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들의 안식처, 에르미타를 찾아서 - 스페인에서 만난 순결한 고독과 위로
지은경 지음, 세바스티안 슈티제 사진 / 예담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르's Review

 

 

 스페인하면 정열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투우 경기나 화려한 플라멩코의 이미지가 함께 떠오르며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의 아름다운 건축물에 대한 짧은 단상이 내게 떠오르는 스페인의 전부이다.

 무언가 붉은 색의 정열적이면서도 힘차게 돌아갈 것만 같은 스페인에서 저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고요하면서도 묵묵하게 자리를 하고 있는 에르미타에서 안식을 취하고 왔다고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에르미타는 대체 무엇이며 이곳이 어떠한 곳이기에 순례자들의 안식처라고 하는 것인지. 도통 스페인, 하면 떠오르지 않는 이 조합이 어떻게 풀어나가게 될지 자못 궁금해졌다.

 세바스티안이 여행 내내 기다리던 회색빛의 먹구름 떼는 소낙비가 막 쏟아지려는 찰나 혹은 먹구름이 밀려가는 찰나에 종종 마주칠 수 있다. 나는 이 풍경을 세바스티안과 함께 떠났던 에르미타 여행 이후 인식하게 되었다. 그전에 내가 보았던 이 세상 모든 회색 구름들은 그저 다 같은 먹구름일 뿐이었다. –본문

 이 책을 마주하지 않았더라면, 저자의 여행길을 함께 하지 못했더라면 여전히 내게는 스페인이란 붉은 색으로 밖에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게 되면서 이 활발하고 역동적인 전체적인 그림 아래 숨겨져 있는 순백색의 숙연함을 본 듯 하다. 에르미타 여행 이후에야 먹구름 이외의 것을 보게 된 것처럼 나 역시도 또 다른 세상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눈을 떠 아침을 맞이하고 아침을 먹으며 도란도란 웃으며 출근을 하고 그리고 나서 다시 같은 집으로 향하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같이 할 수 있기에 행복하다는 데이트와 결혼의 차이점을 듣고 있노라면 과연 결혼은 늘 언제나 그토록 달콤한 것일까, 라는 물음이 들게 된다 

 책 속 가장 먼저 마주한 에르미타이다. 중세시대의 암자를 의미하는 이 에르미타는 왠지 모르게 보는 것만으로도 겸허히 바라보게 했다. 몽환적이면서도 주변에 그 무엇도 없는 상태에 오롯이 혼자 이 곳을 지키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이었으며 이 야생 속에 홀로 숨쉬고 있는 에르미타를 보면서 이전의 활기찬 그 당시의 모습들을 그려보며 나도 모르게 숙연하게 된다.

 

파란 점으로 기록되어 있는 에르미타를 찾아 가는 동안 에르미타만을 쫓는 것이 아닌 그 여정 동안 수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으며 또 생경한 풍경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탁 트인 전경을 바라보면서 그저 아름답다 혹은 이 곳으로 떠나고 싶다 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내 스스로를 돌아보며 올 한 해를 어떻게 지내왔는가 하는, 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화려하고 발랄한 파란 하늘은 에르미타를 위한 빛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외롭고 쓸쓸한 작업을 더욱 심화시키기 위해 우울한 회색빛이 감도는 겨울날만을 골라 여행했고, 이 특별한 빛은 주변을 고요히 잠재우고 구름에 반사된 햇살을 받은 에르미타는 영롱하고 섬세하게 반짝거렸다. –본문

 하얀 눈으로 뒤 덮인 설원 위에서 그가 가는 길목마다 어디선가 바라보고 있을 늑대와 같이 나는 그가 가는 여정마다 계속해서 눈길이 사로잡혀 다른 곳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하얀 눈으로 뒤 덮인 설원 위에서 그가 가는 길목마다 어디선가 바라보고 있을 늑대와 같이 나는 그가 가는 여정마다 계속해서 눈길이 사로잡혀 다른 곳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거대한 네크로폴리스 바위의 그늘진 한편에는 동물의 털을 연상시키는 소복한 이끼들이 돋아나 있었다. 이 이끼들은 기원전 혹은 중세시대에 생을 마감해 바위 안에 안착된 그 누군가의 인체 속에 머물던 어떤 요소들도 포함하고 있을 것이다.  본문

 특히나 쿠이야 카브라스를 방문했던 곳의 기록은 송연하면서도 처연함마저 들게 되는 것이 생과 사의 길목이란 이 길과 같이 흘러 가는 시간처럼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 전에는 그들이 걸었을 이 길은 이제는 그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 위에 그가 걷고 있고 그가 걸어온 길을 지금의 내가 바라보고 있으니, 이 한 곳의 장소를 통해서 몇 개의 시간이 겹쳐져서 우리는 함께하고 있는 것인지. 이 한 장의 사진을 보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정신 없이 지나갔던 올해를 마무리하며 그저 눈으로 잠시 휴식을 떠나고 싶은 마음에서 펼쳐봤던 책 속에서 어느새 마지막 장을 덮으며 바쁘게만 쫓아왔던 한 해의 일들이 하나씩 정리되는 느낌이다. 그리 급한 것도 없음에도 재촉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던 일상 속에서 잠시 단잠에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그래서일까. 이 책을 읽고 나서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 하다

 

아르's 추천목록

 

 

순례자의 시간 / 김지환저

 

 

 

독서 기간 : 2013.12.28~12.30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낙타의 뿔
윤순례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아르's Review

 

  낙타의 뿔이라니.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제목으로 차용한 이 책을 보면서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라며 골똘히 생각해봐도 도저히 떠오르지가 않는다.

 우리가 알기 이전에는 낙타에게도 뿔이 있었던 것일까? 그럼 그 뿔은 과연 어떻게 생긴 것일까? 라는 수 많은 물음표를 대동하고 책의 표지를 펼치자 마자 낙타 뿔에 관한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아주 오래전 신께서 낙타에게 뿔을 주셨다. 마음이 착해 상을 주신 것이다.
어느 날 꾀보 사슴이 낙타에게 와 말했다
.
 
뿔 좀 빌려다오. 잘 차리고 서역 잔치에 가련다
.”
낙타는 곧이 믿고 뿔을 빌려주었다. 사슴을 돌아오지 않았다
.
그때부터 낙타는 늘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사슴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몽골 설화>에서 본문.

 낙타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지만 그 생김새 만으로도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다큐멘터리에서 몇 번 마주했던 낙타의 등은 계곡처럼 굽은 혹을 등에 짊어지고 있으면서도 태연하게 질겅질겅 풀을 씹는 표정을 볼 때면 순둥이 마냥 착해 보이는 것을 넘어 때로는 어리숙한 바보처럼 보이기도 했다. 긴 속눈썹 덕분인지 아니면 처진 눈망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외모 때문에 낙타는 한 없이 착하게만 보인다.

 아마도 낙타의 인상에 기인하여 몽골 설화에서는 낙타의 뿔이 사라진 것이라고 이야기 했나 보다. 너무도 착한 낙타에게 아름다운 뿔은 누구나 가지고 싶은 것이었을 테고 굽어 있는 등의 혹은 관심 밖의 것이었을 테니 누구라고 착한 낙타에게 뿔을 빼앗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낙타는 뿔을 잃어버렸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저 사슴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 믿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재혼에 성공하게 된 아버지과 아버지의 아내이자 나의 어머니이지만 시종일관 여자라고 불리는 조선족 그녀와 바다에서 행방불명 된 남자친구가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효은. 이렇게 3명은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있기는 하나 과연 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가족의 형상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아귀가 맞지 않아 불편하게 보였다.

아버지가 전에 없이 신경이 쓰였다. 나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이라지 않은가. 그런 사람이 젖먹이 때부터 기르고 공부까지 시켜줬으면 무조건 엎드려 절해도 부족한 판국 아닌가. 물로 배가 찰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자는 아버지에게 내가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한 것을 실토했을까? –본문

 특히나 자신이 친 자식이 아닌 업둥이라는 사실을, 그것도 아버지의 입이 아닌 아버지와 재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에게서 들어야만 했던 효은. 친자식이 아니라고 하지만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그녀에게 아버지는 가차없이 주먹을 휘둘렀고 그리하여 그녀는 아버지에게 복수 하기 위해서 집을 떠나게 된다. 복수라고 하기에는 다소 조용하고 번잡스러운 것은 없었다. 다만 그녀는 조용히 아버지에게 이별을 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하루의 노역으로 얻은 덤을 옆구리에 암팡지게 꿰차고 내 곁을 떠나갔다. 그물에 재수 없게 걸려든 죽은 물고기만이, 오로지 눈앞의 그것만이 명백한 현실이라는 듯이. –본문

말 그대로 딱딱한 바게트를 마실 것 하나 없이 마른 침으로 삼키듯 이들은 사막 속에 남겨진 낙타와 같은 느낌이었다. 사라져버린 규용을, 그 어미조차도 자식이 죽은 것이라 이야기 하고 있는 순간까지도 효은은 그저 그가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믿고 있다. 그녀 앞으로 당도한 엽서들은 규용이 살아있음을 확신하게 하는 그녀만의 신호였고 그리하여 이 신호를 따라서 그의 어머니 앞으로 당당히 배를 안고서 나타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이전처럼 냉랭하게 그녀를 대할 뿐이다.

 그렇게 모래알처럼 서걱거리는 이들이 다시금 어느 새 함께 마주하고 있었다. 이미 주검이 되어버린 아버지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먹먹하게 있는 그 와중에 아버지의 형제들은 그가 남긴 얼마 안 되는 재산 때문에 목소리를 높여 서로 자신의 몫을 주장하고 있었지만 결국 그것은 여자와 효은의 몫이었다.

기운 없이 밤에 빠져든 지 얼마나 지났을가? 빈속으로 된장국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이웃 사람들의 늦은 식탁에 올려진 음식일까? 어느새 훌쩍 다른 날이 도래했는지도 몰랐다. 집안은 괴괴하고 어두웠다. 몇몇 시간은 지났는지 좀처럼 알수가 없다.

 여자가 어서 돌아와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본문

 이제는 둘이서 어떻게든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그 와중에 구씨와의 조합으로 인해 소소한 행복이 그들에게 자리하게 되는 듯 했다. 하지만 그 작은 행복도 잠시, 아버지의 빚을 받으러 온 친구부터 구씨의 감옥행, 또 다시 사라져버린 여자 때문에 효은은 다시 혼자가 된다.

 낙타가 본디 사막에 있는 짐승이라 그런 걸까. 그의 발 아래 있는 모래처럼 이들은 좀처럼 서걱거리며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에 가나 환대 받지 못하는 그들은 이 땅 위에서 영원히 주인이 될 수 없었다. 조선족인 그녀와 입양아이자 미혼모인 효은. 그리고 딱히 내세울 것 없었던 아버지까지.

 그들이 잃어버린 행복의 뿔을 찾아서 어딘가를 열심히 가기 보다는 그저 목도하며 기다리고 있는 이들은 처연한 낙타처럼 보인다. 언젠가 도래할 것이라 믿는 그들의 뿔은 과연 다시 그들에게 찾아올까. 아직도 사슴을 기다리는 낙타처럼, 그들의 눈이 서글프게만 보일 뿐이다.

 

아르's 추천목록

 

『칸트의 집』 / 최상희저

 

 

독서 기간 : 2013.12.23~12.26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일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아르's Review

 

 

책을 읽기 시작한 사람들이라면 '기욤 뮈소'라는 이름이 낯설지 만은 않을 것이다. 가독성 하나 만큼은 뛰어난 이 작가의 책을 읽기 시작한 것도 얼마 전이었는데 이제는 그의 작품들의 반 이상은 읽어 본 듯 하다. 펼치기만 하면 읽어 내려가는 것은 순식간이니 말이다.

 

이번 작품 역시 '기욤 뮈소' 라는 이름만으로 당장에 들어올린 책이었는데 이번 책은 뭐랄까. 로맨스 같으면서도 스릴러 같기도 하고.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와 7년 후의 느낌이 혼합되어 있는 느낌이다.

 

영화 <동감>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듯한 이 이야기의 시작을 보면서 뭔가 달달한 로맨스가 시작될 거라 믿었다.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사랑하던 아내를 잃은 매튜 앞에 나타난 와인감정사 엠마 사이의 소통의 장이 이어갈 수록 그들이 다시 만나 무언가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 생각했다.

 

"날짜만 이상한 게 아니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야?"

로뮈알드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두 경우 모두 출발점과 도착점이 동일해요. 2011년에 동시에 보낸 메일이 2010년에 같은 컴퓨 터에 도착하고 있다는 거죠." -본문

 

달콤한 그 무언가의 시작은 갑자기 기묘하게 꼬여간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현재가 각각 2011년과 2010년이라는 1년의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진실이었으며 매튜와 엠마 사이의 현상은 과학을 넘어 그 어떠한 것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한 때는 엠마의 노트북이었던 것이 지금은 매튜의 손에 들어와 있고 그 노트북이 이들을 연결하고 있었다. 1년의 시간을 넘어서 말이다.

 

롤러코스트를 탄 것 같은 느낌이라든가 이 책을 펼친 순간 끝까지 읽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감상평을 보면서 마케팅 상의 이야기도 있겠거니, 라는 생각이 들었었지만 책을 읽어가는 순간 이들의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의 이야기의 전개를 가늠하고 있던 찰나 이야기는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전환됐으며 새로운 장면의 등장은 어색하거나 낯설기는 커녕 점점 심장을 조여오면서 그 다음 페이지를 향해 손이 자동으로 움직이게 했다.

 

3. 오늘, 2011 12월에 내가 엠마라는 여자와 접촉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다.

엠마는 죽었으니까.

4. 그렇지만 반대의 개념은 성립되지 않는다!

매튜는 한 가지 가능성에 대해 생각을 집중했다. 엠마가 원한다면 '2010년 엠마'는 언제든지 비행기를 타고 보스턴으로 날아와 '2010년의 매튜'를 만날 수 있다. 과연 엠마가 그렇게 하고 싶을까? 그가 보낸 메세지에 대해 묵묵부답인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은 아주 낮았다. -본문

 

누군가는 미래에 누군가는 과거에 존재하고 있다. 미래에 있는 누군가는 과거를 바꿔 현재를 바꾸고자 했으며 과거에 있는 엠마는 과연 자신이 이 이야기 속의 마치 브루마블의 '' 처럼 매튜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매튜가 가진 그 완벽한 가정을 엠마도 꿈꾸고 있었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다는 것, 그리하여 언제나 환하고 따스함 속에 자신이 속하고 싶다는 욕망이 그녀의 지난했던 과거를 들추게 할 수록 그녀는 매튜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사실 엠마가 이메일을 통해 만났던 2011년 매튜는 부인과 사별한 상태였기에 그 바람이 가능할 지 몰랐다. 하지만 2010년의 매튜는 너무나 완벽하고 행복한 가정 속의 주인공이었다.

 

신문 봤죠? 우리 이제 어떻게 하죠? -엠마

엠마의 질문이 머릿속에서 메아리 쳤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하죠?'

매튜 역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최소 두 명이라는 사실에 그나마 위안을 받았다. 그때 갑자기 놀라운 생각 한 가지가 가슴을 쳤다. 엠마가 메일을 보낸 시점으로 계산해보면 케이트가 살아 있던 때였다. -본문

 

과연 엠마는 메튜의 가정에 파탄을 놓는 것일까? 아니, 그녀의 욕망이 아니었다. 이 모든 판의 진실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내내 어떻게, 감히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라는 생각에 가슴이 조여왔다. 초반의 조바심은 두근거림이었다면 후반의 두근거림은 분노를 넘어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것일까? 하는 배신의 두근거림이었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들이 속임수에 불과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본문

 

사람이 가장 무섭다고 하는 것들을 알고는 있었다지만 과연 이렇게 끔찍한 전모를 꾸밀 만큼이나 인간의 욕망이 대단한 것일까. 누군가를 살리고 죽이는 것이 과연 한 사람의 바람으로 가능한 것일까. 그리하여 타인의 것을 앗아서라도 내 것을 취할 수 있다면 과연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들을 남기고서 2011년도는 다시 도래했고 초반과 결말의 데칼코마니와 같은 반복이 다시 드리워지고 있다.

첫 장의 엠마와 매튜는 서로를 모르는 사이었지만 이제 엠마는 그를 알아보고 있다. 그리고 매튜도 그를 알아보고 있다.

 

이 모든 난황을 겪은 그들이 어떻게 될지는 책을 읽은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결말일 것이다. 어찌되었건 결말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어안이 벙벙하다. 과연 지금 당신의 곁은 안전하다고 믿는가. 다만 이 모든 것들이 소설이길 바랄 뿐이다. 아니, 소설이여만 한다.

 

 

아르's 추천목록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 기욤 뮈소저

 

 

 

 

독서 기간 : 2013.12.24~12.26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과 연애 - 서가에서 꺼낸
문아름 지음 / 네시간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아르's Review

 

 연애는 감정이었다가 경험이었다가 일상이었다가 책이었다가, 라는 부제로 쓰인 이 책을 펼쳐보기도 전에 왠지 모르게 이 책의 느낌이 좋았다. 책과 연애하는 것처럼 어딜 가든 가방 안에 2권 씩의 책을 넣어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된 나로서는 그야말로 책이 남자친구인 냥 애지중지 하고 있으니 책과의 연애라는 이야기가 익숙하게 들렸다.

물론 책을 들고 다니며 보는 것을 좋아하기는 한지만 어쩐 일인지 단 한번도 책과 연애를 연계해서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나도 저런 로맨스를! 이라며 꿈꾸기는 했으나 책을 보면서는 그런 생각을 꿈꾸거나 혹은 연애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 책에서 그 답을 구하려 한 적은 없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에 휘청거리듯 어찌할 바를 모를 마음을 이렇게 저렇게 재단하고 맞춰보려 하는 편인데, 내가 밖으로 나돌며 목적지도 없이 빙빙 돌고 있을 때 저자는 책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있었다.

연애와 책을 함께 접목시켜서 보진 않는다고 하지만 연애를 하는 내 모습과 책을 바라보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 그 안에 저자와 동일하게 오독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린 라이트가 켜지는 순간이라 믿었던 나날들은 때로는 서로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작가는 A를 의도하고 쓴 문장들을 보며 나는 Z를 꿈꾸고 있으니 그야말로 오독의 난황인 것이다.

연애를 하는 동안 읽는 모든 텍스트는 두근거림으로 바뀌었고, 섣불리 읽기 어렵다는 책을 내 멋대로 바꿔 생각하며 책이라는 바다를 여행했다. 오독의 즐거움.

연애를 하며 내 안에 어떤 감정들이 있는지 들여다보기 시작했던 사람들은 그제야 책 속에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바다를 만난다. 아마도 그 학자나 작가를 연구하거나 좀 안다 싶은 선생님들의 눈에는 큰일 날 독서였을지 모르겠다. 작가가 낸 물길과는 영 딴판인 어느 곳에 독자가 멈춰 서 있으니. 그러나 때때로 오독은 진실이다. –본문

연애든 책이든 그 안에 있을 때에는 그것이 오독인지도 모르고 지나치며 내가 보고 싶은 것들만 보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오독에 대한 편견이나 자책보다는 오히려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아마도 저자의 연애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연애마저도 달콤할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은 연애든 인생이든 그 무엇에서도 그만의 즐거움을 찾아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인 듯 하다.

사랑이 없다는 쇼펜하우어의 이야기와 사랑을 하려면 그 본원을 잘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에리히 프롬을 마주하면서 사랑이라는 하나를 바라보면서도 이토록 다른 두 명의 저자를 보면서 왜 이 모든 것들이 또 하나하나가 주억거리게 되는 것인지. 무릇 사랑이라는 것은 달콤한 그 한 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연애를 시작하면서 외로워지는 이유 :

절대로 나는 너 일수 없고, 너는 나일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연애를 하면서 깨달아 버린다. ‘연인이라는 이름은 생각보다 헐겁다. –본문

이 책은 포르노예요라고 설명하는 <파멜라>라는 책을 보면서 대체 무슨 책이길래 이런 설명을 한담, 하며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고 당시에는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서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는 이별 후의 모습들을 떠올리면서 또 먹먹해지곤 한다.

그러니까 저 문장은 내가 누군가를 설명할 때 "재는 같은 과 남자애야" 라는 간단한 설명이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서 "재는 좀 재수 없긴 하지만 저번에 맥주 마실 때 보니까 사람 이야기를 들을 줄 알더라고. 좀 편안하다고 해야 하나?로 바뀔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 남자애는 그때 그냥 졸렸던 것 일 수도 있다. 멋대로 해석하면서 독서는 시작한다. 그래서 책을 꺼내기 전에 나는 두근 거린다. 본문

누군가를 만나든 어떠한 책을 보든 모든 판단은 '나'라는 사람을 기반으로 하여 시작되게 된다. 원래의 모습이 '나'라는 여과지를 건너면서 보여지는 그 다채로운 모습은 때론 그것이 오독이라 할 지라도 일단 마주하는 것이 지나치는 것 보단 낫지 않을까.

시원스러운 문체와 거침 없는 글담을 보여주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갈수록 지금의 그녀와 동일한 이 습관이 잘하고 있는 거라는 나름의 위안이 되고 있다. 마구잡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론 엉뚱하기도 한 이 독서가 그녀를 이토록 매혹적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으로 보아 한 동안 나도 그녀처럼 오독을 계속 해보려 한다.

아르's 추천목록

 

『서가의 연인들』 / 박수현저

 

독서 기간 : 2013.12.19~12.21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뱀주인자리 네오픽션 로맨스클럽 2
신아인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르's Review

 

 

표지를 보면서 그저 아련한 사랑이야기겠거니, 하는 생각이 스쳤다. 달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들의 사랑은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다, 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와는 대조적으로 '뱀주인자리'라는 제목은 도통 무엇을 뜻하는지에 아리송하기만 했다.

 

뱀주인자리는 영원한 삶을 꿈꾸던 의사, 아스클레피오스의 별자리야. 그 별자리의 주인은 죽은 사람까지도 살려내는 뛰어난 의술의 소유자였다고 해. -본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유명한 의사인 아스클레피오스의 별자리라고도 알려져 있는 이 '뱀주인자리'는 뱀에게서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는 식물을 발견하면서부터 죽은 사람까지도 살려내는 의술을 가졌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삶과 죽음은 한 인간이 지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제우스는 그를 번개로 죽였으나 그의 의술만은 높이 칭송하였기에 별자리로 하늘에 빛나게 하고 있는 것이었단다.

죽은 인간까지도 살려 낼 수 있다는 뱀주인자리의 의술의 힘을 빌은 듯, 100여 년 전 뱀주인자리를 타고난 하우신은 스페인 독감으로 뱀파이어가 되어 차가운 심장을 안고 살아오고 있었다.

 

영화 <트와잇라잇>의 늑대인간의 각인과 같이, 그들의 평생의 반려자가 될 사람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듯, 이 소설 속의 뱀파이어는 자신의 반려자의 피를 흡입함으로써 그 반려자를 영원 불멸의 뱀파이어로 탄생시킬 수 있다는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 내용을 처음으로 알게 된 하우신은 그의 반려자라 믿어 의심치 않던 '운하'의 피를 흡입하게 되고 달콤한 그녀의 피의 맛에 매료된 하우신은 그만, 자신의 광기 어린 피에 대한 집착을 멈추지 못하고 운하를 죽음으로 밀어 넣게 되어 버린다.

자신이 사랑했던 이를 제 손으로 죽음으로 밀어 넣어버린 하우신은 이 광란의 사건 이후 다시는 인간의 피를 탐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영원 불멸인 자신의 삶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뱀파이어이지만 뱀파이어 답지 않게, 그리고 뱀파이어로의 불가피한 이전을 통해서 반신불수가 된 자신의 딸을 위해서 준수는 만들어 가고 있었으며 언제나 형인 하우신의 뒤에서 2인자의 행보만을 걸어야 했던 이엘까지. 이들의 행보는 그들이 원래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만큼의 것들만을 가지고서 탐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런대로 그들의 삶은 별 문제 없이 살아왔었다. 하우신과 이엘 앞에 운하와 수인이 나타나기 전까지, 그리하여 그들의 눈에 비친 반려자라는 사랑이 계속해서 엇갈리기 이전까지는 말이다.

 

오랜 신화는 페르세포네가 지옥에 머물 동안 땅의 어미가 슬픔에 젖어 겨울이 찾아온다고 전했다. 이에 사람들은 지옥의 왕 하데스의 아내로 살아야 했던 페르세포네를 동정하곤 했다. 하지마 수안의 생각은 달랐다. 페르세포네의 겨울은 내밀한 사랑을 위한 안식의 기간일터였다. 수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세상은 지옥이라 여길지 모를 그의 삶에 '영원한 사랑'이라는 씨앗을 묻어둘 참이었다. -본문


헤라의 브랜드 매니저로 자리하고 있는 수안은 어릴 적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 버려진 채 발견 되었다. 그런 그녀에게는 키다리 아저씨와 같은 존재가 있었으며 일명 '산타'라고 불리는 이름 모를 그 사람의 20여 년간의 지속적인 도움 덕분에 수안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하우신의 전 반려자였던 운하를 하우신과 이엘이 함께 마음에 품었던 것처럼 수안을 두고 이들의 삼각관계는 또 다시 아슬아슬한 기운을 남기게 된다.

 

산타를 만나고 싶어하는 수안과 조용히 그녀의 곁을 지키려는 산타 이엘, 산타가 아니지만 산타로 오인 받으며 살기 위해 그녀를 찾았던 하우신은 다시 그녀에게서 반려자로서 바라보고 있었다.

시작하면 아프리라는 것을 알았다면 이 모두가 시작조차 안했을까. 이 길로 가면 내 마음을 헤집어 놓을 만큼, 다시 일어나기 힘들만큼의 생채기를 남길거라고 하면 과연 이들은 시작조차 안했을까.

 

신우는 제 눈앞에 펼쳐진 신기루에 대해 어떤 식의 이름을 붙여야 할지 잠시 골몰했다. 그러다 호방하게 뻗어 있는 꽃의 향연을 보며 천사라는 단어를 뱉어냈다. 정말이지 소복하게 내려앉은 꽃무라는 깃털처럼 포근하고 대담했다. 신우는 고목의 날개에 펼쳐낼 이름 모를 소녀에게 천사라는 이름을 선사했다. -본문

 

이 모든 것이 운명과도 같이 정해져 있는 수순이라는 것에서 왜 이들의 이야기는 결론이 없는 뫼비우스의 띄 마냥 무한 반복 될 수 밖에 없는, 살기 위해 자신의 사랑을 제 손으로 버려야만 하고 누군가는 그 사랑을 보며 가슴을 애는 듯한 고통을 안고 살아야 했다.

불멸을 원하는 우리에게 그들은 그 시간 동안 과연 행복했는가에 대해 자문하게 된다. 뱀주인자리가 이토록 슬픈 별자리였다니. 과연 지금 이 별은 환하게 빛나고 있을까.

아르's 추천목록

 

트와일라잇 / 스테파티 메이어저

 

독서 기간 : 2013.12.23~12.25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