 했던 세상을 이제 더는 마주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서 나는 계속 안나를 만날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 누구보다도 빛나고 고귀했던 작은 씨앗의 발아를 보며 나는 찬란한 진리를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