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루소를 읽는다 - 자유와 평등, 다시 시대의 광장에 서다
김기의 지음 / 다른세상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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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르's Review

이전의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읽을 때만 해도 그의 이름을 종종 들어오고는 했지만 과연 그가 말하고자 하려던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제대로 모르기도 했거니와 한번쯤을 읽어봐야한다고 이야기하는 수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던터라 한 번은 읽어야겠다는, 무언가 모를 사명감에 책을 읽어내려 간듯 하다.

 

좀 더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사회계약론>을 읽었다기 보다는 그야말로 어렵게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며 그저 흰 바탕위의 글자를 겨우 읽어 내려가다 시피 한, 한 권의 책을 읽어 내것으로 만들었다기 보다는 그저 한 번 눈으로 훑고 잊어버렸다, 라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일 게다. 한 권의 책을 100% 이해했다고 한다면 <사회계약론>은 반도 이해하지 못하고 겨우겨우 넘긴 셈이었는데, 언젠가는 다시 읽어봐야지, 하고 있던 찰라네 <나는 루소를 읽는다>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전에 <사회계약론>을 읽으면서는 개인적으로 루소의 행태, 그러니까 그의 자식들을 모두 고아원에 맡겼다고 하는 그가 <에밀>이라는 교육에 관련된 책을 저술했다는 것에서 실망감이 일곤 했었다. 이 이야기를 책이 서문에서 마주하게 되면서 학자로서의 루소가 말하는 <사회계약론>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루소를 원망하며 있었기에 아무래도 책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든 게 아니었을까 싶었는데 이 <나는 루소를 읽는다>에서 마주한 루소는, 그야말로 천재적이면서도 어떻게 그는 이러한 사유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리하여 오랜 시간동안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라며 감탄을 금치 못하고 읽게 되었다.

 

 

실로 이 책을 먼저 마주하고 <사회계약론>을 읽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찌되었건 이 책을 읽고나서 루소의 다른 책들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즐겁고 재미있게 읽어내려간 듯 하다.

 

이 책 안에서는 <사회계약론>은 물론이고 <인간 불평등 기원론>, <고백론>, <어언기원론>, <폴란도 정부론> 등 그가 저술한 다양한 책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혼자 읽었을 때는 이게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하는 것들을 저자와 함께 읽으면서는 ', 이런 이야기들이었구나' 라는 것을 하나씩 배우게 된다.

 

 

 

루소는 현실을 즉시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인지하며 이것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끝없이 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었던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그는 대중에 대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그러니까 입법 활동마저도 쉬이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닌 국민들 역시 우매한 경우가 있기에 입법 활동에 대해서만큼은 타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게의 정치인들이라면 대중들을 향해서 그들의 부족함을 지적하기보다는 언제나 그들이 현명한 판단을 하고 지혜로운 이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일반적인것에 비해 루소는 우리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명확하게 판단하고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바라보고 있다.

 

 

 

 

평범한 이 나라의 국민인 나로서도 입법에 대한 기초적인 것들 밖에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어찌보면 대다수의 국민들이 알고 있는 평균 정도의 상식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당신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국민입니다' 라는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지 '당신은 입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직언은 회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민주주의라는 틀 안에서 제대로 살고 있다 생각하며 살고 있는 나에게 루소는 촌철살인과 같은 이야기들은 전해주고 있다.

 

 

 

어떻게 눈먼 대중이 때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자기에게 좋은 것인지조차 잘 모르면서, 입벙이라고 방대하고 어려운 일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방법에 진정 좋은 것인지 충분히 검증해야 한다. 따라서 법 제정자가 필요하다. -본문

 

 

 

특히나 정치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대중들은 그저 정치인들에 의해 이용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인은 왕이나 정치인 등이 아닌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법에 의해서만 복종을 하는 것이 오롯한 자유라고 하고는 있으나 실제 우리 사회에서는 우리가 선출한 그들에 의해서, 그들만이 만들어 놓은 법에 의해서 복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영국은 선거 때에만 자유가 있지, 선거가 끝나자마자 국민은 다시 노예가 된다." 라고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루소는 당시의 제네바나 고대 그리스, 고래 로마 공화국과 같이 국민이 직접 입법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입법권은 양도할 수 없으며, 주권은 분리하거나 대표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본문

 

 

 

특히나 루소의 저서들 중 <사회계약론> 이외의 다른 것들은 접하지도 못한 상태였는데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대한 내용들은 처음 접하는 것들이었는데 태초의 인간이 홀로 있었을 때의 모습은 다분히 성선설에 가까운 것들이었으나 무리로서, 가족을 이루고 공동체를 이루게 되면서 누군가와의 비교가 시작되고 그리하여 이기심이라는 형태가 발현 되는 이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를 통해서 인간의 제도들, 그러니까 왕정정치나 군주제 등의 발전 과정들을 설명하는 부분은 너무나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었다. 홉스와 루소의 견해차이에 대한 이야기들은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은 것들이기에 이 책은 바로 구매를 한 상태이다.

 

 

 

 

이전에는 그저 루소라는 한 인간에 대한 편견으로 그의 책들을 마주하며 그의 이야기들을 넘기는 것이 그를 마주한 태도였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는 계속해서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던 것일까? 라는 질문만 계속하며 읽게 된다.자신의 아이들을 국가의 손에 키워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어찌보면 비정했던 한 아버지였던 그를 잠시 묻어두고서 그가 이야기했던 수 많은 세상들을 마주하며 루소의 이야기들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에 하는 책이었다. 루소에 대한 이름만이 아닌 그에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볼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그의 다른 책들을 자연스레 펼치게 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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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계약론 / 장자크 루소저

독서 기간 : 2014.01.19~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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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운수 좋은날
이림니키 지음 / 김영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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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누군가가 이 책 어때? 라고 물어본다면 너무 좋았어!’라고 대답하고서는 너도 한 번 읽어봐라며 책을 바로 쥐어줄 것만 같다.

이 책의 느낌에 대해 설명하자면, 소개팅 자리에 쭈뼛쭈뼛 나가서 마주하게 된 한 남자를 보면서, ‘그냥 그래라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자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 동안 내가 찾아 헤맸던 이상형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느낌이랄까? 처음에 제목이나 표지를 보고서는 그냥 그래, 라고 생각했던 것이 책을 펼쳐 보인지 두 시간도 안되어 쉴 틈 없이 책장을 넘기고 있었으며 읽으면서 맞아, 맞아를 연발하며 그 어느 때보다 나를 촐싹거리게 만든, 그야말로 나를 들어다 놨다 한 책이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녀의 이름에 대한 호기심이 채 일기도 이전에 드러난 이름 속 비밀을 보면서 무언가 범상치 않은 느낌이었지만 그것이 낯설기 보다는 왠지 모르게 호감으로 다가왔다. 아마 이때부터 이 책에 대한 애정이,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그저 마음을 일게 만든다.

 아름다운 사진이 가득한 책을 마주하면서도 심드렁하게 바라보게 되는 철면피가 되어 버린 나로 하여금 그녀의 그림들은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계속 보고 싶은 그런 마력을 가진 듯 하다.

그럴듯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언어적 지식이나 개념적 지식과는 상반되는 이 비논리적인 역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아마도 이 말은 그림이란, 진실을 이야기하는 거짓말이라는 피카소의 진술과 통할 것이다.-본문

우리가 알고 있는 정육면체는 정사각형 6개로 만드는 도형이다. 누구나 이 사실에 대해서는 다른 이견을 낼 수 없을 것이다. 수학시간에 배운 정육면체가 이러한 형태의 것이었다면 미술시간에 배우는 정육면체는 그녀가 말하는 대로 정사각형 6개의 모양이 아닌 찌그러지기도 하고 늘어지기도 한 다른 형태의 정사각형을 배우게 된다.

모두가 평범하지만 이상적인,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오늘도 그렇게 웃음은 안고서는 어느 면에서 보아도 정사각형인 정육면체를 보여주기 위해, 우리는 아등바등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무엇이 진리인지에 대해 딱 부러지게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도 과연 그 누가 그 진리를 따라 살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 정육면체를 그리기 위해 사각형을 찌그려야 완벽한 정육면체를 그릴 수 있듯이 우리의 삶이 완벽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행복이라는 것 이외의 다른 것들이 추가된, 무언가 조금은 일그러진 것이 또 완벽한 우리를 표현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모두 조금씩 모자란 듯 그렇게 태어난 듯 하다.

 

 

 낚시대를 띄우기만 하면 월척을 낚아내는 강태공들은 그 짜릿한 손맛을 잊지 못해 다시금 낚시를 하다고들 한다.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전해지는 그 순간은 나 역시도 몇 번 경험해 보긴 했는데 가끔은 그렇게 잡은 물고기들을 다시 놓아주는 이들을 보면서 진정 낚시를 즐기시는 분이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다시 물로 돌아갈 수 있는 물고기들에게도 참 좋은 일이겠다, 라고만 생각했다. 이렇게 그녀의 그림 속 몸부림치는 물고기를 마주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무엇이든지 오로지 나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이기적인 행태와 그러한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만 믿고 있던 나의 모습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아직도 나는 편협한 세상으로 마주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방생이라는 행위는 다분히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의 것이니 생과 사를 잇는 잠깐의 고통만 견디면 다시 숨을 쉴 수 있다고 한 들 그것이 과연 물고기에게는 행복일 수 있을가. <낚이고 싶지 않아>에서는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과연 나는 모두에게 행복이라는 이름 하에 얼마나 많은 아픔을 주고 있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그저 예쁜 그림들만이 가득했다면 그 잔상은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금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은 아름다운 그녀의 그림 위에 올려진 단상이 주는 잔상의 울림이니 말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때론 취미가 없어져버린 그녀의 전향을 따라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물음에 한참 고민해 보기도 하고. 잠깐의 유려함이 아닌 그 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이 책을 덮은 지금도 너무나 좋다. 그래, 난 이 책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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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난다 / 이형동저

 

 

 

독서 기간 : 2014.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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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붓다의 십자가 - 전2권
김종록 지음 / 김영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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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그저 제목만 마주했을 때 붓다의 십자가라는 말에 어폐가 느껴져 왠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졌다. 부처님의 십자가라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십자가는 그리스도교를 상징하기에 이 두 조합은 뭔가 석연치 않게만 느껴지곤 헸다.

특히나 서문에 등장하고 있는,

나는 경계한다.
모든 신성은 찬양되는 그 순간이 곧 신성모독일 수 있음을! –본문

이 부분을 보면서 신성모독이 될 수 있다는 이 찬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를 불편함이 먼저 밀려들게 되었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 하자면, 이 생경하면서 이전에는 마주할 수 없었던 제목의 진리는 초반에 가지고 있던 기우를 말끔히 씻어 줬으며 도리어 왜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서 이 책을 바라봤을까, 하는 자책마저도 들게 한다. 이 안에서의 문제는 십자가를 가지고 있는 이가 부처님이거나 하느님이거나 하는 문제가 아닌, 우리의 역사는 무엇을 위해서 이 고되고 험난한 시간들을 역사로 안고 지나왔었던 가에 대해 제대로 마주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책을 다 읽고 나서 마주하게 되는 연보를 보면서 이 모든 것들이 실존했던 일들을 기반으로 살아난 소설이라는 점에서 온 몸에 전율을 흐르게 하는 듯 했다. 그저 하나의 이야기겠거니, 하고 흘러 보내는 것이 소설을 대하는 보편적인 나의 자세였다면 이 책은 이전에 읽었던 책들과 동일하게 대할 수가 없었다. 과연 그 동안 내가 믿어왔던 역사는 무엇이었으며 내가 알고 있던 종교는 어떠한 형태이며 우리의 유대한 자산이라고 믿고 있던 팔만대장경은 그 장고한 시간 동안 어떠한 비밀을 담고 있는 것 일까.

무신들은 몽골군과 싸우지 않았다. 천도한 강도에 겹겹이 성을 쌓고 마냥 버티기로 나갔을 뿐이었다. 그야말로 농성이었다. 몽골군이 짓밟고 지나간 본토에서는 무자비한 살인과 강간, 약탈, 방화가 벌어졌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도랑물처럼 흘렀지만 최이와 무신들은 강화도에서 한발도 나오지 않았다. 생민들의 삶은 그렇게 피폐해져가고 있었다. –본문

거란족의 침입을 불심으로 모아 막아보자는 바람으로 제작되었던 초조대장경이 몽골군에 의해 소실되고 고려는 개경을 두고서 강화도로 수도를 천도하게 된다. 최씨 집안의 집정으로 고려는 더 이상 민심을 함께 담아 움직이는 고려가 아닌 그들만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고려로 변모하고 말았다. 외세인 몽골의 침략에서부터 내세로는 최씨 가문의 집정으로 고려는 더 이상 이전의 고려가 아니기에, 태자를 중심으로 지밀 등의 이들은 고려란 나라에 불교라는 종교적 요소와 정치적인 부분, 민심을 함께 조합하여 다시금 옛 고려를 찾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잊어버린 고려를 찾으려 하면 할수록, 강화도로의 천도는 오롯이 그들만을 위한 것들이라는 것과 팔만대장경의 제작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으며 초조대장경의 손실은 과연 그 누가한 황망한 것인지에 대한 실체는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보다는 역사를 뛰어 넘는 인간의 욕망만이 들끓고 있다는 것에 한탄만이 끊이질 않게 된다.

이참에 대장경을 다시 조성하는 겁니다. 새긴 지 이백 년이나 지나서 너무 낡았고 보완해야 할 내용도 많이 늘었지요. 황실과 문무대신, 불교계가 나서서 대장경을 재조한다면 불심 깊은 백성들을 능히 하나로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연히 몽골군이 물러 가길 바라고 하는 국책 판각사업임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야겠지요. 그럼 스님들이 전쟁터에 나가지 않아도 될 명분이 생깁니다. 판각작업을 주도해야 하니까요. –본문

다시 한 번 이야기를 한다면, 이 책은 어떠한 종교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서문에 밝혀놓았듯이 모든 신성이 찬양되는 순간이 곧 신성모독이 될 수 있다라는 것은 종교의 탈을 쓰고서, 때론 종교를 등에 엎고서 사리사욕만을 차리기 위한 인간의 욕망이 개입되는 순간 그 종교는 신성시 하는 마음 따위는 사라진, 그야말로 신성모독이 되는 것이다.

그 어떠한 종교에서도 타인에게 해를 끼치면서 자신의 이익을 취득하라는 것이 옳다고 가르치는 것은 없다. 이름이 어떠하고 그들이 믿고 있는 신이 누구이든, 그들의 형태가 어떠하든 어찌되었건 중요한 것은 서로 함께 돕고 살며 사랑하라는 것일 게다. 하지만 이 종교라는 이름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의 탐욕이 더해지는 순간 종교는 종교가 아닌 인간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전달해 버리는 것이다.

이 소설 속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에서는 민심 따위는 배제하고서 그저 불심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겠다는 이유로 침략 당해 더 이상 빼앗길 것마저 없는 소작농들에게 경판 제작을 위해 경작한 것의 5할을 내놓으라 하고 있다. 백성들을 버리고 강화도로 천도하며 근심 없이 살고 있는 이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그들은 그들이 버린 백성에게서 나머지 남아있는 삶마저도 유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천명한다. 어떤 종교라고 타락한 세상을 향해 입바른소리. 쓴소리를 할 수 없을 만큼 썩었다면 그 종교는 설 자리가 없다. 그건 더 이상 종교가 아니라 신을 팔아먹고 번지는 사특한 무리들이다. 그런 종교는 차라리 없어져버러야 세상이 더 평화다. 인간은 종교 없이도 충분히 평화로울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본문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마치 이 소설이 경교와 불교와의 전쟁처럼 보이지만 과연 그것이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일까? 아니, 이 이야기는 단순히 종교의 문제가 아니다. 종교의 탈을 쓰고서는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모습이니 말이다. 당시의 수 많은 이들의 피땀이 모여 팔만대장경이 제작되어 오늘날 우리나라의 빛나는 유산으로 남아있는 지금, 과연 그 팔만대장경이 담고 있던 진실은 과연 그 때의 그들에게는 당당한 현재였을까.

 

지구 상의 어떠한 생물체보다 고등한 지능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인간의 탐욕은 수 많은 시간 속의 새로운 가면을 찾아 온 여정이 아니었을까. 그 무구한 시간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그저 바라보고는 있으나 팔만대장경의 글자 하나가 새겨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은 울부짖고 있고 그 뒤에서 소수의 이들은 웃고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스치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붓다와 십자가라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편견과 그 가면을 벗어 던지고 실재하는 현실을 바라보면 그 안에는 슬픈 현실이 담겨 있다. 과연 누가 누구의 적이고 누가 누구를 구원할 수 있다 말할 수 있을까.

 

 

 

독서 기간 : 2014.02.1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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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 김민정 산문
김민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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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근래 읽었던 어떤 책들보다도 참 편안하게 읽은 책이다. 무언가 다른 의미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면서 머리 굴리지 않아도 쉽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이기에 그야말로 책과의 휴식을 한 기분인데 이렇게 쉽고 편하기 읽어 내려갈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저자의 담백하면서도 담대하게, 꾸밈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녀만의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예의이면서도 때로는 구태여 끄집어 내어 말하기 부끄러운 것들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 드리우고 있는 편견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이야기들을 꺼내어 놓는다. 그 당당함은 오히려 책을 마주하고 있는 나로 하여금 왜 이러한 생각들이 그 동안은 부끄러운 음지의 것들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일까, 라는 반문을 갖게 할 정도이니 아마도 그녀를 실제로 마주하게 된다면 그 화통함에 나는 되려 멋쩍일 것만 같다.

 잠깐만 실례 좀 해도 될까요, 하면 될 것을 잠깐 오줌 좀 싸고 올게요, 라고 말해버리는 게 납니다. 교양 같은 명품은 아무리 가봉해도 내 옷은 못 될 터이니 일단은 예쁜 내의라 말할 수 있게끔 잘 만나고 볼일입니다. 보일락 말락 들릴락 말락 그래서 들킬락 말락 그런 말락 내외처럼 절로 벌어지는 거리 안에서 서로에게 자유로워지고 볼 일 입니다. –본문

 그게 4개 파트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는 각 챕터마다 딱히 그 챕터에 맞춰서 나누어졌다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마지막 파트인 <시적인 순간들>이 좋았다. 그녀가 책에서 발췌한 내용들을 먼저 담아 놓고 다음 페이지에 그와 관련된 일화들을 담아 놓은 것이었는데 읽다 보면 그녀가 읽었던 책들에 대한 궁금증도 생기면서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화와 문학작품과의 결합이 생경하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일확천금의 로또 당첨과 같은 한번쯤은 꿈꿔 볼만한 파란한 인생을 우리 모두가 누릴 수는 없을 게다. 때론 인생에 그런 반전과 같은 나날이 있기를 꿈꾸기도 하지만 우리네 하루하루 속에는 그저 어제와 같은 오늘이, 오늘과 같은 내일이 이어지고만 있다. 때로는 지루하기도 하지만 그 평범한 일상이 있기에 우리는 무던한 시간들을 견디며 지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평범한 나날 속에 평범한 이야기를 툭툭 던지듯 하고 있는 그녀의 문장들이 편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있어왔던 나날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평범하지만 담대한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어제의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오랜만에 일기를 다시 쓰고 싶게 하는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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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oved / 김수린저

 

 

 

독서 기간 : 2014.02.16~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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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클럽 잔혹사
이시백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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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말죽거리 잔혹사도 아니고 사자클럽 잔혹사라니. 제목을 보면서 대체 이게 무엇에 관한 이야기란 말인가, 라는 궁금증으로 책에 대해 찾아보니 7080시대의 이야기란다. 21세기를 살고 요즘에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드라마들이 유행하고 있는 세태를 반영이라도 하듯 이 책은 박정희대통령 시대에서부터 그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는 지금까지,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의 살아있는 이야기였다.

  미어지다 못해 터질 듯한 버스에 오르기도 전에 날아가는 모자를 줍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온 사이 터벅터벅 모자를 줍고 나면 이미 버스는 출발해버린다. 그렇게 오늘도 늦게 도착한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의 몽둥이가 그를 기다리고 있고 마음이 가는 이에게는 제 이름으로는 차마 전할 수 없는 편지를 친구의 이름으로 보내며 그 친구와 그녀가 결국은 이어지는 것을 목도해야 하는 주인공은 그 누가 보아도 어른이 된 지금 역시도 사회에 자신을 내 놓고 있다기 보다는 여기저기에 섞여서 드러나지 않는 존재였다.

 친구들은 운동권이라며 세상의 부조리함을 외치고 있는 즈음 그는 끄나풀이 되어 그런 주변이들의 행태를 보고 하고 있다. 그렇게 의현을 보내고 전미연마저도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재회한 그지만, 영탁은 여전히 별다른 삶의 변화 없이 그저 그렇게 술에 물 탄 듯, 흐르고 있다.

 물론 학교에서 총검술만 배우는 게 아니었다. 체육대회의 종목도 바뀌었다. 1백 미터 달리기는 전시에 신속히 참호를 쌓는 연습을 위해 사냥 나르기로 바뀌었고, 공 던지기는 수류탄 던지기로 대체되었다. 관식의 말로는 전쟁이 나면 수류탄으로 야구를 한다고 했다. 스트라이크! 관식은 전쟁이 나기만 학수고대했다. –본문

 아마도 그들의 삶은 장독대에 무장공비가 빠졌던 그날부터 일그러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는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겨져 있는 그 아스라한 일들을 실제 겪어야만 했던 이들에게, 그 아련했던 사건들을 목도한 이들은 치유 받아야 하는 피해자들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를 일으켜 세워야만 했던 역군들이었기에 그들이 내재하고 있는 아픔 따위는 그 누구의 책임도 없이 오롯이 그들 스스로 이겨내야만 했다. 모두가 그런 시절이었다는 명분으로 말이다.

광주에 숨어든 불순분자들의 폭동을 진압한 군인들은 충무무공훈장이나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심지어 광주에서 죽은 사람들의 지문을 채취한 경찰관도 피 묻은 손가락을 닦고 잉크 칠하느라고 고생했다고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본문

 그런 그들이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는 지금, 과연 그들은 안녕한 것일까? 그 누구의 위로도 받지 못하고 그저 이겨내고 넘겨야만 했던 시간을 살았던 그들은 과연 지금 괜찮은 것일까.? 부조리를 위해 싸웠던 이들이 다시 부조리의 중심에 서려 하고 있음을, 누군가에게는 호기심이었던 일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지워지 않을 상처와 복수를 꿈꾸게 하는 시간들이 뒤 엉켜 있는 지금.

 사자는 절대로 뒤에서 사냥감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그 절개 있던 이들은 과연 사자와 같이 용맹스러운 시간은 보낸 것일까. 왜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서글픔을 느끼게 되는 것인지. 이 탐탁지 않은 걸림이 잔향이라기 보다는 막힘의 느낌으로 더욱 강하게 남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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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 정택진저

 

 

 

독서 기간 : 2014.02.13~02.15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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