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퀴어 주겠어! 세트 - 전3권 블랙 라벨 클럽 8
박희영 지음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아르's Review

 

 

 

 

 

 

 


고등학생때였던가, 혼자 짝사랑하던 친구의 집에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강아지처럼 그를 매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망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물론 그 허무맹랑한 바람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몽상이었고 그렇게 그 짝사랑은 나의 헛된 바람과 함께 조용히 사그러들었다.

 

그러한 생각을 품었었다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십 여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 이 소설을 마주하면서 이전의 생각들이 떠오르며 피식 웃음이 났다. 물론 그때의 나는 나의 오롯한 바람이다면 이 소설 속 주인공인 청아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사건이었지만 말이다.

 

오빠 친구인 진혁오빠를 보면서 청아는 자신의 20대의 목표를 정하게 된다.그 오빠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여 그와 함께 데이트를 하며 캠퍼스를 누비고 다니는 것. 그 파란하고 달달한 미래만을 꿈꾸며 열심히 달려가던 그녀는 자신의 꿈이 이뤄진 순간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불의의 사고로 완전히 다른 공간과 시간으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바로 그녀가 사람이 아닌 고양이로 변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래, 너무 놀라지 말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놀라지 않는거야. 윤청아, 넌 약하지 않아. 그래. 괜찮아.(중략
)
귓가를 울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맑은 강에 비친 황망한 얼굴의 벌꿀색 고양이를 응시했다
.
턱은 브리 라인, 분홍색 뽕주댕이가 사랑스러운 고양이....... -본문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사람에서 고양이로 변모했기에 그녀는 다시금 사고를 위장하여 인간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오히려 쥐잡이용 고양이로 어느 저택으로 들어가게 되며 그로 인해 고양이로서의 제 2의 인생이 시작되게 된다.

 

"?내방도 있어?"
"
그래, 너도 인간의 모습으로 있고 싶을 때가 있을 것 아닌가. 그럴 때엔 바로 옆방에서 생활하면 된다
."
어라, 잠깐만. 그러면 인간 모습일때는 이 방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거야? ? 인간인 나랑 같이 있기 싫어서? 머리속에 떠오른 질문을 뱉을까 말까, 입을 몇 번인가 달싹 거리다 허무하게 다멀어 버렸다. 그 사이 류안은 나를 침대 위에 올려놓고 몸을 돌렸다. -본문

 

청아는 '신수'라는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인간으로도, 고양이로도 변할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은 시공간을 오갈 수 있다는 사실을 신의 자손인 셀레스틴을 통해서 목걸이를 얻게 되면서 알게 되는데 그저 고양이라고만 믿고 있었던 류안 역시 그녀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쥐 잡이용 고양이로 데려온 청아가 쥐를 몰아 류안의 방으로 들이는 모습을 보며 무언가 특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류안의 끈질긴 관찰 덕분에 밝혀진 사실로 이로 인해서 서로 밀기만 했던 이들의 관계는 서서히 간극을 좁혀 달콤한 로맨스로 들어서게 된다.

 

그들이 함께 하는 순간 청아의 꼬여버린 인생만큼이나 류안과 청아와의 관계 사이에도 다양한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 청령의 힘을 빌어 첫사랑과 똑같은 이에게 다가가려 하는 순간마다 류안은 그녀의 곁에 맴돌고 있었고 고양이가 된 순간에는 류안의 머리카락을 보며 흔들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며 그의 곁을 맴돌고만 있다. 청아가 신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류안은 신수에 대한 내용들을 조사하며 그녀를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어찌된 일인지 황제에게까지 납치를 당하는 등 그들의 앞날은 파란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이 사람과 함께 있고 싶었을 뿐인데, 그뿐이라기엔 너무도 많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더, 그보다 더 사랑해주리라
.
창문으로 햇살이 찌르고 들어왔다. 폭풍우가 몰아친 끝에 별이 든 것처럼, 모든게 맑았다. -본문

 

처음에는S극과 S극간의 만남이라 서로를 밀어내기 급급했었지만 어느새 N극과 S극처럼 서로가 함께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던 이들은, 신수인 청아는 그녀에게 주어진 영생의 삶을 포기하고 류안 곁을 지키는 것을,그리고 류안은 신수인 그녀를 살아있는 동안 지키는 것으로 이들의 이야기는 마무리가 된다.

 

풋풋하면서도 뭔가 색다른 느낌이기도 하거니와 잠시나마 꿈꾸기도 했던 이야기들이라 금새 읽어내려간 듯 하다. 따스한 봄날에 달콤한 판타지 로맨스를 읽으며, 나른한 오후를 보내보면 어떨까.고양이이자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이들은 없을테니 이 안에서 마음껏 즐겨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아르's 추천목록

 

고양이 여행 리포트 / 아리카와 히로저

 

독서 기간 : 2014.03.01~07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줄짜리 러브레터 -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
김재식 외 지음 / 작은씨앗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너무나 흔하기에 진부한 듯 하면서도 또 들으면 그 어느때보다도 심장을 울리게 하는 말이 바로 '사랑해'가 아닐까 싶다. 그 앞에 어떠한 미사려구를 넣든 간에 나의 마음을 다른 이에게 전하는 그 마지막은 사랑한다는 말로 장식이 되곤 하는데, 세상의 수 많은 사랑만큼이나 사랑에 대한 수 많은 마음이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3줄의 문장으로 말이다.

 

각종 SNS나 카카오톡 등과 같은 실시간 메신저를 통해서 그 순간의 자신의 생각들을 전하는 것이 익숙해져 버린 지금의 우리에게 이 3줄이라는 문장은 어쩌면 우리의 마음을 담기에는 충분한 것들인지 모른다

 

 

.


 

 

 

이전에는 평범한 나날들의 연속이었던 나에게 사랑이 드리워진 하루하루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달콤하게 느껴지고 나로 하여금 힘을 주게 하는, 그 어떠한 약 보다도 뛰어난 두근거림이 아닐 수 없다.

 

 

 

 

 

마법에 홀린 듯 무엇을 하더라도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 떠오르고 어디에 있던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며 나와의 공톰점을 찾아내는, 온 몸의 세포들이 나와 그와의 교집합을 찾기 위해서만 움직이는 그 때, 하나 둘씩 우리의 이야기를 발견해 나가면서 밀려드는 그 작은 행복들. 그 작은 설렘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을 키워가는 듯 하다.

 

 

 

 

 

모든 사랑이 다 빛을 바라면 좋겠지만은 빛을 바라지 못하는 사랑도 있고, 이미 잃어버린 사랑도 있고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랑도 있다. 제 각기의 사연을 안고 있지만 어찌되었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사랑이라면 영원한 것이 아닐까.

 

짧은 단상들이기에 쉬이 페이지를 넘기면서도 순간순간 나의 사랑은 어떠한 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아르's 추천목록

 

 

그림으로 쓰는 러브레터 / 황록주저

 

 

 

 

독서 기간 : 2014.03.02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 게 뭐야 1 알 게 뭐야 1
김재한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르's Review

 

  

  

 정말 오랜만에 마주하는 만화책이었다. 중고등학생 시절에 슬쩍슬쩍 봤었지만 대여점 마저 거의 사라진 요즘에는 찜질방을 가지 않는 이상은 만화책 구경하는 것도 쉽지 않은 터였기에 이전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나면서 이 책을 마주하는 순간 왠지 시간을 거슬러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현실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이 만화책이라는 지면 위에서 숨쉬고 있다. 그 아찔하고 매혹적인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만화책의 재미가 아닐까 싶은데, 이 책의 주인공은 바로 김원준이라는 한 소년이다.

  

친구의 권유로, 그저 친구를 따라가는 것을 의의로 뒀던 오디션 장에서 치열했던 경쟁을 뚫고 그는 당당히 오디션에 합격하게 된다. 사실 오디션 합격이라는 것보다 원준에게는 그 공간 안에서 꿈에도 그리던 은하율을 마주했다는 것이 더 중요한 사실일 게다. 자신과는 전혀 상관 없는 다른 공간에 존재할 것만 같았던, 환상 속에만 존재할 것만 같은 은하율을 마주하며 보여지는 에피소드들은 한 소년이 한 소녀를 향한 마음을 코믹하게 그려냈다.

 

모델로서 첫 화보 사진 촬영이 있는 날, 원준은 당연히 여자모델은 은하율이 발탁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그곳에 은하율은 없었다. 하지만 이 곳에서 원준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곁을 지켜주었던 육미숙을 마주하게 되는데, 육미숙의 등장으로 인해 이들의 구도는 3각 혹은 4각 구도로 전개될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원준은 은하율에게 마음이 향하고 있지만 은하율의 옆에는 다른 남자가 자리하고 있고 현재 그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은 육미숙이다. 어찌되었건 떨리는 첫 촬영을 넘김 그는 이를 시작으로 승승장구하며 일약 스타가 되는 것 같다. 초반의 르와르적인 장면들을 보면 말이다.

 페이지만 넘기면 완벽한 외모와 완벽한 바디 라인을 가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그들을 보면서 여전히 그래도 깔깔거리며 웃을 수 있다는 것에서, 오랜만에 학창시절의 나로 되돌아 간 듯하여 즐겁게 페이지를 넘겼다. 이런 만화책은 완결까지 쌓아놓고 한번에 읽어 내려가야 제 맛이건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다소 아쉽긴 하지만, 꿈이 없던 그들에게 주어진 청춘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그려나가게 될지, 그들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아르's 추천목록

 

오디션 / 천계영저

 

    

 

독서 기간 : 2014.03.03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견딜 수 없어지기 1초쯤 전에
무라야마 유카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아르's Review

 

 

 

 

 알싸하다 못해 얼얼한 정도로 매운 고추를 먹고 나서 혀가 마비가 된 후 이것저것 다양한 음식들을 입에 넣어보지만 아무런 맛도 느끼지 못하는 그 멍한 상태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의 모습이었다.

 10대들의 파릇파릇하면서도 뭔가 그들만의 풋풋한 느낌의 소설을 기대하면서 읽어내려 간 나에게 이 소설은 그 어느 파도보다도 거대했으며 그 안에서 휘청거리다가 제대로 숨도 못 쉬고 헐떡이는 와중에 겨우 뭍으로 올라온, 그야말로 녹초가 되 버린 것이다.

거울 속에서 눈에 익숙한, 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눈에 익숙해지지 않는 여자가 무례하게 나를 흘끔흘끔 마주본다. 그 여자의 얼굴을 보면 나는 마지 어금니로 은박지를 꽉 깨문 듯한 기분이 든다. –본문

 모두의 눈에 모범생으로 보이는 에리는 사실 자신만이 아는 자신을 꼭꼭 감추며 살아가고 있다. 바른 생활 콤플렉스에 걸린 아이처럼, 모든 것을 통제하고 조용히 자신이 할 것만 하는 그런 평범한 소녀로 보이지만 그녀는 지금 자신의 곁에 있는 미야교를 보면서 동성인 그녀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성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그녀는 금지된 선을 넘어 원조교제를 감행하게 된다.

 입 험한 친구 녀석들은 나를 두고 파도 중독자, 세상 즐기는 법을 모르는 가엾은 연습 벌레라고 놀리지만, 나는 서핑에 중독된 내 모습에 불만을 품은 일이 없다. 서핑은 내게는 한없이 자연스럽고 게다가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사람들이 모두 밥을 먹고 숨을 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혹은 어떤 부류의 인간들이 살기 위해 반드시 술이나 폭력, 마약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본문

 자신이 꿈꾸던 이상향과는 다른 현실을 목도하며 자신의 선택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며 터덜터덜 길을 걷는 도중 같은 학교의 미쓰히데를 마주하게 된다. 학교의 성적보다도 서핑에만 몰두하고 있는 그는 학교 내에서도 오는 여자는 거부하지 않는 남자로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다.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모범생 에리와 그녀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미쓰히데는, 살면서 그 누구에게도 고백할 수 없을 비밀을 함께 목도하게 되면서 그들만의 계약 관계에 접어들게 된다.

그렇게 그들이 아슬아슬한 그들만의 계약 관계를 성립해 나가는 와중에 책의 제목인 견딜수 없어지기 1초쯤 전에대한 비밀이 드러나게 된다. 이게 이런 의미였다니, 너무 달콤한 로맨스 소설을 기대하고 있던 나로서는 거의 털썩, 하면서 이 책을 어디서 펼쳐 놓고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까지 함께 해야 할 정도였다.

 어찌되었건 초, 중반까지의 고민도 중반에 들어가면서 에리의 큰 오빠의 사건이 발생되고 그와 동시에 미쓰히데의 아버지는 죽음을 향해 점점 향해 가고 있었다. 살인과 존엄사에 대한 경계에 있는 그 둘은 어디서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들을, 그러니까 이전에는 오롯이 몸의 대화를 나누었다면 후반부에 가서야 조금씩 그들의 속내를 털어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사체 유기죄가 추가 된다 한 들 형량은 2달 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며 덤덤히 말하는 변호사를 보며 에리는 세상의 현실을 알아가게 되고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존엄사를 처리하려는 미쓰히데는 고모로부터 피도 눈물도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크으윽, 이건 진짜 시다.” 이 사이로 습습 숨을 들이쉬며 신음한다. “너무 시어서 위에 구멍이나겠어.”
마지막 한 조각을 꿀꺽 삼키더니 미쓰히데는 심호흡하듯 가슴을 펴고 갑판 저 멀리 수평선을 내다봤다
.
그럼 이번에는….”본문

 어린이와 어른으로 가는 과도기의 단계에 있는 그들에게 시큼한 여름 귤과 같은 느낌이 든다. 제대로 익지 않은 그들의 행보는 서툴러 하는 것마다 어긋나기도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이해하는 바이지만, 이 소설 속 그들이 가야만 했던 길을 보면서 30대인 지금의 내가 봐도 받아들이기 버거운 길을 갔어야만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 중반에는 그들의 여과 없는 이야기에 기함을 했다면 후반에 발생하는 묵직한 사건들로 앞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덮어지긴 하지만 도통 무엇을 읽어왔고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해서 정리가 안되고 있다. 여름 귤과 같이 시큼한 그들의 인생이 나까지 시큼하게 만들어 버린 것 같다

   

아르's 추천목록

 

『밤을 달리는 스파이들』 / 사카키 쓰카사저

   

 

독서 기간 : 2014.03.04~03.05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아르's Review

 

 

 

 표지와 제목을 보아서는 이 책 안의 내용이 가늠되지 않았다. 남자의 자리라, 어떠한 남자를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힌트도 없이 여자의 얼굴 뒤에 자리 잡은 책의 표지에는 나무 의자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주인공이 앉아 있었을 그 의자 뒤로 한 남자의 인생이 펼쳐지게 된다.

 나는 아니 에르노라는 작가를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보았다. 내가 태어난 해 르노도상을 수상했다는 그녀는 소설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회고적인 기록을 모아 이 책을 만들었다. 아마도 그 의자는 그녀의 아버지의 자리였을 것이다. 아버지라는 단어보다라는 단어로 담담하게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고백해 나가는 그녀의 이야기에서 나는 그녀의 아버지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해 봐야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와 그의 삶에 대해. 그리고 소녀 시절에 그와 나 사이에 찾아온 그 거리에 대해 말하고, 쓰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계층 간의 거리, 하지만 무어라 이름 붙이기 힘든 특별한 거리였다. 헤어진 사랑의 그것처럼 말이다. –본문

끝났어이 한 마디로 시작된 소설은 이 말로서 다시 끝을 맺는다. 한 인간의 생이 시작하여 끝날 때까지. 한 남자의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한 생을 살다간 그의 이야기가 딸인 그녀의 기억에 의해 재조명된다. 억지로 슬프게 혹은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전달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그녀의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을 담백하게 이어나가면서 그녀는 이 소설이 너무나도 빨리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속도감을 온 몸으로 느끼며 그를 보내야 하는 사실을 두려워했다. 무뚝뚝한 아버지를 닮아 글에서 마저 여실히 그의 딸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그녀의 문체는 그래서 더욱 슬프게 느껴졌다.

아버지와 나는 30년이란 간극이 존재한다. 그의 인생은 이미 30년 전부터 시작하고 있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의 인생은 내가 다섯 살이 넘어가는 시점 이후부터이다. 그러므로 내가 가지고 있는 그의 잃어버린 35년은 오롯이 그가 나에게 알려준 내용대로 구성한 나의 머리 속에서 재구성한 것들이다. 35년의 시간을 단 10여분 정도의 시간으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설명해 주었고 나는 그것으로 그의 젊은 시절을 이해해보려 했지만 사실 현재와 너무나도 다른 그의 세상은 흑백사진에나 등장할 만한 사건처럼 느껴졌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그는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고 했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를 만나 작은 제과점으로 시작하여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치며 지금까지 왔다. 내가 태어난 이후에 나의 세계에서는 밥을 굶거나 전쟁을 경험하거나 하는 일들은 없었기에 어느 정도 누릴 것을 누리는, 부족함 없는 삶을 살수 있었으나 그것은 모두 나의 부모의 주름과 굳은 살과 맞바꾼 것이었다.

그녀의 부모 역시 그러했다. 그들이 아름다움, 한 줄의 글로 가슴 설레여 하는 것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니었으나 무엇보다도 먹고 사는 것이 중요했다. 자신들의 가게를 열고 나서도 원금조차 회수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긍긍하며 손님들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때마다 초조해했으며 자신들이 지금까지 지켜온 자리가 물거품으로 사그라질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했다.

방들은 어두컴컴해 대낮에도 전깃불이 필요했으며,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넓이의 안뜰에 있는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들은 그대로 강으로 방출되었다. 그들이 외관에 무심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도 먹고사는 게 중요했던 것이다. –본문

자신의 열등함을 드러내지 않고 딸에게 혹시라도 피해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의 무지함은 숨기며 딸은 그러한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가진 지식이 그녀에게 담기기를 소망했다. 어느 날인가 자신을 뛰어 넘어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의 딸을 보면서 그는 조용히 그녀의 삶이 자신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 자명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글짓기에서 칭찬을 받아 올 때마다, 그리고 나중에는 시험에 합격하고 상을 받아 올 때마다, 딸이 자신보다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던 것이다. –본문

공부는 좋은 신분을 얻고, 직공과 결혼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고통이었다. –본문

나의 아버지 역시 딸들에게 자신이 못다한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주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당신이 가지 못한 길을 자신의 분신이 가고 있다는 행복에 수 백 만원의 등록금 고지서가 날아오는 그 날을 내심 자랑스러워하셨다. 언젠가 장학금 덕에 고지서의 금액이 2만원 남짓으로 날아든 봉투를 들고 은행으로 향하던 날 보단 원래의 등록금을 내러 가는 그의 뒷모습이 내겐 더 없이 가벼운 발걸음과 당당함으로 각인되어 남아 있다. 대학을 다닌 다는 것에 대해, 그만큼을 가치를 지불하고서 얻는 것이 어쩌면 타당하다고 느꼈을 지도 모르겠다. 단 한 문장의 영어 문장을 내뱉은 딸을 보면서 흐뭇해하고 그 순간의 찰나를 위해 매일 새벽처럼 일을 하신 아버지는 내게 당신의 행복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전달해 준 적은 없었지만 함께 해온 시간 속에서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성장해 갈수록 점점 늙어가고 있었으며 그녀는 이제 그를 뛰어넘게 되었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게 된 부녀는 서로를 이해하면서도 거리는 실제 그들의 거리는 멀어져만 갔다. 그녀가 새로이 알게 된 세상을 아버지에게 전달하려 했던 그 이전의 노력의 시간들도 추억이란 글자에 묻어지고 어느 새 이전의 그가 아닌 나약해진 한 남자만이 남아있다.

만일 바캉스를 보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했다면 내 자신이 부끄러웠겠지만, 그의 상스런 방식들을 고쳐 주려 하는 행동은 정당하다고 확신했다. 어쩌면 그는 다른 말을 갖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헤어나 음악은 너한테나 좋은 거다. 난 살아가는 데 그런 거 필요없다] –본문

이제 나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어 라고 쓸쓸히 말하는 그를 보며 눈가에 눈물이 핑 맴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갖기 위해 몸부림 쳤다기 보다는 살기 위해,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투철히 던져진 그의 몸이 이제 그가 원하는 대로 더 이상 움직여 주지 않는다. 묵묵하고 별 다른 표정 변화 없이 살아온 그를 제대로 알 시간도 없이, 아니 알고자 하는 노력도 제대로 못해보았는데 어느 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나는 그를 통해서 그의 세계를 살고 그의 삶을 기반으로 나는 도약할 수 있었다. 무심한 듯 지나간 그의 자리를 이제서야 돌아본다. 나는 그가 영원히 강한 남자의 모습으로 살기를 바랐다. 나에게는 무서우면서도 엄하고 당당한 그의 모습으로 남기만을 기원하지만 어느 새 그에게도 세월이라는 흔적이 그에게 풍화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의 자리에만은 그림자가 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 알고 싶고 알아야 하는 것들이 많기에 나의 아버지와 나 사이에 흐르는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길 바란다

 

 

아르's 추천목록

 

한 여자 / 아니 에르노저 

 

 

독서 기간 : 2014.02.27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