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의 뿔이라니.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제목으로 차용한 이 책을 보면서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라며 골똘히 생각해봐도 도저히 떠오르지가 않는다.
우리가 알기 이전에는 낙타에게도 뿔이 있었던 것일까? 그럼 그 뿔은 과연 어떻게 생긴 것일까? 라는 수 많은 물음표를 대동하고 책의 표지를 펼치자 마자 낙타 뿔에 관한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
아주 오래전 신께서 낙타에게 뿔을 주셨다. 마음이 착해 상을 주신 것이다.
어느 날 꾀보 사슴이 낙타에게 와 말했다.
“뿔 좀 빌려다오. 잘 차리고 서역 잔치에 가련다.”
낙타는 곧이 믿고 뿔을 빌려주었다. 사슴을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낙타는 늘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다. 사슴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몽골 설화>에서 –본문.
낙타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지만 그 생김새 만으로도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다큐멘터리에서 몇 번 마주했던 낙타의 등은 계곡처럼 굽은 혹을 등에 짊어지고 있으면서도 태연하게 질겅질겅 풀을 씹는 표정을 볼 때면 순둥이 마냥 착해 보이는 것을 넘어 때로는 어리숙한 바보처럼 보이기도 했다. 긴 속눈썹 덕분인지 아니면 처진 눈망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외모 때문에 낙타는 한 없이 착하게만 보인다.
아마도 낙타의 인상에 기인하여 몽골 설화에서는 낙타의 뿔이 사라진 것이라고 이야기 했나 보다. 너무도 착한 낙타에게 아름다운 뿔은 누구나 가지고 싶은 것이었을 테고 굽어 있는 등의 혹은 관심 밖의 것이었을 테니 누구라고 착한 낙타에게 뿔을 빼앗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낙타는 뿔을 잃어버렸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저 사슴이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 믿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재혼에 성공하게 된 아버지과 아버지의 아내이자 나의 어머니이지만 시종일관 ‘여자’라고 불리는 조선족 그녀와 바다에서 행방불명 된 남자친구가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효은. 이렇게 3명은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있기는 하나 과연 그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가족의 형상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아귀가 맞지 않아 불편하게 보였다.
아버지가 전에 없이 신경이 쓰였다. 나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이라지 않은가. 그런 사람이 젖먹이 때부터 기르고 공부까지 시켜줬으면 무조건 엎드려 절해도 부족한 판국 아닌가. 물로 배가 찰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자는 아버지에게 내가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한 것을 실토했을까? –본문
특히나 자신이 친 자식이 아닌 업둥이라는 사실을, 그것도 아버지의 입이 아닌 아버지와 재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에게서 들어야만 했던 효은. 친자식이 아니라고 하지만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그녀에게 아버지는 가차없이 주먹을 휘둘렀고 그리하여 그녀는 아버지에게 복수 하기 위해서 집을 떠나게 된다. 복수라고 하기에는 다소 조용하고 번잡스러운 것은 없었다. 다만 그녀는 조용히 아버지에게 이별을 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하루의 노역으로 얻은 덤을 옆구리에 암팡지게 꿰차고 내 곁을 떠나갔다. 그물에 재수 없게 걸려든 죽은 물고기만이, 오로지 눈앞의 그것만이 명백한 현실이라는 듯이. –본문
말 그대로 딱딱한 바게트를 마실 것 하나 없이 마른 침으로 삼키듯 이들은 사막 속에 남겨진 낙타와 같은 느낌이었다. 사라져버린 규용을, 그 어미조차도 자식이 죽은 것이라 이야기 하고 있는 순간까지도 효은은 그저 그가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믿고 있다. 그녀 앞으로 당도한 엽서들은 규용이 살아있음을 확신하게 하는 그녀만의 신호였고 그리하여 이 신호를 따라서 그의 어머니 앞으로 당당히 배를 안고서 나타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이전처럼 냉랭하게 그녀를 대할 뿐이다.
그렇게 모래알처럼 서걱거리는 이들이 다시금 어느 새 함께 마주하고 있었다. 이미 주검이 되어버린 아버지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먹먹하게 있는 그 와중에 아버지의 형제들은 그가 남긴 얼마 안 되는 재산 때문에 목소리를 높여 서로 자신의 몫을 주장하고 있었지만 결국 그것은 여자와 효은의 몫이었다.
기운 없이 밤에 빠져든 지 얼마나 지났을가? 빈속으로 된장국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이웃 사람들의 늦은 식탁에 올려진 음식일까? 어느새 훌쩍 다른 날이 도래했는지도 몰랐다. 집안은 괴괴하고 어두웠다. 몇몇 시간은 지났는지 좀처럼 알수가 없다.
여자가 어서 돌아와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본문
이제는 둘이서 어떻게든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그 와중에 구씨와의 조합으로 인해 소소한 행복이 그들에게 자리하게 되는 듯 했다. 하지만 그 작은 행복도 잠시, 아버지의 빚을 받으러 온 친구부터 구씨의 감옥행, 또 다시 사라져버린 여자 때문에 효은은 다시 혼자가 된다.
낙타가 본디 사막에 있는 짐승이라 그런 걸까. 그의 발 아래 있는 모래처럼 이들은 좀처럼 서걱거리며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에 가나 환대 받지 못하는 그들은 이 땅 위에서 영원히 주인이 될 수 없었다. 조선족인 그녀와 입양아이자 미혼모인 효은. 그리고 딱히 내세울 것 없었던 아버지까지.
그들이 잃어버린 행복의 뿔을 찾아서 어딘가를 열심히 가기 보다는 그저 목도하며 기다리고 있는 이들은 처연한 낙타처럼 보인다. 언젠가 도래할 것이라 믿는 그들의 뿔은 과연 다시 그들에게 찾아올까. 아직도 사슴을 기다리는 낙타처럼, 그들의 눈이 서글프게만 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